1편 링크: https://4ssul.com/165085#0

 

 

하여튼 그날은 그렇게 쓸데없는 이야기들을 하다가 각자 갈림길에서 헤어지고 

 

다음부터는 무슨 특별한 일이 있지 않은 이상 항상 같이 귀가하면서 조금씩 친하게 됨.

 

우리 동네까지 걸어서 대충 30분 정도 걸렸는데 걔나 나나 굳이 걸어가는 이유는 같았음.

 

버스 기다리는 시간은 기본에 버스를 타더라도 코스가 빙빙 돌아가는 동네라서 걷느냐, 버스타고 가느냐 걸리는 시간은 비슷했기 때문임.

 

운동도 되고 돈도 아낀다는 생각도 똑같았음.

 

그리고 그 애의 특징은 내 생긴건 별로 신경 안쓰는 눈치였고 내가 여자한테 들이대지 않는걸 되게 신기하게 생각했음.

 

심지어는 내가 여친 있는가 의심하기도 함 ㅋㅋㅋㅋㅋ 난 평생 그런 의심 받아본적이 없는데 하여튼 희안했음.

 

게이도 아니고 여친도 없는데 왜 안들이대는가가 신기하게 느껴지다니 고딩은 고딩인가 싶었음.

 

물론 나의 경우에는 못생겼다는 자격지심 덕분에 패배의식이 장난아니라서 애초에 상관을 안하려는 태도 때문이었지만 

 

이상하게 그런걸 잘 모르는거 같았음.

 

원래 이쁜애들이라 못생긴 놈의 고충따위는 모르는건지...

 

그 여자애도 내가 신기하다고 했지만 나 역시 얘가 신기하기는 마찬가지였음.

 

그렇다고 해서 엄청 친하고 살갑게 구는 정도는 아직 아니었고 적어도 가게에서 보면 인사는 하는 수준이었음.

 

서로 웃어주기도 하고.

 

물론 이 변화를 눈치 못까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음.

 

왜냐면 그정도로 나나 그 여자애나 개성이 강렬했기 때문에 ㅋㅋㅋㅋㅋ

 

각자 거의 유일하게 대화 비슷한걸 하는 이성이 나나 걔뿐이었으니까.

 

당연히 친한 그 형의 추궁도 있었고 도대체 어떻게 꼬신거냐며 물어보기도 했는데 

 

난 정말 아무것도 한게 없어서 뭐 해줄 말이 하나도 없었음.

 

그리고 늘 그래왔지만 꼬신다는 생각 자체는 그때까지도 한적이 없었음.

 

이런건 어쩌다 생긴 우연일 뿐 나 따위가 여자를, 그것도 이렇게 이쁘고 어린애랑 사귄다는 생각은 하기 힘들었음.

 

아마 내가 늘 이런 태도를 유지 했기 때문에 들이댈지도 모른다는 부담없이 그 여자애도 내게 접근 할 수 있었다는 생각은 했었음.

 

 

 

참고로 나의 고자력이 어느정도였냐면 이렇게 같이 귀가한지 한달이 넘도록 난 걔 전화번호도 모를 정도였음. ㅋㅋㅋㅋ

 

사실 생각도 안했는데 그 형이랑 이야기 하다가 그 여자애의 전번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고 나의 멍청함에 경악을 하길래 그때서야 깨달음.

 

그때는 그래도 꽤 이런저런 사생활 이야기도 하고 내가 헛소리 하면 깔깔 웃기도 하고

 

그럭저럭 친해지는 전철을 착실히 밟고 있었는데도 아직까지 전번을 모르는건 이상하긴 했음.

 

남자랑 놀다가 이렇게 친해지면 진작에 전번 교환하고 그랬을텐데.

 

 

그런데 같이 귀가하면서 그게 신경 쓰여 막상 전번을 물어보려고 하니 입이 안떨어지는거임.

 

그런적이 없기도 하고 오해할거 같아서 무섭고 하여튼 오만가지 부정적인 생각이 머릿속을 멤돌아서 말을 꺼내기 너무 힘들었음.

 

당시에는 스마트폰이 나오기 전이라서 서로 걸어가면서 폰 화면만 보고 가지는 않았는데 

 

어쩔까 혼자 고민하면서 괜히 폰 꺼내서 만지작 거리고 안절부절 못했음.

 

ㅋㅋㅋㅋ 당연히 ㅄ같은 짓이지만 여자한테만큼은 개쑥맥인 내가 할수 있는거라곤 그것뿐이었음.

 

그 여자애는 대충 눈치 깠는지 "오빠 폰 좋은거네" 하더니 냉큼 뺏어감.

 

전역한 군인이고 예전에 알바로 모아둔 돈도 있어서 최신폰에 대한 욕망이 강렬해서 꽤 좋은거 샀었기 때문임.

 

하여튼간에 내 폰 뺏어가며 이거저거 만지작 하는거 같더니 뭔가 삐삐삐 하면서 번호 누르는 소리가 났음.

 

뭐지? 하고 보니 그 여자애가 자기 번호를 입력하고 전화를 걸고 있었던거임 ㅋㅋㅋㅋ

 

전화벨 소리가 나고 끊은 다음 여기 하면서 다시 폰 돌려줌

 

난 괜히 창피해서 말을 못하고 있었는데 이거 내 번호에요 하면서 본인 폰 들고 연락처 입력하고 있었음 ㅋㅋㅋㅋ

 

진짜 이 머쓱함은 이루 말할수가 없을 정도임.

 

그래서 뭔가 말해야겠다 싶어서 왠지 이러는게 세삼스럽다고 말함

 

그 여자애도 그러게 라고 대답했음.

 

그날은 그렇게 그냥 내가 옛날에 가게에서 겪었던 웃기는 상황들을 말하면서 집에갔음.

 

 

 

사실 전번 교환은 했지만 처음부터 특별히 연락은 따로 하지는 않았음.

 

하지만 같이 귀가하는 시간이 한달 두달 쌓여가면서 확실히 많이 친해졌다는걸 느낄 수 있었음.

 

못생긴 패배주의자인 나로썬 정말 신기한 시간들이었음.

 

 

 

이렇게 이쁜애랑 맨날 같이 집에 가면서 하하호호 떠들고 있다니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도 안됐음.

 

한편으로는 이 애도 이제 완전히 나를 신뢰하는거 같은 느낌이 많이 들었음.

 

한번은 왜 그렇게 남자들을 피했었냐고 물어봤는데 처음에는 곰곰히 생각하면서 바로 대답을 못하는거임.

 

얘기 하기 싫으면 안해도 된다니까 그때서야 말하는게

 

본인 아빠부터가 바람이나 피우는 개새끼였고 만나본 남자 새끼들이 다 개새끼들이었다면서 남자를 다 무슨 짐승으로 봤다는 대답을 함

 

그럼 나도 그런 짐승인데 왜 먼저 다가왔냐고 하니까 오빠는 조금 다른거 같아서 궁금해서 그랬다는거임.

 

그러다가 오빠는 왜 여자들을 피했냐고 물어옴.. 이유를 말할까 말까 하다가 그냥 나도 말함.

 

솔직히 나는 내가 넘 못생기고 여자들도 보통 나를 싫어한 덕분에 상처를 많이 받아서 내가 먼저 피하게 됐다고 함.

 

그러자 걔는 오빠 별로 못생긴 줄은 모르겠는데 이러는거임 ㅋㅋㅋㅋㅋㅋ

 

내가 봐도 못생긴거 맞는데 뭐~ 이러니까 오빠가 잘생긴건 아니긴 한데 그렇다고 자학할만큼 못생긴건 아니라고 하면서 굳이 자격지심 가질 필요 없다고 하는것임.

 

그말 들으니까 좀 찡~ 해짐..ㅠㅠ 그런 한마디 말로 내가 못생겼다고 믿는게 금세 사라지진 않았지만 처음 들어보는 말이었음.

 

그래서 나도 모르게 너도 예전에 안좋은 일이 있었다고 해도 과거만 생각하지 말고 앞날을 생각하라고 했음.

 

말해 놓고 뭔가 주제넘게 말한 기분이 들어서 좀 쪽팔려진 덕분에 쓸데없이 무마한답시고

 

"나 좀 멋있게 말하지?" 라고 자폭했는데

 

그럼에도 그 애는 좋게 받아들였음.

 

응~ 그러게  하면서 예쁘게 웃는데 가로등이 그걸 또 예쁘게 비춰주니까 

 

이건 뭐 아무리 멘탈이 이지경인 나라도 심쿵할 정도로 미소의 위력이 장난이 아니었음 ㅋㅋㅋㅋ

 

와 이러다 일나는거 아니야? 설레발 치지 말고 정신차리자고 계속 머릿속에 되뇌이면서 집에 감.

 

 

 

여하튼 이런 속에 감춰진 이야기들도 하면서 이제는 진짜 많이 친해진 덕분에 문자도 좀 하고 그런 사이가 됐음. 

 

물론 전화는 거의 안했지만.

 

그 여자애가 학교에서 오빠 뭐해? 라고 문자 보내고... 하여튼 신기했음. 

 

나야 물론 좋았지만 늘 정신병자 처럼 마음을 억누르려고 애썼음.

 

근데... 솔직히 이렇게 몇달 지내니까 아무리 ㅄ력이 쩌는 나라도 눈치를 챌 수 밖에 없을정도로 그 여자애의 행동이 많이 변하기 시작했음.

 

언젠가 여자 스타일 어떤게 취향이냐고 하길래 별 생각 없이 귀여운 스타일이 좋다고 대답 하니까 며칠 후에 입고 오는 옷이 바뀜 ㅋㅋㅋㅋㅋㅋ

 

설마??? 내가 한 말 때문에??? 그럴리가 없어!!! 라고 스스로를 세뇌 했지만 아무리 내가 부정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있어도 답은 하나밖에 안나오는거임.

 

내가 얼마나 철저하게 이 사실에 저항했냐면 주변에서 나로 하여금 설레발 치게 만들 원인을 미리 차단하기 위해 연애박사인 친구놈들의 상담조차 받지 않았음.

 

그놈들에게 물어보면 당연히 그정도면 넘어왔다 자빠트려라 따위의 소리를 할거고 나는 거기에 고무되어서 폭주할게 뻔했기 때문임.

 

하지만 점점 그애의 스킨쉽의 빈도도 높아지고 오히려 내가 겁나서 빼는 수준까지 옴.

 

뭐 별건 아니고 손 잡고 싶어하는 눈치가 좀 보였지만 애써 무시한다던지... 이상하게 애교가 늘어난거 같다는 느낌이 든다던지... 그런것들임.

 

 

하루는 가을에 밤에 추워질거 같은 날씨가 되어서... 낮에는 덥지만 밤에는 더운... 하여튼 나는 배달일을 하니까 그런게 쉽게 예측이 됐음.

 

그래서 가을용 점퍼를 하나 들고 왔는데 얘는 외투를 안들고 온거임.

 

퇴근하고 같이 걸어가는데 급쌀쌀해 지니까 좀 추워하는 기색이 있어서 누구나 다 하는 짓인 점퍼 걸쳐주기를 시전함.

 

"왠일로 남자답게 구네?" 이러는 그 애였지만 행복해~ 행복해~ 오오라가 너무 강렬하게 뿜어져 나와서 눈이 다 부실지경이었음 ㅋㅋㅋㅋㅋ

 

초반의 그 쿨한 모습은 다 어디로 가고 이렇게 자기 기분을 거의 숨기지를 못하는거임. 그런거에 비하면 난 기분은 잘 숨겼음.

 

어쨌든 다 내 착각이겠지 하고 계속 세뇌를 하긴 했는데 계속 이런식이다보니 결국 내가 두손 두발 다 들음.

 

나도 솔직히 얘가 너무 좋아진것도 있고 얘도 계속 신호를 보내는데 이걸 무시하는건 더이상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음.

 

어차피 언젠가 X될 거라면 먼저 X되는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고 나 답지 않게 결단을 내리기로 함.

 

 

결단은 사실 간단했음.

 

일단 데이트를 하는것이었음.

 

데이트는 안해본건 아니지만 좋은 기억은 별로 없어서 고민을 좀 했지만 연애박사 친구놈의 도움을 얻기로 함.

 

그놈은 내가 데이트 한다고 코스 추천좀 해달라니까 깜짝 놀라더니만 졸라 적극적으로 도와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자꾸 누구냐고 사진 보여달라해서 폰카로 찍은 사진도 보여줬는데 진짜 충격먹은 눈치였음.

 

사진빨 아니냐?? 라고 그러는데 난 약올릴려고 사진은 못생기게 나온거라고 함.

 

친구놈은 ㅂㄷㅂㄷ 했지만 너 주제에 졸라 용하다면서 더 열심이었음.

 

아무튼 대충 이정도면 되겠다 싶어서 사전 준비는 끝냈고 같이 귀가하면서 슬쩍 떠보기로 결심했음.

 

나라는 놈이 이렇게 용기를 내다니 정말 경천동지할 일이었지만 약간 자신감은 있었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거 같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