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시절 조별과제 하다가 같은 조 여자애랑 잔 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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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시간전
대학교 3학년 때, 교양수업 조별과제에서 만난 애가 있었다.
처음부터 서로에게 관심이 있었던 건 아니다. 조원은 다섯 명이었고, 걔는 발표자료를 만들었고 나는 자료조사를 맡았다. 단체 채팅방에서는 필요한 말만 주고받았고, 강의실에서 마주쳐도 고개를 한번 숙이는 정도였다.
다만 과제 마감이 가까워질수록 다른 조원들은 하나둘 핑계를 대며 빠졌고, 마지막 일주일은 거의 둘이서 했다.
“이 정도면 우리가 다른 애들 학점까지 만들어주는 거 아니냐?”
내가 말하자 걔가 노트북 화면을 보며 웃었다.
“그러니까 발표 끝나면 밥이라도 얻어먹어야지.”
발표는 생각보다 잘 끝났다. 교수님도 자료 구성이 좋다고 했고, 조원들은 자기들이 처음부터 열심히 한 것처럼 박수를 쳤다. 강의실을 나오면서 걔가 작게 욕을 했다.
“진짜 양심 없다.”
그 말이 웃겨서 둘이 한참 웃었다.
저녁에는 조원들과 술을 마시기로 했는데, 예상대로 두 명은 약속 직전에 빠졌고 한 명은 여자친구가 연락했다며 일찍 갔다. 결국 술집에 남은 건 나와 걔뿐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분위기는 평범했다.
과제 얘기를 했고, 학교생활이 생각보다 재미없다는 얘기를 했고, 서로 사귀었던 사람 이야기도 조금 했다. 걔는 오래 만난 남자친구와 몇 달 전에 헤어졌다고 했다.
“너는?”
“나도 지금은 없어.”
“지금은?”
“그 말에 왜 꽂혀.”
걔가 잔을 들며 웃었다.
“그냥 너 같은 애는 계속 있을 것 같아서.”
“내가 어떤 애인데?”
“은근히 사람 헷갈리게 하는 애.”
그 말이 조금 의외였다. 나는 걔에게 특별히 잘해준 기억이 없었다. 회의 날짜를 잡고, 발표 대본을 고쳐주고, 밤늦게 자료를 보내준 게 전부였다.
술집을 나왔을 때는 열한 시가 넘었다. 걔는 버스를 타려면 한 번 갈아타야 했고, 나는 학교 근처 원룸에 살고 있었다.
“좀만 더 마실래?”
그 말을 누가 먼저 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편의점에서 맥주 네 캔과 과자를 샀다. 걔는 내 방으로 걸어가는 동안 별말이 없었다. 나도 괜히 아는 동기를 마주칠까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방에 들어오자 걔가 말했다.
“생각보다 깨끗하네.”
“여자 온다고 치운 건 아니야.”
“누가 뭐래?”
말은 그렇게 했지만 둘 다 조금 긴장하고 있었다.
우리는 바닥에 앉아 맥주를 마셨다. 유튜브에서 음악을 틀었지만 아무도 제대로 듣지 않았다. 술집에서는 잘 이어지던 대화가 방에 들어오자 자꾸 끊겼다.
걔가 내 침대 옆에 놓인 사진을 보다가 물었다.
“이 사람은 전 여자친구?”
“누나야.”
“닮았는데?”
걔가 사진을 가까이 보려고 몸을 기울였다. 어깨가 닿았다.
그냥 우연이었다. 그런데 걔도 나도 바로 떨어지지 않았다.
내가 걔를 쳐다보자 걔도 나를 봤다. 몇 초 동안 아무 말도 없었다. 그런 순간에는 상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것 같으면서도, 확신하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왜 봐?”
걔가 물었다.
“네가 먼저 봤잖아.”
“안 봤는데.”
“보고 있었어.”
걔가 피식 웃더니 시선을 내렸다.
그 뒤로는 빨랐다.
내가 먼저 입을 맞췄고, 걔는 잠깐 멈칫했지만 피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서로 술 냄새가 신경 쓰일 만큼 어색했다. 입술이 부딪혔고, 걔가 웃어서 잠깐 떨어졌다.
“너 키스 못 한다.”
“그럼 하지 말까?”
“그 말은 아니고.”
걔가 내 티셔츠를 잡아당겼다.
침대로 옮겨간 뒤에도 몇 번이나 멈췄다. 술에 취해서 잘못 판단하는 건 아닌지, 정말 괜찮은지 서로 확인했다. 걔는 괜찮다고 했고, 나도 괜찮냐는 말을 반복했다.
결국 우리는 잤다.
영화처럼 자연스럽거나 완벽하지는 않았다. 이불이 자꾸 밀렸고, 좁은 침대 때문에 자세가 불편했고, 중간에는 걔 머리카락이 내 얼굴에 붙어서 둘 다 웃었다. 긴장해서 말도 쓸데없이 많아졌다.
그래도 서로 싫어서 멈추고 싶은 분위기는 아니었다.
끝난 뒤에는 오히려 더 어색했다.
걔는 내 티셔츠를 입고 침대 끝에 앉아 물을 마셨다. 나는 바닥에 떨어진 옷을 주워 의자에 올려놨다. 방금 전까지 아주 가까이 있었는데 갑자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후회해?”
내가 물었다.
걔는 물병을 내려놓고 잠깐 생각했다.
“아직은 모르겠어.”
그 대답이 솔직해서 오히려 안심됐다.
“너는?”
“나도.”
“최악이다.”
걔가 웃었다.
새벽 네 시쯤 우리는 나란히 누웠다. 걔는 처음에는 등을 돌리고 있었지만, 조금 뒤 내 쪽으로 돌아와 팔을 베고 누웠다.
“이거 조원들한테 알려지면 진짜 웃기겠다.”
“왜 알려져.”
“누가 봤을 수도 있잖아. 같이 편의점 가는 거.”
“봤어도 술 마신 줄 알겠지.”
“그럼 그렇게 해.”
“뭘?”
“그냥 술만 마신 걸로.”
그날 아침 걔는 일곱 시쯤 먼저 일어났다. 화장실에서 한참 머리를 정리했고, 전날 입었던 옷을 다시 입었다. 현관 앞에서 신발을 신으면서도 우리는 아무 말이 없었다.
문을 열기 전에 걔가 돌아봤다.
“학교에서는 평소처럼 해.”
“알겠어.”
“그리고 어제 일은 말하지 말고.”
“누구한테 말하겠어.”
걔는 고개를 끄덕이고 나갔다.
다음 수업 날, 걔는 다른 조원 옆에 앉았다. 나와 눈이 마주쳤지만 인사하지 않았다. 나도 모르는 척했다.
수업이 끝날 무렵 휴대폰이 울렸다.
어제 피임 제대로 한 거 맞지?
나는 맞다고 답했고, 혹시 걱정되면 같이 확인하러 가겠다고 했다. 걔는 한참 뒤에 답장을 보냈다.
응. 그냥 확인한 거야.
그리고 조금 뒤 메시지가 하나 더 왔다.
근데 나 어제 완전 취한 건 아니었어.
나는 그 문장을 몇 번이나 읽었다.
나도.
그 뒤 우리는 공식적으로 사귀지는 않았다. 가끔 늦은 시간에 만나 술을 마셨고, 몇 번 더 서로의 방에서 잤다. 낮에는 같은 강의실에 있어도 특별한 척하지 않았다.
학기가 끝난 뒤에는 연락도 자연스럽게 줄었다.
몇 년 뒤 동기 결혼식에서 걔를 다시 봤다. 우리는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반갑게 인사했고, 서로 잘 지냈냐고 물었다. 누구도 그때 일을 꺼내지 않았다.
헤어지기 전 걔가 내게 말했다.
“그 교양수업 기억나?”
“과제 우리가 다 했던 거?”
“응. 그것만 기억하지?”
걔가 웃었다.
나도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것만 기억하지.”
우리는 끝까지 그 밤을 모르는 일처럼 남겨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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