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했던 유부녀 길들인 이야기 4
고스트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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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7 22:31
그녀가 오지 않기로 한 날에도 나는 방을 만들었다.
친구를 만난다고 했으니 기다릴 이유는 없었다.
그런데 퇴근하고 원룸에 들어와 컴퓨터를 켜자 손이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평범한 일상 공유」
한 시간이 지나도록 그녀는 오지 않았다.
다른 여자가 들어와 인사를 했다. 몇 마디를 나눴지만 이상하게 대화가 이어지지 않았다.
그때 알았다.
나는 이제 여자를 기다리는 게 아니었다.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음 날은 퇴근하자마자 방을 만들었다.
십 분쯤 지나 접속음이 들렸다.
보통의하루.
나: 왔네요.
그녀: 기다렸어요?
나: 아니요.
그녀: 거짓말.
나: 왜요.
그녀: 어제도 방 만들었죠?
나는 잠깐 망설였다.
나: 네.
그녀: 역시.
나: 혹시 올까 봐.
그녀: 저 안 온다고 했잖아요.
나: 알아요.
그녀: 그런데도?
나: 조금 기다렸어요.
그녀: 또 조금.
그녀: 피터팬은 맨날 괜찮은 척하잖아요.
손이 멈췄다.
나: 가끔은 외롭죠.
그녀: 저도요.
나: 언제요.
그녀: 집에 왔는데 말할 사람이 없을 때.
나: 혼자 살아요?
그녀: 네.
우리는 서로의 방을 본 적도 없었지만, 적어도 그 조용함은 알고 있었다.
나: 어제 친구랑 제 얘기도 했어요?
그녀: 조금.
그녀: 채팅하는 남자가 있다고.
그녀: 조심하래요.
나: 맞는 말이죠.
나: 처음에는 여자 만나려고 방 만든 거 맞아요.
그녀: 솔직하네요.
나: 그런데 지금은 조금 달라졌어요.
나: 다른 사람이 들어오면 별로 재미가 없어요.
그녀: 어제도 누가 들어왔어요?
나: 여자 한 명.
나: 십 분도 안 했어요.
그녀: 왜요.
나: 그쪽이 아니니까.
그녀의 답이 늦었다.
나: 사진 보여달라는 말도 참고 있는데.
그녀: 절대 안 돼요.
그녀: 안 궁금해요?
나: 많이 궁금하죠.
그녀: 그런데 왜 안 물어요.
나: 싫어할까 봐.
밤이 깊어졌다.
그녀: 어제 얼마나 기다렸어요?
나: 한 시간 조금 넘게.
나: 보고 싶었나 보죠.
그녀: 얼굴도 모르면서요?
나: 그러게요.
그녀: 저도 어제 집에 와서 방 찾았어요.
나: 왜요.
그녀: 그냥.
나: 그냥 금지.
그녀: 보고 싶었나 보죠.
내가 했던 말을 그녀가 그대로 돌려줬다.
얼굴도 모르고 이름도 몰랐다.
하지만 수많은 대화방 가운데 서로 같은 방을 찾고 있었다.
며칠이 더 갔다.
같은 시간에 만나고,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서로를 기다리는 일이 자연스러워지고 있었다.
아마 그 확신이 문제였을 것이다.
나: 우리 상황극 하나 해볼래요?
그녀: 무슨 상황극이요.
나: 그냥 재미로.
나: 우리가 실제로 만났다고 치는 거예요.
그녀: 벌써요?
나: 저녁 먹고 늦게까지 같이 있다가.
나: 제가 집에 데려다주는 거죠.
그녀: 그다음은요?
나는 그 질문을 허락처럼 받아들였다.
나: 그다음은 하면서 정하는 거죠.
답이 없었다.
몇 초 뒤.
그녀: 싫어요.
나: 왜요.
그녀: 그런 거 싫어요.
나: 그냥 상황극인데.
그녀: 그래도요.
손이 멈췄다.
이상한 사람.
처음부터 가장 그렇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사실 완전히 다르지는 않았다.
나는 처음부터 그녀에게 욕망이 있었다.
다만 잘 숨기고 있었을 뿐이었다.
나: 미안해요.
그녀: 괜찮아요.
나: 앞으로 안 할게요.
그녀: 네.
이제 안 들어오면 어떡하지.
나: 화났어요?
그녀: 아니요.
나: 저 싫어졌어요?
그녀: 그건 아니에요.
그녀: 제가 싫은 건 그런 상황극이에요.
그녀: 피터팬이 싫은 건 아니고.
나는 그 문장을 오래 봤다.
나: 알겠어요.
나: 싫다고 말해주는 게 나아요.
나: 그래야 어디까지가 괜찮은지 알잖아요.
그녀: 어디까지인데요.
나: 오늘은 여기까지.
그 뒤로 우리는 다시 평범한 이야기를 했다.
점심 메뉴.
현장 날씨.
버스에서 졸았던 이야기.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하지만 아무 일도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나는 그날 처음으로 그녀에게 거절당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알았다.
그녀가 나와 이야기하고 싶어 한다는 것과
내가 원하는 것을 허락한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라는 걸.
그녀는 나가지 않았다.
다만 내가 함부로 들어가서는 안 되는 곳에 선을 하나 그었을 뿐이었다.
다음 날 나는 방을 평소보다 늦게 만들었다.
일이 늦게 끝난 것도 아니었다.
어제 일이 자꾸 생각났다.
아홉 시가 넘어 컴퓨터를 켰다.
「평범한 일상 공유」
십 분쯤 지나 접속음이 들렸다.
그녀: 늦었네요.
나: 일이 좀 있었어요.
거짓말이었다.
그녀: 오늘 왜 그래요?
그녀: 말이 짧아요.
나: 피곤해서요.
그녀: 어제 때문이에요?
그녀: 삐졌어요?
나: 안 삐졌어요.
그녀: 그런데 왜 갑자기 처음 만났을 때처럼 말해요?
나: 그냥 조심하려고요.
나: 또 싫어할까 봐.
그녀: 제가 다 싫다고 했어요?
그녀: 그 상황극이 싫다고 했잖아요.
그녀: 그런데 왜 이렇게 멀리 가요?
‘멀리 가요.’
나는 같은 방에 앉아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녀는 내가 멀어졌다고 느끼고 있었다.
나: 사실 어제 좀 창피했어요.
나: 괜히 이상한 제안한 것 같아서.
나: 안 들어올까 봐 그랬어요.
그녀: 그것 때문에 제가 아예 안 들어올 것 같았어요?
나: 많이.
나: 하나 물어봐도 돼요?
나: 저랑 실제로 만나는 것도 싫어요?
답이 오래 걸렸다.
그녀: 그건 아직 모르겠어요.
그녀: 지금은 채팅이 좋아요.
나: 그럼 지금은 채팅만 해요.
그녀: 계속은 모르죠.
나: 나중에는 달라질 수도 있고?
그녀: 그럴 수도 있고요.
나: 만날 수도 있고?
그녀: 너무 나간다.
나: 한 칸씩만 갈게요.
나: 어제 그게 왜 싫었는지는 물어봐도 돼요?
그녀: 만나지도 않았는데 너무 가까운 척하는 게 부담스러워요.
그녀: 갑자기 연인 같은 설정을 하니까 이상했어요.
그녀: 믿어볼게요.
‘좋아해요’보다 그 말이 더 좋았다.
잠시 뒤 그녀가 회사 이야기를 꺼냈다.
상사에게 혼난 이야기.
제 잘못도 아닌데 아무 말 안 하고 참았다는 이야기.
나는 해결책을 말하지 않았다.
그냥 읽고, 가끔 물었다.
나: 저한테는 참지 마요.
나: 싫은 거.
그녀: 그러면 피터팬도요.
그녀: 하고 싶은 말 있으면 너무 참지 마요.
나: 다 말하면 도망갈 수도 있는데.
그녀: 그건 제가 정하죠.
그녀: 대신 싫다고 하면 그만.
나: 약속.
그녀: 약속.
나: 오늘 들어와서 좋았어요.
나: 이 정도는 괜찮죠?
그녀: 네.
그녀: 저도요.
나: 뭐가요.
그녀: 오늘 피터팬이 들어와서요.
나는 그 말을 다른 뜻으로 끌고 가지 않았다.
밤이 깊었다.
그녀: 이제 자야겠어요.
그녀: 오늘은 안 잡네요.
나: 아쉬워요.
나: 내일 와요?
그녀: 피터팬은요?
나: 저는 올 건데.
그녀: 그러면 저도.
나: 약속?
그녀: 약속.
그녀가 나간 뒤 나는 대화창을 조금 위로 올렸다.
‘왜 이렇게 멀리 가요.’
나는 그녀에게 가까워지고 싶어서 욕망을 숨겼고,
한 번 거절당하자 이번에는 너무 멀리 물러났다.
둘 다 같은 이유였다.
그녀를 놓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사람과 가까워진다는 건 계속 앞으로 가는 일이 아니었다.
다가가다가 상대가 멈추라고 하면 멈추고,
조금 물러났다가,
다시 괜찮다고 하면 그 자리에 서는 일.
그녀는 내 마음을 없애라고 하지 않았다.
다만 자신의 ‘싫다’를 들으라고 했다.
| 이 썰의 시리즈 (총 6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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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호 | 날짜 | 제목 |
| 1 | 2026.09.27 | 평범했던 유부녀 길들인 이야기 7 (8) |
| 2 | 2026.09.27 | 평범했던 유부녀 길들인 이야기 6 (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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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 2026.09.27 | 현재글 평범했던 유부녀 길들인 이야기 4 (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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