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후배(20)-동성주의
리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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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시간전
절은 리조트에서 택시로 이십 분쯤 걸렸다.
오래된 사원이었다. 붉은 기와 지붕, 용이 감긴 기둥, 향 연기가 자욱한 마당. 관광객보다 현지 사람이 더 많았다. 할머니들이 두 손을 모으고 중얼거리며 향을 꽂고 있었다. 나는 그 굽은 등들을 오래 보지 못했다.
마당 한쪽에 붉은 종이와 붓이 놓인 탁자가 있었다. 안내판에 서툰 한국어가 적혀 있었다. 이름과 소원을 적어 걸면 이루어집니다. 돌아가신 분의 이름을 적으면 좋은 곳으로 갑니다.
"오빠, 우리도 쓰자."
그 애가 종이 두 장을 집어 하나를 내게 내밀었다. 나는 붓을 들었다. 그 애가 옆에서 몸을 기울이며 들여다보려 하자 손으로 가렸다.
"보지 마."
"치. 나도 안 보여 줄 거야."
그 애가 등을 돌리고 쪼그려 앉았다.
나는 할머니 이름을 썼다. 그 아래, 작게. 좋은 데 가세요. 못 가서 죄송합니다. 라고도 썼다.
종이를 반으로 접었다. 손이 떨려서 한 번에 안 접혔다.
"다 썼어?"
그 애가 일어서며 자기 종이를 흔들었다. 보지 말라더니 접지도 않고 들고 있었다. 붉은 종이 위에 그 애 글씨가 또박또박 적혀 있었다.
OOO씨 아프지 말고 오래오래 건강하세요.
그리고 OOO 오빠랑 계속 같이 있게 해 주세요.
맨 위에 내 이름 아닌 다른 이름 석 자가 눈에 들어왔다.
"이거 누구 이름이야?"
"울 엄마. 이름 써야 잘 들어준대서."
누구나 어디서 한번쯤 들어봤을 흔한 이름이었다.
"흔한 이름이지? 울 엄마 초등학교 때 반에 같은 이름 세 명 있었대."
"그러게."
그 애가 종이를 고이 접어 소원 거는 줄에 묶었다.
“울 엄마 진짜 고생 많이 했거든. 혼자 나 키우다시피 했어. 아빠는… 뭐, 있으나 마나고.”
그리고 생각난 듯 핸드폰을 꺼냈다.
"맞다, 우리 엄마 보여 줄까? 한 번도 안 보여 줬지."
화면 속에 여자가 하나 있었다. 어느 식당 같은 곳에서 케이크를 앞에 두고 웃고 있는 오십 대 여자. 짧은 파마머리, 수수한 카디건.
"작년 엄마 생신 때야. 나 이날 엄마 울렸잖아. 케이크에 '엄마 사랑해' 써 놨더니."
"효자네."
"효녀라고 해 줘."
그 애가 혀를 내밀었다. 나는 웃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어머니 인상 좋으시다" 했다. 그 애가 "그치?" 하며 뿌듯하게 핸드폰을 집어넣었다.
"나중에 오빠 소개시켜 줄까?"
"뭐라고 소개할 건데."
"음… 학교 선배? 고향 오빠?"
그 애가 장난스럽게 웃다가, 목소리를 낮췄다.
"…아니면 남편이라고 할까."
"너희 어머니 기절하신다."
"그치? 아들이 며느리가 아니라 사위를 데려가면."
그 애가 깔깔 웃으며 내 팔짱을 꼈다.
"오빠, 향도 피우자. 저기 할머니들처럼."
그 애가 향 세 개를 사 와서 하나를 내게 쥐여 줬다. 우리는 나란히 서서 두 손을 모았다. 그 애는 눈을 꼭 감고 입술을 달싹였다. 나는 할머니를 생각했다. 대문 앞까지 나와 내 손을 잡던 마른 손. 밥은 묵고 다니나. 추석에 간다고 했는데. 눈을 감자 코끝이 시큰해져서 얼른 떴다.
그 애가 나를 올려다봤다.
"오빠는 뭐 빌었어?"
"…비밀. 말하면 안 이루어진다며."
"치."
그 애가 내 손을 잡았다. 나는 그 손을 꽉 쥐었다. 너무 꽉 쥐어서 그 애가 "아야" 했다.
"오늘 오빠 진짜 이상해. 아침부터."
"…베트남 마지막 날이라 그래."
"아쉬워서?"
"응."
그 애가 내 팔에 볼을 비볐다.
"나도. 또 오자. 이번엔 같이 벌어서."
빌라로 돌아와 짐을 쌌다.
그 애는 캐리어 안쪽 주머니에서 마지막 하나를 꺼내 보였다. 검정 레이스 가터벨트 세트였다.
"이건 못 입었다. 아깝다…"
"한국 가서 입어."
"응. 한국 가서. 오빠 방에서."
그 애가 가터벨트를 고이 접어 다시 넣었다. 나는 그 손을 보며 생각했다. 한국에 가면 나는 장례식장으로 간다. 이 애한테는 뭐라고 하지. 집에 일이 생겼다고. 그래, 거짓말은 아니었다.
밤 비행기는 거의 비어 있었다.
그 애는 이륙하자마자 내 어깨에 기대 잠들었다. 업도 지우고 꽁지머리로 돌아간 얼굴. 창밖은 새카맸다.
핸드폰을 켰다. 비행기 모드 직전에 아버지한테서 온 톡이 하나 더 있었다. 발인 날짜와 장례식장 주소.
나는 핸드폰 화면을 끄고 그 애 정수리에 턱을 얹었다.
"…여보야."
그 애가 잠꼬대처럼 중얼거리며 내 팔을 끌어안았다.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창밖 어둠 속에서 비행기 날개 끝 불빛만 깜빡였다. 서울까지는 다섯 시간이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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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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