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후배(22)-동성주의
리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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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시간전
발인은 다음 날 아침이었다.
나는 관을 들었다. 아버지와 고모부, 사촌 형들과 함께. 할머니는 생각보다 가벼웠다. 시멘트 포대보다 가벼웠다. 그게 이상하게 서러워서 이를 악물었다.
그 여자는 오지 않았다. 아버지 말로는 새벽에 조용히 인사만 하고 먼저 갔다고 했다. 나한테 전해 달라는 말이 있었다고. 아버지는 그 말이 뭔지 전하지 않았다. 나도 묻지 않았다.
화장장 굴뚝으로 연기가 올라가는 걸 보며 핸드폰을 켰다.
간밤에 그 애한테서 온 톡이 스무 개가 넘었다.
오빠 자?
가터벨트 입고 기다리다 잠들었어 ㅋㅋ 바보같지
오빠 무슨 일 있어?
답장 좀 해 줘
나 걱정돼
오빠 혹시 화났어? 내가 뭐 잘못했어?
베트남에서 내가 뭐 실수했어?
오빠
여보야
엄지가 화면 위에서 멈췄다. 여보야. 그 세 글자를 오래 봤다. 읽음 표시가 떴을 것이다. 그 애는 지금 그걸 보고 있을 것이다. 내 방 침대에서.
나는 핸드폰을 껐다.
서울로 돌아가지 않았다.
고향 집 내 방, 할머니 냄새가 아직 남아 있는 이불 속에 누워 며칠을 보냈다. 아버지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밥때가 되면 방문 앞에 쟁반을 놓고 갔다. 우리 집 남자들은 원래 그랬다.
핸드폰은 하루에 한 번만 켰다. 켤 때마다 톡이 쌓여 있었다.
오빠 집에 무슨 일 있는 거면 말해 줘. 나 기다릴 수 있어.
엄마도 요즘 이상해. 장례식 다녀오고 나서 계속 울어. 누구 장례식이었는지 물어봐도 말을 안 해.
오늘 오빠 방 청소해 놨어. 빨래도 했어. 베트남에서 버린 그 하얀 거, 오빠가 빨아 준다며 ㅋㅋ 내가 빨았어.
보고 싶어.
진짜 보고 싶어.
나는 답장을 쓰지 않았다. 쓸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진실을 쓰면 그 애는 무너질 것이다. 그 애가 써 내려간 붉은 종이. 엄마 아프지 말고 오래오래 건강하세요. 그리고 오빠랑 계속 같이 있게 해 주세요. 두 소원이 하나는 다른 하나를 부숴야만 이루어지는 거라는 걸, 나 혼자만 알고 있으면 됐다. 그 애는 엄마를 잃으면 안된다. 그 애한테 엄마는 혼자 자기를 키워 준 세상에서 제일 소중하고 가장 배신해선 안되는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거짓말을 할 수도 없었다. 이제 거짓말하지 마. 이미 두 번 어겼다. 세 번째는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쪽을 골랐다. 가장 비겁한 쪽을.
톡은 점점 줄었다. 하루에 열 개가 다섯 개가 되고, 한 개가 되고, 사흘에 한 개가 됐다.
오빠 나 이제 안 귀찮게 할게.
근데 이유만 알려 주면 안 돼?
내가 싫어진 거면 그렇다고만 해 줘. 그럼 포기할게.
나는 그 애를 싫어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 말조차 할 수 없었다.
학교는 휴학을 연장했다. 과 단톡방은 알림을 껐다. 가끔 동기 놈들이 개인톡으로 "야 니 요즘 뭐하냐" "니 그 와이프 요즘 혼자 다니던데 싸웠냐 ㅋㅋ" 하고 보내왔다. 나는 "집에 일 있어서" 한 줄만 보냈다. 거짓말은 아니었다.
겨울이 왔다.
거리에 캐럴이 흘렀다. 편의점 유리창에 눈사람 스티커가 붙었다. 담배를 사러 들어갔다가 계산대 옆에 놓인 케이크 예약 전단지를 봤다. 딸기 생크림 케이크.
작년 엄마 생신 때야.
나는 전단지에서 눈을 떼고 담배만 사서 나왔다.
크리스마스이브 밤이었다.
나는 방바닥에 앉아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창밖으로 눈이 내렸다. 핸드폰을 켰다. 그 애 마지막 톡은 한 달 전이었다.
오빠 메리 크리스마스 미리 할게. 그날은 안 보낼게.
나 이제 진짜 안 귀찮게 할게.
그래도 오빠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사랑했어.
사랑했어. 과거형이었다.
나는 그 글자를 오래 봤다. 그 애는 나를 놓아 주려 하고 있었다. 내가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았는데도. 혼자서, 이유도 모른 채, 스스로를 탓하면서.
그 애는 지금 어디 있을까. 누구랑 있을까. 혼자일까. 이 눈을 보고 있을까. 그 애는 눈 오는 날을 좋아했다. 지난겨울엔 아직 우리가 이렇게 되기 전이라, 동기들 틈에 섞여 눈싸움을 하다 내 등에 눈뭉치를 집어넣고 깔깔 웃었다. 그때도 나는 그 애가 그냥 고향 후배가 아니라 뭔가 조금 다른 존재처럼 느껴졌었다.
그게 뭐였는지, 이제는 알 것 같았다. 이런 거였다면 몰랐으면 좋았을 텐데.
자정이 넘었다. 크리스마스였다.
나는 대화창을 열었다. 손가락이 자판 위에서 오래 머물렀다. 쓰고 싶은 말은 너무 많았다. 너를 사랑한다. 지금도 사랑한다. 너 때문이 아니다. 너는 아무 잘못도 없다. 너는 세상에서 제일 예뻤다. 첫날 밤 불 꺼진 내 방에서 나를 기다리던 너도, MT 골방에서 떨던 너도, 여름 내내 내 원룸에서 앙앙거리던 너도, 남쪽 바다 베란다에서도, 베트남 바닷길 야자수 아래서도. 하얀 레이스를 입고 신부 같다는 내 말에 얼굴을 붉히던 너도. 다 예뻤다. 다 사랑했다.
그런데 너는 내 동생이다.
쓸 수 있는 말은 하나도 없었다. 다 지웠다. 그리고 한마디를 적었다.
메리 크리스마스. 미안해. 안녕.
전송을 눌렀다. 읽음 표시는 금방 떴다. 그 애가 보고 있었다. 답장은 오지 않았다. 몇 분이 지나고, 몇십 분이 지나도.
창밖으로 눈이 계속 내렸다.
나는 빈 소주병을 옆으로 밀어 두고 바닥에 누웠다. 천장을 봤다. 베트남 풀빌라 천장에 일렁이던 물빛이 떠올랐다. 그 아래서 내 위에 올라앉아 웃던 그 애. 오빠 우리 진짜 신혼여행 온 거라고 치자. 여기 있는 동안만. 아니, 그럼 계속.
자다가 옆을 더듬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내 팔을 내 몸에 감았다. 두 팔로, 아무도 없는 품을 꽉 끌어안았다.
봄이 오기 전에 그 애가 입대했다는 소식을, 나는 더 이상 울리지 않는 과 단톡방 대신 동기 놈의 무심한 톡 한 줄로 들었다.
"니 그 와이프 군대 갔더라. 송별회도 안 하고 조용히 갔대."
나는 답장하지 않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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