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저녁, 박 부장의 땀 냄새와 역한 향수 냄새가 채 가시지 않은 베서니의 오피스텔에 들어선 순간, 내 세상은 무너져 내렸다. 내가 그토록 특별하다고 믿었던 관계는 한낱 비즈니스였고, 골목길에서의 뜨거웠던 기억은 수많은 거래 중 하나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온몸의 피가 차갑게 식었다. 이 모멸적인 공간을 당장 박차고 나가야 했다. 내 남은 마지막 자존심이 그렇게 소리치고 있었다.

하지만 내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오히려 베서니가 내 넥타이를 잡아끌며 "넌 다르지. 넌 재밌잖아."라고 속삭였을 때, 그 굴욕적인 구분에 내 안의 무언가가 뒤틀린 채 꿈틀거렸다. 그래, 나는 저 배 나온 돼지새끼와는 다르다. 나는 재미있다. 나는 젊다. 나는 이 여자를 진짜로 흥분시킬 수 있다. 썩어 문드러진 자존심이 마지막 발악처럼 고개를 들었다.

베서니는 그런 내 눈빛의 변화를 읽었다. 그녀는 승자의 미소를 지으며 나를 침실로 이끌었다. 박 부장이 방금까지 뒹굴었을 침대. 그가 남긴 체취가 아직 희미하게 남아있는 것만 같았다. 역겨움에 속이 울렁거렸지만, 동시에 그 사실이 이상하게 나를 자극했다. 이 침대에서, 이 공간에서, 내가 저 돼지새끼가 남긴 흔적을 완벽하게 지워버리고 내 것으로 채우리라.

베서니는 기다렸다는 듯 내 셔츠 단추를 하나씩 풀기 시작했다. 그녀의 손길은 노련하고 거침없었다. 나는 마치 복수라도 하듯 그녀의 티셔츠를 위로 벗겨냈다. 브래지어에 감싸여 있지 않은, 자유로운 상태의 가슴이 눈앞에 드러났다. 모델처럼 비쩍 마르지도, 그렇다고 거대하지도 않은, 손에 꽉 찰 만큼의 적당한 크기였다. 하얀 피부 위로 옅은 푸른 핏줄이 비쳤고, 핑크빛 유두는 이미 단단하게 서 있었다. 예전에 돈 주고 만졌던 그 딱딱하고 차가운 보형물과는 차원이 다른, 따뜻한 생명력이 느껴지는 진짜 가슴이었다.

나는 그녀를 침대에 눕히고 그 위로 올라탔다. 그녀의 몸은 생각보다 부드럽고 말랑했다. 군살 하나 없이 매끈한 몸매는 아니었다. 허리에는 부드러운 살집이 잡혔고, 허벅지는 탄탄하면서도 살짝 물렁한 감촉이 있었다. 하지만 그게 더 현실적이라서, 더 진짜 여자 같아서 미치도록 좋았다. 창백하리만치 하얀 피부는 내가 조금만 힘주어 만져도 금세 붉은 자국이 남았다. 그 모습에 내 안의 소유욕이 불타올랐다.

키스를 퍼부으며 아래로 내려갔다. 그녀의 몸에서는 희미한 바닐라 향과 그녀 고유의 살냄새, 그리고 아주 희미하게 박 부장의 역한 스킨 냄새가 섞여 있었다. 그 냄새의 부조화가 나를 더욱 미치게 만들었다. 내가 이 냄새를 내 것으로 덮어버리리라. 그녀의 배와 허벅지에 내 흔적을 남기듯 키스했다. 베서니는 내 머리를 끌어안으며 숨을 가쁘게 내쉬었다.

"Oh, 민준... Yes, right there..."

그녀는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한국 여자들처럼 아프다는 소리나 빼는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더 원한다는 듯 허리를 비틀고, 정확히 자신이 원하는 포인트를 내 손으로 이끌었다. 이게 서양 여자들의 개방성이라는 건가. 쾌락 앞에서 솔직하고, 자신의 욕망을 표현하는 데 주저함이 없는 태도. 그 모습에 나는 완전히 압도당했다.

준비할 새도 없이 그녀의 안으로 파고들었다. 베서니는 내 허리를 다리로 단단히 감싸 안으며 교성을 터뜨렸다. 그건 돈을 받고 의무적으로 내는 소리가 아니었다.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쾌락에 반응하며 터져 나오는 진짜 신음이었다. 그녀는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움직였다.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 움직임 하나하나에 어떻게 느끼는지 표정으로, 신음으로 전부 보여주었다.

"Harder... Please, harder..."

그녀의 요구에 나는 이성의 끈을 놓아버렸다. 박 부장에 대한 분노, 디저트 취급당한 내 처지에 대한 모멸감, 이 여자를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들고 싶다는 소유욕이 뒤섞여 맹렬한 움직임으로 폭발했다. 침대가 삐걱거리는 소리, 두 사람의 살이 부딪히는 마찰음, 베서니의 높은 신음 소리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나는 짐승처럼 그녀를 탐했다. 그녀 역시 그런 나를 온몸으로 받아내며 더 깊이, 더 강하게 원했다. 절정의 순간, 나는 그녀의 이름을 부르짖었고 그녀는 내 등을 손톱으로 할퀴며 가늘게 떨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거친 숨을 몰아쉬며 그녀 옆에 쓰러지듯 누웠다.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방금 전의 광란이 거짓말처럼 방 안에는 정적이 흘렀다. 박 부장의 흔적을 지워버리겠다는 내 목표는 성공한 것 같았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 이 방 안은 나와 베서니의 땀 냄새로 가득했다. 잠시나마 내가 승리자가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베서니는 내 가슴에 머리를 기댄 채 숨을 골랐다. 한참 동안 말이 없던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민준."
"응."
"넌 정말... 최고야. 그 사람은 이렇게 못해."

그 사람. 박 부장을 말하는 거겠지. 그 말에 방금 전 느꼈던 승리감이 더욱 부풀어 올랐다. 나는 우쭐한 마음에, 혹은 확인사살을 하고 싶은 마음에 물었다.

"그 아저씨랑... 뭐가 그렇게 좋은데? 비즈니스라니, 그게 다야?"

나는 그녀가 "그냥 돈 때문이야. 아무 감정 없어" 같은 대답을 해주길 바랐다. 하지만 베서니의 입에서 나온 말은 내 상상을 완전히 박살 내버렸다.

"음... 그냥 단순해서 좋아."
"단순하다고?"

그녀는 내 가슴팍에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그리며 조곤조곤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마치 친한 친구에게 비밀을 털어놓는 소녀 같았다.

"처음엔 비자 문제 때문에 접근했어. 박 부장님이 학원에서 힘이 좀 있잖아. 내가 먼저 저녁 식사를 제안했지. 뻔한 레퍼토리야. 비싼 소고기 사주면서 은근슬쩍 허벅지에 손을 올리더라고. 역겨웠지만 그냥 웃어줬어. 그날 바로 호텔로 갔지."

나는 숨을 죽인 채 그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 사람은 자기가 대단한 정력가인 줄 알아. 호텔 방에 들어가자마자 와이셔츠를 벗어던지는데, 출렁이는 뱃살이 정말... 끔찍했어. 근데 자기는 그게 권력의 상징이라고 생각하더라. 자기가 얼마나 돈을 잘 벌고 높은 사람인지 계속 자랑을 했어. 웃기지?"

베서니는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근데 막상 시작하면 10분도 못 가. 땀만 비 오듯 흘리고, 자기 혼자 헉헉대다가 끝나. 그럼에도 자기가 날 만족시켰다고 생각해. 내가 거짓말로 'Oh, 부장님~ You are amazing!' 한마디 해주면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 해. 자기가 무슨 백마를 정복한 개선장군이라도 된 것처럼. 그 모습이 너무 단순하고 멍청해서... 어쩔 땐 귀엽기까지 하다니까."

그녀의 고백은 충격적이었다. 나는 박 부장이 뭔가 대단한 테크닉이나 권력으로 그녀를 휘어잡았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냥 배 나온 늙은 아저씨의 한심한 자기만족에 불과했다. 그리고 베서니는 그 모든 것을 알면서도 완벽하게 연기하며 그를 손바닥 위에서 가지고 놀고 있었다.

"그 사람은 나한테 많은 걸 줘. 비자, 편한 스케줄, 그리고... 용돈도 꽤 챙겨줘. 가끔 비싼 가방도 사주고. 그 대가로 나는 일주일에 한두 번, 10분짜리 연극만 해주면 되는 거야. 나한텐 남는 장사지. 솔직히 너랑 하는 것보다 훨씬 쉬워. 넌 날 진짜로 만족시켜야 하잖아. 근데 그 사람은 그냥 내가 만족한 '척'만 해주면 되니까."

그녀의 마지막 말이 내 뒤통수를 세게 후려쳤다. 내가 우월하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이 한순간에 무너졌다. 나는 그녀를 '진짜로' 만족시켜야 하는, 힘든 상대였다. 반면 박 부장은 대충 연기만 해줘도 되는, '쉬운' 상대였다. 나는 그녀의 쾌락을 위한 도구였고, 박 부장은 그녀의 편의를 위한 도구였다. 본질적으로 다를 게 없었다. 어쩌면 나보다 그 아저씨가 그녀에게 더 유용한 존재일지도 몰랐다.

그 순간, 내 머릿속에 한 장면이 선명하게 그려졌다.

땀으로 번들거리는 박 부장의 육중한 몸. 그 몸 아래 깔려서, 역겨움을 감춘 채 억지 미소를 지으며 교성을 내뱉고 있을 베서니의 하얀 얼굴. 멍청하게 웃으며 그녀의 몸 위에서 헐떡이고 있을 돼지 같은 박 부장의 모습. "부장님~ 최고예요!" 라고 속삭이는 그녀의 목소리.

그 상상은 너무나도 역겹고 굴욕적이었다. 내 여자가, 방금 전까지 내 밑에서 울던 이 아름다운 백인 여자가, 저런 한심한 돼지새끼 밑에 깔려 연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나를 미치게 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분노와 수치심으로 온몸이 떨리는데, 몸의 다른 한 부분은 그 상상에 반응하고 있었다. 굴욕감과 흥분은 종이 한 장 차이라는 말이 맞았다. 그 더럽고 추악한 장면에, 내가 변태가 된 것처럼 심장이 뛰고 아래가 다시 딱딱하게 부풀어 올랐다.

베서니는 내 몸의 변화를 눈치챘다. 그녀는 내 눈을 들여다보며 악마처럼 속삭였다.

"왜 그래, 민준? 그 상상을 하니까... 흥분돼?"

정곡을 찔렸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베서니는 그런 나를 비웃듯, 내 위로 올라탔다.

"귀엽긴. 남자들은 다 똑같아. 자, 그럼 한 번 더 해볼까? 이번엔 내가 박 부장님한테 하는 것처럼 해줄게. 좋아?"

그녀는 일부러 더 과장된 신음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마치 연극배우처럼. 나는 그 모욕적인 제안을 거절하지 못했다. 아니, 거절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눈을 감았다. 내 위에서 움직이는 여자는 더 이상 베서니가 아니었다. 그녀는 박 부장 밑에 깔려 돈을 위해 연기하는 '걸레'였고, 나는 그 추악한 연극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며 흥분하는 관객이었다.

그날 밤, 나는 두 번째 섹스를 했다. 첫 번째가 정복욕과 분노의 배설이었다면, 두 번째는 완벽한 굴욕과 도착적인 쾌락의 탐닉이었다. 나는 완전히 패배했다. 그리고 그 패배의 맛에 중독되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