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후반남 어머니와의 속사정
나는 평범하지 못한 20대 후반 남자야
이야기에 들어가기앞서 나늗 아버지와는 25살 어머니와는 20살 차이가 나고 2살터울의 여동생이 있어.
5살때 부모님이 이혼하셨고 아버지는 이혼한지 1년이 되던 바로 그 날 새어머니와 재혼을 했다 그 공백의 1년동안 난 모르는 할머니에게 맡겨져 영문도 모른채 매서운 볼기짝을 후두러까여야만했다. 어렸음에도 얌전한 편이었는데도 면박주시던 그할머니는 성인이된 내 기억에도 나쁜어른으로 남아있다.
초등학교 2학년 가을운동회때 난.. 엄마치마폭 앞섶에 안겨 교문앞에 팔던 색병아리와 햄스터를 사달라는 친구들의 모습이 너무나도 부러울만큼 잘해주려 노력하시던 계모님껜 죄송스럽지만 그 거리감은 어떻게 극복이 안됐고 그냥 어린마음에도 죄송하더라.
그냥 좋지도 나쁘지도 않게 저학년이 흘러갔고
초5때 포경도하고 6학년땐 한두가닥씩 털도 나기 시작했었다. 당시 특이했던 점은 가족탕이라고 온가족이 다 가서 나체로 목욕을 하는곳이 있었다.
2차성징도 왔고 성에 눈을 뜨긴했었는데 두살터울 여동생과 계모님의 나체를 보고 서진 않았다. 아마 가족이라는 생각의 울타리가 내 스스로에게 자제력을 심어주었던것같다.
초6 가을방학즈음 어느날 나는 내동생과 혀씨름놀이라는것을 했다. 키스는아닌데 그냥 혀끼리 밀어내는 그런거였는데 그땐그게 그런 야한거라는걸 모르고 자주 놀았었다. 그렇게 나름 순수했던 초딩시절이 끝났다.
중딩입학 후 난 폭풍성장했고 수염빼고 모든 2차성징이 시작되었다. 당시 프루나 라는 레전드급 p2p랑 홈페이지주소자체가 야한 그런사이트의 야사를 친구들을 통해 접하게되었고 부모님외출하셨을때, 여동생없을 때는 무조건 야동 야사를 봤다. 딸치는법은 깨우치지 못했다.
문제는 중2때부터 시작됐다. 아버지가 야간근무로 집을비우신 밤.. 나는 자다가 몽정을했다. 첫 사정이었고 너무무서웠다 오줌이아닌 이상한게 나한테서 나왔다는 생각에 진짜 죽을병걸린것처럼 무서워서 계모님을 울면서 불렀고 그런 나를 안심시켜주시며 어른이 되는 과정이고 니가 건강해서 그런거니 안심하라고 하시며 목욕탕에서 손에 비누를 묻히고 깨끗하게 씻겨주셨다. 내 손이아닌 손이 내껄 만지는 기분이 너무 이상하고 찌릿거렸다 움찔댈때마다 계모님은 귀엽다는듯 웃으시곤 갈아입을 팬티와 수건을 준비해주시고 방으로 들어가셨다.
그 때의 찌릿거리던 내 분신의 감촉을 난 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다음날 샤워할때 비누를 손에 묻히고 손을 막 왔다갔다해봤는데 어젯밤 본 그 액체가 나오고 뭔가 기분이 몽롱했다. 그때부터 딸을 치기 시작했던것같고 부모님 부재중일 때 몰래 야동보다가 걸린거 두번과 중딩답게 학교에서 싸움질하고다니던거 그 두개가 그다음 큰 사건이라면 사건이었다.
고1이 되고 맘잡고 펜을 잡았다. 그러다 한두번씩 내 생모가 뵙고싶다는 생각이 들어 아버지께 상의해보니 앉은자리에서 담배 반갑을 피우시고는..그것만큼은 아버지가 허락하기 힘들다했고 난 계모님에 대한 예의로 마음을 접었었다.
그냥 고등학교 생활은 남들과 비슷하게 첫키스 첫연애 첫사랑 모의고사낙방 야자째고 피시방가기 등 뻔하게 흘러갔다.
그리고 스물이되던 해 가세가 급격히 기울었고,
아버지가 너 전화한통 올건데 이불 받는 사은행사 참여이니 네네만 하면 된다해서 오는전화 다 네 하고 대답만했는데 당시 신불자였던 아버지가 내 민짜풀림괴 동시에 2금융대출을 받으셨던것이었고 난 대학다니면서 학비랑 대출을 갚기위해 입대 전까지 노가다판을 전전하며 지냈다. 갑자기 너무나 생모가 또 사무치게 그리웠다.
입대 2주 전 정말 우연인지 필연인지 모르는번호로 전화가왔다 받으니 다짜고짜 어떤 여자가 내이름을 부른다. 누구시냐고 물으니 애써 울음참는목소리로 니 친엄마라고했다. 그때 앞뒤안재고 기댈곳없던 나는 어머니가 계신곳으로 가겠다했고 군대가기 전 꼭 뵈어야했다. 당시 여자친구도 그런 상황을 알아서 자긴 괜찮으니 어머님뵈러 가라고하던 그 목소리,말투가 아직도 내겐 가장천사같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솔직히 16년만에 친어머니를 만난다는생각에 긴장도됐고 내가 못알아보진 않을까하는 걱정도되서 기차가 시간이 어떻게 가는줄도 모른채 종착역까지 달렸다.
그리고 내려서 기다리는데 저기 저 분이 나를 낳아주신분이시란걸 그냥대번에 알겠더라. 눈물이 났지만 가까스로 억누르고 어머니의 집으로 어색하게 터벅터벅 걸어갔다.
아들 술은 할줄아니 하시는 물음에 조금은 할줄안다하였고 이혼하시고 피붙이들 떼내고까지 아버지를 떠나신이유들 들으니 아버지에대한 분노가 치솟았지만 내가 화내면 어머니 16년만에 뵙고 화내는모습먼저 보여드리는것같아 짓눌렀다.
그렇게 피쳐 몇병을 갈아치우고 어머니는 그래도 올바르게 자라줘 고맙다고.. 너 머리커서 재왕절개로 낳았다고 등등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진짜 많이 울었다. 어머니는 울지마라며 내가울면 더슬프니 울지마라시며 손가락으로 내 눈물을 닦아주셨고 나도 울먹이며 눈물을 닦아드렸다. 그러다 계속 아무말없이 서로 눈만 쳐다보았는데 길지도 짧지도 않게 한 3분정도 됬던것같다.
누가먼저랄것도없이 어머니와 나는 오랫동안 굶주린 짐승마냥 입술을 포개고 침이 질질흐르는것도 모를만큼 격렬하게 키스했다. 한 20~30분 됐던것같다. 머릿속에는 아주 작게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꿈틀대는데 그 순간에 더 충실했다. 당시 난 혈기왕성한 나이긴해도 여친도 있었고 사이에 문제가 있던것도 아니었는데 진짜 그냥 내가 짐승이 된 것 같았고 통제가 되질 않았다. 흐름에 몸을 맡기다보니 친어머니와 나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상태가 되었고 본능적으로 내 분신과 어머니의 밑이 흠뻑 젖어있는걸 알 수 있었다. 아랫배가 아플정도로 풀발기가 오래 지속될 수 있다는걸 처음 알았다.
그냥 망설임 단 1도 없이 내가 생겨난 어머니의 속으로 내 분신이 빨려들어갔다. 미화나 과장없이 어머니는 날 빨아들이셨고 나가지말라는듯 꽉 잡고 계셨다. 내가 뒤로 물러난다치면 꽉 물고 잡아당기셨다. 어머니는 신음을 애써 참으시는듯 보였고 방에선 살 부딪히는소리 헉헉헉 숨 고르는 소리 외에는 시계초 돌아가는소리 이외엔 들리지 않았다. 그 장면이 보고싶어 무심코 곁눈질로 아래를 쳐다보니 어머니 배와 밑쪽 사이에 재왕절개 바늘자국이 보였다. 그걸 보고 또 잠시 이건아니야 생각했지만 내 분신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고 어머니의 따뜻한곳 역시 나를 놓아주지 않으셨다. 재왕절개 흉터가 한번씩 눈에 아른거리는데도 내 허리는 멈출 생각이 없었고 간헐적으로 멈추면 어머니께서 허리와 골반,엉덩이를 쉴새없이 움직이셨다. 지루가 있던 나라서 평소 여친이랑 했을 때 무조건 한시간 반 이상 하는편이었는데, 어머니랑은 삽입 후 30분을 넘지 못하고 내가 태어난 그곳에 잔뜩 배출해버렸다. 왠지모르게 어머니와 떨어지기 싫었고 그냥 그대로 끼운채로 내가 무거울까봐 옆으로 돌아 눕는데 돌아 눕는 동시에 다시 커지고 있었다. 채 3분도 안되는 시간이었는데 그렇게 어머니와 나는 정말 끊임없이 결합되어 있었다. 결국 어머니도 참던 신음을 숨기지 않으시고 마음껏 뱉어내시며 이 순간에 승화되신듯 보였다. 그렇게 몇번을 했는지 세지도 못할만큼 많이 정을 통하였고 언제 잠들었는지도 모른채 씻지도 않고 안은채로 잤다. 눈떠보니 어머니는 밥상을 차려놓은채로 일을 나가신 후 였고 난 눈을 비비며 어기적거리다가 씻고 무슨생각을 하는지도 모른채로 엄마표 밥을 먹었다. 화장실로 가는데 온몸이 뻐근했다. 정말 엄청나고 엄청났던 밤이었다. 자리를 고쳐 앉고나니 후회와 탄식이 물밀듯 밀려왔는데 그와 동시에 바로 발딱 서더라. 진짜 머리와 몸이 따로 논다는게 딱맞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스스로의 고뇌에 빠져있는 사이 이윽고 저녁이 되었고 어머니가 도어락을 열고 들어오셨고 알 수 없는 정적만이 흘렀다. 밥먹었냐는 물음에 어색하게 대답하고 쭈뼛쭈뼛 서있었는데 어머니는 그 어색함이 싫었는지 티비를 켜셨고 멍하니 켜진 화면을 응시하다가 샤워를 하러 가셨다. 샤워기 물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 하나하나에 집중이 되서 티비따위는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렇게 20여분 지나고 어머니는 씻고 나오셨고 난 애써 티비화면만 응시하는척 했다. 이미 내 분신은 벌써 텐트를 치고 있었는데 안들키려고 엉덩이를 뒤로 쭉 빼고 고쳐앉았는데 어머니가 내 허벅지에 머리를 말리지도 않은채로 베고 누우셨다. 군대가기 2주도 안남았는데 군대에 대한 두려움은 단 1도 없었다 그냥 어머니랑 눈이 마주쳤지만 애써 외면하고 속으로 애국가만 하염없이 불렀다. 그 순간 어머니는 양 손으로 내 뒷통수를 살며시 누르셨고 그렇게 입술이 포개어지고 자연스럽게 몸으로 대화를 나누었다. 이 후 입대할 때까지 어머니와 깊은 관계를 지속하였고 면회외박이나 휴가를 나올 때조차 여자친구는 안중에도 없었다. 점점 소원해지더니 상병초때 여자친구와는 결국 헤어지게되었고 전역을 하고나서 사회생활을 하는 지금까지도 나는 어머니와 밀회를 즐기고 있다. 처음 삽입했던 느낌이 지금도 그대로다. 수많은 썰들이 있어 없는 용기까지 짜내어 글을 적어보았다. 양심의가책..이제는 그냥 가볍게 무시해버리는 내 모습이 참 인간같지도 않은데 난 앞으로 어머니랑 계속 이어가게 될 것 같다.
궁금해하실 것 같은 내용들 나열해보겠다.
흔히들 모자지간 속궁합이 최고라는 말을 많이들 한다. 속궁합 솔직히 뭐가 잘맞는거고 안맞는건지 잘 모르겠으나, 내가 해본 바로는 내 꼬추모양을 본뜬 탄력성좋은 따뜻한 어떤무언가가 날 놓지 않는 느낌이다. 덕분에 오래해도 많이해도 아프거나 하지 않다.
한마디로 어떤 문에맞는 열쇠를 꽂아서 문을 연 느낌이다.
이 후 히스토리는 명절 때 혹은 가족 경조사 때마다 외갓댁에 갈 때면 평범한 모자지간인척 연기하고 어머니도 잔소리를 늘어놓는 평범한 엄마를 며칠간 유지하신다.
최근에 외할머니댁에 안마의자도 하나 놔드렸는데..하..손자가 돈벌어서 할머니께 안마의자 선물해드린건 누가봐도 멋있고 박수받을만한일인데.. 어머니와 내 관계를 아신다면...
아직도 이모들은 어머니께 새로운사람 만날것을 웃음반진담반으로 권유하시지만 나는 속으로 절대 그럴 일 없을거라고 웃어넘기곤한다.
긴 글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를 표하고 욕을 하셔도 상관없습니다. 저도 이게 잘한짓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혹시나 행여나 주변에 저와 비슷한 처지에 있으신 분들 계신다면 모두 힘내시라고 말하고 싶네요.
남은 주말 마무리 잘 하시고 다들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빕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외쳐서 조금 후련합니다. 베프던 소울메이트던 이런 얘기 할 곳이 없어 속앓이했는데 그나마 조금 풀립니다. 감사합니다.
[출처] 20대후반남 어머니와의 속사정 (야설 | 은꼴사 | 놀이터 | 썰 게시판 - 핫썰닷컴)
https://hotssul.com/bbs/board.php?bo_table=ssul19&page=1682&sod=asc&sop=and&sst=wr_hit&wr_id=1400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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