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2

우리는 살고있는 지역에서 오다가다 스치는 사이였다.
서로의 존재는 알고있었지만, 정말이지 자주 스치는 그런 사이.
말도 섞지 않고 신기할 정도로 동네 구석구석에서 스치는 그런 사이.
어려서부터 암울한 삶이었다 생각한다.
가족 중 그 누구와도 말을 섞거나, 친구들과 웃고 떠들지 않았던 나였다.
친구가 전부였던 초등시절은 웃고 떠들며 동네를 활보하고 다녔지만, 점점 커가면서 내 현실이 녹록치 않다는걸 깨닳고 스스로를 가두고 있었다.
친했던 친구들은 학년이 올라갈수록 같은 학원을 다닌다고 짝을 지어 다녔지만, 집안 사정이 녹록치 않았던 나는 집안에만 틀어박혀 있었다.
그러다 아이들 소리가 나면 반가움에 뛰쳐 나갔지만, 삼삼오오 모여 학원을 가는 모습을 보고는 다가가지 못한체 재빨리 몸을 숨겨 그 무리를 동경하기 일쑤였지만 집안에 대한 원망은 전혀 없었다.
그렇게 머리가 커가면서 동네 친구들은 일주일에 한번 스칠까말까 할 정도인데 신기하게도 그 아줌마는 또래들 보다 더 내 눈에 띄였었다.
왜 너는 혼자 있니?
친구들과 같이 학원 안가니?
이런 말들이 듣기 싫어 동네에 익숙한 얼굴의 어른들을 볼때마다 숨어 다녔었다.
그런데도, 그런말 한번 한적 없는 사람임에도, 얼굴을 맞대면 나를 동정하는 듯한 말을 내뱉을 것만 같아서 더욱더 피해다녔었다.
그 무렵 학교에서도 무기력하게 혼자 지내는게 다반사였고, 동네에 와도 아는 얼굴이 없어질 만큼 커져있을 때.
그런 일련의 과정들 속에서도 그 아줌마를 내가먼저 먼발치에서 발견할 만큼 눈에 띄었고 피해 다녔었다.
고개를 돌렸을 뿐인데 눈이 마주치고, 고개만 까딱이기를 몇 년.
언제부턴가 아줌마는 나와 눈이 마주칠때면 한껏 웃어주었다.
그럼에도 재빨리 몸을 움직여 그 자리를 피해버리곤 했었다.
그렇게 수년이 지나 다른 지역의 대학에 들어가게 되었고, 넉넉치 않은 집안 형편임에도 불구하고 기숙사에도 들어가지 못해 밤낮없이 알바를 하며 겨우겨우 보증금과 몇 달치의 월세를 마련하고 개강을 바로 앞둔 며칠전에야 학교 근처 원룸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책이며 옷이며 반찬거리를 갖다준다는 핑계로 같이 오려는 어머니를 거절하고 조그마한 다마스에 몸을 싣고 몇시간을 달려 원룸에 들어갔을땐, 집이나 여기나 어느 한 곳 편한데가 없다는 현실의 답답함에 방바닥에 주저앉아 소리없이 눈물만 흘렸었다.
한학기 내내 다음 월세와 등록금을 준비해야 하는 그 답답함은 나를 심하게 억누르고 있었다.
학교 다니는 척 학교 근처에 공장이라도 다닐까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었다.
멀지 않은 원룸촌에는 고급 스포츠카가 서있고, 대학만 마치면 된다고 선물 받았다며 자랑하는 다른 과 녀석.
매일매일을 술과 여자로 보내는 걸 보면서 자괴감이 들었다.
수업을 끝내고 과제를 대충 마치고 PC방에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기위해 고급 스포츠카가 서있는 주차장을 지날때마다 미칠것만 같았다.
매일이 부러움이었고 질투였다.
뺏고 싶고 갖고 싶었다.
단한번도 잘난척 한 적 없고, 우월감을 보인적 없는 사람인데, 스스로 열등감에 빠져 나 자신을 나락으로 떨어 뜨리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 내 생에 첫 여자를 만나게 되었다.
온갖 부정적인 생각들로 가득차있었고 표출하진 않았지만, 때때로 터트리고 싶을 때 나타난 사람.
같은 학번이지만 재수했다는 이유로 존댓말을 썼고, 나에게 존댓말을 써주던 사람이었다.
사람을 어려워 하고있을 때 다가온 사람이라 더더욱 어려웠지만, 시간이 지나니 차라리 존댓말이 편했었다.
어쩌다보니 사귀는 사이가 되었지만, 이후로도 여전히 존댓말을 쓰게되었다.
연인이면서도 존대하는 모습에 주변 사람들은 처음엔 우리가 사귀는 걸 모를 정도였다.
그녀역시 나처럼 원룸에 살고있었지만, 거의 내방에서 지냈었다.
그렇다고 남녀의 관계를 갖었던건 전혀 아니었다.
내 스스로.
내가 부족하다는 생각에, 한 여자를 책임질 수 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어 그저 졸려서 잠만 잘 뿐 어떠한 스킨십도 없었다.
그녀 역시 그런것에 대하여 묻지 않았고 바라지 않았다.
그저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있고 싶었고, 준비가 되어있고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당시에 나는,
좋은 감정을 갖고 있었지만, 함부로 사랑한다 말 할 수 없었다.
사랑한다는 감정이 생기는 순간 그녀와 잠자리를 가질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녀를 책임져야 할 것 같았다.
그게 두려웠다.
하루하루가 빡빡한 나에게, 내몸 하나 건사하기 힘든 그 시절.
누구를 책임진다는 건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그리고 받은 통지서 하나.
입영통지서.
집에서 연락온 그 한마디가 날 억눌렀기 때문에 더 그랬었다.
항상 내 방에 와있던 그녀에게 이유없이 투덜대고 차갑게 대하다 보니 내방에 오던 횟수가 줄어들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어느날 갑자기 훈련소로 가버렸다.
문득 생각이 나긴 했지만 여자를 건들지 않았단 이유로 책임은 없다고 합리화했다.
자대배치 받고 정신없던 신병시절
선임들의 말도 안되는 트집에 눈치보고 있을때에 행정반에 전화가 왔다며 불려갔다.
집에 무슨 일이 생긴건지 걱정보다는, 신병 주제에 전화 온다고 갈굴 고참들이 떠올라 미칠지경이었다.
그리고 들려오는 그녀의 목소리.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교수님 외에는 군대간다는 말을 학교 사람들 한테 한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물어물어 우리 집에 연락을 해 내가 군대 간 것을 확인하고 찾아보았다며 전화를 했었다.
고참들에게 갈굼을 당할 생각보다는 반가움이 더 컸다.
훈련소에서 매일매일 여자친구 한테서 서너통의 편지가 오는 녀석이 부러웠다.
그럴때마다 그녀를 생각했지만, 내 원룸 주소만 알 뿐 그녀의 원룸 주소는 몰랐다.
급한일 외에는 전화통화를 할 수 없어 조곤조곤 이야기 하며 핸드폰 번호를 물어 급하게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공중전화로 가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본가에서 가까운 곳에 있다며 면회를 온다한다.
그러든지 말던지.
그러면 안되는 걸 알면서도 차갑게 대했지만, 그녀는 한껏 들떠 있었다.
며칠이 지난 일요일
그녀는 정말로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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