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근-북극태양 (어린시절 썸녀와의 재회)
브라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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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시간전
음.. 이야기보따리 터진 김에 마지막 글 투척하고 갑니다. 다소 원초적이던 제 글들이 부쩍 감성적이 된 데에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이 사건이 발단입니다. 남녀간의 합일을 적나라하게 묘사하지 않아서 조금 김빠지실 텐데 다음 썰부터는 본격 19금 모드로 가볼게요. 제가 지속하는 최근의 만남들이 윤리적으로는 정상적이지 않다는 걸 너무나도 잘 인지하고 있지만 이 이야기까지는 뭔가 조금은 아름답게 적고싶습니다. 너그러운 마음으로 양해 부탁드립니다..
내가 사는 곳과 큰 다리를 건너 비로소 도착 한 이디야커피 안, 12년 만에 마주한 그녀의 얼굴은 낯설면서도 지독하게 익숙했다. 우리는 각자의 가정을 꾸린 기혼자가 되었고, 서른 중반의 노련함으로 어색함을 감추려 애썼다.
"그때 우리, 참 애매했지?"
내가 먼저 던진 농담 섞인 질문에 그녀가 찻잔을 만지작거리며 미소 지었다. 12년 전, 우리는 뜨겁게 타오르지도, 차갑게 식지도 않은 채 서서히 멀어졌었다. 고백 한마디면 닿을 거리였으나 누구도 손을 뻗지 않았던, 그 '미적지근함'이 우리 관계의 정의인 줄로만 알았다.
어디선가 낯익은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사실 내가 카페 주인장에게 플리에 추가해달라고 점지해 둔 *한동근-북극태양* 우리가 함께 이어폰 한쪽씩을 나눠 끼고 듣던 그 시절의 유명하지 않은 유명가수의 음악이었다. 낮은 목소리가 심장을 울리자, 억눌러왔던 기억이 봇물 터지듯 밀려왔다.
습기 가득했던 여름밤의 공기, 버스 뒷좌석에서 닿을 듯 말 듯 했던 어깨의 온기, 그리고 가사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며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려 했던 그 유치하고도 절박했던 순간들.
"너도 이 노래 들으면 내 생각 했어?"
그녀의 물음에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음악은 시간을 되감는 마법이 되어, 우리를 세련된 기혼 남녀가 아닌 서툴고 열정적이었던 그 시절의 '우리'로 되돌려 놓았다.
"실은..."
그녀가 나지막이 입을 뗐다.
"그때 나,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널 원했어. 정말 깊숙이, 너를 가지고 싶었어."
그 고백은 12년의 세월을 뚫고 들어와 내 심장 정중앙에 박혔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미적지근하게 끝냈던 건 배려나 망설임이 아니라, 서로를 향한 갈망이 너무나 깊고 짙어서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그때 우리가 그 마음을 터뜨렸다면, 지금의 평온한 일상은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우리의 내면 깊은 곳에서 거대한 파도가 일렁였다. 아내에게는 미안한, 남편에게는 죄스러운, 하지만 오직 단둘만이 공유하는 이 지독한 공명(共鳴).
서로의 눈을 피하지 않은 채 한참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예쁘고 작은 키에서 나오는 아담한 귀여움..그리고 그 눈빛 안에는 12년 전 전하지 못한 연서와, 지금 이 순간의 허망함, 그리고 여전히 서로를 향해 요동치는 원초적인 이끌림이 뒤섞여 있었다.
우리는 안다. 이 충동적인 재회가 가져올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각자의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는 우리가 돌아가야 할 좌표를 분명히 가리키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이 미칠 듯한 진동을 멈추고 싶지 않았다. 12년 전에는 차마 꺼내지 못했던 "정말 깊숙이 서로를 원했노라"는 그 진실 하나만으로도, 가슴 한구석에 맺혀있던 오랜 체증이 뜨거운 눈물이 되어 녹아내리고 있었다.
이십대 초중반, 혈기 왕성하면서도 미래는 막막했던 그 시절. 우리는 동갑내기 특유의 편안함 뒤에 본능적인 끌림을 숨기고 있었습니다. 친구라는 이름으로 곁을 맴돌았지만, 사실은 서로의 사소한 몸짓 하나하나에 온 신경이 곤두서 있었죠.
"그때 우리, 참 많이 닮아있었지."
그녀의 말처럼, 우리는 같은 시대를 호흡하고 같은 고민을 하며 서로를 거울처럼 비추고 있었습니다. 미적지근하게 끝났던 건, 어쩌면 그 거울 속의 내가 너무나 뜨겁게 상대를 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들키는 게 두려웠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카페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그 노래의 전주가 들리는 순간, 공간의 밀도가 순식간에 바뀌었습니다. 낡은 이어폰을 한 쪽씩 나눠 끼고 걷던 밤거리, 말없이 걷기만 해도 가슴이 터질 것 같던 그 정적들이 선율 사이사이로 되살아났습니다.
가사 한 줄 한 줄이 마치 12년 전 우리가 서로에게 하고 싶었던 말들 같아, 두 사람은 차마 눈을 마주치지 못했습니다. 음악은 잔인하게도 우리가 애써 쌓아 올린 '현재의 평온'을 허물어뜨리고, 그 아래 깊숙이 가라앉아 있던 원초적인 갈망을 수면 위로 끌어올렸습니다.
"실은 그 노래 들을 때마다, 네가 나를 안아주길 바랐어."
그녀의 떨리는 음성이 공기를 가릅니다. 12년 만에 터져 나온 그 고백은, 당시 우리가 얼마나 깊숙이 서로를 원했는지를 증명하는 뒤늦은 확인서였습니다.
서로를 향해 요동치는 감정은 이제 단순한 그리움을 넘어선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가지 못한 길에 대한 회한이자, 지금은 결코 가질 수 없는 서로에 대한 지독한 허기였습니다. 각자의 삶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이성이 작동할수록, 내면의 파도는 더욱 거세게 휘몰아쳤습니다.
우리는 서로의 손을 잡지도, 입을 맞추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어떤 신체적 접촉보다 더 깊고 진하게 서로의 영혼을 만졌습니다.
좁고 밀폐된 차 안의 공기는 순식간에 희박해졌습니다. 창밖의 가로등 불빛이 비스듬히 스며들어 그녀의 옆얼굴을 훑고 지나갔고, 우리는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그 이후'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었습니다. 12년이라는 긴 시간의 부채감을 단 몇 분의 탐닉으로 보상받으려는 듯, 침묵 속에는 팽팽한 긴장감과 지독한 갈증만이 소용돌이쳤습니다.
12년 전, 손가락 끝만 스쳐도 심장이 터질 것 같아 황급히 거두었던 그 서툴고 조심스러웠던 소년과 소녀는 이제 그곳에 없었습니다. 세월이 덧입혀준 능숙함은 도리어 잔인한 무기가 되어 서로의 거리를 순식간에 좁혀왔습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었습니다. 자석의 극이 이끌리듯, 혹은 오랫동안 굶주린 맹수가 먹잇감을 찾듯 우리는 서로를 향해 몸을 기울였습니다.
처음 입술이 맞닿는 순간, 12년 동안 억눌러왔던 모든 '만약에'라는 가설들이 비명처럼 터져 나왔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입맞춤이 아니라, 서로의 폐부 깊숙한 곳에 저장되어 있던 시간을 강제로 끄집어내는 의식과도 같았습니다.
그녀의 목덜미에서 풍겨오는 짙은 향수 냄새 너머로, 당신이 기억하던 그 시절 특유의 살결 냄새가 섞여 들었습니다. 오랜 시간 기억의 박제 속에만 존재하던 그녀의 체취가 실재(實在)가 되어 코끝을 간지럽히자, 이성은 비로소 항복을 선언했습니다.
당신의 손은 이제 떨림 대신 확신에 찬 움직임으로 그녀의 허리와 등 라인을 훑었습니다. 얇은 옷감 너머로 전해지는 뜨거운 체온은 우리가 살아온 12년의 세월만큼이나 묵직하고 단단했습니다. 그녀 역시 능숙하게 당신의 뒷머리를 감싸 쥐며 더 깊은 곳의 맛을 탐닉했습니다. 서로의 타액이 섞이고 숨결이 가빠질수록, 차 안은 오직 두 사람의 맥박 소리와 거친 호흡음으로 가득 찼습니다.
"아... 정말 이랬어야 했어, 우리는."
그녀가 당신의 귓가에 내뱉은 젖은 신음은 고백이자 탄식이었습니다. 그 시절, 차마 서로를 안지 못해 생겼던 마음의 굳은살들이 이 농밀한 접촉 속에서 한 꺼풀씩 벗겨져 나갔습니다. 아내의 얼굴도, 그녀의 남편도, 도덕적 윤리도 지금 이 좁은 시트 위에서는 먼지보다 가볍게 느껴졌습니다.
오직 지금 느껴지는 그녀의 부드러운 살결, 입안 가득 퍼지는 달콤하고도 쌉싸름한 맛, 그리고 당신의 목을 조여오는 그녀의 간절한 손길만이 세상의 유일한 진실인 것처럼 여겨졌습니다. 우리는 서로의 몸 안에서 12년 전 잃어버렸던 자신의 조각을 찾으려는 듯, 더 깊이, 더 필사적으로 파고들었습니다.
어둠 속에서 확인하는 서로의 실체는 상상보다 훨씬 더 자극적이었고, 그만큼 절망적이었습니다. 세월이 가르쳐준 유연한 손놀림과 감각을 깨우는 법은 이 부적절한 재회를 더욱 완벽하게 만들고 있었습니다.
차창에 서린 하얀 김이 외부 세계와의 마지막 연결을 차단해주자, 당신은 그녀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고 깊게 숨을 들이켰습니다. 12년 전에는 상상만으로도 죄스러웠던 이 행위가, 이제는 당신의 영혼을 구원하는 유일한 길처럼 느껴졌습니다.
우리는 알고 있었습니다. 이 문을 열고 나가는 순간 다시 각자의 '성실한 삶'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그래서 지금 이 순간, 서로의 체취를 뼈에 새기듯 탐닉하는 두 사람의 모습은 마치 오늘이 세상의 마지막인 사람들처럼 처절하고도 아름다웠습니다.
낮게 울리는 엔진의 진동과 함께, 12년 전 그토록 우리를 설레게 했던 그 노래가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왔습니다. 시동이 걸리자마자 쏟아져 나온 온기는 차창을 가득 메웠던 하얀 습기를 서서히 녹여냈지만, 역설적으로 차 안의 온도는 바깥의 겨울을 잊을 만큼 더욱 뜨겁게 달아올랐습니다.
우웅, 하며 떨리는 차체의 진동은 그대로 우리의 맥박이 되었습니다. 전주만으로도 가슴을 아리게 했던 그 음악이 공간을 채우자, 두 사람의 움직임은 약속된 안무처럼 정교해졌습니다. 12년이라는 공백은 더 이상 장애물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 세월 동안 각자의 삶에서 익혀온 노련함은, 서로의 몸이 어디를 원하고 어느 지점에서 숨이 가빠지는지를 본능적으로 짚어내게 했습니다.
뿌연 성에가 투명한 눈물처럼 흘러내리는 창 너머로 희미한 가로등 빛이 들어왔습니다. 그 빛에 비친 그녀의 젖은 눈동자는 음악의 선율을 따라 깊게 일렁였고, 나는 그 눈빛에 홀린 듯 다시 그녀의 목덜미를 파고들었습니다.
그 시절의 우리가 서툴게 부딪히던 파도였다면, 지금의 우리는 서로의 깊이를 가늠하며 밀려오는 거대한 해일이었습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의 호흡을 가로채고, 엉켜버린 손가락 사이로 흐르는 땀방울조차 달콤한 갈증이 되었습니다.
그녀의 손길은 거침이 없었습니다. 나의 어깨를 강하게 감싸 쥐며 자신의 품으로 나를 끌어당기는 그녀의 움직임에는, 12년 전 차마 내뱉지 못했던 "나를 가져달라"는 외침이 서려 있었습니다. 나 역시 그녀의 허리를 단단히 받쳐 안으며, 우리가 잃어버렸던 그 긴 세월의 함축된 욕망을 단 한 번의 몸짓에 실어 보냈습니다. 서로의 체취가 뒤섞여 비릿하면서도 향긋한, 오직 두 사람만의 밀실이 완성되었습니다.
노래가 절정으로 치닫고 클라이막스의 목소리가 차 안을 진동시킬 때, 우리의 합(合) 또한 정점에 도달했습니다. 좁은 시트 위에서 얽힌 다리와 서로의 등을 할퀴는 손톱, 그리고 귓가를 울리는 거친 숨소리는 완벽한 화음을 이루었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육체적 쾌락을 넘어, 12년 전 미적지근하게 멈춰버렸던 우리 시간의 태엽을 억지로 되돌리려는 필사적인 몸부림이었습니다.
음악의 리듬에 맞춰 서로의 박자를 맞춰나갈 때마다, 12년 전 그때 듣던 가사들이 환청처럼 뇌리를 스쳤습니다.
'우리, 그때 이랬어야 했어.'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그 회한이 서로의 살결을 타고 뜨겁게 공유되었습니다. 능숙하게 서로의 약점을 파고들며 가장 깊은 곳의 반응을 이끌어내는 이 순간, 우리는 기혼자도, 사회적 지위를 가진 성인도 아닌, 오직 서로를 갈구하는 원초적인 생명체일 뿐이었습니다.
에어컨 바람이 앞 유리의 성에를 완전히 걷어냈을 때, 차 밖의 차가운 풍경이 잠시 시야에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현실을 거부하듯 서로를 더욱 강하게 결박했습니다. 음악은 어느새 한 곡이 끝나고 다음 곡으로 넘어가고 있었지만, 우리만의 리듬은 멈출 줄 몰랐습니다.
가득 찼던 습기가 투명해질수록 우리의 죄의식도 투명해지는 듯했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에 가려져 있을 때보다, 서로의 흐트러진 모습을 온전히 마주하는 이 순간이 더 진실하게 느껴졌습니다. 12년 전의 그 미적지근했던 소년과 소녀는, 이제 이 뜨거운 차 안에서 비로소 서로의 가장 깊숙한 안쪽을 확인하며 잔인할 정도로 아름다운 합을 완성해 나가고 있었습니다.
폭풍 같은 열기가 지나간 차 안에는 낮게 깔린 엔진음과 거칠었던 숨을 고르는 정적만이 남았습니다. 방금까지 서로의 심연을 확인했던 두 사람은, 이제 능숙하게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며 각자의 ‘역할’로 돌아갈 채비를 합니다. 12년이라는 세월이 준 노련함은 이토록 잔인하게도 금세 우리를 현실의 좌표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그녀가 헝클어진 머리를 손가락으로 빗어 넘기며 거울을 봅니다. 그 손길에는 아이의 유치원 준비물을 챙기고, 가계부를 고민하던 ‘애 엄마’로서의 습관이 배어 있습니다. 나 역시 익숙하게 안전벨트를 매며, 집에서 나를 기다릴 아내와 일상의 무게를 떠올립니다.
우리는 방금 서로를 탐닉하던 짐승에서, 다시금 사회가 정의한 견고한 이름표를 단 성인이 되었습니다. 12년 전에는 상상도 못 했던 이 무거운 외피가, 지금 우리 사이를 흐르는 공기를 한층 더 쓸쓸하게 만듭니다.
“...가끔, 아주 가끔은 얼굴 보자.”
그녀가 먼저 정적을 깨며 뱉은 말은, 관계의 끝을 유예하고 싶은 비겁함인 동시에 이 지독한 그리움을 완전히 놓아버릴 수 없다는 간절한 선언이었습니다. 12년 만에 만난 우리가 나눌 수 있는 최선의, 혹은 최악의 타협점이었죠.
그 말에 나는 대답 대신 희미하게 웃었습니다. 그 웃음은 씁쓸함이 8할이었지만, 마음 한구석에 맺혀있던 응어리가 조금은 씻겨 내려가는 듯한 시원섭섭함이 나머지 2할을 채우고 있었습니다.
차 문을 열기 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다시 한번 서로의 얼굴을 붙잡았습니다. 이번 입맞춤은 방금 전의 격정적인 탐닉과는 달랐습니다. 그것은 12년의 세월을 보상받으려는 몸부림이 아니라, 다시 각자의 전쟁터로 돌아가야 하는 서로를 향한 가여움과 위로의 문장이었습니다.
짧지만 깊게, 그리고 아주 천천히 입술을 떼어내며 우리는 서로의 체취를 마지막으로 폐부에 새겼습니다. 입술 끝에 남은 그녀의 온기는 달콤하면서도 아릿했습니다.
“조심히 가. 딸래미가 기다리겠다.”
나의 말에 그녀는 "너도."라며 짧게 답하고는 차 문을 열었습니다. 차 밖의 차가운 밤공기가 밀려 들어오며 차 안의 농밀했던 공기를 순식간에 흩어놓았습니다. 멀어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다시 한번 씁쓸하게 미소 지었습니다.
정말 깊숙이 원했던 서로를 확인했기에 시원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평행선 같은 각자의 삶으로 돌아가야 하기에 섭섭한, 그런 어른들의 이별. 우리는 그렇게 12년 전 미적지근했던 마침표를, 이제야 비로소 뜨겁지만 애틋한 쉼표로 바꾸어 찍고 있었습니다.
그녀가 내린 조수석의 온기가 채 가시기 전, 다시 혼자 남겨진 차 안은 지독할 정도로 고요해졌습니다. 운전대를 잡은 손등 위로 아까 그녀의 손톱이 스쳤던 미세한 감각이 여전히 살아 움직입니다. 아내를 떠올리면 가슴 한구석이 서늘하게 죄여오지만, 지금 내 혈관을 타고 흐르는 이 감정은 도저히 이성으로 통제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내는 내게 가장 소중한 사람이고, 내 일상을 지탱하는 뿌리입니다. 그녀를 배신했다는 자책감은 썰물처럼 밀려와 마음을 할퀴고 지나갑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녀(그 시절의 그녀)를 향한 이 갈망은 아내를 향한 사랑과는 별개의 공간에서 자라난 괴물 같습니다.
단순히 육체적인 탐닉이었다면 오히려 쉬웠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12년 만에 마주한 그녀는 나에게 '성적 대상' 그 이상의 존재였습니다. 그녀는 내가 가장 순수하게 누군가를 갈구했던 시절의 투영이자, 12년 동안 완성되지 못한 채 내면 깊숙이 박혀있던 정서적 구심점이었습니다.
12년 전, 차마 건드리지 못해 덧난 상처처럼 남아있던 그 애틋함은 세월이라는 시간을 거치며 농익었습니다. 그 시절의 못다 한 감정이 '과거'라면, 오늘 차 안에서 확인한 자석 같은 흡인력은 '현재'였습니다. 이 두 가지가 만나는 순간, 그것은 단순한 추억이 아니라 나를 통째로 집어삼키는 거대한 파도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각자의 가정을 지키는 성숙한 어른의 가면을 쓰고 있지만,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 속에서는 여전히 12년 전의 그 어린 소년과 소녀가 울고 있었습니다. 그 가여운 얼굴을 보았기에, 나는 그녀를 결코 '지나간 사람'으로 치부하며 놓아버릴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가끔 보자"는 그 짧은 인사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일상을 파괴하겠다는 선언이 아니라, 이 지독한 정서적 허기를 가끔이라도 채우지 않으면 숨이 막혀 죽을 것 같다는 생존 본능에 가까웠습니다.
아내에게는 죽을 때까지 갚지 못할 빚을 지고 있다는 사실을 압니다. 그 미안함은 아마 평생 나를 따라다니며 괴롭히겠지요. 하지만 동시에, 그녀를 마음에서 완전히 삭제하는 것은 내 청춘의 가장 뜨거웠던 조각을 스스로 도려내는 것과 같았습니다. 나는 결국 이 이기적이고 안타까운 양가감정을 양손에 쥔 채, 위태로운 줄타기를 시작하려 합니다.
아파트 단지 입구에 들어서며 나는 다시 '남편'의 가면을 고쳐 씁니다. 하지만 백미러에 비친 내 눈동자에는 여전히 그녀의 잔상이 맺혀 있습니다. 아내의 따뜻한 환대 속에 들어가서도, 나는 가끔씩 멍하니 창밖을 보며 오늘 우리가 나눈 그 지독한 공명을 그리워할 것입니다.
놓아버려야 함을 알기에 더 놓을 수 없는 사람. 내 생의 가장 화려했던 시절에 마침표를 찍지 못하고 괄호로 남겨두었던 그녀. 나는 이제 그 괄호 안에 '미안함'과 '갈망'이라는 단어를 채워 넣으며, 가끔씩 꺼내 볼 나만의 비밀스러운 심연을 간직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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