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소개팅_08 END
펭귄클래식
10
7764
10
2019.01.31 14:06
우리 헤어지자.
많이 생각해 봤어.
그 생각을 왜 혼자 해. 같이 좀더 생각해보자.
조금만 더 생각해 보고, 내게도 고민할 시간을 주고 주말에 다시 만나자. 허락해 준다면 오늘은 아무 말도 하지 않겠다.
내 부탁에 마녀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고는, 밥에는 입도 대지 않은 채 가게를 나섰다.
주차장에 들어와
수백 가지의 가능성을 생각했다.
나비와의 일을 알았나.
아니다, 마녀는 나비와의 접점이 없다.
나비와 함께 있는 걸 우연히 봤나?
봤다면 어디까지, 손을 잡고 돌아다니는 것? 영등포에서 차를 태워 가는 것? 우리집으로 들어가는 것?
봤다면, 사실대로 말해야 할까?
네가 생각하는 그런 일은 없었고, 나도 마음이 불편해져서 요즘은 만나지 않았다, 다시 너에게 집중하려던 참이었다, 라고 말해야 하나?
혹시,
나비 때문이 아니라면?
마녀는 나비 일은 알지도 못하는데
괜히 나비 일을 꺼내는 건가?
입안이 바싹 말랐다.
그 상황만은 막자.
일단 시간이 지나면서 마녀가 조금 더 생각해 보기를 바라자.
주말이 되어 다시 마녀와 마주 앉았다.
내가 납득할 수 있게 말해줘. 내가 잘못한 건 고치고, 오해가 있는 건 풀자 오늘.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말해줘.
오빠는 잘못한 거 없어.
그러면?
내가 생각한거야 그냥.
우리 처음 만났을 때 기억나?
내가 오빠 좋다고 소개팅 하고, 오빠 좋다고 술집가서 술마시고, 오빠 좋다고 내가 고백하고.
오빠는 항상 받아주고 다독여줘. 의지가 되는 사람이야. 그래서 내내 고마워. 지금도.
근데 오빠랑 있으면 점점 내가 낮아져.
오빠는 나를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게 만드는 게 아니라, 나를 더 부족한 사람으로 만들어.
오빠가 먼저 나한테 요청해본적 있어? 섹스말고?
나한테 어려운 점들 말해본 적 있어?
없겠지, 주로 내가 말했으니까.
나도 그게 싫어서 안해볼려고 했어.
근데 오빠가 자꾸 말해보라고 하고, 말하면 위로해주고, 내가 오빠를 좋아하니까 그냥 그렇게 했어.
근데 가만히 보니까,
나는 오빠한테 먼저 하는게 그거밖에 없더라.
억울하지, 지금 내 말.
잘해줘도 문제냐 싶지.
그래서 오빠는 잘못 없다는거야. 그냥 내가 모자란 거야. 내가 혼자 고민하고, 혼자 자격지심 느끼면서 생각해서 결론 내린거야.
미안하다고 하지마. 내가 미안해. 마지막까지.
마녀는 이미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며 눈물이 그렁그렁해 있었다.
요 며칠 더 생각하면서 기분이 어땠는지 알아?
구차하더라.
내내 내가 아쉬워서 만나다가, 처음으로 오빠가 아쉬워서 생각 더해보자고 한건데,
오빠가 아쉬운 상황 모처럼 만드니까 좋니? 이생각이 들더라.
마녀의 울음 섞인 말을 듣는 동안,
나는 예전의 나를 생각했다.
연인의 모든 것이 알고 싶었지만, 그 사람은 내 삶의 일부로도 충분한 것 같아 비참하던 그때의 감정.
이따금 그 사람이 나를 밀어낼 때의 감정.
헤어지고 나서, 다음에 만나는 사람이 나와 달리 그녀가 기댈 수 있는 어른스러운 사람이기를 어금니를 깨물고 바랬던 감정.
그 끝에 남았던 것은 구차함이었다.
몇 년 전 실패했던 내 첫 연애는 이제 돌고 돌아 이제 마녀에게로 다가서 있었다.
나 이제 갈게. 그동안 너무 고마웠고, 미안해. 연락 안받을게. 지금도 너무 비참하고 미안하니까.
눈물을 닦으며 가방을 들고 마녀가 카페를 떠나고 나서도, 한참 그냥 앉아 있었다.
지금 뛰쳐 나가면 잡을 수 있을까?
잡으면 뭐라고 말하지. 이미 나는 차였는데.
마녀가 남기고 간 커피잔을 멍청히 쳐다보다가,
나도 카페를 나왔다.
당장 피눈물이라도 쏟아질까 싶었는데, 덤덤했다.
씁쓸하고 쓸쓸할 뿐이었다.
헤어지고 나서 많은 술약속들이 생겼다.
친구들은 잘해줘도 지랄이냐며 내 잔을 채웠고, 괜찮은 사람은 쎄고 쎘다며 위로했다.
우리를 엮었던 선배는 명절에 마녀 보기 민망하겠다고 너스레를 떨면서도 그동안 서로 고생많았다며 고기를 샀다.
나비와의 관계는 더 발전하지는 않았다. 이따금씩 연락은 했지만, 그뿐이었다.
나비와 보냈던 시간이 특별했던 건
마녀와의 시간에서 가지고 싶었는데 갖지 못했던 것들이 있어서였을 뿐이었다.
스물 중반의 연애가 실패하고,
서른 초반의 연애도 다시 실패했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덜 슬펐다는 것.
이번엔 내 쪽에서 식었던 모양이다.
마녀는 이런 내 모습을 느끼며 구차해했었나 보다.
마법은 이제 풀렸고, 내내 들리던 차분하고 조용한 목소리가 걷히고 나니 주변은 조용했다.
마녀의 목소리가 있던 곳에는,
가진 것을 소중히 하지 못한 후회만 남았다.
마녀의 소식은 그 뒤로는 듣지 못했지만,
나 때문에 힘들었던 만큼 이제는 편안한 사람을 만나 매일매일 푹 잠이 들었으면 좋겠다.
어느 작가의 말처럼
곱지 못했던 마음의 하늘에, 조용한 저녁이 내리기를.
---------------------------------------
마지막입니다.
쓰면서 다시 한번 못돼먹고 어리석었던 자신을 반성했습니다. 죽어야 철이 든다는 말이 맞는 거 같아요.
읽어주신 분들, 응원해 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출처] 잘못된 소개팅_08 END (인터넷 바카라 사이트 | 야설 | 은꼴사 - 핫썰닷컴)
https://hotssul.com/bbs/board.php?bo_table=ssul19&wr_id=137483
[초대박]핫썰닷컴 여성회원 인증 게시판 그랜드오픈!!
[이벤트]이용후기 게시판 오픈! 1줄만 남겨도 1,000포인트 증정!!
[재오픈 공지]출석체크 게시판 1년만에 재오픈!! 지금 출석세요!
[EVENT]10월 한정 자유게시판 글쓰기 포인트 3배!
[이벤트]이용후기 게시판 오픈! 1줄만 남겨도 1,000포인트 증정!!
[재오픈 공지]출석체크 게시판 1년만에 재오픈!! 지금 출석세요!
[EVENT]10월 한정 자유게시판 글쓰기 포인트 3배!
이 썰의 시리즈 | ||
---|---|---|
번호 | 날짜 | 제목 |
1 | 2019.01.31 | 현재글 잘못된 소개팅_08 END (10) |
2 | 2019.01.30 | 잘못된 소개팅_07 (6) |
3 | 2019.01.29 | 잘못된 소개팅_06 (6) |
4 | 2019.01.28 | 잘못된 소개팅_05 (9) |
5 | 2019.01.26 | 잘못된 소개팅_04 (6) |
6 | 2019.01.26 | 잘못된 소개팅_03 (7) |
7 | 2019.01.25 | 잘못된 소개팅_02 (6) |
8 | 2019.01.25 | 잘못된 소개팅_01 (13) |
핫해 |
09.29
+21
미농02 |
09.27
+12
익명 |
09.27
+9
수여닝 |
09.26
+47
행복지수100 |
09.23
+141
멤버쉽 자료모음
Comments
10 Comments
글읽기 -100 | 글쓰기 +500 | 댓글쓰기 +100
총 게시물 : 43,136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