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작은 고양이 3
김끝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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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5 16:32
그 해가 지나고 다음 해가 되면서, 나는 점점 폰팔이에 익숙해져 갔다.
같은 가게에서 일하는 비슷한 또래 애들과도 자연스럽게 친해지면서, 일이 끝나면 근처에 있는 하드락으로 갔다.
제법 유명한 나이트라, 멀리서도 일부러 찾아올 정도였다.
삼성이나 LG 공장에서 일하는 여자애들이 많이 오기도 했고 그 일대에서 제일 번화가인 인동안에 있어서 삼성,lg 공장여자들이 많이 왔는데
월급을 많이 받으니 씀씀이도 크고,
공순이 사귀면 일안하고 눌러붙어서 용돈받고 다닌다는
구미괴담 덕분인지 그런 여자들을 노리고 일부러 하드락에 오는 남자들이 제법 있었다.
나도 그때 구미에 있으면서, 소개로 만난 삼성 다니는 여자 두명정도 사귀었던 적이 있었다.
그 애가 버는 돈이, 그 당시에 하루 12시간씩 뛰어서 버는 돈의 거의 두 배 정도였으니 지금으로 치면 20대 초반이 연봉 8천 정도 버는 수준이었다.
확실히 잘 버는 편이었고, 그런 여자들이 하드락에 자주 보였다.
그런 생활에 젖어 들어 살았던
어느 추운 밤이었다.
늦은 밤이었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오빠 나야 기억나?"
특유의 비음 섞인 말투,
그 고양이 닮은 여자애였다.
"아! 피시방"
“나 배고파.”
당당하게 요구하는 태도였는데, 이상하게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오히려 그 솔직함이 좀 귀여워 보였다.
나랑 딱히 뭔가를 한 것도, 특별한 유대를 쌓은 것도 아니었지만
그냥 가끔 마주치던 동네 고양이가 어느 날 찾아와서 아는 척을 해주는것에 신기한 , 그런 반가운 마음이었다.
여자애는 노란 머리를 한 불량해 보이는 언니와 함께 찾아왔다.
늦은 시간이라 갈 곳이 없어 보였고, 모텔로 향했다.
모텔방에 들어가자마자 분위기가 묘했다.
노란 머리 언니는 침대에 앉아 있었지만,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는 게 영 찝찝했다.
여자에게만 속삭이듯 말하는 소리가 들린다.
“저 사람 진짜 20살 맞아?”
지수는 대답 대신 살짝 웃기만 했다.
노랑머리의 눈빛은 꽤 예리했다. 어린 여자애보다는 나이가 많고 삶에 쩌든듯한 나이답지 않은 눈빛은 ‘이 새끼 20살이 아니잖아’라는 불신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나는 그 시선을 느끼면서 자리가 점점 불편해졌다.
방 안은 세 사람이 있는데, 정작 대화는 여자애와 언니 사이에서만 오갔다.
그는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편의점 가서 뭐 좀 사올게..”
여자애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갈래.”
둘이서 모텔 밖으로 나오니, 추운바람에
몸이 움츠러든다.
고개를 돌려 여자애를 바라보았다.
작은 키, 아직 앳된 얼굴, 그리고 추운 날씨에 제대로 입지도 못한 것 같은 얇은 옷차림.
모텔 앞 편의점에 들어가서 여자애에게 말했다.
“너 내일 언니랑 같이 먹을 것도 좀 사.”
여자애의 눈이 살짝 커지며 방긋 웃는다.
“진짜?”
“응. 먹고 싶은거 다 사도되.”
여자애는 그 말을 듣자마자 냉장고 문을 열고 이것저것 집기 시작했다.
삼각김밥, 도시락, 음료수, 과자까지.
손에 들고 있는 게 점점 많아지는데도, 그녀의 표정은 어느새 밝아져 있었다.
마치 오랜만에 선물을 받은 아이처럼.
계산대에서 지갑을 꺼내며 그 모습을 바라봤다.
가슴 한구석이 묵직하게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왜 밖으로 나와 힘들게 고생하는걸까..
모텔방으로 돌아오니
노란 머리 언니가 일어나더니 신발을 신었다.
“아, 언니 나가?”
“응. 갔다올게. 너는 여기 있어.”
그리고는 다른 말 없이 문을 나갔다.
방 안에는 갑자기 생각지도 않게 우리 둘만 남았다.
“언니 이 시간에 어디 가는 거야?”
“조건 가는 거 같은데?”
나는 순간적으로 되물었다.
“뭐? 조건만남? 언니 몇 살인데?”
“한 살 많아.”
“20살은 넘어보이던데… 아니, 민짜가 조건 해도 돼?”
여자애는 별 감정 없이 말했다.
“남자들은 더 좋아한대.”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좀 무거워졌다.
스무 살도 안 된 애들이 이런 걸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게, 이상하게 안타까웠다.
잠시 고민하다가 물었다.
“혹시 너도 해?”
여자애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언니만.”
사실이든 아니든, 더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결국 삼켰다.
이 애한테 뭐라고 잔소리할 입장도 아니었고, 관여할 이유도 없었다.
잠깐의 정적..
“너 이름이 뭐야?”
“지수.”
두 번째 만남에서야 이름을 알게 됐다.
“너 가출한 지 얼마나 됐어?”
지수는 잠시 망설이다가 대답했다.
“몰라. 1년은 넘은 것 같은데.”
“집에서 부모님이 걱정하시겠다.”
“…아빠는 내 걱정 안 해. 자기 일 하느라 바빠서.”
아빠 이야기가 나오자 지수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다.
나는 더 이상 그 주제를 건드리지 않았다.
대신 다른 질문을 던졌다.
“엄마는?”
“엄마는 자기 나라 갔어.”
“자기 나라? 외국인이야?”
“응. 독일.”
“오… 그래서 그런지 완전 한국 사람 같지는 않더라.”
근처에 있던 영어 단어가 적힌 종이를 가리키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혼혈이라는 이유만으로 영어를 읽어보라고 한 게 좀 웃기긴 했다.
“너 이거 읽어봐.”
지수는 종이를 내려다보더니, 자연스럽게 읽었다.
“Floor.”
발음이 생각보다 또렷하고 부드러웠다.
“와… 발음 좋네.”
지수는 작게 웃었다.
그 웃음이, 처음 봤을 때보다 조금은 더 편안해 보였다.
우리는 편의점에서 사 온 과자를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지수의 아버지는 시의원?인가 자세히는 묻지 않았지만
인터넷에 이름을 검색하면 사진이 뜨던게 기억난다.
더 물어보진 않았지만,
그냥 이 아이가 왜 집을 나와서 이렇게 떠돌아다니게 됐는지 대충은 짐작이 갔다.
말이 끊기자 방 안이 조용해졌다.
TV도 꺼져 있었고, 창밖으로 가끔 차 소리만 희미하게 들렸다.
나는 지수를 바라보다가 문득 생각했다.
원래대로 채팅에서 만난 여자였다면, 지금쯤 자연스럽게 키스나 애무로 이어지고, 결국 섹스까지 가는 분위기였을 것이다.
지수도, 원한다면 거부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런데 그 순간, 내 안에서는 그런 욕심이 전혀 들지 않았다.
오히려 이상할 정도로 마음이 차분해진다.
그저 가련하고 안타까운 어린아이에게 내 욕망을 들이밀고 싶지 않았고, 그럴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그 애를 보고 있으면, 성욕보다는 ‘이 아이를 그냥 두고 가는 게 맞나’ 하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들었다.
지수가 과자를 하나씩 집어 먹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문득 길에서 만난 새끼 도둑고양이에게 츄르를 주고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는 것처럼 흐뭇한 기분이 들었다.
그저 배고픈 아이가 조금이라도 배를 채우는 게 보기 좋아서,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렇지만 지수가 혼자 이 방에 남겨지는 게, 왠지 모르게 마음에 걸렸다.
‘이제 가는 게 맞을 것 같은데…’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내일 출근해야 하니까 이제 가볼게. 배고프면 뭐라도 더 시켜줄까?”
지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배불러, 괜찮아.”
모텔 현관문을 열고 나가려는데, 지수가 현관 앞까지 따라 나왔다.
느낌 탓일까, 처음 봤을 때보다 조금은 키가 큰 것 같았다.
나는 그녀의 팔을 가볍게 툭 치며 말했다.
“배고플 때 굶지 말고 연락해. 밥 정도는 얼마든지 사줄 수 있으니까.”
지수는 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나는 손을 흔들고 돌아섰고, 그날이 그해 마지막으로 지수를 본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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