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후배(21)-동성주의
리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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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시간전
인천에 내린 건 새벽이었다.
입국장을 빠져나오며 그 애가 하품을 했다.
"오빠, 우리 집 갈 거지? 나 오빠 방에서 자고 갈래."
"…나 오늘 집에 내려가야 돼."
"집? 고향?"
"응. 집에 일이 좀 생겼어."
그 애가 걸음을 멈췄다.
"무슨 일인데?"
"별일 아니야. 갔다 와서 얘기해 줄게."
그 애는 한참 내 얼굴을 봤다. 아침부터 이상했던 얼굴. 절에서 손을 너무 꽉 쥐던 얼굴을. 무언가 묻고 싶은 게 보였는데, 그 애는 결국 묻지 않았다.
"…알았어. 조심히 갔다 와. 도착하면 톡 해."
"응."
"오빠."
"응."
그 애가 사람 많은 입국장 한복판에서 내 소매 끝을 살짝 잡았다. 손을 잡지는 못하고. 여기는 한국이니까.
"사랑해. 빨리 와."
나는 고개만 끄덕였다. 공항버스 정류장 앞에서 그 애가 탄 버스가 떠날 때까지 서 있다가, 반대편 고속버스터미널로 가는 리무진을 탔다.
장례식장은 읍내 병원 지하에 있었다.
계단을 내려가자 국화 냄새와 육개장 냄새가 섞여 올라왔다. 3호실 앞에 할머니 이름이 적힌 안내판이 서 있었다. 아버지는 상복을 입고 빈소 앞에 서 있었다. 나를 보더니 고개만 한 번 까딱했다.
"왔나."
"늦어서 죄송합니다."
"됐다. 옷 갈아입어라."
그게 다였다. 아버지 눈이 벌겠다. 아버지가 우는 걸 직접 본 적은 없었다. 오늘도 보지 못할 것이었다.
상복으로 갈아입고 영정 앞에 섰다. 사진 속 할머니는 지난 설 때보다 젊었다. 몇 년 전 동네 사진관에서 찍어 둔 거라고 고모가 귀띔했다. 자기 죽을 준비까지 해놓고 가셨다고. 향을 꽂고 절을 두 번 했다. 일어나는데 무릎이 휘청했다. 할머니, 저 베트남 갔다 왔어요. 거기 절에서 할머니 이름 써서 걸었어요. 하고 속으로만 말했다.
첫날 밤은 조문객이 끊이지 않았다.
동네 어른들, 아버지 친구들, 먼 친척들. 다들 나를 보며 "니가 그 손주가" "마이 컸네" "할매가 니 얘기만 하셨다" 했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절을 하고, 맞절을 받았다. 육개장을 날랐고, 소주병을 치웠다. 노가다 할 때처럼 몸을 쉬지 않고 움직이면 생각이 덜 났다.
새벽에 핸드폰을 봤다. 그 애 톡이 몇 개 와 있었다.
도착했어?
오빠 밥은 먹었어?
바쁜가 보다. 괜찮아. 기다릴게.
보고 싶어 ㅠ
답장을 쓰다가 지웠다. 할머니가 돌아가셨다고 쓰면, 그 애는 왜 베트남에서 말 안 했냐고 물을 것이다. 울면서 화낼 것이다. 노가다 얘기를 했던 그날 밤처럼. 이 인간아, 하면서 가슴을 칠 것이다. 그 얼굴을 지금은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결국 답장없이 핸드폰 화면을 껐다.
둘째 날 오후였다.
조문객이 뜸한 시간이었다. 나는 빈소 입구 쪽 접수대 옆에 앉아 부의록을 정리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안쪽에서 고모부와 발인 순서를 맞추고 있었다.
계단 쪽에서 구두 소리가 났다.
여자 하나가 내려오고 있었다. 검은 원피스에 검은 카디건. 손에 하얀 봉투를 쥐고 있었다. 계단 끝에서 잠깐 멈춰 3호실 안내판을 올려다보더니, 숨을 한 번 고르고 이쪽으로 걸어왔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짧은 파마머리. 수수한 얼굴. 어디서나 볼 법한 오십 대 아주머니.
그런데 손이 멈췄다.
본 적이 있었다. 분명히. 아주 최근에. 어디서였지. 동네 어른인가. 아니, 이 동네 사람이 아니었다. 그럼—
케이크.
식당 테이블 위의 케이크. 그 앞에서 웃고 있던 얼굴. 작년 엄마 생신 때야. 나 이날 엄마 울렸잖아.
베트남 절 마당에서, 그 애 핸드폰 화면 속에서 봤던 그 얼굴.
여자가 접수대 앞에 섰다. 봉투를 내려놓는 손이 떨리고 있었다. 부의록에 이름을 쓰려고 펜을 들었다. 나는 그 손끝을 봤다. 펜이 종이 위에 이름 석 자를 적었다.
붉은 종이 위에 그 애가 또박또박 적었던 그 이름이었다.
"…저기."
목소리가 내 것 같지 않았다.
여자가 고개를 들었다.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여자 얼굴에서 핏기가 빠져나가는 게 보였다. 입술이 벌어졌다가, 닫혔다가, 다시 벌어졌다.
"…니가."
여자가 한 걸음 다가왔다. 손이 올라와 내 얼굴 쪽으로 오다가 허공에서 멈췄다.
"니가… 이래 컸나…"
그때 안쪽에서 아버지가 나왔다. 여자를 보고, 우뚝 멈춰 섰다. 아버지 얼굴이 굳었다. 화도 아니고, 놀람도 아닌, 오래 묵은 무언가가 얼굴 위로 올라왔다가 가라앉았다.
"…왔나."
아버지가 말했다. 나한테 했던 것과 똑같은 말이었다.
"연락 받고… 어머님께 인사는 드려야 될 것 같아서."
"들어가라."
여자가 나를 한 번 더 돌아보고, 빈소 안으로 들어갔다. 영정 앞에 서서 오래 고개를 숙였다. 절을 하다가 무너지듯 엎드렸다. 어깨가 들썩였다. 소리는 내지 않았다.
나는 아버지를 봤다.
"…누구예요."
아버지는 대답하지 않았다. 담배를 꺼내 들고 계단 쪽으로 걸어갔다. 나는 따라갔다.
병원 뒤편 주차장, 쓰레기 수거함 옆이었다.
아버지가 담배에 불을 붙였다. 나도 붙였다. 둘 다 한참 말이 없었다.
"…니 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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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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