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와의 이별

그녀와의 이별은 내 상황이 너무 안 좋을 때라 부모님도 그 때 이야기, 그녀의 이야기를 안 하신다.
나도 몇 년동안 아무에게도 이야기 한 적이 없고. 어쩌다 추억여행 시작한 김에, 익명에 기대어 대나무 숲에 소리치듯 이 야야기를해보려고 한다.
넉두리 하듯 편하게 갈께
때는 여친과 연애하고 3년이 조금 더 지난 8월.
이 때까진 참 좋지.
양가 부모님도 때되면 알아서 결혼하겠지 하시며 부부 취급하셨고. 우리 둘도 여친이 목표로 하던 자격시험 때문에 결혼 날짜에 대해서 이견이 있을 뿐 결혼은 당연한 것이었고 .
내가 결혼하고 시험쳐도 충분히 합격한다고 밀어붙이고 있었는데. 이 여자 아니면 평생 결혼 못한다는 미래를 감지했는지도 몰라.
취미로 로드바이크를 타던 나는 그 날도 동호회랑 같이 주말 단체라이딩 중이었어.
평소 자주다니던 길이고 차가 거의 없는 구길에서 중앙선을 넘어 커브를 돌던 차를 만났어.
정면 충돌은 피했지만 한 사람이 미끄러졌고, 집단주행 중이던 우리는 거기에 걸려며 집단낙차사고가 일어났지.
나도 여기서 다쳤지. 허리를 가장 크게 다쳐버렸어.
지방 큰 병원에서 비수술적치료를 받았지만 상태는 더욱 안 좋아졌고 신경손상증상인 감각교란이 오더라. 마비증상의 시작이지.
바로 서울로 병원을 옮겼지만 첫 수술 후에도 호전은 커녕 마비증세가 심해지기만했고. 의사는 신경이 회복불능 상태라면 최악의 경우 하반신마비까지 각오해야한다고 하더라.
그나마 가진 것은 튼튼한 몸뚱아리 하나 뿐인데 몸이 박살나 버린거야.
몸이 박살나니 정신도 씹창나더라. 중증의 우울증이 왔지.
어머니와 여친이 번갈아 병간호를 했는데 나는 많은 시간을 약에 취해 헤롱헤롱하거나 잠을 잤어. 약빨 좀 떨어지면 짜증내고 화를 냈지.
내 기억에는 없지만 여친 앞에서 간호사가 가지고 있던 가위를 뺏아 자살시도까지 했다더라.
그런 나를 보며 여친도 힘들었겠지. 지금와서 조각난 기억들 속의 여친을 생각해보면 여친도 우울증 같은 정신질환이 왔지 싶어.
자기도 힘들고 미칠 것 같은데 차마 내 앞에서는 티를 못 내고 꾹 참았겠지.
다행히도 두 번째 수술이후 상태가 좋아젔어. 8개월 만에 보조기에 지팡이까지 사용했지만 걸어서 퇴원할 수 있었어.
본가로 퇴원한 그날 저녁. 여친이 나랑 부모님 앞에서 울면서 그러더라.
더는 못 버티겠다고, 헤어지겠다고.
아는 핫게인은 알겠지만 허리와 신경은 원상복구에 가까운 회복이 안되. 망가진 상태에서 최선의 상태를 유지하는거지.
언제든 다시 나빠질 수 있는, 벗어난 최악이 지금 찾아와도 이상하지 않지.
그런 공포를 버티지 못하겠다고 한 것 같아. 어머니께서 여친 손을 마주잡고 울면서 머라머라 여친과 이야기하셨는데 기억이 흐릿해.
난 그 모습을 보면서 방에 들어갔어. 그리곤 수면제를 먹고, 귀를 막고, 최선을 다해 잠들었지.
그래 맞아. 현실에서 도피한거야.
다음날 일어나니 책상 위에 커플링과 생일선물로 준 목걸이, 귀걸이. 그리고 '미안해요' 라고 쓴 메모가 있더라.
그렇게 우리는 끝난거야.
부모님께서 그녀에게 전화라도 해보라고 하셨는데 내가 완전 삥 돌아서 돌아이짓했지. 그 이후 내 앞에서는 그녀이야기를 한 번도 하지 않으셔.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주인공 쿠퍼가 블랙홀속 5차원에서 책장넘어 딸을 보며 붙잡으라고, 가지말라고 소리치는 장면있지. '스테이!!' 그거.
그게 딱 지금 내 심정이야. 그 때 어떻게든 붙잡았어야 했는데.
그 땐 미친놈이 현실도피 중이었으니 ㅠㅠ
그렇게 이별한 미친놈이 철저하게도 그녀의 흔적을 지웠더라. 휴대폰부터 사진, 영상, 주고받은 선물, 데이트할때 입은 옷 등등.
마지막으로 그녀와 접점이 있는 모든 인맥들까지. 모조리. 철저하게.
그래도 기억은 못 지우지. 정신줄 살짝 놓으면 지인들의 SNS를 뒤지면서 그녀의 소식을 찾고 있더라. 진짜 이름이랑 학교, 나이같은 기본 정보들로 어떻게 찾았는지 몰라.
그녀는 SNS를 안 했기에 그녀 지인의 SNS에서 '여친랑 밥을 먹었다' 같은 소식을 보곤했어.
그래도 좋은 소식이 하나 있더라. 나랑 헤어진 다음해에 원하던 자격시험에 붙은거지. 붙을 줄 알았다니까.
그렇데 미친놈은 조금씩 회복했어.
사고를 기준으로 2년 쯤에는 복약 중단을 목표로 정신과 약을 줄이기 시작했고.
3년 쯤에는 모르는 사람들은 내가 아픈지 모르게 숨기면서 가벼운 일상생활을 할 수 있었고.
4년 쯤부터 최저시급 고정이긴 하지만 그래도 직장이 생겼어.
이 시기, 과장 보태면 한걸음 한걸음, 행동 하나하나 허리를 실시간 체크하고 허리부담을 줄이는 바른자세를 가지는데 집중했어.
내 몸에만 집중하고 다른 욕구를 거새했지. 그럴 여유도 없었고.
그러던 몇달전 올해 6월. 비 오기전 매우 습한 날이었지. 원래 습한 날은 내 컨디션이 바닥을 치는데, 이 날은 결국 주저앉아 버렸어.
왼다리가 어찌 움직이기는 하는데 느껴지는 감각이 거의 없더라. 119타고 바로 입원했지.
의사의 촉진에도, 어머니의 마사지에도 별 느낌이 없어. 언젠가 올 거라 각오하던 그 날이 왔다보다 했지.
반포기상태로 치료를 받았는데 다행히도 몇 일 뒤 감각이 돌아오기 시작하더라.
이 글을 쓰는 오늘 오전에도 걸어서 왕복 40분 걸리는 병원에 내 발로 걸어가서 재활치료를 받고 왔어.
목발을 쓰긴 하지만 산책가능시간도 점점 길어지고 희망이 보이네.
여튼 입원해 있을 때. 집에서 쉴 때. 시간이 많으니 잡생각만 들고 할게 없더라.
그러다 우연히(그래 야한거 찾아다 들어왔다. 아주 부처님 가운데토막은 아니었어) 핫게를 찾아버렸어.
그 동안 잊고 있던 성욕이 부활하며 한 2주일은 핫게와 함께 눈뜨고 핫게와 함께 잠들었지.
문제는 지긋지긋한 장마는 끝이 안 나고 우중충하지. 핫게의 진짜같은 주작썰. 주작같은 리얼썰을 보니 과거 연애했던 두 사람이 너무 생각나더라.
'그래 이런 건 나도 해 봤는데', '와 이건 생각지도 못 했는데', '그때 이건 같이 해 봤으면 재밌었겠는데.'
이렇게 과거로 과거로 여행 하다보니 우울증이 도질 것 같더라.
핫게부터 끊어보려했는데 부활한 성욕을 못 다스리고 개같이 실패.
그래서 택한 것이 일기 쓰듯이 과거를 그냥 써보는 거였어.
우울증 치료과정 중에 일기를 쓰고 그 걸로 상담받는게 있었거든. 처음엔 누구 보여줄 생각도 없고. 그냥 이런 일이 있었지 하고 두서없이 적어보기로 했어.
근데. 와 진짜 기억이 가물가물하더라. 10년가까운 세월때문인지. 잊으려 노력했기 때문인지. 약에 뇌가 쩔어 문제가 생겼는지.
그냥 이런 일이 있었지. 그런 감정이 있었지 하는 뭉툭한 덩어리만 나오더라. 사실 이정도만 하는게 맞아. 더 들어가면 위험하거든.
근데 디테일한 썰들의 영향인지 더 자세히 기억해내려고 심연으로 다이브하더라.
우울증 환자에게 전문가도움 없이 혼자 과거로 딥다이브 하는 건 극약이야. 약이 될지 독이 될지 알 수 없지. 나에겐 독이었어.
그녀의 얼굴이, 특히 목소리가 기억 안 나는 것이 충격이었지.
원래 난 얼굴이야 잘 떠올리지 못 해. 부모님 얼굴도 의식적으로 떠올릴래도 0.1초 찰칵 떠올랐다가 사라지는 놈이라 괜찮은데 목소리는 아니거든.
나는 사람을 떠올리면 얼굴, 옷차림같은 시각정보가 아니라 같이 나눈 대화. 목소리. 웃음소리 같이 청각정보가 연상되는 놈인데 이게 안 돼는 거야.
대화가 기억나면 목소리도 따라와야하는데…안 돼. 이 충격은 크더라.
정신줄 놓고 딥다이브 하다가 아차 싶더라. 먼가 탈출구를 찾아야 했어.
그래서 핫게를 이용하자 했지. 어짜피 익명게시판이고 이용자가 많지 않은 곳이니 한 번 올려보기로 했어.
그래 누구 하나는 내 이야기를 들어 주겠지 하고.
그런데 핫게잖아. 리스펙이 있지. 핫게 성격에 맞춰 좀 야하게 쓰는거 진짜 힘들더라.
MSG 좀 과하게 치면 내 이야기가 아닌거 같고. 부족하면 핫게에는 안 어울리는 소금안친 계란후라이고.
첫 글은 어그로 함 끌어보겠다고 빙신짓 한 내용에 최대한 자극적인 제목도 붙어봤어 ㅋㅋㅋㅋㅋ.
다음 날 보니 조회수가 있고 댓글이 있더라.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누군지도 모르는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반응을 해 주니 눈물이 나더라.
걍 펑펑 울었어. 사실 지금 폰으로 타이핑하는데도 눈물난다.(컴터로 올리기 직전 수정 중인데 왜 또 눈물이 ㅠㅠ)
당신들은 별 생각없이 한 행동이겠지만.
그 행동이 날 살렸어.
핫게인들아. 당신들이 사람 하나 살렸다고. 정말 고마워.
이별이야기는 안 할랬는데 그런 반응에 용기내봤어.
여튼 핫게인들아.
건강할 때. 할 수 있을 때. 한 번이라도 더 물고 빨고 박고 싸고 그리고 사랑하도록 해.
나처럼 하고 싶어도 못하는 상황에서 골방에서 좆잡고 반성하지말고.
아 ㅆㅂ 좆나 섹스하고 싶다. 좆나 연애하고 싶다 ㅠㅠ
한동안은 시간도 때울 겸 추억여행하면서 일기를 써 볼 생각이야. 그건 좀 재미있는데 싶은건 올려도 볼려고.
핫게인들도 썰 좀 많이 풀어줘. 내 성욕을 부활시켰으니 대리만족이라도 하게 팍팍 풀어줘.
이젠 아마 듣리지 않겠지만 그녀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려고 해.
그 때 날 사랑해줘서 고마워. 그 때 그렇게 떠나보내 미안해.
난 너와 함께 했던 그 시절이 지금까지의 내 인생에서 제일 행복했어. 그리고 그 행복한 기억에 용기를 얻어 행복하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어.
부디 너는 지금 이순간도 행복하길 바래. 작은 욕심이 있다면 하나라도 좋으니 나랑 함께한 즐거운 기억이 그 행복속에 있었으면 하고.
사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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