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 여름의 향기가 다시 불 때 #2(완결)

안녕하세요. 오늘도 조금 늦었네요. 일이 많고 피곤하네요. 이젠 정말 나이가 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유진이와의 이야기를 정리했습니다. 다 쓰면 너무 길어질 것 같아서 많이 잘라냈습니다. 그래서 이야기를 연결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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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요?”
“좀 더 다리를 벌리고.”
나신의 유진이가 내 앞에 앉아있다. 화장을 지운 깨끗한 얼굴로, 그 싱그러운 몸을 태초의 모습 그대로 드러낸 채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다. 여행을 오느라 붓을 가져오지 않은 터라 그녀는 손으로 그녀의 은밀한 부분들을 만지며 자위하고 있었다.
“하아... 오빠아... 부끄러워요.”
“부끄러운데 그렇게 보지가 젖었어?”
“하앙... 오빠가 보고 있으니까 흥분되서.”
붓이 없어서인지 유진이는 조금 어색하게 자위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색한 손동작과는 다르게 그녀의 얼굴을 붉게 상기되어 있었고 그녀의 젖꼭지 역시 팽팽했다. 벌려진 그녀의 입에선 뜨거운 입김이 새어나올 것처럼 뜨거운 신음이 터져나온다. 나는 멀찌기 앉아서 그녀의 자위를 감상하고 있었다.
“오빠, 찍으니까 더 흥분되요. 그때 생각나고.. 하아아응...”
“그때, 그렇게 좋았어? 우리 처음 한 날?”
“네. 오빠가 나 찍어줘서 미칠듯이 흥분됐어요. 지금도 찍어주니까 좋아요. 오빠, 저 예뻐요?”
그녀의 손가락을 질 안으로 쑤셔넣으며 말했다. 그녀의 보지는 남자들의 아드레날린을 자극하는 찌걱거리는, 그 아름다운 소리를 내고 있었다. 유진이는 고개를 뒤로 젖히고 보지 안쪽 깊은 곳을 손가락으로 계속 자극했다. 그녀의 신음소리가 내 청각을 자극했다. 하지만 아직은 삽입을 하고 싶지 않다.
“오빠, 언제 해주실.. 하아. 거에요? 오빠 꺼 넣고 싶어요.”
“아직. 오빠 완전히 발기하게 해줘.”
“하아.. 오빠. 오빠 자지... 넣게 해주세요... 하응.... 오빠 자지 넣고 싶어요.”
“아직 안돼.”
나는 발기하려는 나와의 고된 싸움을 시작했다. 아직은 유진이를 더 보고 싶다. 풋풋한 그녀의 자위는 내 시야를 미친 듯이 자극하고 있지만 아직 더 섹시한 모습을 갖고 있을 거라고 난 확신했다. 유진이는 내 말에 뒤로 돌더니 엉덩이를 내 쪽으로 향했다. 동그랗고 탐스러운 그녀의 엉덩이. 하얀 그 살덩이가 유혹적으로 씰룩거린다. 유진이는 무릅을 꿇고 엉덩이를 내게 바싹 내밀면서 손가락으로 보지를 쑤셨다. 허벅지를 타고 흐르는 그녀의 물은 내 눈을, 수줍음이 가득한 그녀의 신음소리는 내 귀를 미치게 만들었다.
“오빠. 여기에요, 여기. 여기 유진이 보지에.. 하앙... 넣어주세요. 오빠, 여기에 오빠 좆물 싸주세요.”
저런 말은 어디서 배운 거야?
“하응. 오빠. 박아주세요. 유진이 보지에 오빠 자지 넣어주세요. 하아앙.. 오빠. 이거 오빠 꺼에요. 내 껄로 오빠 꺼 먹고 싶어요. 아아.. 하앙...”
눈 앞의 유진이도 자극적이지만 핸드폰 화면에 찍히고 있는 그녀 역시 나를 미치게 만든다. 유진이의 흔들리는 엉덩이와 매끈한 허벅지. 그리고 길고 검은 머리카락이 흩날리는 모습. 그리고 그녀의 가슴도 나를 유혹하며 출렁거린다.
나는 발기하는 자지를 만지며 그녀를 보았다. 유진이는 내가 달려들지 않자 안달이 나는지 더 격렬하게 스스로를 만졌다.
“오빠아... 오빠.. 하아.. 넣어주세요. 제발... 유진이 보지에 넣어주세요. 제발요, 오빠. 부탁이에요. 넣어줘, 오빠. 오빠 껄로 제 보지 쑤셔주세요.”
아마 유진이가 할 수 있는 최대한 야하고 자극적인 말일 것이다. 사실 어떤 말을 하는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 유진이가 내게 저런 말을 한다는 것 자체가 내겐 가장 큰 자극제였다.
“그럼 이제 넣어볼까?”
“네, 오빠. 제발 넣어주세요. 제 보지로 오빠 자지 먹고 싶어요.”
나는 그녀를 침대에 들어 눕혔다. 유진이의 몸은 내 가벼운 터치만으로도 움찔거리며 신음을 낼만큼 달아올라 있었다. 나는 유진이 옆에 누운 채 그녀를 끌어안았다. 뜨거워진 그녀의 몸뚱아리가 적나라하게 느껴졌다. 나는 그녀의 몸을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키스와 애무가 동시에 이어진다. 가슴의 가슴, 목덜미, 등, 허리, 그리고 엉덩이까지 나는 천천히, 또 부드럽게 그녀의 몸을 매만졌다. 나의 딱딱한 자지의 그녀의 말랑한 배에 닿아있었다. 유진이는 키스와 애무에 몸을 비틀며 신음소리를 냈다. 마치 어린 강아지가 끙끙거리는 듯한 소리를 낸다.
나는 그녀의 가슴에 입을 가져갔다. 정말 지난 번보다 살이 빠진 것인지 가슴이 조금 줄은 것 같지만 여전히 훌륭한 가슴이다. 동그랗게 말캉거리는 그녀의 가슴은 고대의 조각을 보는 듯 했다. 그녀의 유두를 넣고 혀로 굴리자 그녀가 앓는 소리를 냈다.
“하아.. 아으응... 오빠아.”
나는 거칠게 유진이의 가슴을 빨았다. 6개월여 만에 맡는 유진이의 땀냄새, 그리고 그 풋풋한 살내음. 그녀의 작은 유두가 팽팽해질수록 유진이의 입에서 나오는 신음소리도 높은 음으로 치달았다.
“아읏.. 오빠. 조금만 살살......”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의 가슴을 빨았다. 그녀의 허리가 빳빳해지며 내 쪽으로 몸을 더 밀착해왔다. 나는 그녀의 보지에 손을 갖다댔다. 손을 대는 것만으로도 유진이는 흥분에 겨운 신음을 터트렸다. 그녀의 보지는 더 젖을 수 없을만큼 흠뻑 젖어있었다. 나는 손가락을 소음순을 간지럼 태우는 것처럼 부드럽게 자극했다. 그녀의 음부에서 깔짝거리는 물소리가 들려왔다.
“하앙... 오빠아. 그렇게 하면.. 하으.... 아.. 나...”
“좋아?”
“좋아요.. 흐윽... 오빠 꺼 넣고 싶어요. 흐으..”
“나랑 하고 싶었어?”
“네에. 오빠랑 하는 거.. 아항.. 생각하면서 자위 했어요.. 아흑..”
나는 그녀의 몸을 뒤로 돌렸다. 동그랑 엉덩이와 매끈한 등이 내 시선을 빼았는다. 나는 자지를 잡고 그녀의 보지에 맞춰 조절했다. 삽입은 항상 흥분된다. 아무리 젖은 보지라고 처음 자지를 밀어넣을 때 느껴지는 저항과 뻑뻑함이 있다. 난 그 느낌이 너무 좋았다.
유진이의 보지로 천천히 자지를 밀어넣었다. 귀두 끝에 느껴지는 부드러운 애액과 소음순 안쪽에서 느껴지는 빡빡한 느낌. 귀두로 그녀의 소음순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질 안쪽의 살이 내 자지를 감싸옴을 느낀다. 마치 처녀와 섹스하는 듯한 이 느낌. 유진이의 부들거리는 몸의 떨림이 내게 전달된다. 그것만으로도 사정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하응.. 오빠 꺼 들어왔어요. 좋아해요, 오빠.”
“움직일게.”
“네, 오빠.”
나는 천천히 허리를 움직였다. 누워서 하는 뒷치기는 서서 할 때와 전혀 다른 느낌이다. 모여있는 다리 때문인지 조이는 느낌도 다르고(더 조인다 그런 게 아니라 느낌이 다르다) 보지 안도 더 미끌거리는 느낌이다. 나는 그녀의 가슴을 잡은 채 허리를 움직였다. 유진이가 내 움직임에 맞춰 짧은 신음을 연이어 터트렸다. 세게 하는 것도 좋지만 천천히 하는 것도 색다르다. 무엇보다 그녀의 엉덩이가 내 치골에 와서 닿는 느낌이 고스란히 전달되는, 그 살갗의 부드러움이 너무 좋다. 아무래도 누워서 하다보니 편안하기도 하다. 그녀의 고개를 돌려 키스할 수도 있다. 나는 유진의 고개를 살짝 돌려 키스를 시도했다. 조금 불편한 자세이긴 하지만 섹스할 떄 그런 건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다. 유진이의 혀가 내 혀를 애타게 찾으며 움직인다. 이미 흥분이 극에 달한 유진이의 입에서는 단내가 난다.
“우음... 옵하.. 하아... 하악.... 너무 좋.. 흑.. 아요.”
“나도 유진아. 정말 오랜만이다, 그치?”
“네.. 헥... 으으으으읍. 파하.. 하악.. 오빠 께 제 보지를 꽈. 흑... 꽉. 채우고 있어요. 흑.. 하응..”
“하읏... 사랑해, 유진아.”
무언가 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내가 지금 뭐라고?
그랬구나. 누가 바람둥이라고 불러도 아무렇지 않게 웃어 넘겼던 내가, 지난 수개월의 시간 동안 너를 그리워하며 가슴 아파하고, 벽에 걸린 그림을 보며 너를 그리던 그 마음이.......
그렇게 찾아온 사랑이었다. 뜨거운 사막의 열풍은 아니지만, 봄이 지나고 여름이 다가올 때 불어오는 온풍처럼. 숨을 헐떡거리게도, 흐르는 땀으로 나를 불쾌하게 하지도 않는 그 여름의 바람. 내게 다가온 그 싱그럽고 풋풋한 너의 향기가, 내겐 사랑이었구나.
가슴 한 켠이 심하게 아려왔다. 왜 너를 사랑한다는 걸 알았는데 가슴이 아픈 걸까?
나는 무섭다. 너를 사랑해서. 그러면 너를 잃게 될까봐. 사랑하지 않고 너를 잃으면 웃어 넘길 수 있겠지만, 사랑하고 너를 잃으면 내 심장 가장 가까운 곳의 살덩이 1파운드를 떼어내는 것 같을 거라. 나 역시 피를 흘리지 않고 그 살을 떼어낼 수 없는데. 너를 잃으면 또다시 입술이 터져라 깨물며 울음을 참아낼 힘이 없는데.......
아마도 그래서 아니라고 부정했는지도 모른다. 사랑임을 알도 억지로 내게 최면을 걸 듯, 세뇌하듯 속으로 뇌까렸다. 사랑이 아니야. 넌 그냥 즐기는 것 뿐이야. 그 이후로 네겐 사랑은 없어.
뇌가 정지했다. 몸도 정지해버린다. 나는 더 이상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나를 지배하던 그 엄청난 성욕도, 내 앞에 있는 이 탐스러운 열매 같은 유진이의 몸도, 어떤 것도 나를 움직이게 하지 못했다.
“오빠?”
내가 움직임을 멈추자 유진이가 가쁜 숨을 내쉬며 나를 불렀다. 나는 말없이 그녀를 끌어안았다. 그리고 괴로움을 감추기 위해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들키고 싶지 않았다. 유진이의 신음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때론 감정이 없이 움직이고 싶다.
“하아아아! 오빠아! 너무 좋아요! 저 어떡해요! 하앙!”
나는 유진이의 위로 올라갔다. 도저히 그녀의 얼굴을 볼 자신이 없었다. 나는 그녀의 몸을 끌어안고 격렬하게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끌어안고 있어서 그녀는 나의 얼굴을 보지 못할 것이다. 그저 격렬한 허리의 움직임에 신음으로 반응할 뿐이다. 그녀가 내 등을 할퀴듯이 끌어안았다.
“오빠! 갈 거 같아요! 하아아! 하으... 윽.. 아아! 오빠!”
“유진아!”
나는 그녀의 이름을 크게 부르며 깊이 사정했다. 유진이는 팔로 내 등을, 그리고 그녀의 긴 다리로 내 엉덩이를 꽉 끌어안으며 더 깊이 사정할 수 있도록 나를 당겼다. 한없이, 아주 한없이 내가 유진이의 안으로 흘러들어가는 것만 같다. 멈출 수 없을 것 같은 사정. 유진의 한 마디가 나의 정신을 다시 돌아오게 했다.
“오빠.. 사랑해요.”
나는 그녀를 으스러져라 끌어안았다. 사정과 함께 몰려오는 쾌락이 내 몸을 조금도 지배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를 사로잡은 그 감정은 다른 것이 아닌 슬픔과 외로움이었다.
“유진아.......”
“오빠. 하아.....”
나는 아무 말 없이 그녀를 안고만 있었다. 내가 이상한 걸 유진이가 눈치라도 챈 것일까? 그녀가 조그마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오빠..? 괜찮아요?”
나는 그녀에게서 조금 떨어졌다. 그리고 그녀 옆에 누워 그녀의 뺨을 가볍게 어루만졌다. 마치 강아지처럼 그녀가 배시시 웃으며 내 손에 뺨을 맡겨왔다.
“우리 결혼할까?”
유진이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내 진심을 파악하기라도 하려는 듯 유진이는 떨리는 눈동자로 내 눈을 바라보았다. 몇 초였는지, 아니면 몇 분이었는지 모르겠다. 우린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섹스와는 별개로 지금은 우리 두 사람이 함께 누워 진심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유진이 대답을 기다렸다.
유진이가 내 가슴을 가볍게 때리며 말했다.
“오빠. 진짜 장난치는 거 좋아하는 거 같아요.”
유진이가 웃으며 내 가슴에 안겼다. 그러더니 키득거리며 말했다.
“깜짝 놀랐잖아요. 그렇게 진지하게 말하니까 진짜인 줄 알고.”
“그랬어? 내가 한 연기하나보다.”
“히히. 그러니까요.”
난 애써 웃었다. 마음과 얼굴이 따로 움직일 수 있다는 게 좋은 것일까?
애써 위안했다. 그래, 지금은 그런 말을 할 시기가 아니었어. 프로포즈를 하는 것도 아니고, 내가 만나면 얼마나 만났다고. 섹스하다 말고 결혼하자고 말하는 것 자체가 너무 우습고 비이성적이잖아. 만약 진짜라면 이런 상황이 아니라 진지하게 말하면 되지. 그러면 유진이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을까?
유진이를 재웠다. 밤 11시 30분. 사람의 마음도 모르고 시계 바늘은 단 1초도 어기지 않고 잘도 돌아간다. 나도 그녀의 옆에 누워 잠을 청했다. 하지만 나는 원래 잠을 자 본 적이 없는 사람인 것처럼 말짱했다. 그녀의 숨소리만이 들리는, 그녀 외에 모든 것이 멈춰버린 듯한 그 밤에 나는 도통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시간이 흐른다. 달리는 자동차도 멈출 수 있고 전화기를 통해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도 멈출 수 있다. 하지만 왜 시간을 멈출 수는 없는걸까?
유진이와의 시간이 하루하루 지나간다. 나는 철저하게 마음을 숨겨야 했다. 어차피 안 될 거라면 그냥 아무렇지 않게 지나가는 게 더 좋을지도 모른다. 유진이가 웃으면 나도 웃었다. 며칠 안 남은 시간이지만 유진이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다.
내가 바보 같다고 느꼈다. 넌 뭐가 그렇게 두려운 거야 하고 스스로에게 물었다. 왜 진지하게 말하지 않는 거야 라고 물었다. 나도 몰라 라고 답했다. 이미 다 알고 있잖아. 왜 그런지는.
나는 정말 아무렇지 않는 것처럼 지냈다. 유진이의 미소를 보고 있으면 다 잊어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유진이와 격렬하게 몸을 섞으면 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오빠, 이거 예뻐요?”
유진이에게 옷을 사주려고 나왔다. 그녀의 여러 벌의 옷을 피티룸에서 갈아입고 나와 내게 보여주었다. 무엇을 입어도 예쁘다. 나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유진이는 기쁜 듯 내 앞에서 돌아보이기도 하고 안겨 오기도 했고 키스하기도 했다. 해외에 나와서 눈치볼 사람이 없어서인지 유진이는 예전보다 훨씬 과감하고 자유로워 보였다.
그렇게 목요일 밤이었다. 내일 오전이면 유진이가 한국으로 돌아간다. 즐거운 일들도, 격정적인 섹스를 나눈 일들도 많았지만 내 마음은 텅 빈 물병같았다. 누군가 툭 차고 지나가면 힘없이 저 멀리 내팽겨쳐질 것처럼, 나는 그렇게 서 있었다.
나는 그녀를 안았다. 아마 내가 했던 섹스 중에 가장 슬픈 섹스였던 것 같다. 나는 온 마음을 다해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사랑을 쏟아서 그녀를 안아주었다. 환희에 들뜬 유진이의 목소리, 그리고 그녀의 달뜬 신음소리도 내게 슬픈 노래와 같았다.
도통 잠이 오질 않았다. 지난 며칠 동안 서너 시간은 커넝 두 시간도 제대로 잔 적이 없었다. 유진이는 하루 종일 즐겁게 지내고 밤이면 격정적인 섹스를 하고 나서 깊이 잠들지만 나는 뜬 눈으로 새벽이 오길 기다리곤 했다. 하지만 피곤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다.
“오빠.”
유진이가 말했다. 의자에 앉은 나는 뒤를 돌아 침대에 누운 유진이를 보았다. 그녀는 잠결에 나를 부른 것 같았다. 잠결에라도 너와 이야기하고 싶다. 그래서 나는 그녀에게 대답했다.
“응, 유진아.”
하지만 유진이에게서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나는 물끄러미 그녀를 바라보았다. 할 수만 있다면 그녀를 내 눈동자에 새겨놓고 싶었다. 아냐, 그러면 너무 아플 거야. 눈동자가 아파서가 아니라 거울을 볼 때마다 내 눈동자 안에 네가 보이면 마음이 너무 아플 것 같아서.
그렇게 새벽이 왔다. 시간은 야속하게 흘러버렸다. 아침 6시. 이제 유진이가 비행기를 타기 까지 5시간 30분이 남았다. 나는 뭐라도 해야했고, 뭐라도 말해야 했다. 바보같이, 멍청하게 미루기만 하다가 이제 마지막 아침이 온 것이다.
“우웅, 오빠. 잘 잤어요?”
유진이가 잠에서 깨어났다. 아침의 햇살이 그녀보다 싱그러울까? 나는 말없이 그녀를 안았다. 유진이는 이른 포옹에 당황했지만 헤헤 웃으며 내 뺨에 입을 맞췄다.
아침을 먹고 짐을 정리했다. 나는 웃어야 했다. 숨이 쉬어지지 않는다. 내 말도, 내 행동도 슬로우 모션처럼 느린 것 같았다.
짐을 정리하고 우린 거실 소파에 앉았다. 그녀는 그 어깨를 내게 기댄 채 눈을 감고 있다. 지금이 마지막일 것이다.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다는 걸 나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입이 열리지 않는 건 왜일까? 진심으로 좋아한다고, 사랑한다고 말하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었을까? 내 평생에 많은 실수과 잘못을 하고 또 후회했지만, 지금은 싫었다. 이루어지지 않아도 좋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으면, 내 마음조차 알리지 않으면 나는 평생 후회 가운데 살 것이다.
나는 무거운 입술을 땠다.
“유진아.”
“네, 오빠.”
“즐거웠어?”
“네, 정말로요. 꿈 같았어요.”
심장이 떨려온다.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유진아.”
“네, 오빠.”
“안 가면 안 되겠지?”
유진이가 고개를 떼더니 나를 바라보았다.
“사랑해, 유진아.”
더 무슨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내 진심을 담아 그녀에게 말했다. 그리고 나는 그녀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다. 유진이가 내게 말했다.
“오빠.”
“응, 유진아.”
“고마워요.”
“뭐가?”
“나 사랑해줘서요.”
“그게 왜 고마워.”
유진이가 한숨을 내쉰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나는 뭐라도 먼저 말해야했다.
“결혼하자는 거, 농담 아니었어. 지금도 마음은 변함없고.”
내 말에 유진이의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렸다. 가지 말라고 잡아야 한다. 어떻게든 내 곁에 두고 싶다. 욕심이라도 괜찮다. 그렇게 해서라도 유진이를 잡아둘 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다.
유진이가 차분한 음성으로, 하지만 가볍게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오빠. 저 여기 왜 왔는지 아세요?”
난 아무 말 하지 못했다. 그저 그녀가 나를 보기 위해서 왔다고만 생각했으니까.
“오빠. 저 마지막으로 오빠 보러 온 거에요.”
“마지막...?”
“네. 이번에 오빠 보면 오빠 잊을 수 있을 거 같아서. 그래서 왔어요.”
심장이 멎어버린 것 같다. 아마도 내 몸이 심하게 떨렸는지 모른다. 눈 앞에 앉아있는 유진이의 인영이 심하게 흔들렸으니까. 그러면서 그녀가 뿌옇게 변해갔다.
“오빠. 저는요. 오빠 정말 너무 좋아요. 오빠가 사랑한다고 말해줘서 너무 고마웠어요. 나 그래서 6개월 동안 아르바이트 하면서 돈 모았어요. 오빠 있는 여기에 오려고. 오빠를 봐서 너무 좋고, 너무 기뻤어요. 그런데, 나 이제 자신이 없어요. 내가 한국 가면 언제 다시 오빠를 볼 수 있을까요? 6개월 동안 죽을만큼 힘들었는데, 다시 이렇게 헤어지면 얼마나 힘들까요?”
아, 유진이가 뿌옇게 변한 게 아니구나. 그냥 내 눈물이 눈에 고여서 뿌옇게 보인 거였구나.
“그래서 잊으려고 왔어요. 오빠 보면 용기내서 잊을 수 있을 거 같아서. 아프지 않고 행복한 기억으로 남고 싶어서....... 오빠도 그렇죠? 오빠도 저 잊을 수 있죠?”
어금니를 물었다. 유진이가 우는데 나까지 울면 안 된다. 나라도 냉정하게 굴자. 그래야 나도 덜 아프고 유진이도 덜 아플 테니까.
“응. 그럼. 너는 끝까지 농담이 안 통하네.”
나는 미소를 띄우며 말했다.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게 마지막이구나. 그녀는 울면서 웃음을 터트렸다. 나는 그녀를 안아주었다. 이 미소도, 이 향기도, 이 따스함도 이젠 마지막이구나. 나는 우는 것 대신 웃기로 했다. 고마워, 유진아. 진짜 좋은 기억을 남겨줘서. 나도 몰랐던 너에 대한 사랑을 일깨워줘서. 이젠 누굴 만나면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아.
몇 년이었을까? 내가 누군가를 제대로 사랑할 수 없게 되었던 게. 셀린이 그렇게 가버린 이후 나는 사랑하는 법을 잊은 사람처럼 그렇게 살았다. 누굴 만나도 온 마음을 쏟아서 애정을 표현하고, 또 내가 해줄 수 있는 모든 걸 다 해줘도, 마지막엔 그랬다. 내가 널 좋아하지만 이건 사랑은 아니야. 그래서 네가 떠나도 상관없어.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은 해결책이었다. 나도 더 다치지 않고, 그렇게 나를 포장하면서. 어차피 사랑 같은 건 없으니까. 나 스스로를 위한 변명이었다. 셀린이 그렇게 떠난 이후 나는 누구에게도 사랑한다고 말해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유진이에게 나도 모르게 사랑한다고 말했던 그날, 내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왔다. 그래서 이번 한 번만 거짓말 하기로 했다. 사랑이 아니라고, 괜찮다고.
우린 공항으로 향했다. 나도 유진이도 밝은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고맙고, 감사했다. 그녀도 나를 사랑한다는 걸 알았으니까. 이제 보내줘도 괜찮을 것 같았다. 잠시 가슴이 아프겠지. 잊을 수 있다고 말했짐나 잊을 수는 없겠지. 그래도 여름의 향기를 맡으면 너를 생각하면서 웃을 수 있지 않을까.
“오빠, 저 갈게요.”
“응. 어서 들어가. 늦겠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나는 유진이의 손을 놓지 못했다. 유진이도 말은 간다고 하지만 발을 떼지 못했다. 보내줘야 한다. 나는 잡았던 손을 스르륵 놓았다.
“오빠.”
“응, 유진아.”
“나중에 한국에 오면.......”
그녀의 말이 끊어졌다. 뭐라고 하려는 걸까? 나는 말없이 그녀의 입술만 바라보고 있다.
“아니에요. 저 진짜 들어갈게요.”
“그래. 조심해서 가. 기내식 너무 많이 먹지 말고.”
“네, 오빠. 가요.”
그녀가 뒷걸음질 치며 게이트를 향했다. 나는 우뚝 서서 움직이지 못했다. 조금씩 유진이가 멀어져 갔다. 그리고 그녀가 게이트 안으로 사라졌다. 그제서야 나는 참았던 눈물이 터져나왔다. 소리내진 않지만 눈물은 멈추지 않는다.
그렇게 나의 여름은 지나갔다.
“안녕하세요. 처음이세요?”
“네. 여기는 처음인데, 시설 좋아보이네요?”
“그쵸. 저희 스튜디오가 사설 녹음실 중에선 시설 거의 최고일 거에요. 몇 곡 녹음하실 건가요?”
음. 몇 곡이라. 시간 닿는대로 하고 싶다. 수정이나 효과 추가 없이. 그래도 몇 곡 부를지 말은 해야겠지?
“두 곡 녹음할게요.”
나는 스튜디오 안으로 들어갔다. 헤드폰을 끼고 준비했던 MR을 스태프에게 건네주었다. 좋은 음질의 MR를 구하느라 꽤 고생했는데, 녹음이 잘 됐으면 좋겠다.
“아, 여기 죄송한데. 물 한 병만 주실래요?”
“네, 잠시만요.”
아르바이트 하는 여학생이 생수 한 병을 가져다 주었다. 나는 목을 축인 뒤 헛기침을 가볍게 하며 준비를 마쳤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시그널을 날렸고, 녹음 스태프가 신호를 받고 녹음을 시작했다.
익숙한 멜로디. 슬프지만 아름다운 멜로디가 헤드폰을 타고 들려온다.
나는 덤덤한 목소리로 노래를 시작했다.
너무나 멀어보여요 이렇게 가까이 있는데도
언젠가 나를 안아주던 따스한 인사도 잊은 건가요
내가 뭘 잘못했나요. 혹시나 미워졌나요
아니죠 떠나려는 건 아니죠
그런 일은 절대로 없을 거라 나는 믿을게요
오늘은 안되요. 내 사랑이 이대로는
이별을 감당하긴 너무 큰 걸요
많은 약속을 다 지울 순 없잖아요
아직도 해드릴게 참 많이 있는데......
이렇게 담담하게 부를 수 있을 정도가 되었구나. 간주가 흘러나왔고 나는 숨을 골랐다. 2절을 다시 불렀다. 최대한 감정을 절제하고 할 수 있는만큼 담담하게 부르려고 했다. 다행이 눈물은 나지 않았다.
“와, 연습 많이 하셨나보다. 노래 정말 잘하시네요.”
“감사합니다.”
“두번째 곡 바로 녹음하실 건가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두 번째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나 오늘도 그댈 맴돌았죠
어제보다 표정이 좋아요
오랜만에 보는 웃은 모습이
훨씬 그대에게는 어울리는걸
어제 그대 집으로 가늘 길
왜 그리 지쳐보였었나요
하마터먼 그댈 부를 뻔했죠
마침 목이 메어와 소리낼 수 없어
기억하나요 이별한 날
냉정했던 내 어설픈 모습을
그렇지만 난
내내 그리워만하다
이젠 그대를 매일 찾아가는 걸
조금 더 가까이 보고 싶어
그대의 따뜻한 두 눈을 바라볼 수 있게
언젠가 내가 지쳐버리면
남는 건 기억 속에 그대 뿐
내겐 잊는 것보다 그댈 간직하는 게
조금 더 쉬울 것 같아요
감정을 억누르는 건 쉽지 않다. 나는 웃었다. 내가 운다는 걸 알면 유진이가 슬퍼할 것 같아서 그랬다. 나 혼자만의 착각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럴 것만 같았다. 내가 아는 한, 너는 가장 순수하고 착한 사람이니까.
“수고하셨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편집 끝날 때까지 여기 좀 앉으시겠어요?”
나는 여학생이 권한 소파에 앉았다. 생글거리는 미소가 매력적인 학생이었다. 나는 그저 눈을 깜빡이며 그 학생을 바라보았다. 너무 쳐다봤나? 그녀가 겸연쩍은 표정으로 말했다.
“왜 그러세요? 저 뭐 묻었나요?”
“아뇨. 제가 아는 누구랑 많이 닮아서요.”
“제가 좀 흔한 얼굴이긴 하죠?”
“네, 엄청 흔하네요.”
나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조금 더 기다렸다. 그러자 여학생이 내게 물었다.
“편집실에서 씨디로 드릴지 아니면 USB로 드릴지 물어보는데. 어떻게 하시겠어요?”
“USB로 주세요. 여기다 넣어주시면 되요.”
나는 USB를 건넸고, 그 학생은 편집실에 들어갔다가 금새 내게로 돌아왔다.
“여깄습니다. 총 8만원입니다.”
나는 비용을 지불했다. 2만원을 거슬러 받고 나는 다시 그 여학생을 쳐다보았다. 닮았다. 느낌은 다르지만 그래도 닮았다. 나는 USB를 그 여학생에게 건네며 말했다.
“이거 받으세요.”
“네? 이거 녹음하신 건데요?”
“네. 이거 누구한테 전달 좀 해주세요.”
“저기 익명. 저희는 택배는 안하는데요.”
“제가 직접 가져다 주기가 그래서요.”
여학생이 곤란해했다.
“요 앞에 나가시면 GS25 있으니까 거기서 바로 택배 보내시면 금방 가는데요.”
“아뇨, 택배 안 보내도 됩니다. 집에 같이 사는 분한테 주세요.”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렇게 눈을 뜨니 더 닮았네.
“누구... 말씀하시는 거에요?”
“그쪽 언니요.”
수없이 찾았다. 어디에 있을지. 나흘 동안 그녀만을 찾았다. 일주일 밖에 없는 시간이었지만 나는 내 시간 전부라도 유진이를 찾는데 쓸 수 있었다.
그냥 보고 싶었다. 만나려고 했던 게 아니다. 그냥 잘 지내는지 보고 싶었다. 오직 남아있는 건 이메일. 하지만 그녀는 이메일을 확인을 하지 않는 것인지 내가 메일을 보내도 답장이 없었다.
이메일 주소에 있는 이니셜을 기반으로 그녀를 찾았다. 너무나도 많은 이름. 그렇게 시행착오 끝에 그녀의 페이스북을 찾았다.
여전히 예쁘구나. 서울에 그녀의 동생이 같이 올라와서 지내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방학이라 동생이 녹음실에서 일한다는 사실도.
그렇게 찾았다. 동생을 데리러 그 녹음실에 들어가는 그녀를. 그냥 멀리서 지켜보았다. 건강해서, 그리고 여전히 아름다워서 감사했다.
“저기 익명. 저희 언니 아세요? 누구세요?”
“예전에 그쪽 언니에게 그림을 부탁한 적이 있어요. 그떄 너무 그림을 인상적으로 잘 그려주셔서요. 저는 노래하는 게 취미라서 노래 불러드리겠다고 약속했는데, 그걸 이제야 지키네요.”
그녀는 의심스런 눈초리를 감추지 않는다. 나는 받지 않는 USB를 카운터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언니에게 초상화 너무 고마웠다고 전해주세요. 실물보다 너무 잘 그려주셔서 고맙다고요.”
난 그렇게 스튜디오를 빠져나왔다.
바보 같을지도 모른다. 끝까지 욕심을 내지 않고 잡지 않았다고 말이다. 하지만 그게 나니까. 조금 멍청해도 잡을 수 없는 게 나니까. 잊으려고 온 그녀에게 내게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바람이 매섭다. 이제 정말 겨울이구나. 나는 옷깃을 여몄다. 한국의 겨울은 오랜만이다. 여름의 향기는 없지만 기억은 남아있다. 언제가는... 그게 봄이든, 여름이든, 아니면 화사한 가을이든, 하얀 겨울이든. 다시, 또 다시 계절의 향기가 불겠지.
그렇게 여름의 향기는 사라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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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즐겁게 읽으셨나요?
처음 핫썰에 글을 올렸을 때 이럴 의도가 아니었는데 제가 생각했던 것과는 많이 제가 달라져버렸네요. 처음엔 그냥 경험썰이나 풀자 하는 의도였는데. 이젠 하나하나 기억을 곱씹어보며 추억을 떠올리게 되네요. 덕분에 센티멘탈 해지기도 하고, 내가 그렇게 사랑했었구나 하고 다시 되집어 봅니다.
유진이 사진 두 장 올려봅니다. 가릴 건 가렸으니 괜찮겠지요. 그럼 좋은 밤 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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