씹창이를 부러워하는 내 과거 이야기(지겨운 모자근친)
안녕
나는 코로나때 헬븐넷이란 옆동네서 씹창이 경험담을 접하고 이 곳을 알게된 노총각이야
나는 어릴때부터 엄마에 대한 성적 동경이 있었어서,
일본놈들의 야동도 근친물(새엄마는 극혐함. 오로지 친엄마 종류만 봄)만 보던 진퉁 모자상간 매니아였는데, 게시판에서 모자 근친 경험을 한 글들을 보니까 문화충격이기도 하고, 내가 한때 꿈꾸었던 삶을 사는 다른 사람들 글을 보니까 부럽고
무엇보다 혼기도 놓쳐서 결혼도 못한 노총각이 되다보니 꼴릴때마다, 여기서 딸감을 얻고 종종 한발씩 빼곤 하지
오늘 추석 연휴 전인데 집에서 혼자 술먹다 보니 오늘따라 엄마에 대한 생각도 많이 나고 해서 그냥 내 과거 얘길 하고자 끄적여보게 되었어. 틀딱냄새 나면 뒤로 가라 이말이야.(좋아하는 씹창이 말투 따라해본다 ㅎ)
엄빠와 행복하게 성장하던 나는 중학교 1학년때 포르노를 처음 봤었지. 90년대에는 비디오 테이프를 갖고 부모님 없는 친구들 집에서 야동을 보던 훈훈한 문화가 있었는데, 순진한 나는 옆동네 발랑까진 동혁이(미안하다 친구야 네 이름은 실명이다. 우리 안본지 오래되었잖아) 가 여자를 알게해준다는 말에 야동을 처음 보고 성에 대한걸 눈을 떴었지. 다들 알거야 섹스란 황홀한 문화를 처음 접할때의 문화충격을..
여튼 포르노를 보고 나니 다들 알다시피 나도 해보고 싶은 마음을 갖기 마련인데, 흔한 클리셰로 알다 시피 우리 엄마 역시 또래에 비해 동안이고 예쁘며 아름다우니까 엄마도 저렇게 섹스를 해서 나를 낳았을까 하는 호기심을 갖게 되었지. 거짓말 안하고 그때 당시 내게는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성인 여성이었었어.
참고로 엄마는 시집을 일찍가서 외동이던 나를 25살에 낳았고, 전업주부였었어. 사업하던 아빠와 함께 나를 잘 키우던 전형적인 현모양처였었는데,
성적호기심이 앞서니까 지금은 너무 흔한 클리셰이지만 90년대에 엄마가 입다 벗어놓은 속옷을 탐구하기 시작했어. 지금 생각해보면 나도 변태끼가 다분한 놈이었지. 엄마는 빨랫감을 자연스럽게 화장실에 쌓아두었는데, 딸 잡고 씻던 내게 눈에 띄기 시작하면서, 여자의 보지란 곳을 찾아보고 싶은 마음에 내게 가장 가까운 여자로서 엄마를 접하게 된거지.
사실 여기에서 엄마의 빨랫감이 더럽거나 찾기 힘든 그런 여건이면 모르겠는데, 엄마는 중1때만해도 키가 작아서 앞번호이던 나를 어리게 보고 있어서 전혀 경계하지도 않았고, 그냥 아무렇게나 널부러진 엄마의 입다 벗은 속옷들은 너무나 찾기 쉬운 여건이었어. 그렇게 찾은 엄마의 입다 벗은 팬티는 얼룩진 흔적과 함께 뭐라 표현할수 없는 시큼한 냄새가 났었고. 그렇게 엄마를 여자로 보게 된것 같아. 딸잡고 죄책감에 괴로워하면서도 바로 다음날이면 또다른 엄마의 팬티에 바로 꼴려서 또 한발 뽑기 시작하게 된거지
하지만 알다시피 화목한 가정에 아들이 변태로서 성장해서 엄마한테 한번 대 달라고 이딴 생각은 전혀 할수 없고, 뒤에서 엄마의 속옷을 탐구하면서 딸을 주기적으로 치는 소극적인 변태로 성장을 했었지. 가끔 엄마의 팬티가 젖어있거나, 털이 몇 터럭 붙어있으면 좋다고 흥분해서 그거 냄새 맡으면서 딸치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나는 엄마와 섹스를 하고 싶다는 욕망을 꿈꾸며 크게 되었어. 우리엄마는 친구네 살찐 아줌마들보다 예쁘고, 날씬하며, 보지냄새가 감미로운 여자였으니까. 엄마의 팬티 종류를 다 섭렵했었고, 아빠와 어떻게 섹스를 할까 많이 궁금해했었어. 나는 착한 아들이었으니까
90년대 후반에 우리나라에 큰 일이 생기는데 그게 Imf야. 사업을 하던 아빠로 인해 우리집은 부자는 아니었어도 외동이던 내가 성장하는데 부족함이 없던집이었는데, 아빠가 많은 부채를 지게 되어서 가족을 지킨다고 위장이혼을 하게 돼. 드라마 보면 알거야 집에 모르는 사람들이 와서 빨간 딱지 붙이는거. 그렇게 엄마와 나는 졸지에 집에 화장실도 없던 단칸방으로 이사를 갔어.
전업주부이던 엄마는 분식집을 하게 되었고, 아빠는 못보게 되었어. 고등학교에 올라간 시기였는데, 이때는 집안환경이 어려워지니까 엄마에 대한 불효 같은거 떨치고 정신차리고 공부하게 되더라. 근데 이사간 집이 화장실이 없다고 했잖아. 다가구주택 1층 집이었는데 부엌겸 세면장밖에 없다보니 이제 사춘기 아들과 엄마가 여기에서 문도 닫히지 않는 공간에서 샤워를 하며 여름을 나게 된거야. 그렇게 엄마가 고개만 내밀면 볼수 있는 곳에서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는 소리를 듣는게 일상이 되니, 억눌렀던 본능이 다시 깨어난거지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엄마 샤워하는거 많이 훔쳐봤다. 거울을 문 밑에 넣고 각도 잡으면 완벽하진 않아도 잘 보이고 존나 꼴리더라. 마음은 슬픈데, 저리 몸매도 좋고 아름다운 엄마가 쪼그려 앉아서 직접 손으로 보지를 비비면서 씻는걸 볼때면, 내 손이 저기에서 엄마를 씻겨주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어. 엄마의 젖은 다소 쳐지긴 했지만 유륜도 적당하고 출렁이는게 매우 탐스러웠고, 짙은 숲의 보지털이 다리사이에 있는걸 보면서 집안 환경만 아니면 엄마에게 달려가서 한번만 내 딸잡는거 도와달라고(차마 엄마가 슬퍼할까봐 강간할 마음은 먹지 못했음) 요청할까 참은게 한두번이 아니었어
자세가 자세인지라 보지 벌어진거 빼곤 엄마의 몸은 다 봤던거 같아. 아직도 눈에 선해. 눈부신 나신의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여성이던 엄마가 섹스를 위해(내 상상) 몸을 청결하게 씻고 준비하던 모습을.
엄마는 전업주부였어서 분식집을 운영하는데 어려움을 많이 겪었던거 같아. 나중에 외할머니 통해서 들었는데 빚으로 가계를 꾸려나갔다고 하더라고.. 근데도 정신못차리고 엄마 몸 훔쳐보면서 딸을 규칙적으로 잡았었어. 엄마와 밤에 둘이서 자는데, 엄마의 잠든 모습을 보고도 음욕을 참았던 기억도 많았구.
이혼녀가 사회생활을 하면 뭐다? 똥파리가 꼬인다. 아빠는 위장이혼이라곤 했지만 파산신청하고 연락이 두절되었고 나는 키워야 되고 하다보니 분식집에 자주오던 엄마 또래 남자들이 이제 접근하기 시작하는거지. 남편은 없는거 같고 아들만 있는거 같으니까 그렇게 친해지면서 도움주고 따먹으려고 접근한놈들이 한 두어명 있었어(갑자기 네토물로 전환)
그전에 생전 보지도 못한놈들이 엄마가 친구라고 하면서 소개해주더라고, 알잖아 느낌이란게. 이새끼가 친구인지 엄마의 남자인지 감이 오는거. 엄마는 늦게 끝날리 없는 분식집을 하면서 일이 늦다고 늦게 들어오기 시작하고, 엄마의 샤워하는 시간을 구경하는 순간은 점점 줄어들었어. 그리고 엄마도 가끔 술을 먹고 취기에 들어온걸 봤지. 그때만해도 토요일까진 학교다닐때니까 토요일 밤에는 엄마가 들어올때까지 기다렸지.
다른남자를 만나기 시작한 엄마를 보며 죄책감없이 자위를 한것 같아. 나한테 대주지. 왜 그딴 도적놈 같은 조루찐따 같은새끼한테 대주는지. 야속하지만 가난한 고딩이던 나는 엄마가 그렇게 아빠 아닌 남자를 만나면서 나 없는 곳에서 섹스를 하는 우리엄마를 상상했어
그리고 실제로 어느날 밤은 술에 취해 들어온 엄마가 들어오자마자 샤워를 하고 속옷을 갈아입고 바로 나간걸 봤어. 엄마의 팬티를 뒤져보자 놀랬던건, 그동안 엄마의 팬티에서 볼수 없었던 무척이나 따뜻한 온기로 감싸어진 흠뻑젖은 엄마의 팬티였어. 본능적으로 감이 오더라고, 엄마가 섹스를 했거나, 섹스하기 전에 애무를 받아서 보지가 잔뜩 젖어있던 상태라는걸. 굴욕감이 들지만 존나 꼴리는 순간이라 그 팬티를 빨고 냄새맡으며 딸을 두번 잡았어. 기다렸지만 엄마는 오지 않았고 고딩이라 수험생인 나는 피곤해서 잠이 들었지. 다음날 엄마는 평소와 똑같이 날 맞아주고 아침을 차려주었어.
엄마를 뺏긴 마음에 질투하며 고등학생 시절을 보냈고, imf와 엄마의 외도 아닌 외도를 접하면서 정신못차린 내가 수능을 망치는건 당연한 결과였어. 원하는 대학을 못가서 점수맞춰서 어중간한 대학 어중간한 학과에 진학하고 등록금을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와 사투를 벌였지.
대학에 가서 여자친구를 만나게 되니까 한동안 엄마 생각 안나더라. 근데 엄마에 대한 복수심을 담아서 섹스란걸 해보고 싶은데 여친은 또 안해주더라고. 내가 너무 욕망이 뻔히 보이는 놈이었나봐. 알바와 학교생활을 보내는 사이 엄마는 분식집을 정리하고 아예 만나는놈이 차려준 식당을 운영하게 되었고, 나는 복수심에 불타는 자위를 이어나갔지. 나한테 대주진 않았지만 샤워는 규칙적으로 훔쳐볼수 있었고, 엄마의 팬티는 여전히 냄새좋은 내 딸감이었으니까. 시간이 몇년 지났지만 엄마는 여전히 아름답고 섹시한 성인 여성이었어.
군대를 가니까 엄마를 이해하게 되더라. 근데 만나는 놈이랑 면회를 오거나 내가 휴가나가서 만나면 개뿔 이놈새끼가 엄마하고 섹스 존나 하는거 상상하니까 질투심이랑 또 꼴려서 1일 2딸씩 4박5일 하고 볼살 헬쓱해져서 귀대하고 그랬지.
제대하니까 엄마가 만나는놈이 바뀌었었어. 그리고 집도 이사를 갔고, 이사간 집은 집 안에 화장실이 있었어. 아쉽더라. 이제 엄마의 탐스런 모습을 훔쳐볼수 없으니까. 두번째 새끼한테 엄마 고생 많이 했으니까 잘부탁한다고 하니까 엄마가 울던 모습이 선해. 마음은 아픈데, 집에 먼저 들어오니까 엄마가 그넘하고 또 섹스하는 상상에 딸잡고 그랬다. 나란병신 똘똘이가 본능을 지배하는 병신이었던듯
학교 졸업하고 취직을 했어. 친가쪽을 통해 들어보니 아빠는 놀랍게도 지방에 내려가서 살고 있는데, 다른 여자 만나서 이복동생 낳고 잘 살고 있다고 하더라고. 엄마하곤 연락이 된거 같긴 한데, 내 입장에선 엄마가 고생하면서 나 키운거 아니까 아빠한테 갈생각도 못하고 그냥 내가 모시고 살아야지 생각을 했다.
엄마는 내가 취업하니까 외박도 자주하기 시작했어. 이해했지. 엄마도 엄마의 삶이 있으니까. 사실 두번째 만나던 놈하고 헤어지던 순간 엄마가 힘들어한적이 있는데, 차마 나한테 한번 대달라. 나도 엄마를 여자로 보고 있다. 이 개소리를 할수가 없더라고. 나는 변태지만 효자이고 싶었으니까
여자친구도 만나보고 했는데, 내가 그렇게 좋은직장에 취업한것도 아니고 집도 없고 하다보니 내가 자신이 없어서 헤어지더라. 만나던 여자친구들을 통해서 엄마에 대한 그릇된 음욕을 지우려고 노력했고, 온 마음을 다해서 사랑해봤는데 헤어지고 나서 공허한 마음은 어쩔수 없더라고.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나니 노총각이 되었고 엄마는 4번째 만나는 놈 집에 들어가서 살기 시작했어. 그 집에서 지내면서 한달에 두번정도는 집에와서 내 밥을 차려주고 날 챙겨주곤 하셔. 이제는 내게 결혼하라 소리를 안해.. 포기한지 좀 되었어.
엄마를 상대로 음욕에 빠지던 순간이 엄마가 40살 되던 전후였는데 어느새 엄마도 폐경은 진작에 지난 60대가 훌쩍 지나버렸지..근데 여전히 내가 보기에는 또래에 비해 고우시고 아름다워.(아직도 브래지어를 하고 란제리를 세트로 차려입으며, 치마 등 옷을 갖춰입고 화장도 하시면서, 매일 질 세정제를 통해 잘 관리하는 사람이거든)
나는 사실 지금 이순간도(60대 중반이 넘음) 엄마가 내게 먼저 손을 내밀면 거리낌 없이 그토록 원하던 엄마와 섹스를 할수 있을것 같아. 내게 처음으로 여자의 알몸을 보여주었던 사람이고(본인은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이틀에 한번꼴로 매일 보지의 냄새를 직 간접적으로 맡게 해주던 섹시미가 넘치던 세계에서 제일 아름답고 섹시한 성인여성이었으니까. 다만 사랑하는 엄마에게 내 마음을 전달하는 순간 마음아파하고 괴로워할걸 아니까 시도조차 안하고 이렇게 딸만 잡는거지
그래서 여자없이 공허한 딸을 잡을 때면 어김없이 엄마를 생각해. 내가 고등학교때 처음 보았던 엄마의 눈부신 나신. 그리고 딴놈에게 대주던 순간의 잔뜩 젖은 보지냄새. 만약 그 상대가 나였다면, 나는 얼마나 꿈꾸던 엄마와 함께 행복한 순간을 보낼수 있을 까 하고
씹창이 경험담을 보고 용기를 내서 끄적여봤어. 과거가 약간 우울하게 적힌 감이 있지만 사실 난 불행한 사람은 아니야. 총각이라고는 해도 가끔 땡기면 일부러 성숙한 여자를 골라서 안마도 받기도 하고, 집에서 방해도 안받고 게임도 하며, 내 일상을 자유의지대로 즐겁게 보내고 있어.
엄마와 관계가 맺어진 사람들에게 축하를 보내며 이만 줄일게. 다른사람들에게 이런 관계가 퍼지지 않게 조심해. 쾌락은 순간이지만 책임은 영원하니까. 난 그래서 씹창이에게 만큼은 자랑하고 싶으면 다 가리고 올리는건 상관없지만 병신들의 시비거는 글에는 반응을 안하길 바래. 내가 만약 엄마와 맺어졌다면 나는 내게 소중한 엄마를 자랑하긴 했어도 많은것은 밝히지 않았을것 같으니까.
썰게이들 모두 즐거운 추석 보내고. 안녕~
[출처] 씹창이를 부러워하는 내 과거 이야기(지겨운 모자근친) ( 야설 | 은꼴사 | 성인사이트 | 성인썰 - 핫썰닷컴)
https://hotssul.com/bbs/board.php?bo_table=ssul19&wr_id=596082
[이벤트]이용후기 게시판 오픈! 1줄만 남겨도 1,000포인트 증정!!
[재오픈 공지]출석체크 게시판 1년만에 재오픈!! 지금 출석세요!
[EVENT]01월 한정 자유게시판 글쓰기 포인트 3배!
Comments
정말 좋은 환경이었는데 용기가 조금 부족하지 않았나 합니다
근친 하는 분들 보면 처음부터 바로 하게 되는 경우는 거의 없더라구요
다들 처음에 가벼운 터치 스킨쉽 엄마에 대한 관심 애정표현 이렇게 간격을 좁혀나가다 어느날 술 기운을 빌려서 시도해서 부부처럼 지내는 경우 있고
처음에 엄마한테 그렇게 싸대기 맞아가면서 계속 시도해서 결국에는 부부처럼 지낸다는 분도 있습니다
한번 40대 중반 여성분 하고 하면서 내가 물어보았습니다
아들이 남자로 보일 때 있느냐 물어보니 있었다고 하더군요
인생 한번 입니다
용기를 내어 보세요 엄마가 성추행으로 신고를 하겠습니까
어머니도 노총각으로 늙어가는 아들에 대한 연민도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그 연민을 자극하면서 접근해보세요
후기 올려주시고요
무교에 남자들을 문란하게 만나면서 도덕심없이 사시는 상태였다면 모르겠는데, 제가 마음을 고백하는 순간 거절을 그냥 하는게 아니라 울면서 나무라실거 같은 모습이 떠오르고, 그런 상황에선 도저히 자위할때처럼 고추빵빵할수가 없을것 같았던거죠. 쉽게 생각해서 꼬무룩해서 고개를 들수 없을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여튼 만나시는 분하고 행복하신거 보니까 노총각의 안쓰러움 같은걸로 어필하기에도 엄마의 행복이 중요하다는 마음에 할수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마음속에 영원히 묻어두기로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