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 나 아직도 오빠 사랑해!" (12)

G의 부모님께서 나를 좋아하셨던 것 같다. G의 아버지와는 별다른 소통이 없었는데, 아버지께서 출장 다녀오실 때 내 선물을 챙겨주신걸 볼 때, 나를 나쁘게 생각하지는 않으셨던 것 같다.
G의 어머니께서는 어느날, 내가 많이 지쳐보인다고, 내게 과일즙 한 통을 선물해주셨다. 이걸 볼 때, 어머니도 나를 좋게 생각해주신 것 같다.
그런데, 내가 왜 지쳐보였을까 그날?
사건은 이러했다. 그 날 G와 만났는데, 내가 토끼 (3분카레)라서, G가 입으로 해주는 일은 거의 없었다. 가뜩이나 토끼인데, 시작도 하기전에 발사하면 안될테니.
근데 그 날은 G랑 마땅히 할 장소가 애매하고, 그래서 우리집 아파트 단지 어디엔가 주차를 하고선 G가 입으로 내 오랜친구를 보듬어주었다.
군대 시절에 날 잘 챙겨주던 고참이 있었는데, 대구 출신이었다. 여친이 입으로 해주다가 발사까지 하고, 차 밖에다가 밷어냈었다고 했다. 그 당시 천연기념물이었던 나는 그런 얘기들이 신기하기만 했다.
그런데, 그 일이 내게 일어나고 있던 것이 참 신기하기도 했다. 이 날 난 처음으로 한 아가씨의 입안에 내 씨앗을 한 바가지 뿌렸다. G는 정성껏 내 그것을 입으로 해주고, 다 발사하는 그 시간까지 잘 참아주었다.
모든게 우리 서로에게 처음이었지만, 이날도 G의 입 안에서 이루어진 이 거사는 우리 두 사람에게 정말 거사였다!
비렸을텐데 아무런 불평하지 않고...
발사를 마쳤을 때, 내 몸은 완전 퍼졌다. G의 중심골짜기에서 발사할 때랑 피로도가 완전 달랐다. 그러고 나서 볼 일이 있어서 G네 집에 갔다가 어머니를 뵈었는데, 그렇게 많이 지친 내 모습을 어머니께서 보셨던 것이다.
다음번에 G의 집에 갔을 때 과일즙 한 박스를 받았을 때, 감사하기도 하고, 무안하기도 하고,
그렇게 G와 나는 무안함과 감사함을 가졌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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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음소리 관련 애피소드
우리가 몸으로 함께할 때, G가 신음소리를 늘 냈는데, 그게 자연스럽게 나오는건지, 일부러 내는건지 난 도무지 모르고 있었다. 이걸 언제 알았냐면,
내가 G의 집에 주말 일찍 놀러갔을 때, 부모님은 나들이를 가셨고, G의 동생이 거실에서 누워 자고 있었다. 나는 이날도 시동을 걸었는데,
G가, "안돼, 내 동생이 알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 라며 거절하지 않고,
거사를 그대로 진행했다. 이 때 G가 본인의 입을 막고 얼굴을 찡그리며 신음을 애써 참았다. 이걸 보면서 난 알게 되었다.
G의 신음은 자연음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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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내는 신음을 내지 않는다. 그래서 심심하다. 어차피 마지막으로 언제 한지도 가물가물 하고,
서류 처리 마무리 단계이니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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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소들의 공통점이 뭘까?
종로의 어느 DVD방, 신촌의 어느 DVD방, 대학로의 어느 DVD방, G 출신 학교 앞 어느 DVD방, 수도권의 어느 지하철역 부근 DVD방,
우리집 내 방, 우리집 내 거실, 우리집 욕실, G의 방, G의 집 거실, G의 아파트 옥상, G의 집 근처 다른 아파트 옥상,
아파트 공사장, 우리집 근처 아파트 주차장, 우리집 근처 다른 아파트 담장 너머 주차장, 어느 공원 입구, 상가 건물 공사장,...
5~6월부터 이듬해 1월 초까지
이 짧은 기간 동안 우리의 몸은 하나가 되었다.
양말 (물건용 양말)을 몇 통을 사서 썼는지 모른다. 가방에 두 개 씩 늘 지니고 다녔다. 그 당시 싼게 3000원에 12개 들이였는데, 요즘은 얼마하려나? (내가 한국에 살고 있지 않아서)
G가 나와 결합할 때 해준 말들이 아직 기억난다.
"오빠, 사랑한다고 말해줘!"
"오빠, 키스해줘!"
"오빠, 입으로 해줘!"
"오빠, 빨리 넣어줘!"
"오빠, 빨리 해줘!"
한 번은 우리가 섬에 놀러간 적이 있는데, 그 날 밤에 내게 이런 말을 해줬다.
"오늘 오빠랑 하루종일 하고 싶었어!"
내가 토끼라서 난 이렇게 짐작하고 있었다: G가 만족을 많이 못하지만, G가 나를 많이 사랑하니까 이해해주나보다 라고
그런데 하루 종일 하고 싶었다는 말을 듣고서야, G도 나와의 결합을 좋아하는걸 알게 되었다.
나도 원했었고, G도 나와의 그것을 원했었다. 나를 사랑해서도 원했지만, 나와 몸으로 마음으로 함께하는 것 자체도 원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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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막차...
내가 G의 집에서 알바를 좀 했어서, G의 집에 일주일에 한 두 번은 늘 갔었다. 일을 마치고 나면 G의 방에서 조금 놀다가 막차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곤 했는데,
막차 시간이 다가오면 G가 정말 많이 아쉬워했다. 그리고, G는 버스 정류장으로 나와서 아쉬운 인사를 건네주었다. 그런데, 어느날은, 버스 막차 시간이 다가오는데도, 날 놔주지 않는 것이다.
난 결국 택시를 타고 집에 가야 했는데, G가 내 손에 만 원을 쥐어주면서 신호등에서 빠이빠이를 하였다.
"오빠 택시타고 집에가! 잘가! 나중에 또 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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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못난 내가 이런 말을 했다.
"우리 헤어져!"
"안돼! 안 해어져! 못 해어져! 오빠 없이 난 못 살아!"
"헤어져!"
"오빠, 나랑 헤어지면 후회 안해?"
난 이 질문에 대답을 하지 못했다. 일단, G는 어떻게 알았을까? 내가 G를 놓으면 나중에 후회할 수 있다는걸... 내가 그렇게 G에게 모진 말을 많이 하고, 상처를 줬었는데, G는 그걸 어떻게 알고 이런 질문을 했을까?
내가 대답을 잘 못한 것이, 암튼 G에게는 그래도 희망의 씨앗이 되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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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와 사귄지 1년이 되었던 그 날, 11월 말...
우리는 차 안에서 싸구려 도시락을 먹고 있었다.
"오빠, 내년 이맘 때도 지금처럼 내 곁에 있을꺼지?"
"그럼! 당연하지!"
하지만 그 때, G는 서서히 마음으로 나와의 이별을 준비하고 있었다.
우리가 갔던 식당이래봐야 김밥천국, 롯데리아 뭐 이런데가 다였다. 내가 G에게 사준 선물이라고는 분홍빛 살짝 있는 남방 하나에다가, 그거 말고는 기억나는게 없다.
그래도 G는 내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다. 내 곁에 있기를 바랐다. 이런 여자가 두 번 다시는 나타나지 않을 줄 어찌 알았겠는가?
삶이 고달플 때, 외로울 때, G를 추억하게 될 것을 어찌 알았겠는가?
[출처] "오빠, 나 아직도 오빠 사랑해!" (12) ( 야설 | 은꼴사 | 성인사이트 | 성인썰 - 핫썰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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