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괴 - 7

나는 갈림길에 섰다. 민경이를 과연 이대로 믿어줘야 할까? 아니면 나의 냉철한 판단대로, 이 일탈을 뿌리 뽑아야 할까? 아니면, 차라리 이번 한 번만, 단 한 번만 눈감아주는 것이 현명한 선택일까? 뇌리에는 수많은 질문과 상념들이 거미줄처럼 얽혀들었다. 하지만 나는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대기업 임원의 자리까지 오르며 수많은 난관을 뚫어온 나였다. 결단은 빠르고 정확해야 했다. 나는 끝내 스스로에게 납득시킬 결론을 내렸다.
‘이번 한 번만, 이번만은 용서해주자!’
그래, 이것이 가장 현명한 길이었다. 이 작은 균열이 내 완벽한 삶의 성채를 송두리째 무너뜨리는 것을 두고 볼 수는 없었다. 어쩌면 민경이도 나의 무언의 경고를 눈치챘을 것이다. 얼마 전, 그 역겨운 영상 속 여인의 얼굴에서 민경이의 순수한 표정을 보았던 그때, 나는 내 안의 짐승과 싸우며 필사적으로 이성을 부여잡지 않았던가. 민경이의 방에서 어깨를 주물러주며 그녀의 유튜브 활동에 대해 물었을 때, 그녀는 분명 "이제 안 해. 왜 자꾸 물어봐?" 라며 순진무구하게 대답했었다. 그래, 그게 진실이어야만 했다. 민경이는 여느 때처럼 조그마한 일에도 깔깔 웃으며 집안에 활기를 불어넣던 그 해사한 미소와, 애교 섞인 말투를 그대로 간직한 아이였다. 그녀의 티 없는 웃음소리는 우리 집안에 울려 퍼지는 가장 아름다운 멜로디였으며, 그녀의 존재 자체로 나는 완벽한 가정을 이루었다는 확신을 가졌다. 그런 민경이가 나의 눈치를 살폈을 터였다. 더 이상 그런 천박한 영상을 올리는 일 따위는 없을 거라고, 나는 애써 스스로를 설득했다.
그렇다면, 이 모든 일은 그저 잠깐의 일탈행위로 끝나고 말 것이다. 나와 아내 희숙, 그리고 명문대에 다니는 모범적인 아들 정훈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오직 민경이와 나만의 은밀한 비밀로 영원히 간직될 터였다. 훗날 민경이도 나에게 고마워할 것이다. 아버지가 자신의 치기 어린 실수를 너그러이 눈감아 주었음에 감사함을 느낄 것이다. 나는 현명한 아버지이자, 냉철하고 똑똑한 남자였다. 이런 사소한 일에 너무 깊이 몰두하여 나의 완벽한 평화를 깨뜨릴 필요는 없었다. 나는 억지로 그 추악한 영상의 잔상과, 내 안의 꿈틀거리는 욕망을 애써 잊기로 했다.
"학생 때는 누구나 다 호기심에 그런 일탈을 하곤 한다. 내 딸아이도 마찬가지이다. 사소한 일탈 따위도 없다면, 오히려 그것이 더 이상한 일 아니겠는가?" 나는 스스로를 기만하는 논리를 되뇌었다. 그래, 오히려 이런 치기 어린 반항심조차 없다면, 그건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이리라. 나의 견고한 신념과 쌓아 올린 모든 도덕적 가치들이 순식간에 모래성처럼 허물어지는 것을 경험했던 그날의 격렬한 해방, 그리고 그 이후 나의 ‘아랫도리’가 매일 아침 불쾌하리만치 생경한 감각으로 반응했던 그 기괴한 변화. 이 모든 것은 민경이의 일탈과는 별개의 문제였다. 나는 나의 육체적인 문제만 잘 관리하면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의 견고한 삶의 성채, 내가 구축한 이 작은 사회는, 나의 현명한 판단으로 또 하나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중이었다. 완벽하게 통제되고, 내 의지대로 흘러갈 것이라고 굳게 믿어 의심치 않았다.
다음 주말, 아내 희숙은 동창생들과 1박 2일로 강원도 여행을 떠나겠다고 했다. 매년 늘 있는 행사였기에, 나는 형식적인 미소와 함께 조심히 잘 다녀오라고 인사했다. 희숙은 나의 삶의 지혜로운 동반자이자 가장 든든한 조언자였으며, 그녀의 빈틈없는 살림과 흔들림 없는 원칙은 내가 바깥일에만 전념할 수 있는 굳건한 토대가 되어주었다. 그녀의 빈자리가 주는 묘한 해방감은 내 안의 짐승을 더욱 꿈틀거리게 만들었지만, 나는 애써 그 감각을 외면했다. 나는 토요일 오후 전무와의 골프 약속이 있었다. 평생을 버티고 버텨 대기업 임원 자리까지 오른 나에게, 골프는 단순히 스포츠가 아니었다. 그것은 회사생활을 위한, 지독히 따분하고 역겨운 처세술의 일환일 뿐이었다. 하아암. 하품이 절로 나왔다. 나는 민경이와 정훈이에게 용돈을 두둑이 쥐여주며 말했다. "주말이니 둘이서 알아서 시켜 먹어라". 아내는 아이들이 먹을 음식을 잔뜩 챙겨놓았겠지만, 부모가 없는 틈을 타 집 반찬을 먹을 리가 만무했다. 그들의 저녁 식사는 순전히 그들의 자유로운 선택에 달려 있으리라. 나는 내 아이들이 세상의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고 바르게 자라도록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최고의 아버지였다. 경제적인 풍요는 물론이거니와, 정신적인 지주로서 그들의 곁을 든든히 지켰다. 이것이 바로 내가 자부하는 '완벽한 가장'의 역할이었다.
전무와의 라운딩은 예상대로 지루함의 연속이었다. 회사에서의 온갖 정치와 알랑거림이 필드 위에서도 이어지는 듯했다. 간신히 저녁 식사까지 마치고 나니 시간이 꽤 늦어 있었다. 시계는 어느덧 밤 10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아이들은 내가 집에 들어서면 방문을 닫고 자는 척을 할 것이라고 나는 확신했다. 나는 그들의 모든 속마음을 꿰뚫고 있다고 자부했다. 술 한잔 걸치고 대리기사를 불러 집으로 향하는 동안, 잠시 깜빡 잠이 들었다. 대리기사가 도착했다고 알리는 말에 나는 눈을 떴다. 아뿔싸. 민경이와 정훈이에게 '아빠 들어간다'는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것을 깜빡했다. 하지만 대수롭지 않았다. "뭐 그런 거 일일이 보내고 그러나, 남자가 말이야." 나는 허세를 부리듯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나의 완벽한 남성상에 이런 사소한 규율은 어울리지 않았다.
도어락을 열고 집에 들어서는 순간, 나는 무언가 찝찝한 기운을 느꼈다. 텅 빈 복도에 감도는 미묘한 정적, 그리고 어딘가 익숙한, 하지만 지금은 느껴져서는 안 되는 공기의 흐름. 분명 아들 정훈이 방은 닫혀 있었다. 하지만 안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은 없었다. 아니, 정훈이가 없었다. 아직 귀가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녀석은 명문대에 다니는 모범적인 아들이었기에, 늦게까지 밖을 맴도는 일은 좀처럼 없었는데. 내 머릿속에 의문이 스쳤다.
하지만 민경이 방은?
민경이의 방문은 살짝 열려 있었고, 그 틈으로 희미한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나는 순간, "아빠 왔다" 하고 외치며 문을 활짝 열고 들어갈까 생각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아니, 그럴 수가 없었다. 문 안에서 펼쳐지는 광경은, 내가 평생을 바쳐 쌓아 올린 완벽한 가정의 환상을 산산조각 내는 지옥도였다.
그곳에는 평소와 같이 책상에 앉아 공부에 몰두하는 딸아이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섬뜩하리만치 선명하게 드러난 그 광경에 나의 심장은 쿵, 하고 지독하게 내려앉았다. 내 눈을 의심했다. 아니, 차라리 환각이기를 바랐다.
민경이. 나의 딸 민경이. 그녀는 짧은 스커트를 입고 있었다. 치마 끝단이 허벅지 위로 아슬아슬하게 말려 올라가 있었고, 팬티가 보일락 말락 하는 그 흉측한 복장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나의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는 잉크 자국처럼 남아있던 그 영상 속에서 보았던 그 춤을 추고 있었다. 내가 사무실 휴게실에서 처음 접했고, 나의 은밀한 자위 행위 속에서 끊임없이 반복되었던 바로 그 끔찍한 춤. 선정적인 몸짓, 노골적인 시선 처리, 마치 노골적인 유혹이라도 하듯 요염하게 흔들리는 허리는 비릿한 땀 냄새마저 풍기는 듯했다. 그녀는 컴퓨터 화면을 바라보며 춤을 추고 있었다. 그리고 그 화면 위로, 수많은 채팅창이 미친 듯이 올라가고 있었다. 이럴 수가. 저건 무엇인가? 그날 휴게실에서 황 과장과 조 대리가 민경이를 닮은 여자애를 보며 "이 씨발년, 존나 따먹고 싶지 않냐?" "저 사실 요새 이년 보고 욕구 해소하고 있어요" 라며 떠들던 그때의 광경이 섬뜩하리만치 오버랩되었다. 나의 순수하고 티 없는 딸이, 감히, 콜걸이나 창녀들이나 추는 듯한 춤을 추고, 수많은 남자들의 욕망 어린 시선을 즐기고 있었단 말인가?
이 기괴한 광경을 목도하자, 갑자기 숨이 턱 막히기 시작했다.
이런.... 이런.... 개같은.... 이런 .....씨발년을 봤나....
내 가슴 깊은 곳 어딘가에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저급한 욕지거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내가 내는 마음의 소리가 아니었다. 아니, 내 안의 짐승이 포효하는 소리였다. 씨발년이라고? 내가 나의 혈육이자 나의 분신이라고 그토록 자랑하던 딸아이를? 감히 내가, 그런 추악한 단어로 부른단 말인가? 나의 이성은 필사적으로 외쳤다. "아니다. 저건 내 딸이 아니다."
그래. 저건 내 딸이 아니다. 씨발년이다. 은혜를 모르고, 감히 아비의 권위를 농락하며 버릇없이 구는 것은 더 이상 내 딸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었다. 그저 씨발년. 개같은년.
나는 이를 악물고 이성을 차렸다. 끓어오르는 분노와 함께, 기묘한 냉기가 나의 온몸을 감쌌다. 잽싸게 나의 방으로 들어와 문을 닫았다. 심장이 여전히 격렬하게 고동치고 있었다. 갈증은 목을 태웠고, 열기는 온몸을 뒤덮었다. 나의 아랫도리는 이미 팽팽하게 솟아 있었다. 혐오와 함께, 알 수 없는 섬뜩한 매혹이 나의 의식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머릿속은 복잡 미묘한 감정들로 휘저어졌다. 하지만 중요한 사실이 있었다. 아내는 모른다. 정훈이도 아직 들어오지 않았기에 모른다. 이건 아직 나밖에 모르는 일이다. 이 사실이 나에게 묘한 희열을 안겨주었다. 모든 것이 나의 통제 아래에 있었다. 나는 가장이었다. 가장은, 언제나 문제를 해결하는 존재였다. 내게 가족은 거대한 기업과도 같았다. 각자의 위치에서 맡은 바 소임을 다하면, 이 견고한 조직은 완벽하게 굴러간다고 나는 굳게 믿어 의심치 않았다. 문제의 싹은 조기에 잘라내야 한다. 작은 균열은 곧 거대한 붕괴의 시작이 될 수 있음을, 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훈육이 필요하다!’
이것은 단순한 체벌이나 질책을 넘어선, 본격적인 통제를 의미했다. 민경이의 순종적인 모습 뒤에 숨겨진 추악한 일탈은 나의 완벽한 가정을 더럽혔다. 이 오점을 지워야만 했다. 나의 자부심과 명예, 그리고 나의 완벽한 삶이라는 환상을 지키기 위해서는, 그녀를 나의 의지대로 완전히 길들여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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