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수는 백마 1
네코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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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시간전
형수는 백마 1
우리는 삼형제다.
부모님은 내가 어릴적에 돌아가셨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나와 형들의 나이차이가 꽤 났다는 것이다.
만약 삼형제가 모두 어렸다면 더 힘들었겠지만 다행히 형들이 나이가 좀 있어서 버텨낸 것이다.
그 중에서도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었던 것은 큰형이다.
큰형은 나와 열두살차이, 작은 형은 나와 여섯 살 차이였다.
부모님은 내가 열 살때 쯤 돌아가셨다.
그때 큰형은 스무살이 넘었을 때였다.
그때, 아마도 형에게는 다른 꿈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큰형은 할수 있는 것이 없었다.
당장 우리를 먹여살리는 입장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때 형이 할 수 있었던 가장 쉬운 방법은 아버지가 하시던 가구일을 물려받는 것이었다.
가장 쉬운 일이었지만, 쉽지만은 않은 일이었다.
그에 비해 둘째형은 어떤가? 우선 둘째형은 나이상 나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가 어려웠다.
열여섯살이라고하면 고작 중3이다.
그 나이에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면 자기자신도 힘들 때였다. 나를 챙겨주지는 않았지만 작은형은
부모없는 아이와는 다르게 공부를 잘했다. 전교 1등을 거의 놓친 적이 없을 정도였고, 그 결과 의대에 진학했다.
의대에 가는 것은 어쩌면 이기적인 선택일지도 모른다. 의대는 등록금도 훨씬 비쌌을 뿐만 아니라, 기간도 훨씬 길
었다. 자연스럽게 큰형에게 부담이 더 가중되는 것이었다. 큰형은 아버지가 물려주신 조금의 돈과 자신이 조금씩
모았던 돈을 거기에 다 쏟아부었다.
아니 모자라서 약간의 빚도 있을 정도였다.
그래도 큰형은 그 일에 아무런 불만이 없었다. 애초에 돈을 모은 것이 동생을 위해서 모은 것인데 동생을 위해 썼
으니 무슨 불만이 있었겠는가? 게다가 동생이 의사가 되는 것이었다. 동생이 의사가 되면 하늘에 계신 부모님도
자신을 흐뭇하게 바라볼 것만 같았다.
그렇게 작은형은 스스로 돈한푼 안 보태고 의사가 되었다.
의사가 된 작은형은 변했다.
아니, 변하지 않았다고 해야하나? 사실 처음부터 작은형은 우리와 좀 다르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작은형은 공부를 유별날 정도로 잘 했으므로 약간은 무식하게 보이는 우리를 무시했었다.
아마 아버지가 살아계셨을 때도 아버지를 무시했던 것 같다.
구질구질하다.
아마도 그정도로 치부했을 것이다.
가족의 도움을 받아서 의사가 된 형이었지만 형이 생각하기에는 어떤 가족도 의사가 된다고하면 다 지원을 해줬을 것이고,
오히려 더 해줬을 거란 거였다.
슬프게도 맞는 말이긴 했다.
그런 형의 생각은 개인병원을 갖고싶어하는 형의 욕망으로 더 가중됐다.
우리집은 무슨 짓을 해서라도 작은형의 개인병원을 차려줄 수 없었다.
빚도 간신히 다 갚고, 가진 재산이라고 해야 오천만원도 안 될 정도였으니...
그러던 중에 작은 형은 결혼을 했다.
상대는 개인병원을 차려줄 수 있을 정도의 부잣집이었다.
부잣집이 왜 우리같은 사람이랑 결혼하나 싶었으나 작은형은 우리, 그러니까 큰형과 나랑은 달랐다.
의사였으니... 학력이 짧은 부잣집에서 의사사위를 맞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게 결혼한 형수는 예쁘고 어렸다.
부잣집에서 곱게 자란 티가 팍팍났다.
하얀 피부에 앳된 얼굴이 고생을 전혀 모를 것만 같았다.
나와 큰형과는 거리가 멀어보였다.
나와 큰형은 일을 해서 그런지 피부색이 까맣다.
그런 안 어울리는 모습이어서 그런지 작은형은 우리를 창피해했다.
우리가 신부에 비해 너무 초라해보인다는 것이다. 슬프게도 맞는 말이었다.
그렇게 작은 형은 우리와 다른 세계의 사람이 되었다.
일년에 한두번씩이나 만날 정도. 설과 추석. 그 정도만 만난 것이다.
만날 때도, 그다지 친절하지 않았다.
다만 나보다도 어린 형수만은 싹싹하게 잘 대해줬다.
아마도 작은형이 의사가 되는데 우리가 큰 희생을 했다는 것을 알고 있는 듯 했다.
우리집안 형편을 보면 작은형이 의사가 되는데 많은 힘이 들었다는 것을 알수 있을 것이다.
아, 그러고보니 내 소개가 빠졌다.
나는 스물 여덟살이다.
그러니까 작은형은 서른네살, 큰형은 마흔살이다.
그리고 나는 작은형과 다르게 대학에 가지 않았다. 내가 스무살일 때도 작은형은 의사준비로 바빴다. 작은형의 나
이는 스물여섯살이니 끝나려면 아직도 많이 남은 상황이었다. 거기에 나까지 대학을 가려면 큰형에게 너무 커다
란 짐이 되었을 것이다.
작은형의 만행 아닌 만행을 보고 있었기에 더욱 대학에 가기가 그런 상황이었다. 형은 공부하기 바쁘다는 이유로
가계에 신경을 하나도 안 쓰도 돈만 타가느라 모르겠지만, 나는 집안의 형편을 잘 알고 있으니... 그래도 그런 형을
뭐라고 할 수 없었던 것은 큰형이 작은형이 의사가 되는 것을 너무 좋아했기 때문이다. 부모님 때문에 그렇다는 것
을 나는 알고 있었고, 그러니 뭐라 하겠는가.
뭐 어쨌든 나는 대학을 포기하고 스무살 때부터 형이 일하는 가구일을 거들었다. 형은 내가 가구일을 하는 것을 약
간은 못 마땅해했다. 내가 공부를 하기를 원했던 것이다. 하지만 큰형 스스로도 알았다. 뒷바라지가 어렵다는 것
을... 그래서 앞에서는 못마땅해하는 척 하면서도 나에게 늘 고마움을 갖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스물 여덟이 된 것이다. 시골에서 변변한 연애조차 못해본채 말이다. 그래도 불평할 수 없었다. 큰형
은 그렇게 마흔살이 됐으니까.
형이 마흔살이 되자 동네에서 장가보내기 프로젝트처럼 나서줬다. 형의 성실함을 동네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딱히 마땅한 신붓감이 없었다. 남자 나이라지만 마흔살이고, 제대로 배운 것도 없고, 인물도 출중
하지 않고, 하물며 돈이 많은 것도 아니엇다. 내가 여자였더라도 마음에 안 들었을 것이다.
그때 대안으로 나온 것이 국제결혼이었다.
국제결혼이라면 그러한 조건을 보지않고 결혼을 할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결론을 내고보니 그 다음부터는 일사천리였다. 읍내에 있는 결혼중개사무소를 찾아가서 얘기를 하니
3000만원 정도면 훌륭한 신붓감을 데려올 수 있다는 것이엇다. 적은 돈은 아니었지만 그 정도의 돈은 있었다. 그
리고 한국여자와 결혼하는데 드는 평균 비용이 8000만원이라는 말을 듣자 더 혹한 것도 있었다.
돈을 치르고 얼마 후 신부가 왔다.
국적은 우즈베키스탄이었다.
새로 온 신부는 3000만원..
아니 그것보다 훨씬 가치가 있어보이는 여자였다.
키가 170이 넘었다.
거의 175쯤 되보이는 키에 서양인에 가까워보이는 외모였다. 아니, 서양인인가?
서양인이라서 그런지 몸매도 남달랐다.
내가 여태까지 본 여자중에 최고였다.
이런 시골에는 있을 수 없는 외모.
밤에 보던 란제리 모델들도 저처럼 굴곡이 있지는 않았다. 최고였다.
아름다움이라는 말이 저 사람을 위해 있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렇게 마음에 쏙 들면 뭐하랴? 내 마누라도 아니고 형수였다.
큰형의 표정을 보아하니 싱글벙글이었다.
당연한 일일 것이다.
저렇게 예쁜 여자가 마누라가 된다니.
형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나 또한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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