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 이야기 - 멀티방
김끝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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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30 23:27
퇴근 시간 무렵, 예상치 못한 진동이 울렸다. 그녀였다. 하지만 반가움도 잠시,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는 평소의 우아함 대신 날 선 서늘함이 서려 있었다.
그녀는 내가 골라준 와인의 맛이 이상하다며, 나를 탓하듯 속상함을 쏟아냈다.
"와인 맛이... 좀 이상하네요. 믿고 가져왔는데."
오랜 경험으로 미루어 볼 때, 그것은 단순한 탄닌의 떫은맛이거나 보관상의 미세한 차이일 뿐이었다.
평소의 나였다면 조목조목 이유를 대며 적당히 응대했겠지만, 그 순간 내 머릿속은 차갑고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위기가 아니라, 그녀와 더 가까워질수 있는 기회라고,
나 : "정말 죄송합니다, 사모님. 제가 직접 확인했어야 했는데... 지금 바로 결례를 만회할 기회를 주시겠어요? 제가 당장 새로 준비해서 가겠습니다."
나는 매장에서 가장 비싼 라인의 와인을 내 사비를 털어 결제했다.
원래 그녀가 샀던 것보다 몇 배는 더 값비싼 물건이었지만, 전혀 아깝지 않았다. 화려하게 포장된 와인 박스와 정성스레 준비한 작은 선물들은,
순식간에 통장의 돈을 바닥냈지만, 기분은 뛸듯이 기뻤다.
주소지를 따라 도착한 곳은 정막함이 감도는 고급 아파트 단지였다.
차에서 내려 도착을 알리는 전화를 걸 때, 긴장보다는 묘한 고양감이 차올랐다.
잠시 후, 경비실 근처로 그녀가 천천히 걸어 내려오는 모습이 보인다.
화장기 없는 수척한 얼굴에 가벼운 가디건 하나만 걸친 차림이었지만, 밤공기 속에서도 그녀 특유의 정갈한 기품은 후광처럼 빛이 났다.
가까이 다가올수록 그녀의 눈동자에 서린 감정이 읽히기 시작했다.
가까이 다가온 그녀의 눈동자에는 전화를 걸 때의 날 선 기세 대신,
당혹감과 짙은 미안함이 일렁이고 있었다. 한밤중에 컴플레인으로 직원을 집 앞까지 불러냈다는 자책과,
정작 나타난 내 손에 들린 과할 정도로 정성스러운 쇼핑백을 본 순간의 당혹감이 그녀의 얼굴이 찡그리듯 미안함을 담고 있었다.
그녀 : "...정말 오실 줄은 몰랐어요. 제가 너무 예민했죠? 아까는 저도 모르게 그만..."
그녀의 목소리가 끝에서 가늘게 떨렸다. 그 표정을 마주하자, 내 안의 무언가가 차갑게 미소 지었다.
나는 일부러 가장 선하고 예의 바른 청년의 얼굴을 한 채, 정성껏 포장한 쇼핑백을 내밀었다.
나 : "아닙니다, 사모님. 오히려 제가 감사하죠. 제가 추천해 드린 와인 때문에 사모님의 저녁 시간을 망쳤다는 생각에 퇴근길 내내 마음이 안 좋았거든요. 죄송한 제 마음이라고 생각하시고 부디 기분 푸셨으면 좋겠어요."
그녀는 쇼핑백 속을 살짝 들어보더니 이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묵직한 무게감.
자신이 지불한 대가보다 몇 배는 더 큰 호의가 쏟아지자, 그녀는 어쩔 줄 몰라 하며 나를 바라보았다.
화나 짜증은 이미 없어진 지 오래였고, 그 자리엔 감당하기 힘든 미안함만이 가득 고여 있었다.
그녀 : "이건... 너무 과한 것 같은데. 제가 이러려고 연락한 건 아니었어요. 정말로요..."
나 : "문제가 생기면 언제든 또 연락해 주세요. 밤이 깊었으니 얼른 들어가시고요."
나는 더 이상의 군더더기 말을 붙이지 않았다. 그녀가 고마움과 미안함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서 있는
그 찰나의 침묵을 뒤로하고, 나는 가볍게 목례를 한 뒤 미련 없이 몸을 돌렸다.
멀어지는 내 등 뒤로 그녀의 시선이 화살처럼 박히는 것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텅 빈 통장 잔고를 떠올렸지만, 신기하게도 기분은 뛸 듯이 가벼웠다.
내게 그것은 돈이 아니라 그녀와 직원이라는 사이에
빛이라는 이름으로 지불한 입장권이었다.
이제 그녀는 그 와인을 마실 때마다,
내 생각이 날것이다.
그 밤의 방문 이후, 며칠간은 휴대폰은 고요했다.
하지만 나는 초조해하지 않았다. 그녀 같은 여자라면 내가 지운 빚에 고마워만 하진 않을꺼란 확신이 있었다.
며칠 뒤 내 예상대로 그녀의 전화가 왔다.
"와인 잘 마셨어요. 그런데 알아보니 이건 제가 그냥 받을 수 있는 게 아니더라고요. 값을 지불하고 싶어요."
나는 정중하게 만류했다. 그것은 사과였고 내 마음이었다고, 점원으로서 당연한 도리였다고 낮게 읊조렸다.
하지만 그녀는 단호했다.
이미 백화점으로 출발했으니 곧 도착한다는 말과 함께 전화는 끊겼다.
잠시 후, 매장 입구에 나타난 그녀는 진지하면서도 아이를 훈육하는듯한 엄한 얼굴로
그녀는 가방에서 카드를 꺼내 내밀었다.
점원과 손님 사이에 받을수 있는 그런 물건이 아니라는듯,,
나 : "사모님, 제가 이건 안 받기로 했잖아요. 사과하는 사람 마음도 좀 헤아려주세요."
당황한 그녀가 입술을 달싹이며 무어라 반박하려던 찰나, 나는 미리 준비해두었던 쇼핑백 하나를 더 내밀었다.
이번에는 새로 들어온 치즈와 하몽이었다.
나 : "이건 이번에 새로 들어온 건데, 지난번 와인이랑 같이 드시면 정말 좋거든요. 맛만 봐주세요."
그녀의 얼굴엔 '이건 아닌데' 싶은 기색이 역력했다.
멍한 표정으로 서 있던 그녀는 어안이 벙벙한 채 마지못해 쇼핑백을 받아 들고 돌아섰다.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여자는 내가 지운 빚을 단순한 빚으로 여기지 않을 거라는 확신.
어쩌면 나의 이 과한 행동은 빚을 갚으라는 독촉이 아니라,
나의 호의를 제발 외면하지 말아 달라는 처절한 간청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녀도 본능적으로 느꼈을 것이다. 내가 내민 것은 와인이 아니라, 그녀의 일상에 조금이라도 섞이고 싶은 욕심이었다.
10분쯤 지났을까. 멀리서 다시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이번에는 양손에 따뜻한 커피 두 잔이 들려 있었다. 그녀는 수줍은 듯 웃으며 내게 커피를 건넸다.
그녀 : "너무 미안해서요. 커피라도 드세요. 그리고... 다음에 꼭 맛있는 거라도 사 올게요."
커피 잔에서 올라오는 온기보다 그녀의 마지막 한마디가 가슴을 울린다.
'다음에 맛있는 거'라는 약속은
평범한 직원이 매장이라는 공적인 공간을 넘어서 그녀에게 특별한 인상을 남겨
그 고귀한 울타리에 한발을 넘어간 느낌이었다.
그날 저녁 퇴근 후 눅눅한 침대에 몸을 뉘었을 무렵, 책상 위에서 휴대폰이 낮은 진동을 내며 울었다.
화면에 뜬 그녀의 이름을 확인하는 순간, 내 안의 심장은 요란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그녀의 목소리는 와인에 대해 컴플레인을 걸던 그 목소리보다 훨씬 부드럽게 젖어 있었다.
그녀는 내가 챙겨준 하몽과 치즈를 어떻게 요리해야 가장 맛있게 먹을 수 있느냐며 물어왔다.
사실 요리법 따위는 세상 천지에 널려 있는 하찮은 정보일 뿐이고 그저 잘라서 먹기만 해도 그만이었다.
그녀는 굳이 나를 찾아 물었다.
그것은 질문이라기보다, 어떻게든 나에게 전화를 걸어야만 했던 그녀만의 서툰 명분처럼 느껴졌다.
나의 설명에 그녀는 "네, 네..." 하며 짧은 호흡을 섞어 대답했다. 우리는 여전히 '사모님'과 '사장님'이라는, 존댓말을 쓰고 있었지만. 하지만 그 예의 바른 호칭 사이로 전보다 훨씬 밀착되어 있는 느낌을 받았다.
요리법으로 시작된 화제는 어느새 밤공기처럼 가벼운 다른 이야기들로 흩어져 버렸다.
사실 우리가 무슨 말을 주고받았는지, 어떤 사소한 주제로 웃었는지조차 이제는 기억나지 않는다.
중요했던 건 대화의 내용이 아니라, 수화기를 타고 흐르는 그녀의 부드러운 숨소리와 그 속에 섞인 기묘한 친밀함이었으니까.
한참을 이어지던 사소한 대화 끝에, 그녀는 망설임 없이 불쑥 말을 던졌다.
마치 오랫동안 품어왔던 생각처럼, 혹은 더 이상의 격식이 지루하다는 듯한 목소리였다.
그녀 : "우리... 이제 말 편하게 하는 거 어때?"
갑작스러운 제안이었다. 예상치 못한 공격에 말문이 막혔지만, 나는 이내 담담하게 대답했다.
나 : "그래 그러자. 아직 니 이름도 모르는데 이름이 뭐니?."
나의 툭 던진 질문에 그녀는 무척 즐겁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혜경 : "혜경이야. 반가워. 넌 이름이 뭐니?"
수화기를 통해 처음으로 건네받은 그녀의 이름은 생각보다 훨씬 더 소박하고 투명했다.
나 : "내 이름은 재호야. 정재호."
내 이름을 입 밖으로 내뱉는 순간, 기묘한 해방감이 밀려왔다.
우리는 더 이상 직원과 사모님이 아니었다. 그저 밤의 정막 속에서 서로의 이름을 주고받는,
새로운 친구를 사귄 기분이었다.
그녀는 반말을 하니 정말 속이 다 시원하다며 아이처럼 들뜬 목소리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당시의 나는 그저 그녀와 꽤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는 사실에만 취해 있었다. 하지만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그녀가 자신의 이름을 내어주고 말을 놓은 건, 단순히 어린 청년과 친해지고 싶어서가 아니었다는 것을.
그녀는 훗날 고백했다. 당시 그녀의 주위에는 자신의 사생활이나 속마음을 털어놓을 사람도 없었고 ,
그 어떤 이해타산도 섞이지 않은 채 그저 '인간 혜경'으로 대화할 수 있는 상대가 절실했노라고 말이다.
그날 밤 이후 , 매일 같이 걸려오는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던 "재호야"라는 내 이름
그것은 그녀를 나이 많은 우아한 사모님이라는 틀에 묶어두었던 마지막 빗장이 풀리는 소리였고,
몇시간씩 통화하는것이 하루의 마무리이자 자장가였다.
이후의 시간들은 매일 같은 통화의 시간만큼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우리는 때때로 밤의 공원을 함께 산책했고,
'혜경'과 '재호'라는 이름이 서로의 입술에 익숙해질수록, 우리의 거리는 그만큼 좁혀졌다고 믿었다.
어느 날, 그녀는 집에 소고기 선물이 들어왔다며 나를 자신의 공간으로 초대했다. 처음으로 발을 들인 그녀의 집은 내가 발붙이고 사는 세상과는 궤를 달리하고 있었다. 현관부터 펼쳐진 차가운 대리석 바닥, TV 속에서나 보던 거대하고 웅장한 거실.
그 압도적인 공간 앞에서 나는 원룸에서의 초라한 일상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의 남편은 포털 사이트에 검색하면 이름이 바로 뜨는 기업의 대표였다.
그녀에게서 느껴졌던, 고생 한 번 해보지 않은 듯한 그 정갈하고 여유로운 주부의 분위기는 몇십년 쌓인 여유였다.
그 웅장한 집 거실 한복판에 서 있자니, 내가 그녀에게 건넸던 와인 한 병과 안주들이 얼마나 가소로운 것이었을지 생각이 미쳤다. 월급을 털어 무모하게 던졌던 나의 호의는, 이 거대한 재력의 성벽안의 안주인에게는 그저 어린아이의 장난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그녀가 말한 '편한 친구'라는 말의 이면에는, 어쩌면 내가 자신에게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을 만큼 보잘것없는 존재라는 전제가 깔려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녀의 웃음소리와 말투는 여전히 친구를 대하듯 다정했지만, 실내화를 뚫는 대리석의 냉기는 내가 그녀와 다른 세상에 살고 있다는걸 일깨워주고 있었다.
집에 처음으로 초대받은 이후, 묘하게도 그녀와 가까워졌다는 친근감 이상의 감정은 차오르지 않았다.
매일 같이 몇시간씩 통화하며 일상을 보냈지만
감히 다른 마음을 품을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는 게 맞을 것이다.
그녀의 남편은 사업상 몇 주씩 집을 비우는 일이 잦았다. 그 거대한집에 홀로 남겨진 그녀는 적막함을 견디지 못할 때마다
나를 그곳으로 불러들였다. 우리는 그 넓은 식탁에 마주 앉아 그녀가 정성껏 차려준 음식을 먹었고, 나는 그녀의 그림 이야기나
무심한 남편에 대한 해묵은 서운함 같은 시시콜콜한 고백들을 묵묵히 들어주었다.
그녀의 나이는 그 당시 49살이었다.
19살이나 어린 나는 그녀에게 그저 아들과 비슷한 나이대의 앳된 아이일 뿐이었을 것이다.
집 안에서의 그녀는 화장기 없는 민낯에 헐렁한 면 티셔츠 하나를 걸친, 무방비할 정도로 편안한 모습이었다.
그러다 기분이 내키는 날이면 그녀는 거실 한복판에서 대학 시절 전공했다는 발레 동작을 가볍게 선보이곤 했다.
면 티셔츠의 얇은 옷감 위로 여과 없이 드러나는 그녀의 유려한 몸선, 그리고 중력을 거스르는 듯 우아한 몸짓을 바로 곁에서 지켜볼 때면
나는 그녀의 매끈한 라인에 홀린 듯 넋을 잃었다.
그 평온하고 아름다운 광경은 나를 설레게 했지만, 동시에 내면 깊숙한 곳에서 꿈틀거리는 불온한 충동을 일깨웠다.
만약 그녀가 내 또래의 여자였다면, 나는 어떻게든 그녀를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해 안간힘을 썼을 것이다.
하지만 내게 그녀는 너무나 높은 곳에 매달린, 손을 뻗는 것조차 불경스럽게 느껴지는 고귀한 존재였다.
그 압도적인 재력의 높이와 열아홉 살이라는 세월의 간극은 나를 오히려 무욕의 상태로 몰아넣었다.
그저 곁에서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그녀가 내어준 온기를 나누어 갖는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행복했다.
그것은 남녀 간의 치열한 밀당이라기보다는, 길 잃은 어린아이가 다정한 어른의 치맛자락을 붙들고 느끼는 안도감에 가까웠다.
하지만 고요한 수면 아래서 폭풍은 자라고 있었다. 내가 그녀를 한없이 높게 보며 스스로를 낮추고 있을 때에도,
가슴속 깊은 곳에서는 비겁하게 숨죽이고 있던 남성이 이따금 꿈틀거렸다.
그녀의 가느다란 손가락이 뭔가를 만지작거릴 때나, 나를 보며 웃으며 얘기할땐 , 그 손을 덥석 부여잡고 싶은 추잡하고도 강렬한 충동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그녀와의 관계가 친구라는 이름으로 끈끈해질수록,
나는 그녀의 화려한 배경 뒤에 숨겨진 비밀스러운 사생활과 깊은 고독을 알아갔다.
그러던 중 그녀가 혼자 고향에 내려가야 할 일이 생겼고, 나는 망설임 없이 휴무를 내고 그녀를 역까지 바래다주기로 했다.
차로 한 시간 거리를 달려 도착한 KTX 역. 예상보다 기차 시간까지는 무려 네 시간이나 남아 있었다.
그녀가 약속한 기차 시간에 맞춰 여유 있게 출발했다고는 하지만, 네 시간은 지나치게 넉넉한 공백이었다. 운전대를 잡고 있는 내내 어딘가 묘한 기분이 들었다. 지금에 와서 그때를 돌이켜보면, 어쩌면 그 여유는 우연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기차표를 예매하고 출발 시간을 정한 것은 그녀였다. 그녀는 이미 알고 있었던 게 아닐까.
늘 우리가 머물던 익숙한 동네에서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 그녀의 집 거실이나 으스름한 밤의 산책로만을 맴돌아야 했지만,
낯선 타지는 거리낌 없는 해방감을 선사했다.
우리는 역 근처의 낯선 거리로 발을 옮기고, 대낮의 햇살 아래서 누군가의 아내나 백화점 점원이 아닌, 그저 평범한 두 사람으로 걷는 것은 처음이었다.
낯선 거리를 걷는 내내 스치는 풍경에 호기심 어린 눈을 반짝이며 웃는 그녀의 모습은,
평소의 범접할 수 없던 기품에 아이 같은 천진함이 덧칠해진 듯 묘하게 귀여웠다.
그 우아하면서도 사랑스러운 모습에 마음의 빗장이 단숨에 풀려버린 나는, 수줍게 손을 뻗어 그녀의 손을 찾아 쥐었다.
심장이 터질 듯 요동쳤다.
열아홉 살이라는 나이 차이와 부잣집 사모님이라는 벽을타고 체온이 내 손끝을 타고 전율처럼 전해졌다.
거절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손가락 끝이 미세하게 떨렸으나, 그녀는 놀라 손을 빼는 대신 마치 기다렸다는 듯 내 손을 고쳐 쥐며 힘을 주어 꼭 잡아주었다.
그 순간, 나를 바라보던 그녀의 표정을 나는 아직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당황하거나 놀란 기색 없이, 마치 이 모든 일이 일어날 것을 이미 다 알고 있었다는 듯 잔잔하게 피어오르던 그 미소.
그것은 서툰 청년의 용기를 기특해하는 연상의 여유였을까, 아니면 자신의 외로움을 채워준 친구에게 체념 섞인 환대였을까.
알 수 없는 그 미소의 깊이 때문에 내 심장은 더욱 속절없이 일렁였다.
해가 지고 거리를 걷다 보니 밤공기가 부쩍 차가워졌다. 잡은 두손에서 느껴지는 떨림에 나는 급히 몸을 녹일 곳을 찾았다.
평범한 커피숍 같은 곳보다는, 맞잡은 손을 통해 이미 가까워진 마음을 조금 더 은밀하게 간직할 수 있는 장소를 찾고 싶었다.
그때 눈앞에 '멀티방'이라는 간판이 보였다. 한 번도 가본 적은 없었지만, 노래방과 PC방 기능을 갖춘 작은 방이라는 설명이
우리 둘만의 시간을 보내기에 최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 "저기 멀티방이라는 데 한번 가볼까?"
혜경 : "멀티방? 그게 뭔데?"
나 : "나도 몰라. ㅎ.ㅎ."
나의 멋쩍은 대답에 그녀는 못 이기는 척 따라나섰다. 좁은 복도를 지나 안내받은 작은 방 안으로 들어서자, 외부의 소음은 차단되고 오직 우리 두 사람의 숨소리만이 공간을 채웠다.
밖은 여전히 시린 겨울바람이 불고 있었지만, 멀티방 안의 노래방 화면의 은은한 빛은 폐쇄된 공간이 주는 묘한 아늑함을 더했다.
그녀에게서 풍기는 향기가 좁은 방 안에 퍼지기 시작했고, 이내 아늑한 기분에 취할것 같았다.
사실 그때의 내게 어떤 불온한 욕망 같은 것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그저 이 낯선 도시에서,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그녀를 조금 더 가까이서 바라보고 싶었을 뿐이었다.
우리는 노래방 화면을 보며 함께 노래를 불렀다. 지금은 잘 부르지 않는 지나간 시절의 발라드를 부르는 그녀를 보며,
나는 다시금 그녀와 나 사이의 19년이라는 세월을 체감했다.
시간이 30분쯤 남았을 무렵, 고개를 돌려 아까부터 맞잡고 있던 손과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 커다랗고 웅장한 집안에서는 범접할수 없는 동경의 여인이
조금은 허름하고 오래되보이는 멀티방안에서는 마치 연인과도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녀에게 천천히 다가가 살며시 입을 맞췄다.
그녀는 아무런 거부 없이 조용히 눈을 감으며 내 입맞춤을 받아주었다.
생전 처음 느껴보는 연상의 키스는 깊고도 아득했다. 그녀는 그저 내게 온몸을 기댄 채 나를 받아들이고 있었고,
나는 자연스럽게 그녀를 눕힌채 그 위에서 입술을 탐하고 있었다.
멀리서 동경하며 감히 넘볼 수 없는 존재라고만 생각했던 사모님이
내 밑에서 숨을 몰아쉬며 입을 맞추고 있다는 사실에, 내 본능은 무섭도록 요동쳤다.
이성의 끈이 풀린 손은 그녀의 바지를 내리고 팬티를 아래로 끌어내렸다.
두꺼운 바지는 완전히 벗겨지지 않아 허벅지 언저리에 걸렸지만, 반쯤 내려간 팬티 사이로 깊숙한 계곡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홀린 듯 바지와 팬티를 벗어 젖히고 그 젖어 있는 계곡 위로 나를 포개어 움직이기 시작했다.
미끈거려서 끈적하게 느껴질 정도로 흥건한 액 덕분에, 나는 이내 그 따뜻한 계곡 안으로 빨려 들어가듯 밀려 들어갔다.
바지에 걸려 제대로 삽입이 된 것인지조차 분간하기 힘든 혼란스러운 상태였지만,
내 입술을 머금고 있던 그녀의 입에서 갑자기 울부짖는 듯한 커다란 신음이 터져 나왔다.
"아, 아으! 응, 으..."
우는 듯하면서도 격렬하게 느끼는 듯한 그녀의 소리에, 나는 나도 모르게 떨리는 손으로 그녀의 입을 조심스럽게 막았다.
손바닥 너머로 전해지는 혜경의 젖은 흐느낌, 그리고 내 자지와 그녀의 허벅지 사이인지 혹은
그 깊숙한 구멍 안인지도 모를 곳에서 들려오는 찌걱거리는 마찰음만이 좁은 방 안을 농밀하게 채워갔다.
그토록 소망하고 원하던 그 우아한 사모님을 드디어 정복했다는 환희 섞인 삽입을 불과 몇 번 나누지도 못했는데,
무심하게도 멀티방의 이용 시간이 다 되었음을 알리는 날카로운 알람 소리가 정막을 깨고 울려 퍼졌다.
혜경 : "하..."
그녀는 짧은 호흡을 섞으며 작게 탄식했다.
나의 교합이 깨진 자리에는 민망함과 열기가 뒤섞인 공기만이 맴돌았다.
우리는 붉게 달아오른 얼굴을 제대로 마주하지 못한 채, 서둘러 흐트러진 옷무새를 여미고 거친 호흡을 수습하기 시작했다.
방을 나선 뒤에도 달궈진 열기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붉어진 얼굴로 아무 말도 하지 못했지만, 기차역으로 향하는 동안 서로의 손을 다시 찾아 꼭 맞잡았다.
개찰구 앞, 기차를 기다리는 시간 동안에도 우리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그저 앞을 응시하며 나란히 서 있을 뿐이었지만,
그녀와 나의 공간이 합쳐진 기분이 들었다.
이윽고 요란한 소리를 내며 기차가 역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그제야 멈춰 서서 나를 쳐다보았다. 여전히 붉은 기가 가시지 않은 얼굴이었지만, 그녀의 눈빛은 한결 깊고 부드러워져 있었다.
혜경 : "다녀올게... 오늘 태워줘서 고마워... "
그녀의 짧은 끝맺음이 내 귓가에 낮게 머물렀다. 그녀는 내 손을 한 번 꽉 쥐었다 놓으며 기차에 올랐다.
멀어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방금 전 그 좁은 공간에서 맞닿았던 그녀의 체온이 여전히 내 몸 구석구석을 헤집고 있음을 느꼈다.
그리고 아직 씻어내지 못한 채 바지 속에서 미끈거리는 그녀의 애액의 감촉이 느껴졌다. 그 끈적한 현실감이 손바닥의 온기와 섞여들며, 방금 전의 그 격정적인 순간이 꿈이 아닌 선명한 현실이었음을 다시금 일깨워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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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돌아봐도 이때가 가장 설레고 행복했던 순간이었습니다.
뭐랄까 나이라는 벽이 매번 느껴져서 이성으로의 발전을 스스로 차단했지만
그녀의 젤 은밀한곳에 이어지고 나니 그저 남자와 여자란걸 느꼈던것 같습니다.
생각보다 적는게 길어져서 내일로 넘기겠습니다.
지역이나 이름은 가명이며 나오는 대사들은 그 당시 느낌을 살려 적은 대사입니다.
| 이 썰의 시리즈 (총 2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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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호 | 날짜 | 제목 |
| 1 | 2026.04.30 | 현재글 첫사랑 이야기 - 멀티방 |
| 2 | 2026.04.30 | 첫사랑 이야기 - 사촌동생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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