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 제7회
"엄마……! 나, 실은 저 사람 아기를 가졌어. 임신했다고…… 그래도 안 돼?"
방 안의 공기가 한순간에 진공 상태가 된 듯 숨이 턱 막혔다.
서글프게 울부짖는 소희의 고백은 은하의 머리 위로 떨어진 잔인한 청천벽력과 같았다.
소희의 눈물 섞인 음성이 귓전을 때리는 순간, 은하는 눈앞이 새하얗게 멀어지며 발밑의 바닥이 통째로 꺼져 내리는 듯한 극심한 현기증을 느꼈다.
배 속의 아기라니. 이 일을 장차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20년 전, 철없던 시절의 불장난으로 정우의 아이를 가졌을 때 자신이 홀로 짊어져야 했던 그 끔찍했던 미혼모의 설움과 세상의 날카로운 손가락질을,
이제 겨우 열아홉인 제 딸이 똑같이 되물림하려 하고 있었다.
피눈물이 흐르는 가슴을 쥐어짜며 어떻게든 막아야 했다.
하지만 더 끔찍한 진실은 따로 있었다.
설령 미혼모의 굴레를 씌우지 않기 위해 결혼을 시키고 싶어도, 소희가 평생을 약속하겠다며 데려온 저 사내는 소희와 피를 나눈 친아비였다.
천륜을 거스른 피붙이 간의 혼인을 신이 살아있다면 어찌 허락할 수 있단 말인가.
아니, 그 도덕적이고 종교적인 금기보다 은하의 심장을 더 잔인하게 난도질하는 것은 여인으로서의 끔찍한 질투와 수치심이었다.
평생을 그리워했고, 자신이 최초로 온몸을 바쳐 깊은 밤을 섞었던 단 하나의 남자였다.
밤마다 가쁜 숨을 나누며 살결을 마주했던 그 정우가, 이제는 제 딸의 허리를 안고 밤새도록 농염하게 살을 섞으며 쾌락을 탐했다는 사실이 도저히 용납되지 않았다.
한 남자를 사이에 두고, 이십 년의 세월을 사이에 둔 채 친딸과 은밀하고도 추악한 경쟁이라도 벌이고 있는 것 같은 이 기괴한 형국.
은하는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듯한 비참함에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내 팔자가 어쩌다 이토록 기구하단 말인가…….'
모질고 지독한 운명의 신을 향해 저주라도 퍼붓고 싶었다.
은하의 가슴속은 이미 시꺼먼 숯검댕이가 되어 타들어 가고 있었다.
하지만 은하는 정우를 바라볼 수 없었다. 그의 깊은 눈빛을 마주하는 순간,
여인으로서의 옛 기억과 어머니로서의 분노가 엉망으로 뒤엉켜 미쳐버릴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엄마, 제발…… 나 아저씨 없으면 죽어. 우리 아기 지우기 싫어……."
소희가 은하의 무릎을 붙잡고 통곡했지만, 은하는 이를 악물고 핏기가 가신 얼굴로 정우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제 딸을 임신시켜 온 몸을 중독되게 만든 그 사내를 향해, 은하는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끓어오르는 잔인한 거절의 칼날을 뽑아 들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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