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후배(15)-동성주의
리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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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간전
야시장은 리조트에서 택시로 십오 분쯤 걸렸다.
입구부터 사람과 오토바이, 연기와 온갖 냄새가 한데 뒤엉켜 있었다. 숯불에 굽는 꼬치 냄새, 달큰한 과일 냄새, 이름 모를 향신료 냄새. 그 애는 반바지에 헐렁한 반팔, 머리만 웨이브를 살린 채 내 팔에 매달려 두리번거렸다. 업은 했지만 아주 후리한 스타일이었다. 그래도 지나가는 사람들 눈에는 그냥 키 큰 남자 옆에 붙어있는 작고 마른 여자애였다.
“오빠, 오빠. 저거 뭐야?”
“반쎄오. 부침개 같은 거.”
“그것도 외워 왔어?”
“…응.”
그 애가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으이그 하고 내 옆구리를 찔렀다.
우리는 당당히 손을 잡고 걸었다.
한국에선 한 번도 못 해 본 일이었다. 학교 앞에서도, 고향에서도, 우리 동네 편의점 앞에서도. 그런데 여기선 아무도 우리를 쳐다보지 않았다. 쳐다봐도 그냥 커플이려니 하는 눈길이었다. 그 애는 처음엔 내 손가락만 살짝 쥐더니, 몇 걸음 가서는 깍지를 꼈고, 나중엔 아예 팔짱을 끼고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오빠.”
“응.”
“나 지금 너무 좋아서 이상해.”
“뭐가 이상해.”
“그냥… 이러고 걸어도 되는 게.”
나는 대답 대신 그 애 입술에 키스해 주었다.
꼬치를 사서 나눠 먹고, 사탕수수 주스를 한 잔 사서 빨대 두 개를 꽂았다. 그 애가 먼저 빨다가 “오빠도” 하며 컵을 내밀었다. 빨대를 물자 그 애가 나를 빤히 보면서 작게 웃었다.
“뭐.”
“빨대 무는 거 보니까 생각나서.”
“뭐가.”
“…아까 내가 오빠 거 빨던 거.”
주스가 목에 걸렸다. 콜록거리는 나를 보며 그 애가 깔깔 웃었다.
옷 가게 골목에 들어서자 그 애 눈빛이 달라졌다.
아오자이가 줄줄이 걸려 있었다. 하늘하늘한 실크, 목까지 올라오는 깃, 허리 옆으로 길게 트인 자락. 그 애가 한 벌을 집어 들고 몸에 대 보더니 나를 돌아봤다.
“어때?”
“예뻐. 입어 봐.”
가게 아주머니가 반갑게 웃으며 탈의실 커튼을 걷어 줬다. 그 애가 들어갔다가, 한참 뒤에 커튼 틈으로 얼굴만 내밀었다.
“…오빠. 잠깐 와 봐.”
커튼 안으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그 애는 아오자이를 반쯤 입은 채 거울 앞에 서 있었다. 상체가 문제였다. 몸에 딱 붙게 재단된 옷이라 가슴 쪽이 텅 비어 납작하게 꺼져 있었고, 어깨선은 생각보다 각이 졌다. 그 애가 울상을 지었다.
“이거… 가슴 있는 사람 옷이야.”
“뽕 넣으면 되잖아.”
“여기서 어떻게 넣어. 그리고 봐, 어깨. 딱 붙으니까 남자 어깨 티 나.”
나는 그런 거 하나도 모르겠는데, 그 애 눈에는 다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었다. 그 애가 거울 속 자기를 한참 보다가 한숨을 쉬었다.
“포기. 이건 안 돼. 여기서 이거 입고 걸어 다니다 누가 이상하게 보면 나 바로 울 거야.”
“…아깝다.”
“나도... 힝... 다른 거 찾자.”
아주머니한테 미안하다고 손짓하고 나오는데, 그 애가 내 팔에 매달리며 귓속말을 했다.
“대신 오빠가 입은거 보고 싶은 거 골라 줘. 오빠 취향으로.”
그렇게 해서 고른 게 그 원피스였다.
몇 집 건너 가게에 걸려 있던, 아오자이 원단으로 만든 롱원피스. 붉은 바탕에 분홍 꽃이 수놓여 있었고, 허벅지 옆이랑 뒤까지 트임이 깊게 들어가 있었다. 걸을 때마다 다리가 거의 엉덩이까지 보일락말락할 정도로. 그 애가 탈의실에서 나오는 순간, 나는 말을 잃었다.
한 발짝 내딛자 트임 사이로 검정 스타킹에 감싸인 매끈한 허벅지가 끝까지 드러났다. 왁싱한 지 얼마 안 된 다리가 야시장 조명에 번들거렸다.
“…어때?”
“그대로 입고 가.”
“그 정도야?”
“그 정도야. 벗지 마.”
그 애가 볼을 붉히며 거울 앞에서 한 바퀴 돌았다. 스커트 자락이 펄럭이며 허벅지 안쪽까지 보였다. 아주머니가 엄지를 치켜들며 뭐라고 빠르게 말했다. 알아들은 건 “뷰티풀” 하나였다. 그 애가 수줍게 “깜언” 하고 고개를 숙였다. 내가 외워 와서 알려 준 감사합니다 라는 베트남 말이었다.
계산을 하고 나와서 걷는데, 시선이 느껴졌다.
지나가는 남자들이 그 애 다리를 한 번씩 흘깃거리며 지나갔다. 서양 배낭여행객 둘은 아예 대놓고 돌아봤다. 그 애는 눈치를 못 챈 건지 모른 척하는 건지, 내 팔에 매달려 다음 가게를 기웃거렸다. 나는 그 애 허리에 팔을 둘러 내 쪽으로 바짝 당겼다.
“왜 그래?”
“사람들이 너 다리 봐.”
그 애가 걸음을 멈추고 나를 올려다봤다. 그러다 입꼬리가 천천히 올라갔다.
“…질투해?”
“…….”
“오빠 질투하는구나? 남자들이 내 다리 본다고?”
“시끄러.”
그 애가 까치발을 들고 내 귀에 속삭였다.
“저 사람들은 내 다리만 보는거고, 이 다리 벌리는 건 오빠밖에 없는제 뭘 질투해.”
그 말에 반바지 안이 단번에 섰다. 그 애가 그걸 눈치채고 허리에 두른 내 손을 잡아 트임 사이로 슬쩍 밀어 넣었다. 스타킹에 감싸인 허벅지가 손바닥에 닿았다. 따뜻하고 매끈했다. 위로 조금만 올리면—
“여기서는 안 돼, 오빠.”
그 애가 내 손을 툭 쳐 내며 깔깔 웃고는 앞서 걸어갔다. 트임 사이로 다리가 보였다 사라졌다. 나는 그 뒷모습을 따라가면서, 저걸 오늘 밤 어떻게 벗길지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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