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 PB 그녀 2

그녀를 만난 지 며칠 후였어. 퇴근 무렵, 휴대폰이 진동하더니 ‘순영 PB’라는 이름이 떴지. 그 이름만 봐도 괜히 긴장되더라.
“고객님, 고객님 자산 운영 계획 자료 정리해서 메일로 드렸어요.”
짧은 문장이었는데, 그 안에는 그녀의 말투가 그대로 담겨 있었어.
정중하지만 다정한, 그녀 특유의 부드러운 리듬 말이야.
나는 얼른 메일을 열어봤지. 첨부된 엑셀 파일에는 펀드 이름, 수익률, 위험 등급이 빽빽하게 적혀 있었는데솔직히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더라.
글자는 눈에 들어오지 않고. 그녀의 얼굴만 자꾸 떠올랐어.
결국 나는 카톡을 열었어. 한참을 망설이다가 이렇게 썼지.
“자료 잘 받았습니다. 제가 금융 쪽은 잘 몰라서요. 시간 괜찮으실 때 따로 설명 좀 해주실 수 있을까요?”
보내고 나서 괜히 심장이 뛰었어.너무 직접적이었나 싶었지만, 이미 ‘1’이 사라졌지.
잠시 후 그녀에게서 답장이 왔어.
“네, 그럼 내일 점심쯤 어떠세요?”
그 한 줄이 그렇게 설레일 줄은 몰랐어.
단순한 업무 약속이라 생각하면서도 그녀가 나를 떠올리며 보낸 메시지라고 생각하니
그날 하루가 유난히 길게 느껴졌지.
그날 밤, 나는 침대에 누워 그녀의 카톡 프로필을 몇 번이고 들여다봤어.
회색 재킷을 입고 창가에 앉아 있는 옆모습, 햇살이 머리카락 사이로 스며드는 사진.
그저 업무로 연결된 사이일 뿐인데, 그녀는 이미 내 하루의 일부가 되어 있는 느낌이었어.
다음 날 점심, 증권사 근처의 카페에서 그녀를 다시 만났어. 그녀는 이미 와서 창가 쪽 자리에 앉아 있었지.햇살이 그녀의 흰 블라우스 위에 부드럽게 떨어지고 있었고,그녀는 내게 고개를 들어 미소를 지었어.
“오셨어요?”
그 한마디가 이상하게 따뜻하게 들렸어. 나는 자리에 앉으면서 괜히 긴장이 되더라.
그녀는 노트북을 열고 펀드 그래프를 보여주며 차근차근 설명을 시작했어.
하지만 나는 그 그래프보다 그녀의 손끝, 말투, 눈빛에 집중했지.
말을 이어가며 고개를 살짝 기울일 때마다 그녀의 향기가 가볍게 스쳤고, 그 순간마다 심장이 조금씩 빨라졌어.
“이 부분은 이해되세요?”
그녀가 물었을 때, 나는 잠시 말을 잊었어. 그녀의 눈이 내 눈을 바라보고 있었거든.
그 눈빛은 단순한 고객 응대의 표정이 아니었어.
잠시 머뭇거리다 내가 말했지.
“잘 모르겠네요. 근데, 순영 씨가 설명해주시니까 이상하게 듣고만 있어도 좋네요.”
내가 말해놓고도 많이 유치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녀가 피식 웃더라.
이 썰의 시리즈 (총 4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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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 날짜 | 제목 |
1 | 2025.10.12 | 증권사 PB 그녀 5 (3) |
2 | 2025.10.11 | 증권사 PB 그녀 4 (7) |
3 | 2025.10.11 | 증권사 PB 그녀 3 (6) |
4 | 2025.10.11 | 현재글 증권사 PB 그녀 2 (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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