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 PB 그녀 3

그녀와 점심을 함께한 지 며칠 뒤였어.
그날은 유난히 하루가 길게 느껴졌고, 퇴근 무렵엔 괜히 혼자 술 한잔이 생각났어.
그녀에게 전화를 걸까 말까, 몇 번이나 망설이다가 결국 카톡을 열었지.
“오늘 하루도 고생 많으셨죠? 혹시 퇴근하셨으면 잠깐 맥주 한잔 어때요?”
보내고 나서 한참 동안 휴대폰만 바라봤어. 사실 이렇게 사적인 문자를 보낼만큼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거든.
그러다 알림음이 울렸어.
“지금 막 퇴근했어요. 가볍게 한잔 괜찮아요.”
그 한 줄에 묘하게 숨이 멎었어.
나는 근처 조용한 이자카야를 떠올렸고, 자연스럽게 그곳의 위치를 보냈지.
작은 가게였지만, 칸막이가 있어 둘만의 공간처럼 느껴지는 곳이었거든.
그녀가 도착했을 때, 나는 이미 구석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있었어.
곤색 트렌치코트를 걸친 그녀가 문을 열고 들어왔고,순간 가게 안의 조명이 그녀 어깨 위로 떨어졌지.
회사에서 보던 단정한모습이었지만, 어딘가 모르게 느슨하고, 따뜻한 표정이었어.
“분위기 괜찮네요. 조용해서 좋아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웃었어.
나는 손짓으로 자리를 권했고,
그녀는 가볍게 코트를 벗어 옆에 두더라.
그 작은 동작 하나에도 묘하게 시선이 따라갔어.
우리는 당연한 듯이 소맥을 시켰고, 안주로는 간단히 사시미와 닭꼬치를 주문했어.
처음엔 주로 회사 이야기와 시장 얘기를 나눴지만,
시간이 지나자 그녀의 목소리가 조금 느려졌고 대화는 점점 개인적인 쪽으로 흘러가기 시작했지.
“사실 제 남편은 건설사에 다녀요.”
그녀가 그렇게 말했을 때, 나는 잠시 손에 들고 있던 잔을 내려놓았어.
그녀의 시선은 테이블 위의 맥주거품을 바라보고 있었고, 표정은 담담했지만 어딘가 멀리 떠 있는 듯했어.
“지방 현장에 상주하는 일이 많아요. 그래서 평일엔 혼자 있을 때가 많죠.
주말에 잠깐 올라오곤 하는데… 이젠 그런 생활이 익숙해졌어요.”
그녀는 그 말을 마친 뒤 잔을 들고 조용히 웃었어.
그 웃음이 가볍게 들렸지만, 그 속에는 오래 눌러둔 외로움 같은 게 스며 있었지.
“그래서 그런가 봐요. 저 술을 좀 좋아해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한 모금 들이켰고,
잔이 다시 테이블에 닿을 때 그 작은 소리조차 이상하게 크게 들렸어.
나는 그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어. 그녀의 말 사이로 흐르는 공기 속에
무언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거리감이 있었거든.
가까워지기엔 아직 조심스러운, 그렇지만 이미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한 그런 순간 말이야.
“사장님은요?” 그녀가 물었어. “일 말고는 뭐 하세요?”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지. “요즘은 그냥, 사람 생각을 좀 많이 해요.”
그녀는 짧게 웃으며 물었어. “그 ‘사람’에 제가 포함되나요?”
그 질문이 농담처럼 들렸지만, 그녀의 눈빛은 장난이 아니었어.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한 채 잔을 들고 그녀의 시선을 바라봤지.
그녀는 고개를 살짝 숙이며 잔을 들었어.
“그럼, 오늘은 그냥 서로의 하루에 건배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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