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 그녀 8

그 사건 이후, 나는 그녀에게 거의 연락을 하지 않았다.
가끔은 정말 필요한 일로만, 정말 ‘해야 할 말’이 있을 때만 문자를 보냈다.
“이번 송금 확인 부탁드립니다.”
“계좌 변경사항 전달드려요.”
그런 식의 문장들. 감정이 섞이지 않은, 철저히 사무적인 문장들만 오갔다.
그녀는 늘 빠르고 정확하게 답장을 보냈다.
‘확인했습니다.’ ‘처리 완료했습니다.’
딱 그 두 문장 안에서만 우리의 관계는 존재했다.
그 이상은 없었다.
사적인 만남을 제안한 적도 있었다.
“시간 괜찮으면 식사라도 하죠.”
그녀는 예의 바르게 거절했다.
“죄송해요. 일정이 좀 어려워서요.”
그 한 줄에, 모든 가능성이 닫혔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무렵부터 일이 잘 풀리기 시작했다.몇 년 동안 정체되어 있던 사업이 갑자기 기세를 탔다. 수주가 이어졌고, 입소문이 퍼지면서 새로운 거래처가 생겼다. 잠을 줄이고 일했지만 이상하게 피곤하지 않았다. 어쩌면 마음 한구석이 비어 있었기에, 그 공백을 일로 메우려 했는지도 몰랐다.
짧은 기간에 꽤 큰 돈이 들어왔다. 그때 문득 그녀가 떠올랐다. 이제는 감정이 아니라, ‘도움’이라는 이유로. 나는 회사 자금 일부와 은행에 맡겨둔 개인 계좌 자금을 모두 그녀의 지점으로 옮겼다.
그녀에게 문자를 보냈다. “이번에 법인 계좌도 귀 지점으로 이전했습니다. 관리는 맡기겠습니다.”
잠시 후, 답장이 왔다.
“감사합니다. 최선을 다해 관리하겠습니다.” 그 한 문장은 완벽했다. 딱 그만큼만, 아무 감정도 묻어나지 않았다.
그녀는 여전히 정중했고, 나는 여전히 미련이 남아 있었다.
그날 이후에도 그녀와의 대화는 늘 사무적인 이야기뿐이었다.
하지만 그 속에서 나는 이상하게 ‘그녀가 살아 있다는 느낌’을 얻었다. 비록 손 닿지 않는 거리였지만, 그녀가 여전히 어딘가에서 나를 기억하고 있다는 착각. 그 착각이, 내게는 충분했다.
때로는 사랑보다, 그냥 그 사람이 세상 어딘가에서 잘 지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버틸 수 있는 시기가 있다. 그때의 나는 바로 그 시기에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던 중 펜데믹이 터졌다.
모두에게 힘든 시기 였지만 나에겐 그녀와 가까워진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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