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 이야기 - 사촌동생
김끝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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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시간전
첫사랑이라고 해야되나..
가끔 혹은 어쩌다 한번씩 생각이납니다.
그리고 지금은 글을 쓰다보니 매일 생각나네요.
10년도 전의 일이라 대화는 그 당시의 느낌을 기준으로 창작으로 썼습니다.
자극적은 썰을 찾으셨다면 재미없을수도 있지만
50이 다된 아저씨의 첫사랑 느낌으로 읽어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준우와 나는 한 동네에서 자랐다.
같은 동네에 살며 초, 중, 고 시절의 대부분을 공유한 사이.
우리는 같은 해에 태어났지만, 2월생인 나와 12월생인 녀석은 어린 시절부터 나를 '형'이라 불렀지만, 같은 학년인 우린 친구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흐르는 피만 같았을 뿐, 우리는 단 한 번도 같은 궤도에 서 본 적이 없었다.
내가 교실 창가에 앉아 책 보는 것에 몰두하며 정적인 세계에 머물 때, 준우는 운동장 구석이나 교실 맨 뒤에서 동급생들 위에 군림했다.
우리는 취향도, 친구 무리도 겹치지 않았지만 '사촌'이라는 연결고리는 생각보다 힘이 셌다.
학교에서 왜소한 체형과 곱상한 외모 때문에 불량한 녀석들이 날 괴롭히려 할 때마다, 나는 준우에게 달려가 일렀다.
그러면 녀석은 늘 뜬금없이 나타나 내 앞을 막아섰다.
준우 : "뒤진다."
단 한마디였다. 새로운 학년에서 마주한 낯선 녀석들이나,
오락실에서 마주친 동급생들과의 분쟁도 내가 준우의 사촌 형이라는 사실 하나면 허무할 정도로 순식간에 정리되곤 했다.
내 등 뒤를 받치고 있는 준우라는 이름 석 자는, 학교의 그 어떤 규율이나 선생의 훈계보다 강력하고 즉각적인 질서였다.
분쟁이 일어날 때마다 내가 준우의 사촌형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팽팽하던 긴장감은 허무할 정도로 빠르게 가라앉곤 했다.
나는 녀석이 구축한 서늘한 공포의 그늘 아래서, 아주 손쉽게 안온함을 누리며 그 권력을 만끽했다.
그 호칭은 단순한 예우를 넘어, 서로의 결핍을 채워주기로 약속된 혈육의 각인이었다.
실제로도 녀석은 왜소하고 약한 나를 괴롭히는 학우들로부터 단 한 번도 물러섬 없이 나를 지켜준 유일한 혈육이었고,
준우가 다른 학교 학생들과 주먹질로 사고를 칠 때면, 나는 늘 선생과 녀석 사이를 파고들어
'약한 사촌 형을 지켜주는 의리 있는 사촌 동생'
이라는 프레임을 짜 넣으며 중재자 역할을 자처했다.
또래보다 언변이 좋았던 나는 녀석의 무모한 폭력에 그럴싸한 명분과 실리를 덧칠해주었다.
늘 책만 보는 범생이 같았던 내가 눈가에 그렁그렁하게 눈물을 매달고,
목소리를 떨며 "준우는 저를 지키려다 그랬을 뿐이에요"라고 말하면 상황은 유야무야 종결되었다.
순진함을 가장한 나의 위선적인 눈물과 변명은 녀석이 마주한 수많은 골칫거리들을 매끄럽게 덮어주었다.
학교에서뿐만 아니라, 준우의 행실에 분노한 작은어머니 앞에서도 내 눈물 섞인 변호는 늘 유효했다.
녀석은 나를 편하게 만들어주었고, 나는 눈물과 혀로 녀석의 자리를 지켰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이용하고 의지하며,
가장 원초적인 형태의 공생 관계를 맺어왔다. 그렇게 어린 시절 나는 위선과 위로, 사람의 마음이 어떤 것인가를 먼저 터득했다.
누군가의 영혼에 깊은 흔적을 남기는 건 거친 폭력이 아니라, 가장 취약한 순간에 파고드는 다정한 이해라는 것을.
책 속에서 배운 문장들은 현실의 위선이 되어 내 입술 끝에서 유려하게 흘러나왔고, 그것은 준우의 주먹보다 훨씬 더 확실하게 사람들을 내 뜻대로 움직이게 만들었다.
그렇게 나는 나의 말재간과 녀석의 폭력성이 만날 때 기묘한 시너지가 발생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준우가 거칠게 사냥감을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넣으면, 나는 그 뒤에서 점잖은 척 나타나 그들의 상처를 어루만졌다.
공포에 질린 이들에게 내미는 나의 다정한 위로는 치명적인 독이었다. 녀석이 육체를 짓밟는 동안
나는 그들의 영혼을 파고들었고, 결국 사냥감의 마음까지 완전히 무너뜨리는 마지막 조각은 늘 나의 몫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우리 사이에 놓였던 은수라는 여자아이가 있었다.
시골에선 보기 드물게 하얀 피부에, 동급생들 사이에서도 유독 눈에 띄게 예쁘장한 아이였다.
내가 교실 창가에서 책을 읽는 척하며 은수의 뒷모습을 힐끔거릴 때, 준우는 교실 맨 뒷자리에서 비뚤어진 눈빛으로 그녀를 탐닉했다.
준우를 잘 알고 있던 나는 무엇인가 일어날 거란 걸 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아마 그 긁히는 듯한 예감을 받고 난 뒤, 얼마 되지 않았을 거다.
마지막 수업이 끝나고 소란스러운 하교 길이었다. 은수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가방이 바닥으로 쏟아졌고,
준우는 기다렸다는 듯 그 틈을 파고들었다. 녀석이 바닥에 떨어진 생리대를 낚아채듯 꺼내 들고 반 아이들 앞에서 흔들어대며 낄낄거린 것이다.
당황한 은수가 얼굴이 벌개진 채 그것을 뺏으려 달려들었지만,
준우는 녀석 특유의 장난기 섞인 괴력으로 그녀를 거칠게 밀쳐냈다. 그 짧은 실랑이 끝에, 서늘한 공기를 가르는 날카로운 마찰음과 함께
은수의 셔츠 단추 몇 개가 바닥으로 후드득 떨어져 내렸다.
순식간에 정적이 감돌았다.
단추가 뜯겨 나간 셔츠 사이로 은수의 하얀 속옷과 수치심에 붉게 달아오른 살결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은수는 그대로 얼어붙어 굵은 눈물을 쏟아냈고, 준우조차 예상치 못한 파동에 멈칫하며 서 있었다.
그 찰나의 정적 속에서 나는 생소한 전율을 마주했다. 당혹감보다는 기묘한 긴장감에 온몸의 신경이 곤두섰다.
나는 충분히 달려가 녀석을 말릴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저 교실 문틈 사이로 드러난 은수의 그 뽀얀 속살과 하얀 브라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싱그러운 느낌으로 호감을 느끼고 있던 그녀였다. 그런 그녀의 지독한 수치와 가감 없이 드러난 속살을 지켜보는 것은, 내 안에 잠자던 알 수 없는 쾌감을 일깨웠다.
그것은 수치스러운 각성이자, 내가 가진 관음적 본능의 첫 발현이었다.
준우가 그 일로 일주일 정학을 먹은 뒤, 나는 숨을 죽이고 은수의 상태를 관찰했다.
며칠 동안 은수는 수치심이 온몸에 얼룩처럼 남은 듯 우울해 보였다.
누군가와 눈이 마주치는 것조차 두려워하며 고개를 숙이고 다니던 은수의 표정이 조금씩 정상으로 돌아올 즈음,
내 머릿속엔 순간 재밌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나는 조심스럽게 은수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가장 다정하고 안쓰러운 목소리로 그녀를 위로하며 준우의 이야기를 꺼냈다.
나 : "은수야, 준우가 사실 너를 정말 많이 좋아했어. 이번 일로 너무 죄책감을 느껴서, 다시는 너한테 말도 못걸것 같다고 밥도 안 먹고 앓아누워 있대."
내 입에서 준우의 이름이 나오는 순간, 은수의 표정에는 찰나의 공포가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자신을 좋아했다는 말에 은수의 눈빛이 미세하게 반짝였다. 방금까지 울 것 같던 표정은 사라지고,
어느덧 묘한 화색이 도는 게 내 눈에는 선명히 보였다.
그 순간, 내 머릿속에는 준우와 은수가 함께 있는 그림이 선명하게 그려졌다.
준우가 정학이 끝나고 복귀한 날, 교실에는 팽팽하고 서먹서먹한 기류가 감돌았다.
둘은 서로를 의식하면서도 아무런 말도 나누지 않았다.
하지만 그 침묵의 기류는 공포의 대상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 다른 존재로 의식하는 듯했다.
그것은 더 이상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에서 느껴지는 서늘한 분위기가 아니었다.
내가 심어둔 '나를 좋아해서 앓아누운 소년'이라는 그 말에 은수는
준우가 곁을 지날 때마다 움찔거리던 몸짓에는 미세한 연민이 섞여 있었다.
내가 심어둔 거짓말이 은수의 안에서 싹을 틔운 듯,
은수에게 준우는 이제 나를 괴롭힌 나쁜 아이가 아니라, 자신을 너무 좋아해서 사고를 치고 정학까지 먹은 불쌍한 아이를 보는듯한 느낌이었다.
준우가 곁을 지날 때마다 은수의 눈빛에는 묘한 연민과 동정심이 서려 있었다.
나는 내 자리에서 그 기괴하게 일그러져 가는 관계를 보며, 속에서 피어오르는 즐거움을 만끽했다..
내 손끝에서 시작된 사소한 거짓말이 한 아이의 공포를 연민으로 바꾸고, 끝내 그들을 하나로 묶어버리는 과정은 그 어떤 소설보다 흥미로웠다.
은수의 눈에 맺힌 그 기만적인 눈물과 준우의 어색한 몸짓이 맞물려 돌아가는 것을 지켜보며, 나는 내 안의 설계자적 본능이 충만하게 채워지는 것을 느꼈다.
학교가 끝난 후, 나는 은수에게 다가가 나지막이 속삭였다. 준우가 진심으로 사과하고 싶어 하니,
준우와 내가 자주 가던 식당에서 만나 잠시 이야기라도 들어달라고.
은수는 잠시 망설이는 듯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식당 안, 낡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은 두 사람의 공기는 여전히 무겁고 서먹했다.
준우는 내가 일러준 대로 고개를 푹 숙인 채 식탁보 끝만 만지작거렸고, 은수는 그런 준우를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나 : "준우야, 은수한테 할 말 있다고 했잖아. 어서 해봐."
내 재촉에 준우가 마지못해 입을 뗐다. 내가 말해준, 투박하지만 간절함이 묻어나는 대본이 준우의 입을 통해 흘러나왔다.
준우 : "은수야... 미안해. 내 마음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그랬어.집에 있는 동안 네 생각만 나서 밥도 못 먹고.. 이제 너랑 다신 얘기도 못할거 같아서....."
준우의 목소리가 떨리더니 이내 눈물 한 방울이 툭 떨어졌다.
짐승 같던 녀석이 내보이는 뜻밖의 유약함에 은수의 표정은 흔들렸다. 자신을 향한 그 지독한 괴롭힘이 사실은 지독한 짝사랑이었다는 착각.
은수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자신을 향한 그 지독한 괴롭힘이 사실은 서툰 사랑의 고백이었다는 착각은, 은수의 가슴 속 공포를 단번에 무너뜨렸다.
은수는 결국 참아왔던 눈물을 터뜨리며 흐느꼈다.
그 광경을 가만히 응시하며, 나는 속으로 어이없는 감탄을 내뱉었다.
여자란 참 단순하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자신에게 씻을 수 없는 수치심을 안겨준 짐승 같은 놈인데
그저 자기를 좋아해서 그랬다는 그 서툰 변명 하나에 저토록 쉽게 마음이 녹아내리는 걸까.
방금 전까지 공포에 질려 떨던 눈동자는 순식간에 연민으로 촉촉해졌다.
사랑받고 있다는 확인, 그 달콤한 착각 하나면 여자들은 기꺼이 남자를 받아들이는 존재인 것 같다.
제 몸을 할퀸 짐승의 발톱을 사랑의 몸짓이라 믿으며 기어이 그 품으로 파고드는 모습이 경이로울 정도로 허무했다.
이제 그림의 마지막 점을 찍으면 완성될것이다.
나는 준우에게 짧게 윙크를 보내며 마지막 신호를 주었다.
준우는 기다렸다는 듯 은수의 옆자리로 바짝 붙어 앉았다. 그러고는 투박한 손가락으로 은수의 뺨에 흐르는 눈물을 조심스레 닦아주더니,
그대로 그녀를 자기 품 안으로 깊숙이 끌어당겼다. 은수는 아무런 저항 없이 준우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흐느끼며 매달렸다.
그 무너진 방어막을 지켜보며 나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의자가 뒤로 밀리는 작은 소리에도 은수는 반응하지 않았다. 오직 준우의 품 안에서 얻은
자신을 사랑하는 짐승을 안고 흐느낄뿐이었다.
준우와 내 눈이 마주쳤다. 녀석은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배시시 웃으며 눈을 찡긋 거렸다.
그것은 어린아이처럼 해맑으면서도 이중적인 웃음이었다.
마치 '역시 형이 얘기한 대로네'라고 속으로 중얼거리는 듯한, 그 만족스러운 표정.
나 역시 녀석의 그 웃음을 마주하며 준우를 보며 말없이 웃었다.
식당을 나서기 전, 준우의 품에 안겨 흐느끼는 은수의 뒷모습을 눈에 한 번 더 담았다.
우연히 벌어진 단추 사건이라는 시시한 에피소드에, 내가 '사랑'이라는 색깔을 덧칠하자마자 비극은 순식간에 로맨스로 둔갑했다.
내 손끝에서 한 사람의 인생이 재정의되는 그 찰나의 순간.
겉으론 침묵을 지켰으나 내 가슴속에선 고요한 성취감을 넘어선 쾌감이 뜨겁게 들끓었다.
타인의 감정을 내 입맛대로 주무르고 그 영혼을 오염시키는 현실은, 그 어떤 소설보다도 중독적이고 자극적이었다.
식당 문을 열고 나오며 나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등 뒤에 남겨진 은수는 자신이 사랑받고 있다는 착각 속에서 행복해하겠지만,
나는 그녀가 준우라는 짐승의 우리 속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갔음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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