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회사 청일점 썰 2
운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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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시간전
한 달 간의 교육기간이 시작됐다.
교육이라고 해서 거창한 건 없었다.
첫 2주는 보험 상품을 팔기 위한 필수 관문인 보험 설계사 시험공부였다.
운전면허보다는 조금 수준있지만 대개 1~2주 정도 공부 하면 누구나 쉽게 합격하는 수준이었다.
그 이후에는 선배 설계사들의 눈물겨운 성공담을 듣거나, 자기계발서에서 나올 법한 말들 위주의 열정 교육이었다.
보험은 워낙 영업직이라 그런지, 어딘가 다단계 세뇌 교육같은 느낌도 들었다.
어쨌든 교육이 시작되니 나 말고도 면접에 합격한 동기들이 다섯 명 생겼다.
보험 중에서도 특히 텔레마케팅은 목소리가 좋고 친화력이 좋은 만큼 여자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런 여초 집단이라 그런지 신입사원 여섯 명 중 청일점은 오직 나 하나뿐이었다.
나중에 건너 들은 얘기지만, 내가 뽑힌 이유가 사무실 무거운 정수기 물통이나 갈게 하려고 일부러 뽑았다는 우스개소리까지 돌았다.
또 보험사 특성상 이쪽 판은 이직이 워낙 잦아서 그런지, 이미 다른 데서 굴러먹다 온 경력직만 두 명이었고 진짜 순수한 찐 신입은 네 명이었다.
그중 유일하게 나보다 어린, 스물한 살의 정예진이라는 애가 눈에 띄었다.
다른 누나들은 이름만 누나지 50대 주부 사원부터 최소 서른 후반까지 있어서 다가가기조차 어렵고 깍듯하게 대해야만 했다.
하지만 예진과는 초반에만 아주 잠깐 어색했지 금방 친해졌다.
"오빠, 담배 피러 가는 거예요?"
"어."
"같이 가요."
쉬는 시간마다 같이 담배를 피우다 보니까 친해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그때가 2월 말이라 날이 아직 꽤 추웠는데, 늘 하얀색 양털 후리스를 뒤집어쓰고 돌아다녔다.
근데 또 희한하겐 아래는 치마와 레깅스를 입었다.
그 모습이 묘하게 복슬복슬한 양 같달까.
키는 163cm 정도 되어 보였는데, 바짝 마른 스타일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허벅지도 통통하고 볼륨감이 있는 체형이었다.
치익-
나는 예진이가 담배를 물면 자연스럽게 라이터 불을 붙여주곤 했다.
"고마워요."
별거 아니라는 듯 대꾸도 안 하고 내 담배에 불을 붙이려는데, 예진이가 대뜸 물어왔다.
"근데 오빠는 원래 여자들한테 이렇게 불 잘 붙여줘요?"
"불? 갑자기 웬 불?"
"아니, 나 처음 봤어요. 불 붙여주는 남자는."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전 여자친구들은 담배를 안 피웠고, 군대에서 후임들 불 붙여주던 습관이 몸에 밴 거였다.
특별한 의미 없이 그냥 무심코 켜준 거였다.
"그런가. 그러고 보니 내 주변에 담배 피우는 여자가 없었던 것 같네."
"뭐야, 그럼 나한테 처음 붙여주는 거예요? 감동이네."
"별 게 다 감동이네."
나도 웃으며 불을 당겼다.
"맞다, 오빠 그 담배 뭐예요?"
그때 마침 새로 나온 켄트 캡슐 담배가 있었다.
필터 안의 캡슐을 손가락으로 으깨 터뜨리면 멘솔 향으로 변하는, 당시로서는 나름 최첨단 테크놀로지(?)가 집약된 담배였다.
"이 필터 안에 캡슐이 있는데, 터뜨리면 멘솔로 바뀌는 거야."
"진짜? 그 캡슐은 어떻게 터뜨리는데요?"
"그냥 이빨로 깨물면 돼."
"맛은 괜찮아요?"
"몰라, 나도 신기해서 사봤는데 그냥 필만 해. 하나 줄까?"
"아뇨, 그냥 한 모금만 빨아볼게요."
"내 거? 그래."
아무렇지 않은 척 무심하게 건넸지만, 내가 물었던 담배를 물려주는 게 괜히 느낌이 묘했다.
스읍- 하아-
예진이가 가볍게 연기를 뿜어내며 말했다.
"그냥 일반 담배네."
딱—
예진은 이내 필터를 잘근 씹어 캡슐을 터뜨렸다.
그리고 한 모금을 더 깊게 빨아들이고는 나에게 담배를 불쑥 내밀었다.
"멘솔맛은 잘 안느껴지는데.... 자, 여기요."
나는 담배를 받아 들고 말없이 멍하게 필터 끝을 내려다보았다.
필터엔 붉은색 립이 묻어져있었다.
"왜요? 내 입술 묻어서 더러워요?"
나는 괜히 헛기침을 삼키며, 아무렇지 않은 듯 예진이 방금 물었던 그 자리에 그대로 입술을 갖다 대며 말했다.
"아니야, 그런 거. 아까까진 그냥 피우더니 캡슐을 벌써 터뜨릴 줄은 몰랐네."
"아, 미안요. 정 찝찝하면 내 거 새로 하나 줄까요?"
"아냐, 장난이야."
그렇게 더 친해진 우리였다.
우연히도 집 방향까지 같아서, 교육이 끝나는 시간이면 늘 나란히 버스에 올랐다.
그녀가 내리는 곳보다 내 집이 세네 정거장 정도 더 빨랐다.
어느덧 시험이 며칠 남지 않은 날이었다.
오후 네 시쯤, 교육이 끝나고 버스 맨 뒷자리에 나란히 앉아 평소처럼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어느새 서로 말을 놓은 지 오래였고, 버스가 덜컹거릴 때마다 무릎이 툭툭 부딪쳤다.
그녀가 입고 있던 검은색 레깅스 재질의 바지가 내 바지에 스치는 것도, 옆에서 풍기는 여자 특유의 은은한 분내가 코끝을 스치는 것도 싫지 않았다.
"오빠, 그래서 지금 진짜 여자친구는 없다고?"
"응."
"여소 해줄까?"
"아니, 괜찮아. 생각 없어."
"거짓말."
"진짜야. 내가 뭐하러 너한테 거짓말을 해. 너는? 너야말로 남소 받고 싶냐?"
"나? 난 남자친구 있는데?"
"...어? 진짜?"
나도 모르게 당황했던 것 같다.
물론 정식으로 썸을 타는 건 아니었지만, 점심도 매일 같이 먹고 담배도 자주펴서 이미 동기들에서는 둘이 만나는 거 아니냐는 말까지 돌던 때였다.
나 혼자 김칫국을 거하게 마시고 있었다는 생각에 머릿속이 멍해졌다.
"내가 말 안 했었나? 나 남자친구랑 같이 살아."
"아... 그래?"
동거까지 하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
대충 이야기를 들어보니 나이도 20대 후반으로 제법 많았고, 예전에 카페 알바를 할 때 손님으로 와서 번호를 주고받다 자연스럽게 사귀게 되었다고 했다.
겉으로는 티를 안 내려고 애썼지만, 어쩐지 기분이 썩 좋진 않았다.
"그래서 같이 산 지는 반년 정도?"
"아, 그래."
지금 생각해보니 나도 모르게 대답이 툭툭 끊기며 건성건성 단답으로 일관했던 것 같다.
내 굳은 표정을 읽었는지 예진이는 슬그머니 남친 이야기를 멈췄다.
어색한 정적이 한 두정거장 이어졌을까.
먼저 예진이 입을 열었다.
"아 맞다, 오빠. 근데 다음 주 시험 공부는 좀 잘 돼가?"
"그냥 뭐, 대충 그렇지."
"저기... 혹시 오늘 나랑 같이 따로 카페 가서 공부 좀 더 할래?"
"지금까지 회사에서 빡세게 하고 왔잖아."
이미 수업도 다 듣고 문제 풀이까지 끝내고 나온 참이었다.
솔직히 그 보험 설계사 시험이라는 게 그렇게까지 골 싸매고 빡세게 팠어야 할 난이도는 아니기도 했다.
"응. 그럼 우리 집에서 할래?"
"남자친구 분도 계실꺼 아니야."
"출근했지. 밤늦게 와."
"그래도 남의 집에 가는 건 좀 그렇지."
"그럼 우리 집 앞 까페로 가자."
"그것도 좀..."
"아, 왜! 시험 한 번에 붙을 자신 있어서 그래?"
"아니 그건 아닌데."
"그럼 그냥 하자고!"
예진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졌다.
버스 앞자리에 앉아 있던 승객이 힐끗 뒤를 돌아볼 정도로 꽤 큰 소리였다.
당황한 내가 손을 내저으며 소리를 낮췄다.
"쉿, 목소리 좀 낮춰. 알았으니까 조용히 해."
"오케이 알겠어. 그럼 오빠네 집 근처 카페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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