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마차_1] 생쥐와 말 (1)

"흐윽... 젠장.. 이게 뭐야.. 젠장!"
쓸모 있는 건 없고 쓸모 없는 것만 잔뜩 늘어진 내 바탕화면과 내 책상은 꼭 내 인생 같다. 어쩜 이렇게 내 인생 같은지... 그래서 눈물이 쏟아진다. 어쩜 이렇게 매번 버림받은 삶을 살게 되는지... 아직도 부장님 목소리가 귀에서 맴도는 것 같다.
[ 마주임은 바빠~ 일단 우리끼리 가자고. 마대리는 그거 정리되면 와. 또 연봉 조정되고 싶지 않으면.]
"빌어먹을 새끼. 매번, 매번! 내 아이디어는 다 빼가면서, 개새끼."
"맞아요."
"그러니까요! 훌쩍.. 흐억!"
베시시 웃는 우리회사의 경리. 김사원.
"마주임님도 잘 할 수 있을 거예요."
그녀가 그날 저녁 나에게 건네준 손수건을 나는 덥석 받아서 주섬주섬 얼굴을 닦았다. 그리고 무심코 코를 풀었는데..... 하아... 그러면 안됬지......
"으음...."
어색하게 손수건을 돌려받으려던 그녀는 스윽 하고 뒤로 오른손을 빼며 어색한 웃음을 지어주었다.
"...... 죄송해요.. 제가 빨아서 드릴게요...."
"네"
그녀의 밝은 대답에 작은 미키마우스가 이리저리 그려진 아기자기한 손수건은 내 쓸데없는 물건만 가득한 책상 위에 살포시 하나 더 올려졌다.
"그런데... 왜.. 이시간에 사복을 입고 출근하셨...어요?"
"전 안 갔는데요?"
"아 안가셨구나.... 네?"
"전 처음부터 저어기 구석 자리에 계속 있었는데요?"
"다 회식.. 갔는데..."
"아무도 저는 안부르더라구요."
"아니... 김미소사원님은 왜.."
"몰라요 저도. 마재훈 주임님이 왜 이렇게 된지 모르는 것처럼요."
김미소 사원은 털썩 하고 바로 오른쪽의 빈 의자에 앉았다가 덜컥 하고는 왼쪽 아래의 고정쇠를 풀고 뒤로 몸을 쭈욱 을려 몸을 젖혔다.
"처음부터.. .다 들으신건가요?"
"박부장님 개새끼 부터요?"
"......."
굳이 대답할 이유가 없었다. 그게 모두가 빠져나간 후 내 첫 마디였으니까.
"미안해요, 제가 좀 존재감이 없죠?"
김미소 사원이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돌려서 나를 쳐다보았고, 김미소 사원을 쳐다보던 내 눈이 또르르 굴러서 책상위에서 꿈지럭 거리는 내 손가락으로 돌아왔다.
"어.. 음.. 네...."
'아니 이렇게 이쁜데 왜 존재감이 없지?'
사실 김미소라는 사원이 있다는 것도 겨우 한달 전에 알았다. 점심을 먹다가 사복을 입은 여직원이 보여서 궁금해서 고개를 갸웃 거리자, 회계담당 이라고 부장님이 소개해 주는걸 입사한지 1년이 지나서야 소개를 받은 거다. 그것도 심지어 겨우 파티션 2칸 너머로 매일 출근하는 사원을 말이다.
"사실 저는 언니들이 조용히 있으라고 해서 그런 것도 있고... 제가 나이가 어려서 그런 것도 있고... 좀 외롭거든요. 그런데 마주임님도 매번 남아서 혼자 업무 하거나 투덜거리다가 퇴근하시더라고요... 저 아직 퇴근 안했는데 불까지 다 끄고... 문도 잠그고..... 처음에는 그러려니 했는데... 오늘은 뭔가... 네..."
"........... 하아..... 미안해요."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아니 그럼 내가 왕따당한지가 3개월이 넘어가는데 무려 3개월간 매일 같이 사람 있는 사무실 불을 다 끄고 들어갔었단 말인가...? 아니 잠짠, 퇴근전에 꼭 모니터는 다 확인했는데? 흠칫 해서 김사원을 쳐다보자 김사원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뭔가, 들키면 안될 것 같아서 저도 책상 밑에 숨었어요."
"............."
아니 그걸 왜 그렇게 당당하게 말해요....
"그래서 말인데... 저희 술 한잔 안 할래요?"
"술이요?"
"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일이고 뭐고 술이나 진탕 먹어요!"
"하아.... 안되는데..."
"마주임님 어차피 이거 다 해도 내일 또 깨질거잖아요."
"아니 어떻게 그렇게 말해요!"
울컥해서 소리치는 내 모습에 잠시간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곧 깔깔거리면서 배꼽잡고 웃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도리어 주눅들어서 다시 쭈구려서 앉듯이 다리를 바짝 당겼다.
"하아... 웃겨.... 그럼 내기할래요? 오늘 일 다해놓고 들어가고 내일 마주임님이 안 혼나면 제가 소원하나 들어줄게요."
"소원... 이요?"
"네. 뭐든지요."
"헉, 여자가 그런 말 함부로 하는거 아니예요!"
"마주임님한테는 괜찮아요~"
그렇게 말하며 눕듯이 기댄 의자에서 촌스러운 파란색 회사 사복인 베스트의 단추를 풀자 김사원의 몸매가 그대로 드러났다. 심지어 팔을 위로 들어서 기지개를 켜는 통에 유독 가는 허리와 흰색이 아닌 다른 색의 속옷을 입었는지 블라우스 안쪽에 비치는 속옷에 순간 멍 하니 거기를 쳐다보던 나는 흠칙 하고는 내 손으로 다시 시선을 급히 옮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은색의 무릎위까지 오는 H드레스 아래로 하얀 속살의 다리는 흘낏흘낏 쳐다보게 되었다.
'나라서 괜찮다니.. 나라서 괜찮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아아.. 보통 이 정도 말하면 술 마시러 가자고 하던데, 말 안 해주시네 ~ 그럼 저 먼저 퇴근할게요. "
"네, 먼저 들어가세요."
김사원은 튕기듯이 의자에서 일어나서는 곧 구석지 자리로 가서 주섬주섬 베스트를 벗고 의자에 걸려있던 긴 코트를 걸치더니 작은 검은색 가방을 툭 학 어깨에 걸치고는 오른손을 살짝 흔들며 아까 보여준 그 미소를 보내고는 자연스럽게 나를 지나서 퇴근했다. 정말 걸음 소리도 안 들리게 그렇게 삑- 하는 작은 퇴근 음만을 남기고 사라진 그녀는 꼭 무슨 유령에 홀린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했고 그렇게 나는 그날도 야근을 하고 들어갔다.
다음날 그녀는 정말 눈에 띄는 모습으로 출근했다. 그녀를 본 직원들 모두가 지각한 그녀의 화려한 모습에 감탄하며 한마디씩 했다. 심지어 최부장도 그런 그녀를 보며 한마디를 건넸다.
[김사원, 오늘 데이트 있나봐? 보기 좋네~]
어색한 미소와 함께 후다닥 하고 구석자리로 들어가서 코트를 벗었고, 파티션때문에 하체부분은 안보였지만 상체 부분은 시스루의 검은 셔츠와 안에 입은 검은 속옷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코트를 의자에 걸며 은근히 비쳐보이는 잘록한 허리라인은 회사 남자직원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아니 충분하다 못해 과했다. 저 뒤에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 경영팀 과장 한명이 미소씨 오늘 힘 많이 줬는데~ 라며 웃는 소리가 들렸고 곧 여기저기서 숨겨왔던 감탄사를 대놓고 터뜨리기 시작했다. 부끄러운지 금새 고개를 파티션 밑으로 뭍고 사라져 버린 김미소 사원은 그렇게 다시 모두에게서 조용히 잊혀졌다. 그리고 나는 여지없이 깨졌다.
[ ..... 이게.. 보고서가 맞아? 보고서에 너는 할것 같습니다. 라는 말을 쓰냐? 이게 뭐 니 에세이냐? 마대리...... 생각이 없는 거야.. 아님 그냥 일을 못하는거야? 아니지.. 이정도면 그냥 일을 하기가 싫은거 아냐? 다시 써와. 처음부터 다 다시 싹 다 다시 써!]
...... 그리고 난 여지없이 버림받았다. 팀원들 모두가 그렇게 나를 외면하고 퇴근했다. 그리고 나도 처음으로 그들의 요구를 모두 무시한 채 회사를 나왔다.
"하아... 이래도 되나.."
"어휴~ 맨날 그렇게 당하고 계속 걱정이예요?"
검은 시스루 블라우스에 긴 아이보리색 코트를 입었지만, 정면에서 보면 그런 것 보다 더 눈에 들어오는 건 검은 테니스 스커트에 블라우스에 비치는 속옷이었다. 물론, 오늘 따라 길게 빼는 눈 화장에 유독 여우 같은 모습이 보이는 게 어제와 달리 유독 섹시해 보였다. 왜,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그런 눈 웃음 지으며 내 팔에 안기는 미녀 말이다.
"어디로 갈까요?"
언제 한번 주변 사람들 따라다녀 봤어야 알 텐데, 이건 뭐 알 수가 없으니. 슬그머니 김사원의 뒤로 내가 붙자 김사원은 자연스럽게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슬그머니 배를 내밀며 뭔가 대단한걸 애기할것 마냥 턱을 들어올리는게 섹시한 몸매와 옷태에 맞지 않게 귀여웠다. 심지어 허리에 손이라니!! 허리에 손을 얹는 여자를 실제로 보다니...
"제가 좋은데 알아요 좋은데!, 포장마차인데, 거기서 간단하게 오뎅에다가 소주한잔 해요!"
"아.. 알겠어요!! 미소씨.. 너무 ... "
"음? 헤헤. 얼른가요~"
자랑하듯 말하고 나서 내가 민망해 하자 자신의 차림을 한번 보고는 새빨간 얼굴로 후다닥 내 왼쪽팔에 팔짱을 낀 그녀의 행동에 내 반팔 셔츠 아래의 만 팔에서 살짝 까끌거리는 시스루의 느낌과 함께 물컹하고 들어가는 그녀의 가슴이 느껴졌다. 분명히 그녀도 느꼈을 텐데, 오히려 이런건 부끄러움이 없는 덧이 자연스럽게 그렇게 연인 처럼 우리는 퇴근시간의 회사 앞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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