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릴때 회고록4

그때가 아마 겨울이고 그날이 엄청 추웠던날로 기억하는데
아버지가 뇌출혈로 쓰러지셨다는 말을 듣고 나는 바로 병원으로 달려갔다
그때가 아마 저녁 10시쯤인가 정확히 기억은 안나는데 아무튼 찾아가니까
중환자실에 계시고 면회가 안된다고 내일 오라고 하더라
큰아버지한테 상황을 설명 들으니 아버지는 아침에 현장에서 일을 하시다
점심에 밥먹으려고 나가려 하는데 갑자기 얼굴 왼쪽에 차가움이 느껴지셨다더라
그러고는 말이 잘 안나오고 술취한 사람처럼 바뀌는 와중에
주변사람들한테 말해서 병원으로 이송됫다고 했다.
다행히 목숨에는 지장이 없다고 하였고, 다만 왼쪽다리와 왼쪽팔이 마비증상이 있다고 하였지만
재활로 괜찮아 질 수 있을거라고 하셨다.
그렇게 놀란맘을 추스리고 다음날 형과 아버지 병문안을 갔다
형은 눈물을 흘리며 아버지를 마주했고, 나는 이상하게 눈물이 나지 않았다.
감정에 동요가 없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
아버지는 3개월간 입원을 하셔야 한다고 하셨고, 나는 병원비를 벌기위해
학교를 중퇴하고 일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검정고시를 알아보려 했는데 학교를 그만둔 시점으로 부터 1년뒤 응시가 가능하다 해서
작년도 기출문제를 토대로 시험을 봣는데 생각보다 난이도가 낮아서 일에만 집중 할 수 있던거 같다.
안해본 일이 없었다. 그러다 아버지 장애등급과 한부모 가정이 인정되어서 기초생활 수급자가 되어
병원비가 감당할 정도가 되었고, 재활치료까지 치료비에 대한 부담이 줄어들었다.
그즈음에 어머니에게 연락이 왔다. 잘지내냐고 알고보니 어머니는 어리석게도
집에서 나가실 때 여관방에 계시다가 우리집 근처로 집을 얻어서 계속 지내셨다고 하셨다.
나는 어머니가 우리라는 굴례에서 벗어나길 원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미안하다며 연신 내게 말씀하셨고, 나는 괜찮다고 말씀드렸다.
나는 그간에 있던 일들을 어머니께 말씀드렸고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를 딱하게 여기셨고,
근처에서 간간히 왕래를 하며 살고 있었다.
다음해 형은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우리가족은 형의 졸업식에서
거의 10년만에 외식을 하게되었다.
그때 동네에서 비싼 고깃집을 데려갔는데 1인분에 4만원 정도 하던 고깃집 이었다.
아버지랑 어머니는 아직도 가난했다. 메뉴중에 가장싼 돌솥밥 정식이 있더라
형과 나는 누구랄것도 없이 돌솥밥 정식을 먹고 싶다고 했고 아버지랑 어머니는 비싼거를 먹으라고 하셨지만
우리는 돌솥밥을 먹었고, 나는 그 돌솥밥 정식이 너무 맛있었다.
나는 그해 검정고시를 합격했고, 어머니가 혼자있는게 걱정되 어머니 집으로 들어갔다.
형은 아버지와 같이 살았고 대학교를 다니며 공무원 시험도 준비했다.
나는 돈을벌어 형의 학비와 아버지 어머니 생활비에 보탯고 그렇게 2년동안 일만했다. 내게는 공백기다
죽도록 일한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20살이 되던해 아버지는 어느정도 재기에 성공하셨고, 왼쪽은 아직 불편 하셨다.
하지만 어느정도 경제적 여유는 아니더라도 끼니를 굶지않을 정도의 생활이 가능해졌고,
나는 단돈 100만원을 들고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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