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년간 지속된 두통이 한순간에 끝난 내 이야기 (스압)

실생활에선 모두에게 존댓말을 쓰니, 여기선 반말로 글을 적겠습니다. 모두 코로나 바이러스 잘 이겨내시길 바랍니다.
필자는 00년생, 태어나면서부터 지금까지 서울을 떠나살아본적이 없는 자랑스러운 '대한아'이며, 위로 큰형(장남, 올해 29세)과 쌍둥이 누나(올해 27세)가 있는 4남매중 막내다. 울 부모님이 금슬이 많이 좋으시다고 해야하나.
지금도 아이씨~(아저씨를 뜻하는 사투리), ○○아~(울아빠가 엄니 부르실때 누구엄마 여보 이런 호칭안쓰시고 이름으로 부르신다) 이렇게 서로를 애교반섞인 목소리로 부르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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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모솔인데 솔직히 부럽다.
솔로천국 커플지옥. 영원해라. 울가족빼고
울 패밀리 멤버님들과의 에피소드까지 하나하나 설명하려면 굉장히 얘기가 길어지니 다음에 하도록 하고, 여기선 자기소개 비슷한 형식으로 글을 쓰도록 하겠다.
각설하고, 나는 유독 유치원다닐때부터 두통이 많이 심했다. 얼마나 심했었냐면 앉았다 일어날때 빈혈기 찾아오는, 그 특유의 머리가 멍해지고
관자놀이를 압박해오는 '그 통증'이 자다가 깰때나, 걷다가 뛸때나, 화장실에서 용변보려고 힘쓸때나.. 심하면
물을 삼키거나 음식을 씹을 때도 발생했다.
그냥 아무 이유도 없이 갑자기 찾아올때도 부지기수였다.
난 어릴때 기억이 굉장히 적은 편인데, 언제아팠고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는 또렷히 기억한다. 초등 1학년일때 아파트 계단에서 친구들이랑
공기놀이하다가 (정확하게는 내가 한라봉 감귤!을 외치면서 공깃돌 3개 동시에 잡으려는 때였다. 왜 저걸 외쳤는지는 모름)
두개골이 갈라지는 듯한 느낌이 확들면서 계단 뒤로 굴러서 뒤통수 11바늘 꿰맨적도 있었고, 부모님들 다모셔와서 수업참관하는 날에 모둠활동으로 김밥말다가 손에잡히는거 다집어던지면서 꺽꺽 운적도 있다.
일상생활이 힘들정도로 너무 힘들었었음.. 진통제 먹으면 좀 낫긴한데 먹고 약효가 풀릴때쯤되면 진짜 초조했었다. 그 두통을 다시 피하려면 진통제를 다시먹거나, 수면제먹고 약빨로 자거나 둘중하나였음.
학교에서 시험볼때가 가장 악조건이었는데, 나 고통스러운건 둘째치고 주위애들한테 너무 미안했음. 선생님은 날 이해해주셨고(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초등~고등 과정 선생님들이 전부다 천사셨던거 같음.. 감사합니다 정말) 매학년마다 급우들에게 내상황을 설명해주셨지만..
님들도 다 알다시피 학년이 올라가고 고등과정 수업을 듣다보면 내신이라던가 성적에 더더욱 매달릴 수밖에 없고 그만큼 성격이 더 예민해지는 거잖슴. 애들 다 힘들게 공부하고와서 조용히 문제풀고있는 와중에 내가 신음소리 내면서 바닥뒹굴면 얼마나 짜증나겠어... 고등학교 입학하고나서 교감쌤이랑 담임쌤이랑 면담하고난뒤엔
시험볼때 보건쌤 감독하에 보건실에서 시험보거나 체육관 창고에서 시험봤다. 소리 꽥 질러도 괜찮은 유일한 장소였었음.
장○순 보건선생님, 정말 감사하고 죄송합니다... 두 달뒤 생신이시지요, 제가 약소하나마 홍삼세트 조그만거 하나 사가겠습니다. 마스크는 쓰고갈테니 걱정마셔요
어릴땐 동네 병원에 자주 다녔었지만 원인모름이 내병의 이유였고, 중학교 들어갈때 대학병원에 가서 정밀검사를 받아봐도 병명이 크게 달라지진 않았음. (그땐 대학병원이라는 소리 듣고 헐 설마 내 머리뚜껑 열고 뇌를 막 해부하는거 아냐? 유서를 써야하나? 아 젠장 메이플 전사레벨 30찍고 싶었는데..이런 생각했었음 히히)
절에도 다녀보고, 성당에가서 기도도 드려보고, 무당도찾아가보고 종교는 물론 갖가지 미신도 마다하지 않았음. 그만큼 너무 힘겨웠고 울 부모님들도 참 마음아파하셨음.
(한번은 우리 아부지가 회사동료 친구분들에게 조언을 구하셨다면서 황소개구리랑 굼벵이... 살아있는걸 구해오셨다. 고아먹으면 효과가있다고. 효과는 모르겠고 먹고 그날밤 땀이 좀났었음. 맛은 개똥쑥물 끓인거에 미숫가루 태운 향이났다.... 맛없고 헛구역질 구아아악나옴)
전국 각지의 그어떤 병원도, 종교 의례도 효험을 보이진 않았음. 3일밤낮으로 욱씬거리다가 지쳐서 기절할때도 있었고.. 뭐만 먹으면 다게워냄. 죽이고 물이고 다토했음.(이상황이 계속되면 목타들어가는 느낌이랑 같이 이상하게 실줄 주욱 늘어나는 액까지도 토함. 이게 위액이였던 사실은 나중에 알았다.)
초등학교 6학년이였건가 5학년이였을때였던가, 엄마분들이 막 모여서 만든 '그 모임'이 있잖아. 울 엄니가 엄청 용하다는 남양의 한 무당얘기를 들으셨다는겨. 별수있나 침 콧물 질질 흘리면서 아빠차타고 냉큼 달려갔지.
가게는 약간 비밀스러운 분위기였음. 간판이 없었고 복합층 건물 내부라 설명글없인 찾아가기 힘들었던것만 기억남. 근데 울엄니가 문 손잡이 딱 돌리려는 순간 내뒤에서 갑자기
"야!!!!!!!!!이!!!!!!!!샹,노무자식!!!!!!!!!!!!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하면서 기차화통 두어대는 거뜬히 삶아드셨을 법한 분의 고함이 내 뒤통수를 강타했음. 난 깜짝 놀라서 으헣ㅎ얾??!???!?하고 뒤를 돌아봤었고..
거기엔 장판교를 지키는 장비가 강림했는지 두눈을 부라리며 날 조조 네이놈 목따려는듯이 응시하는 풍채 우람한 여성?무당분이 한분 서게셨음.
한 3초간 모두에게 정적이 흘렀고 울아빠가 그제서야
"왜..왜 그러십니까?.. 어어.."하고 매우 조심스럽게 여쭤보심..(ㅋㅋ 울아빠 울어무니한텐 꿈뻑 죽으셔도 나랑 누나랑 형한텐 엄청 엄하셨는데 막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웅얼대시니까 엄청 귀여우셨음 히히)
팍! 두팔을 하늘위로 올렸다가 확 내리고 그무당숙녀?분 께서 하시는 왈,
"너겉은 악귀놈은 내 집에서 당!!!!!!!장!!!!!!!!썩!!!!!!꺼지란 말이여!!!!!!!어어어어어엉억!!!!!!!!!"
"워매 ㅇㅣ쉬이펄, 악취가 여까저 올라온다꼬오오와아아앙아ㅏㅏㅇ앙아!!!!!"
범상치 않은 용모와 호통으로 그녀?와의 기싸움에 무참히 패배하신 울아빠는 그길로 날 들쳐업고 후다닥 차로 날 피신시키심.
이후로는 울엄니아부지한테 전해들은 얘긴데, 그무당분께선 오늘 이른 새벽부터 (우린 저녁먹기전, 한 오후5시정도였을거야) 미리 몸을 피해있었다고해. (일부러 밖에서 기다렸다가 나오면 쫓아내려고 계속 기다리셨다더라구..) 계속 꿈속에 웬 눈먼 할애비 귀신 셋이 애새끼몸에 들러붙어서 머리를 파먹는 광경을 계속 보셨다는거야.
그 귀신들 몸이 썩고 문들어져서, 냄새를 꿈이었는데도 도저히 참지를 못했대. 그리고 그 귀신달라붙은 아이가 바로나였고. 그래서 나한테 썩 꺼지라고 호통치셨다는거...
내병세랑, 이차저차 설명을 어무니가 하시고, 어찌해야할까요 여쭙시니, 돌아오는 말이 눈파인 귀신은 그 원한이 다른 귀신보다 곱절은 강해서(몸이 천냥이면 눈이 구백냥이라하잖아. 그만큼 귀한걸 잃은 몸이라 원망도 크다나?)
저들이 눈을 잃음이 나하고 관계가 (전생에) 있든 없든 일단 길가는 사람 아무나 붙잡고 화풀이를 한다고 했대. 재수없게도 그게 나였고, 무당도 도대체 어쩌다가 저따위 잡귀들을 하나도 아니도 셋이나 내 몸에 붙게 되었는지를 통 모르겠다고 했대.
그래서 굿을 드리고 부적을 태우고 향 맡으면서 무당이 어떻게 된일인고 봤더니
내가 일제감정기시절때 탄광에 끌려간 조선인들을 감독했던 앞잡이였다는거야. 거기서 아빠가 예? 아니 그애가 얼마나 순둥인데요, 예의도 바르고 애가 아파서 그렇지 안그럴땐 얼마나 착하고 바른아인데요 하고 되물으시니 곡괭이질하던 인부들중 돌조각이 튀어서 눈을 다친 사람이 여럿 있었는데
내가 그걸 묵인했고 꾀병부리지말라고 발로 걷어차고 각목으로 팼다는거.. 결국 그인부들은 상처가덧나 실명까지하게됬는데, 고향에 다시 보내진것도 아니고 그길로 산에 버려졌다고.. 그분들이 떠돌다 죽고 원귀가되어 다시태어난 나를 찾아와 달라붙은거라고 했음.
내가 죽고 다시 사람으로 태어나는 조건이 착하고 바르게 살라는 거였고, 현생의 내성격은 그때문이라고 했대.
(그렇다. 난 전생에 일종의 친일파였던 것이다..)
눈먼 놈들이니 날 찾아오는데까지 여러 애꿏은 사람 거쳤을거라고, 혹시 내 주위사람들중 두통으로 고생한 사람이 있냐고까지 물어봤다는거야. 울아빠가 깜짝 놀라시면서 할아버지랑 고모부가 살아생전 두통으로 고생하셨다고 하셨대.(고모부는 어부셨는데 일하시다가 배에서 떨어져서 돌아가셨다고함. 이것도 두통때문에 사고가 난거였는진 의문임)
자, 이렇게까지 얘기가 풀리면 우리가 아는 무당들은 어떻게해서든 찾아온 고객의 귀신을 떼어주려 하잖아? (난 솔직히 영적인 존재는 부정하는 주의야. 우리집안은 가톨릭을 믿는데, 난 무교임. 세례명이 있긴하지만 내가 종교를 불신함.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기에 내가 절도 교회도 가고 무당도 만나볼수있었던거야. 딱히 믿음을 둔곳이 없으니까. 우리집안은 비록 가톨릭이라는 하나의 종교를 믿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종교적으로 다른 믿음을 추구하는것에 있어서도 굉장히 관대해. 설령 그게 자기 가족구성원일지라도.
종교가 달라도 하하핳 그렇습니까, 믿음의 형태는 달라도 선을 추구함은 같으니 인간사 그분들의 믿음으로 이루어진것 아니겠습니까. 우리 모두가 형제자매이고 그분들의 자식이고 얼굴인 것이지요 껄껄껄 이러고 넘어가시는 분들임. 참고로 나만 식전 기도 안한당 히히 울엄마표 김치는 언제나 내가 먼저 먹지)
이 장비숙녀분께서 하시는 말씀이, 오잉? 원한이 너무나도 강대해서 자기가 어찌해볼 수준이 아니었대. 오히려 자기가 위험해질수도 있을 정도로. 악취도 문제였지만 두려워서 날 문전박대 했다는거야. 복채를 얼마면 되겠소! 돈박치기까지 해보셨다지만 손을 내저으며 빨리 떠나라고 부탁까지했다고.
뭐 별 수있나? 그날밤 난 어김없이 찾아온 두통덕에 저녁도 못먹고 대신 굼벵이랑 개구리 고아낸 물을 또마셔야했다. 별 소득도 없었는데 기부니만 찝찝해지고, 얘기를 들은 누나들은 나보고 쪽바리의 앞잡이라고 놀리고 형은 날 위해 손수 기도를 드린다면서 성경구절을 나누워있는데 머리맡에서 놀리듯이 읊었음. 그 무당 내가 다시 찾아가면 굵은소금으로 후려칠거다. 진짜 각오해라.
누나랑 형이 너무하다고 생각할수있는데 내가 상태가 정말 심하면 내몸 주물러서 마사지도 해주고 수건적셔서 이마에도 올려주고, 내가 땀흘리고 발작끼도 보이면 몸도 닦아주고 약도 대신사와주는 분들임. 참말로 고마웠지요. 두통이 사라진 지금은 정말 평범하게 잘 지낸다. (물론 지금은 형님, 누님 이아우가 떡볶이가 먹고싶은데 오시는길에 사주시면 안되요?하고 부탁하면 알았어,하시고 영양갱을 대신 사오시긴 하지만...)
나 수능은 못봤어. 갔다가 난리치면 큰일이잖아. 내신도 다른아이들보다 뛰어났던것도 아니여서 대학교는 포기. 고등학교 입학할때부터 사실 각오했던 거였지만서도, 막상 수능당일되고 애들은 도시락싸서 배정받은 장소로 가는데 걔들이 많이 부러웠음. 그때난 수면제랑 진통제먹고 누워서 잠들기전에 티비로 내또라애들 모습보니까 많이 슬펐다..
울엄니가 옆에서 나랑같이 티비보고 계셔서 배게에 얼굴묻고 잠든척 울었다. ○○아 자니? 물으시고 내앞으로 기도 잠깐 올리시고 내등쓸어주시는데 매번 쓰실때마다 복받쳐올라서 들킬뻔했다. 난 무교주의자지만 그때 만큼은 신을 원망했다. 아무리 아파도 욕한번 쓰지 않았던 나였지만 그때만큼은 신을 증오하고 저주했다. 아담이 열매를 따먹은건 그가 악인이어서가아닌 당신이 뱀같이 교활하고 잔인했기 때문이라고까지 속으로 외쳤었음..
그날은 침대에 누워서만 시간을 보냈다. 여가시간에 미술에 매진하거나 그림을 주로 그리곤 했는데 그날은 다 싫고 미워서 침대에 엎드려만 있었다. 아빠가 퇴근하시고 내가 안아플때 가장 좋아하는 음식인 족발을 사오셨지만 입에 대지도 않았다. (아빠한테 굉장한 상처가 되지 않았나 싶다.. 그날 아빠가 혼자 술 엄청 많이 드셨다. 깡막걸리랑 깡소주, 안주도 없이..)
새벽에 카톡방에 반친구들 노는거 사진 올라오는 소리에 깼는데 아빠가 혀꼬부러진 소리로 ○○아 미안하다.. 아빠가 죄인이라 네가 뒤집어쓰는가 보구나 미안하다.. 하고 부엌에서 술드시면서 우시길래 방에 다시들어가서 울었다. 울아빠가 우시는걸 단한번도 본적이없었는데, 그때의 흐느끼시는 아빠는 지금도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수면제통 싹 비우고 죽을까 생각도 잠시 해봤고 바로 접었다. 내가 살아있어도 저렇게 힘들어하시는데 죽으면 얼마나 더힘들어하실까 죄스러워서.. 다음날 아침 우리가족 모두가 기분전환도 할겸 갑작스럽지만 가족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전남 해남으로 해수욕&낚시하러 간건데, 난 자칫하면 물에빠질수도있으니 발만 담구고, 해질녘에 형이랑 낚시하러만 갔었다. 그래도 오랜만에 가족여행 온거라서 서로 눈치안보고 최대한 재밌게 놀려고 노력많이했고 나도 그시간만큼은 다내려놓고 즐기려 애썼다.
시간이 가고 형이랑 나만빼고 모두 모텔에서 주무시는 밤이 되었음. 기분전환을 해서그런가, 두통이 유독 약했던 그날 나랑 형님이랑 둘이 방파제에가서 밤낚시를 했다. 다들 알지? 밤에하는 방파제낚시는 굉장히 위험한거. (절대로 혼자가지말고 무조건 구명조끼입고 둘 이상이서 가야함.) 두시간정도 하다가 형이 붕장어 한마리 겨우 낚고 자리옮길겸해서 마을 둑 저수지로 포인트를 옮겼음.
와 시골은 밤하늘이 그렇게 이쁘대. 길은 가로수하나없어서 핸드폰 손전등없이는 볼수가 없는데 하늘은 별이 설탕고명처럼 흩뿌려져있었음. 정말 이뻤고 밤공기도 기분좋게 차서 가는길에 형님이랑 나랑 돌아가면서 노래부르면서 갔다.
"◎◎형, 저를 위해 노랠 불러주시겠습니까? 그녀에게 들리게. 사랑도 미련도 다가져가라구요"
"그래 너를 위해 소리를 질러줄게 오늘도 내일도 널 찾지 말라고" (원곡은 리쌍의 발레리노, 길의 훅파트)
"모든게 어색했어요 그녈 처음 봤을땐, 입술의 밥풀로 키스를 할까 고민했을땐, 신경이 쓰이고 또 함께 걸을땐"
"두통이 왔을지 약을 먹어야할지 병원엘 가야할지, 뇨자는 알았어두 쏴뢍은 아돈노였기에..."하면서 장난도 치고 즉석에서 개사도 하고 즐거웠었음.
그러다가 둑에 도착했고 시간이 새벽 1시 50분정도 됬었음. 풀숲에 여벌로 가져온 재킷이랑 남방 깔고 나랑 형이랑.앉아있었고, 낚시대 던지고 조용히 손에 입질만 기다리고 있었음. 조금더 시간이 지나니까 슬며시 두통이 또 찾아오는거야. 바로 낌새 눈치채고 형한테
"형, 또 시작할거같아요" 하면
"아 진짜? 기다려봐 진통제 다섯알 가져왔어" 하시고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으셨는데
아.. 그만 풀숲에 떨어뜨리신거야. 핸드폰 조명으로 비추고 있었는데도 시야가 좁고 어두워서 서로 손이 안맞았음. 한 알 찾긴 했는데, 내성이 생겨서 그런지 한 알로는 약효가 도저히 나질 않아서 점점 바닥을 뒹굴 정도가 됬음.
끅끅 소리는 내가 참든 참지않든 그냥 흘러나와. 공기는 찬데, 식은땀은 뚝뚝 흐르고.. 이젠 가만히 앉지도 못할 정도가됨. 헛소리가 들리기시작하고(돌끼리 부딪히는 굉음이랑, 음율없는 사이렌소리랑, 이면현상의 삐소리 등등이 동시에 왼쪽귀에서 눈을 타고 오른쪽 귀로 뚫고가는것이 느껴짐. 한마디로 정신줄을 잡을 수가 없게됨. 헛것도 보이고..)머리뼈가 손끝에서 발끝까지 떨어졌다가 다시 천천히 올라오는 것같이 느껴지기도하고 온몸에 개미가 달라붙어서 머리로 기어올라가는게 보이기도함.
형은 이대로 가다간 진짜 큰일나겠다 싶어서 (전화가 안됬어.. 시외라서 그런지 몰라도 서비스가 닿지않는 지역이라 했던것 같아. 울가족은 형만 폴더폰썼었음. 난 숙소에 폰 두고왔고) 오는길에 길가에 슈퍼가 하나있었는데 급한대로 가서 약같은게 있나 보고오시겠다고 하심. 사람도 부를겸.
뛰어가도 왕복으로 15분은 족히 걸릴 거리였던 것 같은데 선택의 여지는 없었음. 형은 내게 침착히 기다리라고 하셨고 형은 손전등을 들고가고 핸드폰은 나한테 주고가셨음. (배터리는 여분으로 두개까지 챙겨왔고 충전도 꼭꼭 해놓아서 형이 다시 돌아오실때까지 불빛꺼질 일은 없었음)
정신없이 사방으로 손전등 빛이 흔들리면서 번지데.. 형이 왔던 길로 돠돌아 뛰어가니까. 형 뛰는 소리가 더안들리고 나중에 손전등 빛이 내시야에서 사라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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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서야 무서움이 덜컥 찾아왔다. 밤하늘의 아름다움은 이미 내 머릿속 마음과 이성에서 사라진지 오래고 오직 살고 싶다는 본능만이 날 잠식했음. 귀뚜라미, 개구리소리도 어느순간 뚝 멈추고, 바람도 안불고, 가끔 나타나던 다람쥐나 새들도 안보임. 공기도 눅눅해진것같고 음산해진거같고, 운치있다고 생각했던 둑은 어느순간 을씨년스러워졌음.
그나마 다행이었던건 한알먹은 진통제가 약효를 미약하게나마 낸건지 눈앞이 핑핑 돌정도로 머리가 터질듯 아프진 않았다. 반쯤 미쳐가는 내가 이제 제대로 보지도 못하게된다면 정말 미쳐버렸을 지도 몰랐을텐데 말이야. 그치?
내가 한 저말, 누구 다른 사람 얘기 같지 않음? '이제 제대로 보지도 못하게된다면 정말 미쳐버렸을 지도 몰랐을텐데 말이야. 그치?'
여기서 딱 든 생각이 아, 내가 전생에 정말 일본 제국놈들의 앞잡이 였다면, 그 분들도 미치기 일보직전 이었는데 기어코 내가 그들을 미치게만든거였구나. 이런 기분 이었나 싶었다. 끌려온것도 서럽고 살인적인 노동에 가족 생사도모르고 배는 또고픈 상황에 시력까지 잃게된다면 제정신 잡을 수 있는 이가 과연 몇이나 될까.
이생각만 들었음. 이렇게 비참하게 죽는 걸까?생각도 들었고 많이 끔찍했음. 뭐라도 생각해야 미치지 않을것같아 내가 누구고 뭘하고있었지를 생각하고 외웠다. 제발 형 빨리 돌아오세요만 중얼거리고 있었는데 어디 멀리서에서
"거서 짐 뭐하능교?" 같은 사람소리가 났다.
고개를 돌려보니 고무신 신은 누군가의 발이 보였고 핸드폰으로 올려 빛추려했으나 머리가 다시 쪼개지는것같아 몸을 웅크릴수밖에 없었다.
"아픙교?" 목소리의 주인은 나이든 할아버지 같이 정정하면서도 무겁고 걸걸했다.
대체 와그러시는가?라는 질문을 하셨을땐 우물거리면서 자초지종을 설명했고 얘기를 다들으신 노인분께선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말씀하시듯,
"인연이란게 참으로 악랄해. 악연이 될때도 있고. 하지만 이렇게 젊은이에게는 너무하잖나. 가는 사람 가게두고 올사람 오게 냅두시게.. 당신일은 안됬지만은 언제까지고 남의 마음을 쑤실터인가 이제 그만 용서하게."
이말을 듣고 난 바닥에 쓰러지듯 엎어졌다. 머릿속이 웅웅 울려서 토도 하고 싶어졌고.. 그렇게 환청이었는지, 환각이었는지 다시일어났을때엔 노인의 모습따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잠시뒤 형이 마을 아저씨를 두명데리고오셨고 그분들은 날 업쳐메고 우리가족이 있는 모텔로 뛰어가셨다. 모두들 많이 놀랐었지만, 내가 무사히 돌아왔으니 그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하셨다.
놀라운건 그날이후부터 머리가 아프지 않다는 것이다
자세한 얘기는 그장비닮으신 무당분을 다시 찾아뵈야겠지만, 그 환각이었을지 우리의 선조였을지, 동네 아저씨였을지는 아무도 모를 이분이 귀신들을 쫓아내 주신건가? 같은 생각도 해봄.
너무 얘기가 길어졌는데, 폰으로 쓰다보니 불편하기도해. 더자세한건 반응이 좋으면 또 올릴게. 참고로 여전히 난 영적존재는 믿지 않아. 하지만 내생각을 조금 바꾸게된 계기는 이와 관련된 일이 좀 있어. 이건 다음에 얘기할게.
긴글읽어줘서 고맙고 갑자기 끊어서 미안해. 나 이제 일하라 가야할 시간이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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