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권 여대생 이랑 ㅅㅅ한 썰 1편

난 공부는 지질나게 못해서 재수해서 서울의 변두리 3류대 들어갔다.
참고로 92학번...
재수할 때 동네 독서실 다녔는데 어떤 고3 새끼가 <노동의 새벽>이라는 박노해가 쓴 시집을 자랑스럽게 읽고 있었다.
살이 찐데다가 두꺼운 안경을 쓰고 다니는 오덕같은 넘이었는데 독서실 안에서 가끔 파오후 소리를 내서
나랑 몇몇 동네에서 주먹으로 유지행세를 하던 재수생님들의 심기가 매우 불편하던 터였다.
시집이라는 책이 은행잎이 그려져 있는 것도 아니고 무슨 삐라같은 분위기였고 책 뒷편에는
'저주 받은 남한땅..'어쩌구라고 광고문구가 써 있었다.
"이 싸가지 없는 빨갱이 색희! 어디서 형님이 대학가려고 발버둥치는 이 신성한 독서실에서 이따위 불온문서를 탐독하냐?"
"이 색희 빨리 파출소에 데리고 가자."
우린 그렇게 그 안경잽이 파오후 고3의 귀를 잡고 갈궜다.
-형들이 지금 한국사회의 실태을 알기나 해요? 형들은 지금 속고 사는거라고요!
-야이, 미친 빨갱이 같은 소리하지 말고 그럴 시간에 <성문종합영어> 한 장이라도 더 봐!
아참, 너 아직까지 <맨투맨 기본> 보지? 이 쪽팔린 색희!
굳이 내가 이 일을 언급하는 것은 내가 탄내나는 꼴보수였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진리의 상아탑.그런 건 개나 줘버리고
그저 대학교가서 제일 해보고 싶은 것 1순위가 여대생을 마음껏 따먹고 싶은 것이었지.
그때까지만 해도 대학생이면 좀 먹히던 시절이었고 우리 사회 공순이 여자들도 꽤 많았다.
대학생이 되어 난 으쓱한 기분으로 순진한 여자애들 따먹겠다는 일념으로 딸딸이 자제하면서
밤낮으로 공부를 했고 그렇게 간신히 서울의 후기대에 합격했다.
씨발, 장미빛 인생이 열리는것 같았다.
개강 하기 전에 오리엔테이션에 오라는 통지가 왔다.
지금은 잘 모르겠는데 그때는 대학 신입생 OT를 지방으로 몇박 몇일로 갔다.
행사는 늘 대학 총학생회가 주도했다.
'씨발새끼들. 내가 재수해서 나이 처먹고 대학교 가는데 뭘 오티까지 오라가라야.'
난 당시 유행했던 귀티나는 뚱뚱한 간지 오리털 파커를 입고 대가리에 무스를 처바르고 한껏 멋을 부리고 오티에 참가했다.
OT 씨발...지금 생각해보면 그 시절 신입생 OT는 교묘하게 새끼 운동권을 양산시키는 메트릭스 같은 프로그램 이었다.
OT 행사 내내 틈만나면 학생회 간분들이 이상한 비디오를 틀어줬다.
이상한 비디오가 오양 비디오 같은게 아니었다.
당시에는 백골단이라고 불리우는 하얀 헬멧 쓴 사복체포조가 있었다. 데모할 때 사과탄이라고 둥그런 최루탄을
집어 던지면서 갑자기 나타나 데모하는 대학생들에게는 가히 공포의 대상이라고 했다.
얘들은 주로 청자켓을 입고 허리에 사과탄 주머니를 걸치고 나타났는데 대부분 유단자라고도 했다.
비디오에서는 백골단이 선량해 보이는 대학생들 개패듯 팼다.
특히 착하게 생긴 여대생이 백골단에게 머리채 잡혀 끌려가는 장면을 보면 나도 모르게 주먹이 쥐어졌다.
옆에서 같이 보던 선배가 한마디했다.
"저 파쇼의 개, 백골단새끼들...."
마치 악마의 새끼들을 보듯 내뱉었다. 갑자기 그 선배가 졸라 멋있어 보였다.
그런데 갑자기 화면 속에 사수대라고 불리우는 대학생들이 나타났다.
손수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쇠파이프를 든, 지금 시각에서는 거의 양아치 폭도일텐데 그때는 정의의 기사단 같았다.
걔들은 백골단들을 근거리에서 화염병으로 위협하고 쇠파이프를 휘두르며 내쫗았다. 그리고 위기에 몰린 여대생들을 구해줬다.
그 장면을 보던 선배 대학생들이 일제히 박수를 쳤다.그럴 때 나도 모르게 신이 났다.
비디오가 나오는 동안 배경 음악은 계속 운동권 노래가 깔리고
함께 보던 선배들은 오른손을 들며 구호를 외쳤다. "타도, 노태우! 해체 민자당!"
난 나도 모르게 흥에 겨워 따라서 오른 손을 들고 구호를 외쳤다.
'사수대? 진짜 멋있는 놈들이구나. 나도 나중에 저거 할거야."
단순한 난 그렇게 나도 모르게 변질되어 가고 있었다..
OT 3박 4일동안 하도 오른 손을 들고 구호를 외쳐 내 팔근육은 단련되었으며 징그럽게 머리에 남아 윙윙거리는 것은
<타도 노태우>와 <구국의 강철대오 전대협>이라는 단어 뿐이었다.
특히 비디오에서 보여주던 임종석(현 서울시 부시장) 전 전대협 의장.
이 사람이 통일의 꽃이라는 임수경 (현 새정련 국회의원)을 북한에 보냈다고 했다.
나도 고딩시절 길거리에서 이 사람 지명수배 전단을 본 적이 있다.
그때 임종석을 경호하는 체대 경호학생이 40명이라는 소문도 있었다.
한양대의 집회가 전경들에게 원천봉쇄되었을 때 시위대들이 달리는 2호선 지하철을 세우고 담을 넘어서 한양대에 진입한 일화는
거의 학생운동권의 '전설'이었다. 학생들은 거의 흠모의 눈빛으로 임종석을 바라보았다.
물론 중간 중간에 재미있는 레크레이션도 하고 그랬다. 그런데 적당히 학교와 과소개 하고 술먹고 흥겨운 자리만은 아니었다.
선배들은 짬을 내 걸핏하면 의식화 교육 비슷한 교양교육을 해댔다. 신식민지 국가독점 자본주의 어쩌구..
아몰랑. 씨발놈들아.. 재수할 때 수학의 정석 탐독하느라 머리 아파죽겠는데 왜 대학까지 와서 이지랄이야.
서울로 돌아오는 대형버스 안에서 당시 예비역 4학년이던 우리 과 회장이 슬그머니 내 옆에 앉았다.
- 네가 구호를 제일 힘있게 외친다면서?
- 아..네..뭐...
서울로 올라오는 2시간 동안 종학이형이라고 하는 그 우리과 회장이 들려준 얘기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그 몇년 전 북괴의 지령을 받고 마유미가 공중 폭파했던 KAL 858 사건, 대부분 열사의 나라 뙤약볕에서 고생했던 우리 근로자
115명을 북괴의 사주를 받은 김현히가 뱅기를 폭파해 죽인 사건....그러나 그는 자신있게 말했다.
- 그거 안기부의 조작이야.
- 네? 에이. 설마요?
- 그거 노태우 당선시키려고 대한민국 안기부가 조작한거야.
- 아..아니 어떻게 그럴수가?
- 야, 무슨 외교관 딸이라는 여자애가 갑자기 개과천선해서 '언니 미안해!' 하고 변하겠냐? 무슨 애들 이야기도 아니고
소설쓰냐? KAL기 잔해는 하나도 발견된게 없어. 다 안기부의 조작극이야. 아는 사람은 다 알아!
종학이 형의 말을 한참 들어보면 그럴 듯 했다. 나는 머리가 어벙벙했다. 그런데 그뿐 만이 아니었다.
- 너 버마 랭군 사건알지?
- 넵?
버마랭군사건이라면 일명 아웅산 폭탄 테러사건. 북괴의 공작으로 폭탄테러를 해서
전두환 대통령이 버마를 방문했을 때 우리 정부요인과 기자 등 17명은 죽은 그 전대미문의 사건 아닌가.
나는 국민학교시절에 이 사건을 주제로 반공웅변대회에 나간 적도 있다. 주먹을 불끈 쥐었다.
- 네, 당연히 알죠. 모를리가 있나요? 북괴 빨갱이들의 소행입니다!
난 잘난 척을 했다. 그런데 종학이형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얌마, 그것도 전두환 정권이 조작한거야. 북한이 그런게 아니야.
- 넵?
그는 태연히 말을 이어갔다. "그거 다 개뻥이야!!!" 헉!
-그거 다 전두환의 조작극이라고. 생각해봐 그 때 밑에 부하들 다 죽었는데 전두환만 안죽었잖아!
- 헐..
난 진짜 어의가 없었다. 그게 어찌 사실이 될 수 있겠는가.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박학다식해 보이고 정의감이 투철한 과회장 형이 굳이 거짓말 할리는 없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내가 여지껏 대한민국의 제도교육 속에 철저히 속아 살아온건가.
저새끼가 또라이인가 아니면 내가 메트릭스 속에 살아왔나?
한참 고민을 할 때 버스가 학교에 도착했다.
"앞으로 대학은 너에게 많은 것을 알려줄거다"
종학이 형은 머리를 쥐어잡고 혼란스러워하는 나의 어깨를 탁탁 치면서 내렸다.
총학생회에서는 귀가하는 신입생들에게 카셋트 테이프를 하나씩 나누줬다. 무슨 노래 테이프였다.
꽃다지 어쩌구 라고 써있었고 00대 자주적 총학생회라는 문구도 보였다.
난 집에 들어와서 오디오에 틀어봤다.
거의 대부분 데모가 였다. 그런데 가사가 충격 그 자체였다. <반전반핵 양키고홈>이라는 노래는
약과였고 심지어 '빨치산의 정기가 우리의 핏줄 속에 흐른다....'라는 가사의 노래도 있었다.
난 머리가 아찔했다. 그 노래가 안방까지 들렸는지 어머니가 빗자루를 들고 나와 나를 때리려고 했다.
-야,이눔아! 힘들게 대학 보내놨더니 너 벌써 빨갱이가 된겨?
- 아, 이거 학교에서 공짜로 나눠준거라고요!!
당시에 서울 뿐 아니라 전국의 모든 대학 총학생회는 전대협이라는 전국적 학생 조직에 가입되어 있었다.
나는 내 방에서 일제 아이와 카셋트로 이어폰을 꽂고 그 노래를 자주 들었다.
평소에는 기겁을 하던 노래와 가사들이 자꾸 접하다보니 너무 자연스러워졌다.
데모가는 어딘가 나의 힘을 솟게 하고 정신을 개조시키는 것 같았다.
마치 개독들이 교회에서 듣는 찬송가 같았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진짜로 전두환 -노태우 군사정권 속에서 내가 아바타처럼 속아 살아온 느낌이 들었다.
개강을 했다. 학기 초에는 선배들이 저마다 자기 동아리에 가입하라고 부산을 떨었다.
선배들은 강의시간 시작하기 전에 불쑥 들어와 동아리 홍보를 하곤 했다.
강의 시작시간이 지체되어도 교수들은 아무말도 못했다.
교수들이 학생들 눈치를 많이 보는 것이 느껴졌다. 스승의 그림자도 밞지 말라고 했거늘. 기가 막힌 세월이었다.
- 동아리는 대학생활의 꽃입니다!
그들은 그렇게 홍보했다. 나는 고민을 하다가 그냥 '광야'라는 우리 과내 사회과학회 모임에가입하기로 했다.
종학이형을 비롯한 과 선배들의 집요한 가입권유도 한몫했다.
내가 굳이 과모임에 가입하고 대학 동아리에 들어가지않은 이유가 난 재수했는데 나이가 동갑인 2학년 색희들이 선배 노릇하면서
반말 지껄이는게 재수없어서 그랬다. 대개 동아리는 위계질서가 엄하다고 했다.
심지어 우리과 삼수한 어떤 애는 2학년 애들 보다 나이가 많은데도 어떤 동아리에서 2학년 색희들이
"그래? 열심히 해라." 라며 기르는 푸들처럼 머리를 살살 쓰다듬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우리과는 인문계열이라서 그런지 여학생들이 참 많았다. 내가 박정아라는 3학년 선배를 만난 것은 '광야'에서 였다.
정아선배는 이 모임의 회장이었다.
당시 우리 과는 속한 단과대학 내에서 상당히 운동권이 강세인 과로 알려졌다.
그리고 우리 과 운동권의 대부분 이 '광야'라는 모임을 통해 양성된다는 것을 알았다.
'광야'는 당시 한국사회의 여러가지 이슈를 놓고 토론을 하고 배우는 모임이었다.
간간히 '사랑'이나 '참된 삶'이니 뭐 소프트한 주제를 놓고 얘기도 하곤 했지만 대부분이 시국에 관련된 사안이었다.
서로 의견을 개진하다가 정아 선배가 회장으로 늘 말끔하고 정리된 시각으로 토론을 정리하곤 했는데
남의 얘기를 들어주는 척 했지만 결말은 항상 뻔했다.
기승전- '노태우 정권타도' 혹은 기승전 - '모순많은 한국사회' 였다.
나는 배운다기 보다도 어딘가 세뇌가 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감출 수가 없었다.
북한은 해방 후 지주들의 토지를 몰수해 주민들에게 무상분배를 아주 잘했으며 친일파를 제대로 청산했다고
배웠다. 북한은 주체적인 정권이나 한국은 미국의 입맛에 맞는 꼭둑각시 정권이라고도 배웠다.
<들어라 역사의 외침을>, <거꾸로 읽은 세계사>는 반드시 읽어야 할 교양필독서였다.
당시 새끼 운동권들의 교양필독 <거꾸로 읽은 세계사>를 지은 사람이 유시민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정아선배는 나보고 진도가 아주 빠르다고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식민지의 아들에게>라는 책을 권했다.
반미의 교과서적인 책이라고도 했다.
나는 그 책의 저자가 오마이뉴스를 만든 오모씨라는 것도 훗날 알았다.
언제부턴가 난 뭔가 남들이 모르는 새로운 것을 알아가고 있다고 느꼈고 왠지 껍데기에서 벗어나는 느낌이었다.
학점을 따기 위해서 1학년 때 부터 공부만 열심히 하는 놈들을 보면 한심하다고 느꼈다.
'나는 니들과 달라, 난 의식있는 대학생이야.'
나는 점점 나도 모르게 겉멋이 든 운동권스럽게 변모해 가고 있었다.
그런데 솔직히 내가 광야라는 모임에 열성적으로 참여한 것은 정아선배때문이었다.
정아선배는 긴 생머리에 키도 크고 세련되었다. 화장도 진하게 했으며 전혀 운동권스럽지 않았다. 몸매도 늘씬했다.
그런 점이 다른 운동권녀에 비해서 돋보였다. 집도 지방인데 아주 잘 산다고 했다. 정아선배는 나를 보면 늘 활짝 웃었다.
모임이 끝나면 "너네들 저녁 먹었니?" 라고 상냥하게 물으며 저녁도 사주고 술도 사주었다.
정아선배는 특히 그 때 돈 있는 집 애들만 있는다는 비싼 게스 청바지를 입고 다녔다.
그 청바지를 입은 정아선배의 히프가 그렇게 이쁠수 없었다.
나는 지금도 정아선배 처럼 히프가 예쁜 여자를 본적이 없다.
나말고 진호라는 동기 녀석도 열성적으로 참여했다.
정아선배는 캠퍼스에서 마주쳐도 늘 밝게 웃으며 이런 저런 대학생활에 대한 코치를 해주곤 했다.
가히 우리들이 여자 멘토였다.
나는 정아선배에 대해서 점점 호감을 넘어 애정을 품게 되었다. 때로는 정아선배이 후장에 내좆을 꽂는 상상을 하며
탁탁탁도 치고 그랬다. 당시 우리 과정원이 50명이었는데 어문한 계열이라서 남자는 얼마 안되었다.
진호와 나는 점점 1학년에서 운동권으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둘다 단순했다.
당시는 노태우 정권 말이라서 그런지 서울에서 참 이런 저런 데모가 많았다.
우리학교 뿐 아니라 다른 대학에서 연합시위도 자주 있었다.
'광야' 모임은 그런 데모가 있는 날에는 모임을 쉬었다. 데모에 참석하는 것이 더 효과적인 배움이라고도 했다.
4월달 부터 무슨 등투니 (등록금 투쟁), 재단의 비리니 뭐니 해서 데모할 타이틀을 너무너무 많았다.
데모가 끝나면 항상 학교 앞 술집에서 총화니 평가를 빌미로 뒷풀이를 했다. 데모 보다는 데모 뒤의 뒷풀이 재미가 꿀맛이었다.
술자리에서는 항상 젓가락을 두들기며 병신처럼 데모가를 불러댔다.
어느 날은 재단이 운영한다는 회사 앞에서 농성을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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