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회사 청일점 썰 4
운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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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분전
화면을 확인한 예진이 재빨리 내게 쉿하라는 손짓을 보내고는 전화를 받았다.
"응, 오빠. 나? 카페. 오늘 많이 늦는다고? 응, 알겠어. 먼저 밥 챙겨 먹을게."
아무래도 동거하는 그 남자친구와 통화하는 모양이었다.
나는 왠지 모를 질투에 담배를 새로 하나 물고 불을 붙였다.
"...나? 그때 말했지, 두 살 많은 언니 있다고. 응, 그 언니랑 지금 공부 중. 나도 시험 얼마 안 남아서 좀 늦을지도 몰라. 알겠어, 이따 봐."
언니? 내가 언니?
태연하게 전화로 거짓말을 늘어놓는 예진을 보니 어이가 없으면서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겠어. 나도 보고 싶어. 끊어."
그렇게 그녀는 다정하게 전화를 끊었다.
뭐라 꼬치꼬치 물어보고 싶은 게 산더미처럼 쌓였지만, 전화를 끊자마자 예진은 피던 담배를 재떨이에 툭 짓이겨 끄며 말했다.
"오빠. 커피는 아까 내가 샀으니까, 저녁은 오빠가 사."
"밥? 뭐 먹고 싶은데."
가뜩이나 지갑 사정이 좋지 않았던 터라 속으로 똥줄이 탔다.
그렇다고 대놓고 돈이 없다고 찌질하게 굴기도 싫어서, 제발 싼 걸 골라주길 바랐다.
"나, 오빠 집에서 밥 먹어도 돼?"
"어? 우리 집에 먹을 거 별로 없는데."
"그럼 라면이라도 끓여주든가."
"나 라면 잘 못 끓여."
남친이 버젓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탓인지, 나도 모르게 자꾸만 퉁명스럽게 틱틱대며 거리를 두려고 했다.
"내가 잘 끓여. 오빠 집으로 가자, 우리 먹고 진짜 딱 한두 시간만 공부하자. 배고파."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예진은 내 팔짱을 훅 껴안아 왔다.
걸을 때마다 그녀의 풍만한 가슴이 내 팔뚝에 부드럽게 닿았다.
이쯤 되면 거절하기도 뭣했다.
우리는 결국 동네 마트에 들러 신라면 다섯 개들이 번들 팩 하나를 사서 내 자취방으로 향했다.
보증금 200에 월 27만 원.
지방 원룸 치고는 당시 나쁘지 않은, 전역한 스물셋 백수가 혼자 살기에 딱 적당한 크기의 방이었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예진은 신발도 채 제대로 벗지 않은 채 제 집 마냥 쏙 들어가더니, 침대 매트리스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와... 방 진짜 깨끗하네?"
"뭐, 그냥 그래."
"오빠, 화장실은 어디야?"
"저기."
"땡큐."
그러더니 입고 있던 하얀색 후리스를 침대 위에 허물 벗듯 툭 벗어던지곤 화장실 안으로 쏙 들어갔다.
치이이익-
잠시 후, 변기 커버를 내리는 소리와 함께 시원하게 소변을 보는 물줄기 소리가 방안까지 적나라하게 울려 퍼졌다.
꿀꺽-
못 들은 척 애써 시선을 돌렸지만, 군대 제대 후 여자와 이렇게 단둘이 밀폐된 방에 있어본 적이 없어서 그런가 아랫도리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묵직하게 부풀어 오르는 게 느껴졌다.
예진은 조금 있다가 화장실에서 나왔다.
그리곤 곧바로 내 뒤에 가까이 섰다.
뭐랄까.
아직 몸을 돌리기 전인데도 묘한 촉이 왔다.
곧 뭔가 엄청난 일이 터질 것 같은 그런 예감.
그래서 일부러 모르는 척 가만히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현욱 오빠."
"왜?"
"나 좀 봐봐."
풀발은 아니고 살짝 중발기 상태라 돌아보기 민망했지만 천천히 몸을 돌려 예진과 마주했다.
그녀는 나를 빤히 올려다봤다.
화장실에서 거울을 보며 고쳤는지, 입술에는 붉게 다시 화장이 되어있었다.
"오빠, 내가 키스해 줄까?"
"아니."
"왜."
너, 남자친구도 있잖아.
목구멍까지 차오른 그 한마디를 차마 뱉지 못하고 망설이자, 예진이 눈을 가늘게 뜨고 한 번 더 물어왔다.
"...나랑 키스하기 싫어?"
"그건 아닌데..."
"그럼 하자. 응? 하자."
그러더니 예진은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키 차이가 제법 나서 불편했던지, 내 티셔츠 멱살을 양손으로 꽉 움켜쥐고는 까치발을 들었다.
내 방이라는 심리적 안정감 때문이었을까.
머릿속으로는 하면 쓰레기다라는 도덕적 관념이 경고등을 몇 번이고 울렸지만, 이미 몸은 반응하고 있었다.
곧바로 방금 화장실에서 새로 덧바른 탓인지 짙은 화장품 맛이 났다.
그러면서도 입술은 놀라울 만큼 부드러웠다.
평소 도덕 관념이나 양심 같은 걸 은근히 따지던 성격이라 혀를 돌리면서도 죄책감과 배덕감이 한 번에 밀려왔다.
짜릿하면서도 좋았지만, 버젓이 동거하는 남자가 있는 여자의 바람 상대가 되었다는 게 어딘가 찝찝했다.
하지만 그 찝찝함도 잠시 입안을 헤집고 들어온 말캉하고 뜨거운 혀가 모든 생각을 단숨에 지워버렸다.
츄릅- 츄웁-
상황은 이미 걷잡을 수 없이 빠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거칠게 혀가 얽히는 와중에도 예진은 온몸의 체중을 실어 나를 침대 쪽으로 밀어붙였다.
내가 침대 매트리스 위로 털썩 쓰러졌고, 예진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그대로 내 위에 올라타 허리를 숙이며 혀를 얽어맸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 눈이 살짝 풀린 예진이 보였다.
거울을 보지 않아도 내 눈빛 역시 그녀와 하나도 다르지 않을 터였다.
키스를 이어가던 예진이 갑자기 허리를 살짝 일으키더니, 입고 있던 티셔츠를 단숨에 위로 훅 말아 올려 완전히 벗어던졌다.
뉘엿뉘엿 지는 석양빛이 간유리창을 통과해 은은한 주황빛으로 방 안을 가득 채운 좁은 원룸 안.
하얗게 드러난 그녀의 쇄골 아래로 아까 카페에서 보았던 검은색 필기체 레터링 문구가 선명하게 시야를 채웠다.
[Carpe Diem.]
현재를 즐겨라...
꼭 내게 하는 말 같았다.
+
생각해보니까 꽤 오래된 일이네요.
15년 전쯤이라 그런지. 어떤 장면은 바로 어제같이 떠오르면서도 또 어떤 부분은 살짝 흐릿하고.
진도도 빠르게 쓰면 좋겠지만, 그냥 일기처럼 기억나는대로 쓰려다보니 조금 루즈하긴 한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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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즈8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