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모녀 5

뜻밖이었다.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은영이의 어머니의 갑작스런 연락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고, 당황한 나머지
제대로 된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여보세요? 미안해요. 갑작스럽게 연락해서...
정신을 차리고 은영이 어머니에게 인사를 한다.
인사를 하면서도 무슨 이유로 나에게 전화를 했는지, 머릿속이 혼란스럽다.
도대체 왜 그녀의 어머니가 나에게 연락을 한 것일까?
전화로는 그렇고... 만났으면 싶은데...
은영이 어머니가 만남을 요구했다. 무슨 일인지 물었지만, 전화상으로는 힘들다는
이야기 뿐, 도대체 그녀는 나에게 어떤 용무가 있는 것일까. 만나지 않고서는 알 수
없었기 때문에 그럭저럭 약속을 잡았다.
은영이에게는 비밀 이예요.
은영이 어머니의 마지막 당부였다.
자신의 딸에게도 숨긴 채, 나를 만나려고 하다니,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상황이었다.
공식적, 아니 사실만 놓고 보더라도 난 은영이의 연인이 아니었다. 그저 친구였을 뿐
인데, 왜 그녀의 어머니가 나를 만나려고 하는 걸까?
며칠 간, 답답한 날이 이어졌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은영이 어머니와의 만나는 날을 기다릴 수 밖 에.
은영이 어머니와 만나기까지 은영이와 수차례 연락을 주고받았지만,
역시나 그녀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눈치였다. 심지어 오랜만에 은영이와 만날 수
있음에도 그 날짜와 시간이 그녀의 어머니와 약속한 시간과 겹쳐서 그 만남을 또 다시
미뤄야만 했다.
무슨 일 있나봐?
은영이의 단순한 질문에 가슴이 뜨끔했던 나는 집안일이라는 핑계를 댔다.
다행히 은영이는 꼬치꼬치 캐묻지는 않았다. 물론, 그럴 성격도 아니었다.
은영이 어머니와의 약속의 날이 왔고, 우리는 유명 호텔 커피숍에서 만났다.
만남의 장소는 은영이 어머니가 결정을 했는데, 아무래도 그런 곳이 가장 자연스럽기
때문일 것이었다. 최소 스무 살 이상 차이나는 남녀가 자연스럽게 만날 곳이 마땅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었으니까.
이때 처음으로 유명 호텔 커피숍에 방문할 수 있었고,
만남도 그러했지만, 생전 처음 방문하는 주변 환경 때문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저 은영이 어머니와 어색하게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았고, 난 촌스럽지만 쥬스
한 잔을 마셨었다.
내가 연락해서... 당황 했죠?
여전한 미소로 은영이 어머니는 나에게 말을 시작했다.
이 날의 은영이 어머니에 대한 옷차림은 여전히 생생하다. 약간 밝은 연두 빛의
원피스였는데, 어떻게 보면 굉장히 촌스러워 보일 수 있었지만, 그녀는 그것을 소화
했다. 아니, 극복을 했다. 정말 잘 어울렸다.
나이에 맞지 않게 굉장히 상큼해 보일 정도로...
은영이 어머니는 미녀였다. 지나가는 남자들이 한 번씩 힐끔 쳐다 볼 정도로 미녀였다.
맞은편에 앉아 있는 내가 그들의 시선을 느낄 정도였으니까. 그렇지만 은영이 어머니는
아랑곳하지 않고 나를 쳐다보며 말을 이어갔다.
사실 은영이 문제로...
당연했다. 은영이 어머니와 나의 접점은 은영이였으니까, 그녀 문제로 나를 보자고 했을
것이다. 은영이 어머니는 말을 시작한 후, 처음으로 잠시 뜸을 들였다. 이윽고 아랫입술
을 살짝 깨문 그녀가 단도직입적으로 나에게 말을 했다.
그렇지만 난 순간 은영이 어머니의 입술에 정신이 팔렸다. 살짝 입술을 깨물었을 뿐인데,
설명하기 어려운 매력이 느껴졌다. 아니, 매혹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은영이 좋아하죠? 혹시 사귀고 있나요?
은영이는 분명하게 나를 그녀의 어머니에게 친구라고 소개를 했다. 그렇지만 그녀의 어머
니는 생각이 달랐다. 은영이 어머니는 나를 은영이의 남자친구라고 보고 있었다. 갑작스런
연이은 질문에 나 역시 뜸을 들이며 어렵게 입을 열었다.
네... 그렇지만 사귀는 사이는 아닙니다.
당시에 나는 은영이를 좋아했다. 그리고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마음만 가질 수 있
다면 얼마의 시간이 걸리든, 기다릴 수 있다고 결심하기도 했었다. 비록 몸을 섞는 관계
였지만, 은영이가 나를 남자 친구로 인정하지는 않았기에 사귀는 사이는 아니었다.
그래요.. 음.
은영이 어머니가 다시 시간을 보내며 커피 한 모금을 마신다.
그녀가 마시는 커피 한 모금이 목으로 넘어가면서 약간의 떨림이 내 눈에 들어왔다.
정말 피부가 티끌 없이 새하얗고, 무엇보다 움직임 하나하나가 우아했다. 사람을 두고
이런 표현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고급스러운 느낌이 드는 여자였다.
은영이가 그동안 참 힘들었어요. 혹시... 어디까지 알아요?
은영이 어머니의 질문에 쉽게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녀의 질문 의도를 알 수 없었고,
질문 범위조차 단정 지을 수 없었다. 설마 은영이의 첫사랑과 그 후 아버지와의 마찰
등을 묻는 것일까.
표정을 보니까, 은영이가 다 말한 것 같네요?
대답을 주저했기 때문에 은영이 어머니는 표정으로 내 속내를 읽었다.
은영이 어머니의 의도가 무엇인지 알 길은 없었지만, 나는 이왕 이렇게 된 것, 솔직
하게 대답하기로 했다.
대충...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내 대답을 들은 은영이 어머니는 조금은 환한 미소를 보였다.
그 때는 그 미소의 의미를 알지 못했다.
조금 다른 사실도 있지만... 어찌됐든, 고마워요.
은영이 어머니가 나에게 고맙다는 말을 했다.
왜 갑자기 고맙다고 말을 할까 의아스러웠지만, 곧바로 그녀의 말이 이어졌기 때문에
궁금증은 오래가지 않았다.
알면서도... 은영이가 좋다는 거잖아요.
어떻게 생각하면 은영이의 어머니의 말이 꽤 상식적이었다.
아무리 과거일 뿐이라지만, 은영이의 과거를 알고 그녀를 좋아하는 것은 쉽지 않았을
테니까, 무엇보다 은영이가 아직도 첫사랑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
을 알면서도 기다려야 하는 건, 꽤나 심적 고통이 동반되는 일이었다.
최근에 은영이가 많이 좋아졌어요.
은영이 과거를 알면서도 좋아하고 있는 나에게,
그녀의 어머니는 쉬지 않고 아주 오랫동안 말을 이어갔다. 대부분의 내용은 내가 은영
이를 통해서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은영이 어머니는 은영이가 점점 좋아지는 모습이 내 덕분이라고 생각했다.
원래의 은영이는 첫사랑 사건 이후로 거의 집 밖을 나가지 않았다. 그 전에는 강제로
감금 생활을 당했지만, 첫사랑이 떠난 이후로는 스스로 감금 생활을 선택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결국 시간이 약이라고, 은영이는 용기를 내서 밖으로 조금씩 나서기 시작했다.
검정고시도 준비했고, 간호에 대한 꿈도 키워 나갔다. 그쯤에 나를 우연찮게 만난 이후
로는 집 밖으로 나서는 일이 더더욱 많아졌다고 한다. 그리고 은영이 어머니에 따르면
웃는 모습도 늘어났다고 했다.
그런데 웃는 모습이 늘어났다? 그렇다면 평소에는 굉장히 어두웠다는 뜻인데, 이 부분은
조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은영이는 항상 내 앞에서는 미소가 끊이질 않았으니까. 더불
어 외적으로 두 모녀가 전혀 닮았다고 생각되지는 않았지만, 웃는 모습만큼은 하나였으
니까, 그런 은영이가 평소에 웃지를 않았다니, 믿기 어려웠다.
만나자고 한 이유가 그거예요.
은영이는 그녀의 친 어머니와 살고 있지만, 집에서는 거의 무표정이라고 했다.
그렇지만 내 앞에서 표정이 풀어지는 모습을 보였고, 은영이 어머니는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그래서 더더욱 나를 만나고 싶어 했다.
은영이 어머니 입장에서 은영이는 웃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녀를 웃게 만든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은영이가 과거에서 벗어나 더 밝은 삶을 살 수 있으려면 그 옆에
내가 있어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고 했다.
미안해요. 내 딸만 생각해서...
사실 은영이 어머니가 미안해야 할 일은 아니었다.
나 역시 은영이가 그러한 삶을 살기를 원했다. 무엇보다 내 마음속에 그녀가 들어왔기
때문에 어쩌면 나의 의무라고 생각을 했다.
나는 은영이 어머니에게 이런 내 심정을 솔직하게 말했다.
아직 어리지만, 그녀의 과거도 다 안을 수 있다고 강조했고, 지금은 은영이가 마음을
받아들이지 않지만, 마음을 받아줄 때까지 기다릴 것이라고 말했다.
어쩌면 치기어린, 객기어린 말이었지만, 은영이 어머니의 눈가에는 눈물이 그렁거렸다.
과거 때문에 힘들어하는 자신의 딸 앞에 밝은 미래를 약속해주는 남자가 있었으니,
그녀의 눈물도 이해가 될 무렵, 그녀가 갑자기 두 손으로 내 한 손을 덥썩 잡는다.
고마워요. 정말...
나는 어쩔 줄 몰랐다. 오른 손이 은영이 어머니의 두 손에 잡혔고, 그녀의 진심이
충분히 느껴졌지만, 생각지도 못한 스킨십은 나를 자꾸 이상한 생각으로 젖어들게
만들었다.
은영이 어머니의 손, 그녀의 손가락은 나이에 맞지 않게 가늘고 여렸다.
그리고 부드럽고 따스했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렀고, 은영이 어머니는 눈가의 눈물을 손수건으로 훔쳤다.
그제야 내 오른손도 그녀의 두 손에게서 벗어날 수 있었는데, 조금은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 한 번 은영이랑 같이 식사해요. 내가 집으로 초대 할게요.
눈물을 거둔 은영이 어머니는 이제 환한 미소를 보였다. 그리고 나에게 고마운
마음을 표시하기 위해서 저녁 식사 초대를 한다고 했다. 더불어 그런 자리를
마련하면서 자신의 딸과 더 나아진 관계로 발전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스물이 조금 넘은 나이, 아직 군대도 다녀오지 않았는데,
내 인생에 결혼이라는 사회적 관례가 일찍 다가올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장모라는 사람도 내 앞에 앉아 미소를 보이는 그녀가 될 것 같았다.
오늘 반가웠어요. 담에 꼭 저녁 함께 해요.
은영이 어머니와 작별의 인사를 나눴다.
비록 은영이와 먼 미래까지의 모습을 꿈 꾼 적은 없었지만, 그녀의 어머니와
좋은 관계를 유지할 계기를 마련했기 때문에 은영이와 긍정적인 미래를 생각
해 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때까진...
잘가요. 아참... 다음에 만날 때는 말 편하게 할게요.
은영이 어머니는 이 날 나와 헤어질 때까지도 존대를 잊지 않았다.
사실 중간 중간에 내가 말을 편하게 하라고 했지만, 그녀는 끝까지 말을 놓지
않았고, 다음 저녁식사 초대를 할 때, 나를 편하게 대한다고 했다.
외모도 외모지만, 참 교양 있는 여자라고 생각했다.
품위가 있고, 예의가 있었다.
그래서 더더욱 믿기 어려웠다.
오래 전일이라지만, 왜 바람을 피워서 이혼을 당했단 말인가.
그로 인해서 은영이와 아주 긴 시간을 헤어져야 했고, 지금도 조금은 어색해하는
모녀사이로 지내야 했다.
물론, 이 날 만남에서 은영이 어머니의 바람과 이혼에 대해서는 대화를 하지 않았다.
내가 알고 있더라도 그녀가 먼저 말하지 않는 이상 입 밖으로 꺼낼 문제는 아니었다.
은영이 어머니가 말한 저녁식사 초대는 생각보다 빠른 시간 내에 이뤄졌다.
그녀와 만남 이후 이틀 정도 지났고, 은영이가 나에게 연락을 했다.
이번 주말에 시간 되지?
은영이는 자신의 어머니가 나를 저녁 식사에 초대하고 싶다고 전해왔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발목을 다친 은영이를 집까지 무사히 데려다 준 보답이라고 했고, 은영이 역시
이번 초대에 크게 개의치 않아 했다.
시간... 당연히 되지.
은영이 어머니와의 약속도 있었지만, 사실 은영이를 보고 싶었다. 날짜를 세어보니까,
생각보다 그녀를 만난 지 오랜 시간이 흘렀다. 솔직히 고추도 급했다. 물론, 그 날은
오랜만에 은영이를 보더라도 그 짓은 할 수 없겠지만 말이다.
우리 집 기억하지? 7시까지 올 수 있어?
은영이에게 가능하다는 대답을 마치며 연락을 끊었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약간은 설렌 마음으로 그 약속을 기다렸던 것 같다.
그리고 약속 당일 빈손으로 가기에는 조금 염치가 없는 것 같아서 케익 하나를 사들고
은영이의 집으로 향했다.
은영이보다 그녀의 어머니가 나를 정말 반갑게 맞아주었다.
확실히 은영이는 그녀의 어머니와 함께 있을 때는 조금은 표정이 굳어 있는 모습이었다.
나와 단둘이 있을 때는 생글생글한 모습이 대부분이지만, 집에서는 그러지 못했다.
어서 와. 그냥 오지.
은영이 어머니가 내가 사온 케익을 받아들었고,
은영이가 그녀의 어머니에게 이상한 눈초리로 말을 했다.
왜 갑자기 말을 놓는 거야?
순간 당황할 수도 있었지만, 은영이 어머니는 능숙하게 대답을 했다.
딸 친구인데, 말을 편하게 하는 게 이상한 거야?
나 역시 두 모녀를 번갈아 보면서, 고개를 연신 끄덕거렸다.
은영이 어머니가 나에게 말을 편하게 하는 것이 마치 당연하다는 것처럼...
약간의 실랑이를 뒤로하고, 시간이 시간 인만큼 바로 저녁식사가 시작되었는데,
식탁에 차려진 음식들은 생각보다 굉장히 종류가 다양하고, 그 양도 많았다. 마치
한정식 집에 온 것처럼, 한 번씩만 집어 먹어도 배가 부를 것 같았다.
안주라고 생각하면, 편하지 않을까? 호호.
너무 많은 음식에 다 먹지 못할 것 같다고 하자, 은영 어머니가 웃으며 농담을 했다.
그러나, 그건 농담이 아니었다. 실제로는 저녁 식사는 곧바로 술자리까지 이어졌고,
남은 음식들은 자연스레 안주가 되었다.
저녁 식사를 하면서는 주로 은영이 어머니가 대화를 이끌었다.
사실 저녁 식사에 초대를 받았지만, 은영이 어머니와 내가 잘 아는 사이도 아니었고,
무엇보다 세대도 같지 않았기 때문에 공통된 주제로 대화를 하는 건 쉽지 않았다.
더불어 은영이 역시 자신의 어머니와 있을 때는 말이 많지 않았다.
그렇지만 술이 들어가면서 나는 조금씩 입을 열기 시작했다.
무슨 말을 했는지 지금은 기억나지 않지만, 식사 자리보다는 술자리가 확실히 유쾌하고
즐거운 것은 분명했다. 그게 바로 술의 힘이었으니까.
우리는 처음에 간단히 맥주와 소주로 술자리를 시작했다.
평소에 마시는 술이었기 때문에 정말 부담 없이 술잔을 비웠는데, 이 날 나는 두 모녀의
공통점을 또 하나 찾을 수 있었다. 은영이도 그러했지만, 그녀의 어머니 역시 생각 이상
으로 술을 잘 마셨다. 아니, 어쩌면 은영이보다 더 잘 마셨다.
정말 쉽게 쉽게 술잔을 비워가는 그녀를 보면서 도저히 따라가기 힘들었다.
나이도 어렸지만, 건장한 체격을 가졌던 남자보다 훨씬 술을 잘 마시다니, 정말 몸속
어디로 저 많은 술이 들어갈까 궁금하기도 했다.
나는 이미 얼굴이 벌겋게 올라온 상황이었다.
평소에 은영이와 술을 많이 마셨다고 생각했지만, 더 이상 버티기가 쉽지 않다고 생각했다.
직감적으로 여기서 몇 잔만 더 마시면 정신을 놓을 것 같았다.
이때, 은영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고,
그녀의 어머니가 나를 보며 살짝 윙크를 했다. 술에 취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녀가 아름
다워서일까, 아니, 둘 다였다. 은영이 어머니는 고혹적이었다. 마치 나를 홀리는 것처럼....
고마워. 은영이랑 이렇게 함께 술을 마시는 경우도 흔히 않았는데...
은영이 어머니가 나에게 다가와 귓가에 속삭였다.
그녀의 뜨거운 숨결이 내 볼을 간질거렸고, 안 그래도 벌겋던 내 얼굴은 정말로
새빨개졌다. 이때 은영이가 화장실에서 나오는 소리가 들렸고, 나 역시 자리에서
바로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다.
후아....
화장실 거울로 보는 나는 정말 술에 취해 있었다.
조금이라도 술을 깨려고 찬물로 세수를 했지만, 더 이상 마시지 않아도 수십 분이
지나면 정신을 놓을 것이 자명했다. 술주정 같은 실수를 하지 않으려면 지금이 골든
타임이었다. 집으로 가야만 했다.
빨리 와.
화장실에서 나온 나를 두고 은영이 어머니가 빨리 오라며 손짓을 했다.
그리고 최대한 눈을 집중해 그녀를 쳐다 봤다. 그녀의 앞에는 지금까지 마신 술과는
전혀 다른 술병 하나가 놓여 있었다.
그때까지 난 단 한 번도 양주를 마신 적이 없었다.
돈도 없었고, 얼마 전까지 술 맛도 제대로 몰랐다. 그저 흔 하디 흔 한 소주와 맥주만
마셨을 뿐, 양주는 생각도 해 본적이 없었다.
은영이 어머니는 글라스에 얼음을 채우고 나에게 양주 한 잔을 따라주었다.
지금도 기억하지만, 발렌타인 30년산이었다. 그때는 30년산이 아니라, 발렌타인이라는
이름조차 알지 못했다.
집에 가야한다고 생각은 했지만, 이미 술잔은 가득 찼고,
은영이 어머니는 나를 보낼 생각이 없었다. 더불어 은영이 역시 무표정으로 나를 향해
잔을 들어올렸다. 건배를 하라는 뜻이었다.
에라 모르겠다.
처음 마신 양주라 꽤나 독했음에도 얼음 덕분에 시원하게 마시기 시작했다. 발렌타인의
맛은 전혀 모르겠고, 그저 시원한 맛으로 목구멍으로 들이부었다. 한 잔, 두 잔, 그리고
석 잔... 사실 몇 잔을 마셨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난 필름이 끊겼으니까.
한참을 숙취해 부대끼며 잤다. 취한 상황에서 양주를 들이부었고, 무엇보다 양주 역시
처음 겪은 것이라, 그동안의 숙취와는 차원이 달랐다. 진짜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다.
어둠속에서 눈을 떠보려고 해도 눈조차 떠지지 않았다.
목이 타 미칠 것 같았는데, 마치 가위에 눌린 것처럼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살려달라고 소리치고 싶지만, 목소리마저 잠겨버렸다. 제발 물 좀 달라고 소리치고 싶었
는데, 도저히 힘이 나지 않았다. 이대로 죽는 건가 싶었다.
쪼르륵...
입술에서 물기가 느껴졌다. 누군가 내 입에 물을 적시고 있었지만, 입조차 벌리지 못한
상황이라 몸으로 수분이 들어오지 못한다. 그저 내 볼로, 내 목으로 나를 향한 생명수가
흘러내릴 뿐...
쪼오옥....
내 입술을 따스한 무언가 덮었다. 그리고 부드럽고 촉촉한 무언가 내 입술을 천천히 열기
시작했다. 더불어 내 입술 사이로 조금씩 물이 들어왔다. 그 물은 내 혀를 적시고, 목구멍
으로 빨려 들어갔다.
더...더...
생명수를 빨고 싶었지만, 힘이 없었다. 그저 부드럽고 따스한 곳에서 흘러내리는 그 생명
수만을 기다릴 뿐이었고, 조금의 시간이 지난 후 내 몸이 적셔짐이 느껴졌다. 그리고 나는
재차 정신을 놓았다.
한참의 시간이 지났을 것이지만, 나는 전혀 깨어나지 못했다.
정신을 놓으면서도 그저 순간순간 몸의 감각이 조금씩 느껴졌을 뿐인데, 어쩌면 이 역시
나만의 착각이었을지도 몰랐다. 정말 역대 최고로 정신을 논 상황이었고, 그 상황에서 무
언가를 느낀다는 것도 이상했다.
어느 순간부터 내 아랫도리가 따스했다. 부드러운 무언가가 내 아랫도리를 감싸 쥐고 있다
고 느껴졌다. 아마 발기가 됐던 것 같다. 몸은 죽겠는데, 내 소중한 그곳만은 극상의 부드
러움에 터질 것만 같았다.
조금이라도 움직이려고 했지만, 여전히 전혀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천근만근보다 무겁다는 눈꺼풀은 나의 시야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발기된 내 고추는 뜨겁고 촉촉한 속살에 유린당하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몸이 움직여지지 않고 눈이 떠지지 않으니,
이게 현실인지, 꿈인지 분간이 어려웠다. 더불어 숙취에 취한 내 정신은 다시 휴식이 필요
함을 알려온다. 조금씩, 조금씩 아득해진다. 숫자를 세어보지만... 다섯을 넘지 못했다.
은영인가... 싶을 때, 난 또 다시 정신을 놓았다.
아니, 애초에 정신을 차린 적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저 꿈이었을 지도...
은영이 어머니의 초대로 은영이 집에서 저녁식사 후 술자리를 가진 나는,
다음 날 정오가 넘어서야 정신을 차릴 수가 있었다. 정신을 차리자마자 누군가
건네주는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고, 곧바로 화장실로 달려가서 모든 것을 게워
냈다. 물조차 몸이 받아들이지 못했다.
괜찮아?
은영이 목소리였다. 화장실 변기에서 한참을 토한 나는 바닥에 주저앉아서
숨을 고르고 있었다. 괜찮냐는 은영이의 말에 나는 힘겹게 대답을 했다.
아니... 뒤질 것 같아.
말을 마친 나는 화장실 바닥에서 다시 한 번 정신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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