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모님이 내 첫사랑 (9) - 모래성

장인어른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민준아, 잠깐 나 좀 보자. 포장마차에서 기다릴게." 그의 목소리에는 평소와 다른 깊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민준은 올 것이 왔다는 불길한 예감에 휩싸인 채 발걸음을 옮겼다.
포장마차의 붉은 불빛 아래, 장인어른은 소주잔을 비우고 있었다.
민준이 자리에 앉자마자, 장인어른은 민준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말했다.
"민준아, 내게 진실을 말해주겠나.
민준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장인어른은 술잔을 내려놓으며 나지막이 말을 이었다.
"내가 얼마 전 병원에서 정자 검사를 했네. 무정자증이라고 하더군. 이제 알았네. 수현이가... 내 생물학적인 딸이 아니라는 것을."
민준은 숨을 들이켰다. 시한폭탄이 결국 터진 것이다.
장인어른은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그의 눈에는 깊은 슬픔이 고여 있었지만, 이내 애써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말이야, 민준아. 23년 동안 키워온 내 딸일세.
세상 그 누구보다도 사랑하는 내 딸이야. 그 어떤 피보다 진한 것이 부모의 정이라는 것을 자네도 알겠지."
민준은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장인어른의 덤덤한 고백은 민준의 죄책감을 더욱 짓눌렀다.
이제 더 이상 숨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민준은 떨리는 목소리로 23년 전의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첫사랑 과외 선생님이었던 지윤과의 만남,
어렸을 적 저지른 첫 번째 실수,
그리고 다시 만난 상견례 자리, 지윤의 은밀한 초대,
그리고 그날 밤 벌어진 뜨거운 관계까지. 민준은 자신의 모든 죄를 고백하듯 털어놓았다.
지윤이 수현과 자신을 통해 아이를 임신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까지도.
밤새도록 이어진 민준의 고백에 장인어른은 엉엉 울었다.
그의 눈물은 비단 배신감뿐만이 아니었다.
23년간 믿었던 모든 것이 허물어지는 고통, 그리고 사랑하는 아내와 딸에게 드리워진 거대한 그림자에 대한 절망이었다.
포장마차의 불빛이 꺼지고 새벽녘이 되어서야 장인어른은 겨우 울음을 그쳤다. 그는 흐트러진 머리를 쓸어 올리며 민준에게 말했다.
"잠시...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네."
그는 그렇게 민준의 곁을 떠났다. 민준은 홀로 남아 차가운 새벽 공기 속에서 자신의 파멸을 예감했다.
결혼식은 이제 취소될 것이고, 모든 진실이 세상에 드러나리라 생각했다.
결혼식 당일,
민준은 초조한 마음으로 식장에 도착했다.
하객들이 하나둘 자리를 채우는 동안, 그의 눈은 줄곧 문을 향해 있었다.
장인어른이 나타나지 않으면 어쩌나, 아니면 나타나서 모든 진실을 폭로하면 어쩌나 하는 공포가 그를 짓눌렀다.
식 시작 시간이 임박했을 때, 마침내 문이 열리고 장인어른이 들어섰다.
그의 얼굴은 밤새 울었는지 퉁퉁 부어 있었지만, 놀랍게도 그의 표정은 평온했다.
민준의 심장이 격렬하게 뛰었다.
장인어른은 지윤과 수현에게 다가가 짧은 인사를 건넨 후, 곧장 민준에게로 걸어왔다.
수현은 눈부신 웨딩드레스 차림으로 아빠 옆에 서서 민준을 바라보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장인어른은 민준의 곁에 서서 아무렇지도 않은 듯 어깨를 툭 치더니,
그의 귀에 나지막이 속삭였다.
"민준아. 내 딸 수현이를 잘 부탁하네."
민준은 숨을 들이켰다. .
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장인어른은 민준의 표정을 힐끗 보더니,
다시 한번 힘주어 말했다.
"수현이는... 내 딸이네."
그 말과 함께 장인어른은 수현의 손을 잡고 버진로드로 향했다.
민준은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굳어버렸다.
어젯밤 모든 진실을 들었던 그가, 아무것도 모르는 수현 앞에서 태연하게 그녀를 '내 딸'이라 칭하며 민준에게 딸을 부탁한 것이다.
그 순간, 민준의 등골에는 소름이 돋았다.
이것은 단순한 침묵이 아니었다.
사랑하는 딸을 지키기 위한 한 아버지의 처절하고도 묵묵한 희생이자, 민준에게 던지는 평생의 짐이었다.
경쾌한 결혼 행진곡이 울려 퍼지고, 수현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아버지의 손을 잡고 민준에게로 걸어왔다.
민준은 애써 미소 지으며 수현의 손을 맞잡았다.
그의 마음속에서는 죄책감과 안도감,
그리고 알 수 없는 전율이 뒤섞여 폭풍처럼 휘몰아쳤다.
이 결혼은 이제 세상에서 가장 위태롭고 비밀스러운, 운명의 장난 같은 서막을 올린 것이다.
1년 뒤, 민준의 삶은 더욱 복잡하고 기묘한 행복 속에 놓였다.
수현은 건강한 쌍둥이 아들을 품에 안았고, 지윤 또한 딸을 낳았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갓난아기 세 명이 한꺼번에 태어나면서 수현은 육아에 지친 나머지, 아이들을 데리고 엄마 지윤의 집으로 향했다.
어린 시절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이제는 엄마와 딸이 되어 서로의 아이들을 함께 돌보는 기묘한 동거가 시작된 것이다.
지윤의 집은 늘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했다.
수현의 쌍둥이 아들들과 지윤의 갓난 딸은 나란히 누워 옹알이를 하고, 때로는 손을 잡고 뒤뚱거리며 기어 다니기도 했다.
민준은 퇴근 후 지윤의 집에 들러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지윤의 딸은 민준에게 장모의 딸이자 처제였지만, 동시에 자신의 생물학적인 딸이었다.
민준은 자신의 아이와 처제 사이를 오가는 아이의 존재에 혼란스러웠지만,
동시에 묘한 책임감과 애착을 느꼈다.
지윤은 민준이 자신의 딸에게 특별한 애정을 보이는 것을 눈치챘는지,
가끔 민준과 단둘이 있을 때면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아이를 품에 안겨주곤 했다.
장인어른은 이 모든 기이한 상황을 묵묵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무정자증이라는 충격적인 진실을 홀로 감내하며, 수현과 지윤, 그리고 민준의 뒤얽힌 운명을 모두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 어떤 것도 발설하지 않았다.
사랑하는 딸 수현의 행복한 가정을 지키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그는 이 모든 비밀을 죽을 때까지 가슴속에 묻어두기로 결심했다.
묵묵히 아무것도 모른 채 해맑게 웃는 수현의 모습을 보며 장인어른은 스스로를 다독였다.
이 비밀이 언젠가 터져 모두를 불행하게 할 시한폭탄이 될지라도,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믿었다.
요즘도 수현과 지윤은 육아 동지이자 서로에게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다.
세상이 알면 경악할 진실 위에서 펼쳐지는 이 기묘한 가족의 행복은,
마치 잘 짜인 한 편의 막장 드라마처럼 아슬아슬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운명의 장난은 끝나지 않았지만, 그들은 그 안에서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행복을 찾아가고 있었다.
ㅡㅡ3년뒤 ㅡㅡ
3년 후, 민준의 삶은 죄책감과 묘한 행복이 뒤섞인 채 흘러갔다.
민준은 매일 퇴근 후 지윤의 집으로 향했다.
거실에는 아기 침대 세 개가 나란히 놓여 있었고, 옹알이 소리와 작은 발버둥으로 늘 활기가 넘쳤다.
그는 자신의 아들들이자 손주들이 될 쌍둥이와, 자신의 딸이지만 처제가 되는 지윤의 아이를 번갈아 안아 들었다.
지윤의 딸은 민준의 핏줄임을 증명하듯 민준의 이목구비를 쏙 빼닮아 있었다. 민준이 그 아이를 안을 때마다 지윤은 그의 눈빛을 꿰뚫어 보듯 미묘한 미소를 지었다.
장인어른은 이 모든 기이한 상황을 묵묵히 지켜보았다.
때로는 홀로 앉아 술잔을 기울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지만,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그는 다시금 침묵을 택했다.
이 가족의 행복은 거대한 거짓말 위에 위태롭게 세워진 유리성 같았지만, 장인어른은 그 성이 무너지지 않도록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다.
요즘도 수현과 지윤은 갓난아기 세 명을 키우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수현이는 어느날 갑자기 민준을
"아빠"
라고 등 뒤에서 불렀다.
민준은 섬득한 느낌을 안고 뒤돌아보았다.
ㅡㅡ 계속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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