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속에 잠들다. 07
네코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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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간전
바람속에 잠들다. 007
우리는 그렇게 죽은 듯이 누워있었다.
먼저 몸을 추스린 것은 그녀였다.
"후회는 안해요"
"그리고 너무 황홀했어요"
"제가 부담스러우시면, 사례는 충분히 하겠어요. 편하실 때로 하세요. 그러나 괜찮으시다면,
계속 저희집에 있어 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가끔......아주 가끔씩..... 절 모르는 척만 않으시면......."
마지막 말을 하면서 그녀가 떨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언제 내가 그녀의 가슴에 그
렇게 깊게 자리를 잡았는 지는,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도 잘 이해가 되질 않는다.
여하튼 그렇게 그녀와 나의 밀월 관계는 시작되었고, 난 너무도 즐거운 시간을 여유롭게 보
낼 수있었다. 그러나, 정작 문제는 그녀와의 관계에서 생긴 것이 아니었고..... 그 예상치 않
았던 문제로 인해서 난 마침내 그집을 나와야하는 지경에 다다르게 되었다.
그 날의 그 뜨거웠던 정사이후에 우리는 마치 줄타기를 하듯이 아슬아슬한 사랑을 나누기
시작했다.
그녀는 나날이 뜨겁게 색욕의 노예가 되어 가고 있는 것 같았다. 가정부 아줌마가 장을 보
러 나가는 시간이면 거의 어김없이 그녀는 내 방을 찾아 스며들어와 내 사랑을 갈구했다.
특히 어쩌다 내가 일치감치 외출이라도 하는 날이면 아들녀석하고 공부하는 저녁시간이라도
꼭 한번은 내방에 들어와 내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고 내려가곤 했다.
그런 날이면 나도 분명히 그녀가 올라올 수가 없음을 알면서도, 새벽까지 잠을 못이루고 뒤
척이곤 했다. 12시간도 안지나면 그녀의 부드럽고 풍만한 육체를 온몸으로 음미할 수 있음
을 잘 알면서도, 내 뜨거운 젊음은 지루한 기다림에 헐떡이고 있었다.
그녀는 아름다웠고 또 매력적이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욱 나를 자극하는 것은 그녀와의
이 비밀스런 관계였다. 혜경이 누나와의 관계가 근친이 주는 불륜에 대한 도덕에서의 탈출
이 촉발제였다면, 애들 엄마와의 관계는 극도의 비밀스런 그리고 어쩌면 큰딸과 나이차이가
얼마나지 않는 남자와 중년의 아름다운 유부녀가 어울릴 수없음을 알면서도 지속하고 있는
침묵속의 은밀함이 더욱 더 우리의 관계를 짜릿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었다.
난 그녀의 육체를 충분히 파악할 수있었다. 어느 순간엔가 우리는 우리의 섹스 시간표를 치
밀하게 짜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끝나고 정리가 되면 아줌마가 장에서 돌아오는 시간이 딱
맞아 떨어지게, 모든 것을 정확하게 조율하면서 다양한 섹스를 나눴다.
집안 여기저기에서의 섹스.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한 것은 그녀와 그녀의 남편만의 공
간인 안방 화장실에서의 섹스였다.
그곳에서의 섹스는 나나 그녀에게 불륜으로 인한 자극을 극대화 시키는 것이었다.
그곳에서의 그녀는 늘 광기를 가득 머금은 '바람난 중년 여인'으로 화해 버렸다. 그건 나에
게도 엄청난 자극이었다.
거울에 비친 그녀의 얼굴은 더 이상 그러할 수 없을 정도로 요염한 색기를 가득 담아내었
고, 나도 미친듯이 그녀를 탐했으며, 그녀는 온몸으로 울부짖었다.
어디서 그런 정력이 솟아 났는지, 우리는 거의 매일을 그렇게 몸을 불사르면서도 전혀 지치
지도 싫증나지도 않았다.
아마도 그만큼 서로에게 충분히 만족하고 있었던 것같았다.
그러던 어느 토요일날 밤이었다.
그날은 그녀의 남편, 즉 애들의 아버지가 구미에 있는 공장에 순시차 내려가고, 작은 애는
주말을 이용해 학원에서 설악산으로 스케치 여행을 떠난 날이었다.
막내가 자기방으로 건너간 후 난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우며, 그녀와의 관계를 떠올리며 작
은 흥분을 맛보다 문득 오늘 밤에 그녀와 함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위험한 생각에 '
피식' 웃음을 지으며, 방으로 돌아와 잠을 청하는데, 여간해서 잠이 오지를 않았다.
왜 그렇게 무엇인가 허전하고 아쉬운지...
얼마를 그렇게 뒤척이고 있었을까? 문득 문밖의 인기척이 내 신경을 깨워 일으켰고, 난 그
녀가 내 방으로 온 것이라고 단정을 했다. 잠깐의 고요가 있었고, 누군가 내 방의 손잡이를
돌리고 안으로 들어서는 것을 느낄수 있었다.
난 장난스레 눈을 감고 자는 척을 하고 있었다. 그녀가 조심스럽게 내 곁으로 다가오는 것
을 느낄 수 있었다.
"선생님!"
작은 소리였다. 그러나 그 소리는 마치 천둥처럼 내귀에 울렸고, 난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그녀가 아닌 그집의 큰딸이라는 것을 바로 알 수가 있었다.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났다.
"미나야!"
난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미 충분히 완숙한 처녀로서 그 내음을 강하게 내뿜고 있던
미나의 자태는 늘 마음 한구석에 조심스런 긴장을 불러일으켰는데...
그녀는 연한 분홍색이 도는 얇은 잠옷 차림이었다.
"무슨 일이니?"
아무 말도 없었다.
"선생님!..."
"왜 그래?"
역시 대답이 없었다. 난 침대에서 반쯤 일어난 채 그렇게 엉거주춤한 자세로 미나를 올려다
보고 있었고, 그녀는 그녀대로 두손으로 가슴을 가린채 그렇게 불안한 표정으로 날 내려다
보고 있었다.
한참동안 서로 말도 없이 그렇게 서로만을 응시하며 숨막히는 시간을 감수하고 있었다.
"왜그래? 미냐야..."
길고 무거운 침묵이 싫어서 던진 똑같은 질문이었다.
"무슨 일있니?"
"선생님... 나... 좀... 재워....줄...래...요?"
순간 난 뭔가로 강하게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뭐라고...?"
누가봐도 아름답고 매력적인 여자였다. 미나는... 그러나 나에게는 내 또래의 매력적인 젊은
여자로서보다는, 내 연인의 딸이라는 생각이 먼저 떠올랐다.
'안됀다....'
그녀의 손을 잡아 내 침대로 이끌라는 내 감정의 요구를 따를 수가 없었다. 내 이성은 나를
일으켜 세워 방의 불을 켜기위해 스위치로 향하게 하고 있었다.
"선생님... 싫어요... 불은..."
그녀의 목소리는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난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 지 몰랐다. 그저 아찔하고 경황이 없을 뿐이었다.
"미나야, 너와 나는 이런 관계를 맺어서는 안돼… 너와 달리 난 이미 세상을 너무 많이 아
는 타락한 놈이야. 우리는 아무리 그래도 어울리지 못하는 그런 쌍이란 얘기지. 넌 나 같은
사람이 아니고, 더 젊고 더 순수한 사람을 만나서 더 아름다운 사랑을 해야해"
가당치도 않은 이유를 주절대기에도 바빴다.
고개를 푹숙이고 있던 그녀가 작은 소리로 흐느끼기 시작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난 계속
매정하고 이성적으로 그녀를 돌려보냈어야 했다.
그러나, 내 감정이 그렇게 모질지 못했던 것같다. 난 그녀에게 다가가 그녀의 어깨를 다독거
려주었고, 그녀는 허물어지듯이 내 품에 안겨왔다.
"선생님, 나 선생님 사랑하는가 봐요"
마지막 말이었지만, 그 마지막 말로 인해 나와 미나의 관계는 미묘하게 얽혀들 것이라고 생
각했다.
그러나, 난 그날 밤 결국 그녀를 안아주고 입맞춰주고는 몇마디의 따스한 말로 격려와 사랑
을 표시하고는 그녀를 무사히 그녀의 방으로 돌려보냈다.
그러나, 문제는 그녀의 마음이었고, 그녀의 부모에게 한 그녀의 고백이었다.
날 사랑한다는, 자기가 나와 정식으로 사귀게 허락해 달라는, 그리고 나도 자기를 사랑한다
고 했다는 그녀의 고백...
그날 그녀의 아버지는 아주 기분좋은 웃음을 한참동안 흘렸고, 그녀의 어머니는 사색이 되
어 그녀의 고백을 듣고 있었다.
"미나를 사랑하나요?"
다음날 아침 집안에 단 둘이만 남았을때, 그녀는 나에게 단도직입적인 어조로 그러나 간절
한 눈빛을 띈채 어렵게 말문을 열었다.
"미나는 아주 예쁘고 사랑스런 아이입니다"
"미나는 이제 더 이상 얘가 아니예요"
그녀의 어조는 점점 딱딱해져 갔다. 그러나 그녀의 어투에는 엄마로서의 입장과 연적으로서
의 입장이 함께 묻어나 있는 듯 했다. 순간 난 위기임을 직감했다. 흔히 이런 경우의 답은
하나뿐이다.
"난 당신이외에 이집에 있는 다른 어떤 여인을 알지 못합니다"
그녀의 눈빛이 반짝하고 빛났다가 이내 우울한 기색을 띄였다.
"그러나, 미나는 당신을 사랑하고 있어요. 그건 엄연한 사실이예요. 흑흑"
그녀는 이내 울음을 터뜨렸다. 딸이 사랑하는 남자의 정부가 된 자신의 초라함 때문일까, 아
니면 자신의 사랑을 딸에게 빼았길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때문이었을까, 그녀는 어깨를 들썩
이며 울기 시작했다.
왜 이런 안타깝고 어려운 상황에서 난 묘한 뿌듯함을 느끼는 것일까?
매력적인 두 모녀의 사랑을 다 차지해서일까, 난 가슴 뿌듯한 포만감이 깃든 안위를 느끼고
있었다.
"선생님, 어떻게 하실 건가요?"
그녀는 더 이상 도도한 부자집의 안방마님이 아니었다. 날 사랑하는 내 여자였고, 내 눈길을
갈구하는 내 사랑이었다.
"떠나겠습니다"
그녀는 울던 눈을 크게 뜨고 날 쳐다보았다.
"안돼요...안돼... 어떻게... 이렇게 떠날 수가 있어요..."
그녀는 고개까지 크게 저어가면서 내말을 거부하고 있었다.
"내가 어떻게 찾은 사랑인데..."
뜻모를 얘기는 아니었지만,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었을때의 불편함도 있었다.
"연희씨, 이후부터 난 이집에 있기에는 어려운 입장이 아닌가 싶네요"
그녀의 울음은 더욱 커져만 갔다. 아마도 그녀는 내가 집을 떠난다고 하는 것이 그녀와의
모든 관계를 정리하겠다는 것으로 받아들여 졌었나 보다. 그건 내 본심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순간 그렇게 되는 것이 차라리 잘됀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난 더 이상의 말을 이어가지 않았다. 그녀는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아마도 서럽고
두려운 모양이었다.
난 조용히 그저 자리만을 지키고 앉아 있었다.
이제 곧 아주머니가 올 시간이었다. 난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시계를 흘끔 보고는 2층으
로 올라갔다. 마음이 착찹했다. 어떻게 풀어야할 지 막막하기만 했다. 비록 떠나겠다고는 했
지만, 그건 내 의사로 언제든지 뒤집어 놓을 수가 있는 상황이라는 것은 너무나 잘알고 있
었기에, 단지 어떻게 이 어려운 상황을 타개하느냐 하는 것만이 문제였다.
침대에 누워 지나온 날들을 더듬어 보았다. 그녀와 첫 섹스를 하던 날의 그 흥분과 열정. 그
리고 지금까지 가족들 몰래 이어졌던 그녀와의 사랑놀이. 모든것이 떠올랐다. 그녀는 시간이
지날수록 맛이 우러나는 그런 매력이 있는 여자였다.
난 여기서 그녀를 놓치고 싶지는 않았다. 그만큼 그녀는 충분히 매력이 있었다. 그러나 상황
은 묘하게 얽히고 섥혀 들어 있었다. 그녀의 딸이 공개적으로 사랑을 들고 나온 것이다. 진
퇴양난의 입장이었다.
한참을 그렇게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속이 답답해 졌다. 물을 마시러 1층으로 내
려갔을 때까지도 그녀는 똑같은 자세로 쇼파에서 그렇게 울고 있었다. 가슴이 저미어 왔다.
비록 나이 차이도 20살 가량이나 났지만, 난 그녀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었고, 그녀도 마찬
가지였다.
난 조용히 그녀에게 다가가 등뒤에서 그녀의 어깨를 보듬어 안았다. 그녀는 내 팔에 얼굴을
묻고 더욱 흐느껴 울었다. 고통이었다. 내가 그녀를 위해서 해줄 수있는게 아무것도 없었다.
단지 그녀를 조용히 안아주는 것뿐...
"아주머니는?"
"오늘은 좀 늦을 거에요... 수산 시장엘 좀 갔거든요...흑흑..."
그녀는 도대체 울음을 멈추지 못하고 있었다. 서러운 눈물이었던 것 같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자유이지만, 그 결실을 맺는 것은 일방의 의지만은 아니었다. 그만
큼 여건이 조성되어야 했고,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 것이었다. 그녀와 섹스를 하면
서, 난 그녀를 사랑한다는 감정을 문득 문득 느꼈었지만, 이렇게 상황이 어려워 지면서 내가
그녀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었음을 알수 있었다는 것이 한편으론 고맙고 자랑스러웠다.
"울지마, 연희씨"
"선생님, 아니 경수씨... 사랑해요"
그녀는 고개를 돌려 내 입술을 찾았다. 뜨거운 여자였다. 난 머뭇거리지 않고 그녀의 입술과
혀를 맞이해 갔다. 달콤한 여자였다.
난 입술을 떼고 그녀의 눈을 바라다 보았다. 불꽃이 피어 있었다. 그만큼의 열정이 어려있는
눈빛이었다.
난 그녀를 이끌고 그녀의 안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그녀와 그녀의 남편만의 침대로 향
했다. 평소에 그곳은 금지구역이었다. 그러나 그날 그녀는 그곳도 마다하지 않았다. 난 그녀
의 눈물을 혀로 핥으면서 그녀의 검은 홈드레스를 벗겨냈다. 거기에는 낮익은, 농염하고 매
끄러운 화려한 중년 여인의 뜨거운 육체가 유혹처럼 기다리고 있었다.
난 그녀의 몸 구석구석을 천천히 애무해 갔고, 그녀는 열심히 받아들였다. 그녀 또한 내 몸
을 구석 구석 소중하게 애무했고, 나또한 그녀를 가슴으로 받아들였다.
우리는 그렇게 천천히 서로를 사랑해 갔다. 내가 그녀의 비소를 애무해 가자 그녀도 내 물
건을 애타게 애무해 왔다.
온몸이 부르르 떨렸다. 난 그녀의 비소로 깊이 깊이 들어갔다. 뜨겁고 매끄러웠다.
천천히 허리를 움직였고, 그녀는 뜨거운 숨을 토해냈다. 정말 사랑스런 여인이었다.
"아하….죽어도 좋아요..."
한참을 열기속에서 뜨거운 사랑을 나누고 있을 때, 그녀는 울음기 담긴 목소리로 그렇게 나
지막이 속삭여 왔다.
사랑받는 방법을 아는 여인이었다.
"연희씨, 연희씨는 내 사랑입니다"
오랜만에, 혜경이 누나 이후에 정말 오랜만에 사랑의 열정에 빠져버린 난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를 사랑한다고...
"경수씨... 고마워요...."
우리는 그렇게 사랑을 불태웠다. 그래... 어쩌면 난 그때 그녀의 사랑속에서, 그녀를 사랑하
면서 다시 태어나고 있었던 것 같다. 나이나 신분의 차이라는 것은 어쩌면 껍데기에 불과한,
그래서 어렵지만 한꺼풀을 벗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 그런 것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난 행복했다. 이렇게 사랑스러운 여인이 내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난 충분히 행복했다.
*** 지금은 이미 손주를 둔 할머니가 되었지만, 난 지금도 그녀가 충분히
아름답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가을 바람이 제법 옷을 여미게 만드는 그런 날이었다.
'저는 미나와 사랑을 나눌만큼 순수한 사람이 못됍니다'라는 어리숙한 변명을 남기고 난 우
이동 골짜기를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갈 곳이 없었다. 그렇다고 집으로 들어가기에는 내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았고...
그렇게 많던 친구놈들도 그 당시에는 머리속에 확연히 떠오르는 얼굴이 없었다. 버스를 기
다리며 애꿎은 담배만 피고 있다가 문득 '명숙'이 얼굴이 떠올랐으나, 이내 어이없는 웃음도
흘러나왔다.
오라는 곳도, 갈 곳도 없는게 그렇게 한심하고 초라한 것인지 몰랐다.
주머니에 돈은 충분히 있었으나, 혼자 있기에는 기분이 영 아니었다.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굴러먹고 싶지도 않았다.
연희씨를 생각하자 갑자기 가슴 한켠이 저려왔고, 서럽게 울던 모습이 떠올라 코끝이 찡해
왔다. 돌아서서 나온지 얼마나 되었다고 그새 그녀가 그리워졌다.
감히 '사랑했노'라고 말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로 가나.....'
무한정 길거리에 널브러져 있고 싶지는 않았다.
문득 지난 학기초에 미팅에서 만났던 아이와 같이 찾아갔던 춘천이 생각났다. 그때 우리는
그 아이의 친구가 다니는 대학의 'open기숙사'때를 맞춰 춘천을 찾아갔었고, 거기서 그 친
구와 술을 마시며 치기롭지만, 많은 얘기를 나눴고, 한마디로 얘기가 통하는 여자라는 느낌
을 강하게 받았던 아이가 있었다.
성북역에서 기차를 타고 가면서, 참 무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도 기숙사에 있는 지부
터 시작해서 기숙사가 아무때고 외인의 출입을 허용하는 곳인지 아닌지도 전혀 모르는 상황
에서 무작정 그 곳으로 가고 있는 내 자신을 돌아보자 참 한심스런 생각이 들었다. 그저 기
차 여행을 한다고 치부하기로 했다.
춘천은 서울보다 날씨가 더욱 좋았다. 단풍이 더 짙었고, 바람도 훨씬 상쾌하게 다가왔다.
'며칠 이렇게 여행이나 다닐까?' 하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조금 홀가분해지는 것 같았다.
역에 내려서 택시를 잡아타고 무작정 학교로 향했다. 여자들만의 대학에 젊은 남자놈을 쉽
사리 들여보내줄리가 없었다. 간신히 기숙사 전화번호만을 얻고서 발걸음을 돌렸다. 시내는
제법 사람들이 북쩍 거리는 것이 도시의 모양을 갖추고 있었다.
여기저기 보이는 닭갈비집들중에서 골목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한 집을 찾아 들었다. 저녁
치고는 이른 시간인데도 여기저기 몇몇씩 앉아 술을 마시기도 하고 식사를 하기도 하고 있
는데, 소리도 제법 웅성웅성해서 그런데로 외롭게 마시는 분위기에 짓눌리지 않을만한 곳이
었다.
술을 마시면서 내내 연희씨 생각을 했다. 나에게 더할 수없이 정성을 들였던 여인이었다. 그
리고 나 또한 진심으로 그녀를 원했고, 사랑했다.
행복했다고 자부할 수 있는 시간이었고, 그런 여인이었다.
흘러내리는 눈물을 술과 함께 삼키며 창밖을 쳐다보았다. 이제 밖에 서서히 어둠이 드리워
지고 있었다. '그래, 차라리 밤이 길어라!'
영주는 내 전화를 받고 무척 놀라는 듯 했다. 그러나 반색을 하면서 기쁘게 대응을 하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은 그런 아이였다.
"어디세요?"
내가 누군지를 밝히고 한번 봤으면 좋겠다고 하자 바로 어디냐고, 한번 봐야한다면 자기가
서울까지라도 가겠노라고 귀여운 응대를 하는 그런 아이였다.
있는 곳을 대충 설명하자 알았다는 듯이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아마도 준비하는 시간이 길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한시간쯤 더 그렇게 술을 마시고 있으려니, 정말 신기할 정도로 정확하게 그곳으로 찾아왔
다.
"내가 뭐랬어요, 내가 올거라고 이곳 전화번호 필요없다고 했죠? 후후..."
몇달사이에 더욱 성숙해진 듯했다. 갑자기 사과 향기가 났다.
"혹시, 이집 단골 아닌가요?"
그녀는 한참을 낄낄 거리더니, 그렇다고, 그런데 춘천에 사는 사람도 아니면서 어떻게 이집
을 알았냐고 물었다.
"영주씨가 단골이니까요..."
그녀는 다시 키득키득 웃더니,
"술 안줘요?"
톤을 바꿔서 힐난하듯 재촉했다.
그렇게 우리는 술을 마셨다. 그녀는 나에게 봄날 내가 같이 자기를 찾아왔던 그 친구의 근
황이나, 내가 여길 다녀간 후의 사연을 묻지 않았다. 아마도 관심도 없거나, 아니면 그 친구
로 부터 상세한 얘기를 다 들어서 그러려니 했다.
내가 생각해도 난 참 우스운 구석이 있는 녀석이었다. 축제때 쌍쌍파티에 초대되어 간 나는
그녀가 나하고 한마디 사전 상의도 없이 자기 맘대로 머리를 쇼커트한 것을 보고는 그저 그
녀가 싫어졌다. 그리고 그녀는 긴 웨이브가 참 잘 어울린다고 여러번 얘기했었는데... 그리고
는 난 다시 그녀를 찾지 않았고 그녀의 친구들이 여러 경로로 나에게 전후사정을 알아보고
설명하려고 했지만 난 그냥 그녀를 더 만나지 않았었다.
| 이 썰의 시리즈 (총 10건) | ||
|---|---|---|
| 번호 | 날짜 | 제목 |
| 1 | 2026.06.29 | 바람속에 잠들다. 10 |
| 2 | 2026.06.29 | 바람속에 잠들다. 09 |
| 3 | 2026.06.29 | 바람속에 잠들다. 08 |
| 4 | 2026.06.29 | 현재글 바람속에 잠들다. 07 |
| 5 | 2026.06.29 | 바람속에 잠들다. 06 |
블루메딕 후기작성시 10,000포인트 증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