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속에 잠들다. 10
네코네코
0
19
0
1시간전
바람속에 잠들다. 010
이세상의 사람의 수만큼 많은 사랑의 정의에 우리의 사랑 방정식도 하나의 정의를 만들어
내고 있었고, 그 사랑은 나날이 깊어만 갔다.
"경수씨, 나 정말… 오해하지 말고 들어요. 나 정말… 경수씨 애기 갖고 싶어요"
발갛게 홍조를 띄며 수줍은 자태로 얘기하는 그녀를 보면서 어찌 사랑을 느끼지 않을 수 있
겠는가? 난 그저 있는 힘을 다해서 그녀를 안아줄 뿐이었다.
"있잖아. 김연희…내 애기….하하하"
그녀는 더욱 내 가슴 안으로 파고 들고 그런 날은 우리는 더더욱 미친듯이 열정적으로 사랑
을 나누곤 했다.
그렇게 깊게 우리의 사랑이 무르익어 가면서, 그녀는 조금씩 조금씩 용감해지고 있었다.
"경수씨. 우리 여행 가지 않을래요?"
말을 조심스럽게 한다고 하기 보다는 내 생각을 읽기 어려워 두렵게 말을 꺼냈다.
"어디?"
난 그녀의 가녀린 허리를 쓰다듬다가 볼에 입을 맞추면서 흥미를 보였다.
"아무데나요…"
"뭔 고민있어?… 그렇지 않고서야 '아무데나' 로 여행을 갈 연희씨가 아니잖아"
말을 하는 순간 난 어떤 영감 같은 게 떠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신혼 여행지라…"
난 팔을 머리 뒤로 깍지를 끼면서 혼자 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녀의 웃고있는 얼굴에 눈물이
고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경수씨!"
그녀는 온 몸을 던지듯이 내 품안으로 숨어 들어왔다.
사랑하는 사람과 비록 정식은 아니지만 여행을 하고 정신적 결혼을 하고자 하는 그녀의 그
섬세하고 작은 소망에 나도 코끝이 찡해졌지만 같이 눈물을 흘릴 수는 없었다. 차라리 '정
식으로 결혼을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지만, 그건 그녀가 극구 반대할 것이
뻔했기에 주접스럽게 내세울 제안도 아니었다.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여인이리라…
그렇게 해서 우리는 우리만의 여행을 계획하기에 이르렀다.
우리의 여행은 계획 단계에서 실행까지 모든 것이 그녀의 작품이었다.
그녀는 제주도를 너무도 가고 싶어했지만, 그곳에는 남편의 귤 농장과 사슴 목장이 있어 아
는 사람들의 이목이 너무 많다고 혼자 한참을 속상해 하다 결국 우리가 다음으로 선택한 곳
은 동해안 이었다. 물론 난 차라리 내가 몇 번 가본 적이 있는 동해안이 더 편했지만, 그녀
앞에서 그런 내색을 하지는 못했다.
우리는 3박 4일을 계획했다.
나야 3박이 아니라 30박을 간다고 해도 문제될 것이 없었으나, 그녀는 상황이 달랐기에 난
그녀가 어떤 명분으로 집 식구들에게 여행을 정당화 시킬 지가 궁금했지만 그녀가 얘기를
할 때까지 묻지 않기로 했다.
묵을 2군데의 호텔과 가서 사용할 렌터카 까지 모든 것을 다 준비하고, 강남 고속 버스 터
미날에서 버스를 타고 강릉으로 향하면서 그녀는 마치 첫 소풍을 가는 유치원생처럼 들떠
있었다. 왜 그 마음을 모르랴…
"경수씨, 내가 집에 뭐라고 하고 가는 줄 알아요?"
웃음기를 감추지 못하고 연신 싱글 거리면서 그녀는 내 아둔한 머리를 테스트하고 있었다.
"글쎄, 나하고 여행 간다고?"
그녀는 내 엉뚱한 대답에 '어머' 하고 놀라는 표정을 지었지만, 난 그저 담담한 눈으로 그녀
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응… 우리 헬쓰 같이 하는 아줌마들끼리 해변으로 놀러 간다고 했어요. 몸매 뽐내러…히히.
내 머리도 이만하면 아주 나쁘지는 않죠?"
남편이 100% 믿어줄 지 아닐 지는 이미 그녀에게 중요한 게 아닐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비밀스런 여행 자체만으로 그녀는 몹시 흥분하고 있었고, 그 흥
분이 그녀의 이성적 사고를 방해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여기서 그녀를 멈추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호텔에 짐을 풀기도 전에 우리는 서로를 안았고, 입술을 더듬어 찾았다.
언제나 처럼 그녀의 입술은 촉촉하고 부드러웠고, 운동을 열심히 해서 인지 몸은 오히려 점
점 탄력이 붙는 것 같았다.
"연희씨는 참 대단한 여자예요… 어떻게 이렇게 몸을 잘 유지하지요?"
수줍은 듯 그녀는 내 가슴을 더듬으며 그냥 '응응' 거리기만 했지만, 난 그녀가 우리의 나이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몸이나 옷에 신경을 많이 쓴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허리를 감아 쥐며 사타구니를 밀착시키자 '아하' 하는 비음과 함께 발 뒤금치를 들고 내 입
술을 찾았고 난 서두르지 않고 그녀의 입술을 천천히 빨면서 그녀의 옷을 하나씩 벗기기 시
작했다.
마치 잘 익은 과일처럼 그녀의 몸은 농염한 분위기를 풍겨내고 있었다.
적당한 키에 크고 아직도 탄력이 살아있는 가슴, 남편이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는 가는 허리
와 매끈한 아랫배, 그 아래에 넓게 퍼져 있는 납작한 엉덩이와 군살없이 잘 빠진 하얀 다리.
모든 게 오히려 내가 그녀의 나신을 처음 보았을 때보다 훨씬 다듬어지고 세련되어진 느낌
이었다.
언제나 그랬듯이 난 그녀를 세우고 그녀의 몸을 감상하는 것이 즐겁고 흐믓하기만 했다.
그 만큼 그녀의 몸은 균형이 좋았고 하나 하나의 모양새도 예쁜 그런 몸이었다. 별로 길지
않은 키스와 포옹에도 그녀의 꽃잎은 촉촉한 물기를 머금고 있었고, 늘 그녀의 그런 민감함
이 정겨웠다.
"샤워 할래요?"
적지 않게 같이 섹스를 해왔었지만, 같이 샤워를 해보기는 그때가 처음이었다.
온 몸에 비누칠을 하고 있는 내 뒤에서 그녀가 껴안자 그때까지 크게 긴장하지 않던 내 물
건이 힘차게 요동을 치기 시작했다. 간지럽다고 몸을 빼려해도 그녀는 막무가내로 가슴과
음부의 털을 비벼대며 낮은 신음을 흘렸고, 욕실의 분위기는 점점 고조되어 갔다.
문득 그녀의 안방 욕실이 생각나 웃음이 났지만, 행여나 가뜩이나 불안한 그녀에게 집 생각
이 나게 해서는 안됀다는 생각에 말문을 닫아 버렸다.
그녀는 능숙한 손길로 내 몸을 더듬고 애무하고 자극하면서 날 유혹하고 있었다. 나도 그녀
의 의도를 알고 인내를 발휘하며, 안고 주무르고 비벼대면서 그녀를 자극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렇게 같이 서로를 자극하면서 상대를 즐겁게 해주는데 정성을 다
했다. 한참을 그렇게 서로 애무하고 나서 물로 비누 거품을 씻어 나가자 거기 잘 익은 화려
한 나신이 내 앞에 현란하게 펼쳐져 있었고, 난 그녀의 안방 욕실에서 했던 것처럼 그녀를
거울 쪽으로 돌려세우고 뒤에서 그녀를 안아 갔다.
그녀의 표정이 금방 일그러지고 몸이 뒤틀리기 시작하는 것을 보니 많이 흥분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빠른 진퇴운동에 부드러운 손길 과 느린 진퇴운동에 강하고 자극적인 손길을
섞어 가면서 그녀를 환락 속으로 떨어뜨리고 있었다.
"경수씨… 아…. 좋아요… "
그녀는 몸을 돌려 내 입술을 찾으며 '좋다' 는 말만 계속했다.
유난히 그녀의 질이 강하게 조여 오는 느낌이었고, 그녀와 나 둘 다 사정이 임박했음을 알
았을 때 그녀는 결합을 풀고 몸을 돌려 욕실 바닥에 무릎을 꿇고 내 사정을 입으로 받아들
이기 시작했다.
그녀의 그런 적극적이고 과감한 섹스가 주는 즐거움은 쾌감이상의 것이었다.
난 물기도 마르지 않은 그녀의 몸을 안아 침대로 가면서 그녀의 눈빛이 유난히 빛나고 있음
을 보았다. 어느 때보다 흥분하고 있었음이다.
우리는 그날 늦은 저녁을 먹으러 가기 전까지 2번의 섹스를 가졌는데, 그녀는 여행이 주는
자유스러움과 낭만에 휩싸여 온갖 교성을 내며 진한 섹스를 했고, 오랜만에 나도 아주 만족
스런 섹스를 했다.
식사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왔을 때, 내가 웨이터한테 부탁해 준비해 놓았던 샴페인과 꽃에
그녀는 눈물을 찔끔거리며 안겨왔고, 내가 그녀를 안고 꽃을 건네며, 정식으로 프로포즈를
하자 그녀는 '엉엉' 소리까지 내며 울음을 터트렸다. 감격스러웠던 것 같다. 하긴 나도 경건
해 졌으니, 그녀에게는 상당히 충격적이었으리라…
그렇게 첫날 밤을 우리는 새로운 관계 속에서 다시 시작했고, 그녀는 더욱 적극적이 되었다.
저녁에는 회와 술을 즐겼고, 낯 시간에는 하루종일 해변에서 일광욕도 하고 수영도 하면서
지냈다. 매일 밤을 서로가 서로를 찾았고, 더 이상 뜨거울 수 없을 정도로 깊고 정열적인 사
랑을 나누었다. 어떻게 3일이 지났는지… 마지막 날이 되었고, 우리는 짧기만 한 순간이 원
망스러워 결국은 조금이라도 더 둘만의 시간을 위해 서울행 버스를 취소하고 렌터카를 서
울에서 돌려 주는 조건으로 그냥 몰고 서울로 향했다.
차 안에서 운전을 하면서 그녀는 내내 환한 얼굴로 얘기를 멈추질 않았고 나도 그런 그녀를
보면서 그녀와 여행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뿐이었다.
집에 와서도 그녀가 내게 보여준 그 절절한 사랑의 여운에 한참을 정신을 못 차릴 정도 였
었고, 세상이 온통 아름답게만 보인 것은 아마도 나만의 감정은 아니었으리라…
여행을 다녀온 후에 우리의 관계는 한층 발전해 갔고, 사랑은 깊어만 갔으나, 졸업 논문도
준비해야 했고 대학원 시험도 대비하느라고 내가 바빠진 관계로 만나는 횟수는 예전보다 줄
어들었다.
그렇게 바쁘게 대학에서의 마지막 학기를 보내는 중에 난 혜경이 누나 소식을 접하게 되었
고 기억의 한켠으로 물러나 있던 누나의 소식에 난 혼란스러워 졌다.
4학년 2학기가 되어 학점 열람을 하고 나서야 1학년 1학기 때 교양 수학을 제대로 이수하지
못한 것을 알았다. 황당했지만, 어쩔 수없이 강의를 들어야만 했다.
교양관은 신입생들로 항상 시끌 벅적한 곳이었지만, 오랜만에 젊고 발랄한 1학년들과 어깨
를 부딪히며 복도를 다니는 것도 그리 기분 나쁜 경험은 아니었다.
첫 강의를 들어가서야 선생이 이제 막 전임자리를 딴 젊은 여자 선생이라는 것을 알았다.
우스운 얘기지만, 누나나 연희씨와 관계를 맺은 이후부터는 웬만한 여자들은 오히려 어리게
보였고, 사실 어떤 면에서는 내가 그만큼 성숙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떨쳐 버릴 수
가 없었다.
선생은 이제 갓 30을 막 넘어선 젊은 여자였고, 박사 학위를 받은 후의 첫 강의였다.
젊고 잘 생긴데다가 지위가 지위인지라 자신 만만하고 다소 거만하게까지 보이는 그런 여자
였다. 하얀 얼굴에 금테 안경을 쓴 모습이 참 깐깐하고 도도해 보였다.
대학원 준비도 해야 했고, 학위 논문도 준비해야 했기 때문에, 그리고 더욱이 1학년 교양 과
목을 제대로 이수하지 못한 관계로 재수강을 하는 입장이었으므로, 난 사실 선생을 믿고 수
업을 착실히 참여하는 성의를 제대로 보이질 않았다.
역시 모습대로 만만치 않은 선생이었다.
"최경수 학생, 오늘 수업 끝나고 내방으로 좀 와줘야 겠네요"
서리가 내린듯한 말투였다.
난감한 상황이었다.
'예' 라고 대답은 했지만, 사실 출석률이 60%가 안돼면 F학점을 때려도 할 말이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고, 동기들이 있는 수업도 아니어서 대출을 부탁할 만한 상황도 아니었기에 어
느 정도 선생의 양식에 기대를 했는데, 이 지경이 된 것이었다.
선생의 연구실을 향하면서, 이런 궁리 저런 궁리를 했지만, 뾰족한 묘수가 떠 오르질 않았
다. 그저 있는 그대로 얘기를 하고 난관을 극복하는 수밖에…
"들어오세요!"
쇼파에서 책을 보고 있던 김정애 선생은 마치 날 위해 준비했던 것처럼 차가운 표정으로 힐
끔하고 날 확인하고는 서서히 책을 내려 놓으며, 숨을 고르고 있었다.
"최경수 학생, 출석률이 아주 안 좋군요. 교양 과목이라고 출석을 제대로 안 해도 학점을 받
을 수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지요?"
차가운 바람이 불었다.
"네… 사실이 그렇습니다. 논문도 준비해야 했고, 진학 준비도 하는 관계로 제대로 출석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어리석게도 솔직히 교수님이 배려를 좀 해주실 거라고 믿었습니다
"
사실을 사실대로 얘기하는 수밖에 달리 방도가 없었다. 그녀는 잠시 날 응시하더니 책상에
서 출석부를 들고 왔다.
"딱 3번 강의에 들어왔더군요"
여전히 냉랭한 어조였지만, 처음보다는 다소 수그러진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약간의 희망
이 보였다.
"전 할 말이 없습니다. 교수님의 어떤 처분이라도 달게 받겠습니다"
어눌한 말투로 최대의 공손을 표했다.
"어떤 처벌이라도 받겠다…."
김정애 선생은 혼자 말로 중얼거리다 빙긋이 웃었는데, 난 그 순간을 놓치지는 않았다.
그러나, 아직 선생이 무슨 생각을 하며 웃는 것인지를 파악하지는 못했기 때문에 섣부르게
자세를 바꿀 입장도 아니었다.
"네…."
더 풀이 죽은 모습으로 고개까지 떨구고 대답을 했다. 아마도 초라해 보이길 바라며…
"좋아요, 그럼 몇 가지 리포트로 출석을 대신할 기회를 줄 테니, 내가 주는 몇 가지 논리에
대한 정의를 증명하는 리포트를 다음 주까지 작성해서 가지고 오세요. 그리고…"
그녀의 표정은 처음보다는 훨씬 부드러워져 있었다. 순조롭게 일이 풀려 나가고 있음을 느
낄 수 있었다.
여유가 생기기 시작하고 천천히 바라본 김 선생의 얼굴은 상당한 미인이었다.
비록 금테 안경을 쓰고 있어서 다소 날카롭게 보이기는 했지만, 뽀얗고 반듯한 얼굴은 이목
구비가 잘 조화를 이루는 잘생긴 얼굴이었고, 몸도 제법 늘씬해 보였다. 브라우스 위에 자킷
까지 입고 있어서 정확한 몸매를 보기는 어려웠지만, 스커트 밑으로 뻗어나와 있는 다리를
보니 전체적인 몸매를 추측할 수 있을 정도는 됐다.
"그리고… 그냥 그거로는 그렇고 뭔가 다른 벌을 하나 더 주었으면 좋겠는데, 경수 학생이
한번 골라봐요. 어떤 벌을 받을 건지…"
무슨 얘긴지 몰라 의아한 눈으로 쳐다보자, 김 선생은 빙긋이 웃으며, 리포트만으로 죄를 사
하기에는 내가 진 죄가 너무 중죄란다.
"저녁이라도 한번 모시겠습니다"
왜 문득 밥을 먹자는 제안을 했는지 모르겠다. 그냥 말이 그렇게 나온 것 뿐이었다.
"저녁이요?… 좋아요… 그럼 언제 사겠어요?"
"말씀 나오신 김에 이번 주 안으로 시간을 내주시지요"
그렇게 해서 생각치도 않게 김 선생과의 저녁 자리가 마련되었다.
금요일. 논문 때문에 빌린 책을 도서관에 반납하고 저녁 6시가 다 되어서 김정애 선생의 연
구실로 찾아 갔다. 교양관은 대부분이 신입생들 중심의 강의가 이루어지는 곳이었기에, 그
시간대에는 대부분의 강의가 끝난 뒤라 건물은 한가로웠다.
문을 두드리자 그녀가 깔끔한 하늘 색 정장 차림으로 까만 백을 들고 나왔다.
"갑시다"
그녀는 마치 우리가 잘 아는 곳을 가듯이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고, 난 그저 묵묵히 그녀의
옆에서 그녀가 가는 방향만 따랐다.
"양식을 아주 잘 하는 곳이 있는 데, 양식 좋아해요?"
그녀의 은회색 소나타가 주차 되어있는 주차장으로 향하면서 그녀가 물었다. 그녀가 나를
초대하는 것인지, 내가 그녀를 초대하는 것인지 모를 질문이었다
"좋아합니다"
차는 학교를 빠져 나와 한남대교를 지나 가고 있었다. 가을이 역력해 차창으로 들어오는 바
람이 시원하고 싱그러웠고, 밤이 어두워지면서 강남의 야경이 조금씩 화려한 옷을 입기 시
작했다.
'Votre' 우리가 간 곳은 2층으로 아담하게 꾸며진 프랑스 요리 집이었다.
실내의 분위기나, 현악 3중 주를 하는 악단의 세련된 음악이나, 다 괜찮은 집이었다.
우리는 분위기에 어울리게 와인을 마셨고, 그녀의 탁월한 선별 능력으로 꽤 맛있는 음식을
즐길 수가 있었다.
"자주 오시는 곳인가 보군요?"
"아니… 가끔 오기는 하는데, 오늘은 특별히 경수하고 저녁을 먹는다 생각하니 이곳이 생각
나더군."
와인 탓이었을까? 아니면, 좋은 음악 탓이었을까? 그녀와의 어색하고 무거울 거라고 생각했
던 저녁 시간이 유쾌한 자리가 되었다. 나나 그녀나 선생과 제자라는 딱딱한 관계를 부담스
럽게 느끼지 않게 되면서, 가끔은 실없는 농담도 하고 서로 고개를 젖혀 가면서 낄낄 거리
며 웃기도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연구실이나 강의실에서와 는 달리 그녀는 밝고 명랑했으며 사고나 행동도 상당히 리버럴한
여자라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자신이 결혼을 하지 않는 이유를 구속 받기 싫어서라고 말하면서 여자답지 않게 크게 웃는
모습을 보면서 어쩌면 자유 연애 주의자가 아닐까 하는 궁금증이 든 것은 전혀 어색한 것이
아니었다. 말이나 행동을 두드러지게 해서가 아니라, 전반적인 분위기가 그런 느낌이었다.
하늘색 자킷 안으로 하얀 브라우스의 실루엣이 자꾸만 눈에 들어와 의도적으로 시선을 얼굴
에 고정시키려 하니 더욱 어색한 느낌이 들었는데, 그만큼 그녀는 나름대로 매력이 있는 여
인이었다.
저녁을 마치고도 우리는 와인 한 병을 추가로 더 마시면서 많은 얘기를 했다.
전에는 몰랐는데, 그녀는 미국에서 공부를 하고 온 유학파 였고, 그녀의 말을 빌리자면 유학
을 가기 전에는 결혼하자고 졸라대던 남자가 제법 있었는데, 유학을 마치고 돌아오자 한 놈
도 자기를 거들떠 보지 않아, '잘 먹고 잘 살아라' 하고 살고 있다고 했다.
그녀의 말 속에 외로움이 배어 있다는 것을 쉽게 감지했지만, 그렇다고 내가 뭐라고 위로해
줄 입장은 아니었다. 그저 '아직도 아름다우 신데요…' 라는 말 한마디를 건네는 것 정도 밖
에…
와인을 다 마시고 일어서면서 서로 돈을 내겠다고 우기다가 결국 내가 아르바이트로 돈을
좀 벌었다는 것과 이번에 내가 못 내게 되면 평생 천추의 한이 될 것이라고 너스레를 떨고2
차를 그녀가 책임지도록 해달라는 말에 약속을 하고 나서야 나는 계산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해서 예상치도 않았던 2차를 그녀와 함께 하게 되었고, 우리는 그녀가 가끔 술을 마
시고 춤을 추러 간다는 하이야트 호텔로 향했다.
| 이 썰의 시리즈 (총 10건) | ||
|---|---|---|
| 번호 | 날짜 | 제목 |
| 1 | 2026.06.29 | 현재글 바람속에 잠들다. 10 |
| 2 | 2026.06.29 | 바람속에 잠들다. 09 |
| 3 | 2026.06.29 | 바람속에 잠들다. 08 |
| 4 | 2026.06.29 | 바람속에 잠들다. 07 |
| 5 | 2026.06.29 | 바람속에 잠들다. 06 |
블루메딕 후기작성시 10,000포인트 증정
Comments

Highcookie
1시간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