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천년 3-6
네코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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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분전
第6章 여걸(女傑)의 위기
콰아아!
오 장 높이의 장쾌한 폭포수는 어둠을 쪼개며 여전히 웅장한 기세로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물 속에 잠긴 채 옷 위로 허벅지를 닦던 폭풍잠룡 군옥은 문득 움찔
하며 손을 멈추었다.
'살기(殺氣)!'
절정고수만이 느낄 수 있는 본능의 경각심이 그의 뇌리를 찌른 것이
었다.
거의 느낄 수 없는 미약한 살기! 하지만 그것은 틀림없이 인간의 몸
에서 흘러나오는 살기였다.
'나를 노리는 자가 있다!'
군옥은 가슴이 서늘해짐을 느꼈다.
그는 모든 감각기관을 동원하여 암습자의 위치를 찾아내려 했다.
하지만 그의 시야가 미치는 곳 어디에도 암습자의 종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잘못 알았단 말인가?'
주위를 돌아보던 군옥은 검미를 찡그리며 시선을 다시 연못으로 떨구
었다.
한데 그런 그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
물 속에서 번뜩이는 한 쌍의 눈이 지척에서 그를 향해 접근해 오는
것이 아닌가?
'물 속이다!'
군옥은 기겁하며 부르짖었다.
그렇다. 암습자들은 바로 다른 곳이 아닌 연못을 통해 접근해들고 있
는 것이었다.
그자들은 한결같이 전신을 벌거벗고 있었는데 기이하게도 피부색이
물빛과 똑같았다. 그 때문에 주의 깊게 봐도 그자들이 물 속에 잠겨
있는 것을 알 수 없을 지경이었다.
오직 눈빛만이 물빛과 동화되지 않았을 뿐이었다.
순간 군옥의 뇌리에 왜국(倭國) 인자들이 쓴다는 만색신묘법(萬色神
妙法)이란 위장술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가 그 이름을 떠올린 것은 극히 찰나에 불과했다.
"이놈들!"
쩌어어엉!
군옥의 입에서 사나운 일갈이 터짐과 함께 그의 손바닥은 어느새 연
못의 수면을 후려치고 있었다.
형언불가의 강력한 잠경이 군옥의 손바닥을 통해 뻗어나와 연못물 전
체를 뒤흔들었다.
수면으로 확 번지는 시뻘건 피, 그와 함께 십여 명의 벌거벗은 사내
들이 배를 뒤집고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그자들의 배가 터져 내장과 피가 연못 속으로 확 번졌다. 군옥이 연
못 속으로 후려친 잠경에 그자들의 배가 모조리 터져버린 것이었다.
"큿!"
하지만 군옥도 짧은 비명을 토하며 신형을 휘청했다.
군옥의 옆으로 가장 가까이 접근한 자가 배가 터져 죽으면서도 한 자
루 비수로 군옥의 허벅지를 찌른 것이었다.
그 비수는 보통 비수가 아닌 듯했다. 강인하기 이를 데 없는 군옥의
피부를 그대로 뚫고 들어온 것이다.
"크흑… 왜국의 인간 쓰레기들이냐?"
군옥은 쓰러질 듯 신형을 휘청하며 신음성을 발했다.
그와 동시에 그는 장을 쳐들어 자신을 찌른 자의 머리통을 벼락같이
후려쳤다.
퍼억!
사내의 머리통은 군옥의 장력에 스쳐 마치 잘 익은 수박통이 박살나
듯 쪼개져 버렸다.
하나 그 직후 군옥은 허벅지가 급격히 마비됨을 느끼며 안색이 창백
하게 변했다.
"으으……!"
그는 비틀거리며 폭포수 쪽을 향해 뒷걸음질 쳤다. 사면에서 살기가
느껴지나 폭포수가 떨어지는 곳에서는 살기가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
이다.
그러나 바로 그것이 함정이었다.
군옥이 휘청거리며 폭포수 쪽으로 등을 보인 채 물줄기 안으로 들어
갔을 때였다.
그는 갑자기 강렬한 통증이 왼쪽 어깨에 번짐을 느끼며 신음성을 발
했다.
동시에 폭포수의 줄기에서 으깨진 인육의 파편이 튀었다.
군옥이 폭포수를 등지는 순간 한 명의 인자가 폭포수 줄기를 타고 떨
어지며 한 자루 독비수를 군옥의 어깨에 박은 것이었다.
군옥은 무엇인가 섬뜩한 예감에 본능적으로 고개를 옆으로 숙였으며
그 덕분에 간발의 차이로 비수는 그의 정수리가 아니라 어깨에 꽂힌
것이었다.
그 직후 암습자는 군옥의 몸에서 일어난 강력한 폭풍진살(暴風震殺)
에 전신이 으깨어져 즉사하고 말았다.
군옥의 안면이 긴장과 분노로 굳어졌다.
"으음… 군유강이 보낸 개들이냐?"
쏴아아아!
그는 으르렁대듯 외치며 연못물에서 몸을 뽑아올려 연못 밖으로 날아
내렸다.
콰우우우!
모래사장으로 날아내리는 군옥의 발 주위로 일진광풍이 일며 마치 지
진이라도 만난 듯한 진동이 일어났다.
"컥!"
"크엑!"
직후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여기저기의 지면이 뒤집어졌다.
보라! 뒤집어진 모래 속에 안면이 온통 피로 물든 복면인들이 밖으로
기어나오고 있었다.
그자들은 지둔술(地遁術)로 모래사장에 은신해 있었고 그것을 눈치챈
군옥은 모래사장에 내려서며 강력한 진동을 지면에 투입시켰다.
땅 속에 숨어있던 자들은 그 거센 진동에 내장이 뒤집혀 죽어가는 것
이었다.
군옥은 밖으로 기어나오는 복면 인자들을 노려보며 싸늘한 살광을 번
뜩였다.
"잔수작 부리지 말고 나서라!"
그는 부득 이를 갈며 사나운 음성으로 외쳤다.
"크크읏! 역시 폭풍군도의 수령답군! 단 두 번의 공격으로 본문의 고
수 삼십여 명을 죽인 자는 그대가 처음이다. 폭풍잠룡!"
직후 한줄기 음산한 음성이 허공에서 들려왔다.
순간 군옥은 반사적으로 홱 고개를 돌렸다.
그런 그의 안색이 일순 싹 변했다.
보라! 한 명의 복면인이 검은 밤하늘을 딛고 표연히 서 있지 않은가?
-천초사랑(天草四郞)!
그자는 바로 동영 이가조의 수괴인 천초사랑이었다.
폭풍잠룡 군옥의 눈이 무섭게 빛났다.
'철사(鐵絲)를 밟고 있군! 저것이 동영 은밀종(隱密宗)의 살인암기
중 한 가지인 무흔탈명사(無痕奪命絲)!'
그는 허공을 딛고 서 있는 천초사랑을 노려보며 내심 빠르게 염두를
굴렸다.
그는 폭풍군도의 젊은 맹주답게 한눈에 천초사랑이 가는 철사 위에
서 있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었다.
그때 천초사랑이 허공에 표연히 선 채 다시 입을 열었다.
"이가(伊架) 흑풍조(黑風祖)의 번두(番頭) 천초사랑! 폭풍잠룡 각하
의 목을 베러왔소!"
그자의 음성은 음산하고 냉혹했다. 비록 음산한 살기가 실린 음성이
나 그자의 어투는 지극히 정중했다.
폭풍잠룡 군옥은 한차례 심호흡을 하며 침중한 어조로 일갈했다.
"군유강(君有强)에게서 청탁을 받았는가?"
독비에 찔린 그의 허벅지와 어깨의 상처는 급격히 마비되어가고 있었
다.
군옥은 어지간한 독(毒)에는 끄떡하지 않을 훈련을 받은 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비증세가 인다는 것은 인자들의 비수에 발려진
독이 예사 독이 아님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군옥은 지그시 입술을 물었다.
'속전속결해야만 한다!'
그는 내심 그렇게 결심했다.
그때 허공에서 천초사랑의 음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문답무용(問答無用)! 청탁자가 누군지 밝힌다면 자객으로는 실격이
아니겠소?"
군옥은 차가운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지. 인자(忍者)는 죽음으로 말한다던가?"
파앗!
싸늘한 냉소와 함께 그는 벼락같이 지면을 박찼다. 그는 단 일격에
천초사랑을 으깨버릴 작정이었다.
그리고 그에게는 충분히 그럴만한 능력이 있었다.
꽈르르릉!
한순간 날아오르는 군옥의 오른손이 뒤로 젖혀지며 젖혀진 그의 오른
손 주위로 강력한 우레성이 일어났다.
-폭풍참(暴風斬)!
그의 손에는 폭풍일문 최강의 파괴력이 응집된 것이었다.
폭풍참의 수법이 일단 토해지면 삼십 장 방원이 완전히 초토화되고
만다. 천초사랑이 제 아무리 빨라도 폭풍참에서 일어나는 폭풍강살의
돌풍에서 벗어나지는 못하리라.
그러나…
"호, 폭풍참인가?"
천초사랑은 날아드는 군옥을 보며 히죽 비웃음으로 웃었다.
그자의 말투로 미루어 보아 천초사랑은 폭풍참의 위력을 충분히 알고
있는 듯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자는 전혀 두려운 기색이 없었다.
군옥은 천초사랑의 태연한 태도에서 무언가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그런 그의 예감은 불행하게도 들어맞았다.
핑!
"크윽!"
다음순간 날카로운 쇠줄의 진동 소리와 함께 군옥의 입에서 고통의
비명이 터져나왔다. 그가 천초사랑을 향해 접근한 순간 허공에 쳐져
있던 또 다른 무흔탈명사에 걸린 것이다.
낮이라면 몰라도 어두운 밤인지라 군옥 정도의 시력으로도 결코 무흔
탈명사를 발견해 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천초사랑은 단지 미끼에 불과했다.
그자는 군옥이 흥분하여 자신을 격살하러 날아올 것을 예상하고 군옥
의 진로에 함정을 파놓은 것이었다.
무혼탈명사에 걸린 군옥의 허리 부분의 피부가 쩍 갈라지며 피가 확
솟구쳤다.
본능적으로 호신강기가 발휘되지 않았다면 그는 무흔탈명사에 내장까
지 다칠 뻔했다.
군옥은 아찔한 고통에 신형을 휘청했다.
"카카카앗! 걸려들었구나!"
그때 천초사랑의 입에서 득의의 음소가 터져나왔다.
스파파팟!
동시에 수십 가닥의 무흔탈명사가 날카로운 금속성을 내며 허공을 날
아다녔다. 폭포 주위에 은신하고 있던 인자들이 일제히 무흔탈명사를
날린 것이었다.
군옥은 흠칫하며 눈을 부릅떴다.
"이놈들이……!"
그는 허공에 뜬 채 다급히 쌍장을 휘둘러댔다.
우선 그는 얼굴과 목을 향해 날아오는 무흔탈명사를 쳐냈다.
하지만 그 사이 몇 가닥의 무흔탈명사가 빠르게 그의 몸통을 휘감아
버렸다. 무흔탈명사는 너무 가늘어 호신강기로도 튕겨버릴 수가 없다
.
"크흑!"
무흔탈명사에 포획되는 순간 군옥은 몸이 잘려나가는 듯한 고통을 느
끼며 비명을 내질렀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인자들은 무흔탈명사를 던져 벼락같이 군옥의
팔다리를 휘감아 버렸다.
그 바람에 졸지에 군옥은 사지를 벌리고 허공에 떠 있는 자세가 되어
버렸다.
그는 마치 거미줄에 걸린 곤충처럼 벗어나기 위해 몸을 바둥거렸다.
하지만 사지를 옭아매고 있는 무흔탈명사는 너무 가늘어 힘을 가할
수조차 없었다.
"크… 자객 따위에 걸리다니!"
군옥은 어쩔 수 없는 무력함에 통분을 금치 못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천초사랑은 음산하게 웃었다.
"세상은 힘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는 것이오, 도주!"
이어 그자는 허리춤에서 하나의 륜(輪)을 풀어들었다. 톱니바퀴처럼
날카롭게 생긴 륜이다.
천초사랑은 륜을 손에 쥐며 음산하게 히죽 웃었다.
"탈명비륜(脫命飛輪)이란 것이오! 도주 정도의 절정고수들을 베기 위
해서 특별히 만들어진 무기라오!"
말과 함께 그자는 탈명비륜을 좌우로 잡아 당겼다.
쩌어엉!
그러자 하나로 보이던 탈명비륜이 두 개로 나뉘어졌다.
두 개로 나뉘어진 륜은 마치 종이같이 얇았으며 그 톱날은 정교하기
이를 데 없이 세공되어 있었다. 한눈에 그것은 호신강기 파해 전문의
살인무기임을 알 수 있었다.
"잘 가시오!"
천초사랑은 군옥을 향해 음산한 어조로 일갈했다.
피이잉!
그자는 들고 있던 탈명비륜을 군옥을 향해 던져냈다.
군옥은 안색이 급변했다.
'안돼!'
그는 사력을 다해 호신강기를 일으켰다.
하지만 날아든 탈명비륜은 그의 호신강기에 부딪치고도 튕겨지지 않
았다.
카카카칵!
튕겨지기는커녕 그것은 맹렬히 회전하며 오히려 군옥의 호신강기를
찢고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퍼억!
마침내 탈명비륜은 군옥의 호신강기를 뚫고 들어와 그의 가슴팍에 깊
숙이 꽂혔다. 비록 군옥은 호신강기로 탈명비륜의 위력을 감소시키기
는 했으나 탈명비륜은 삼 푼 깊이로 그의 몸을 파고들었다.
"크으으으!"
삽시에 군옥은 가슴팍이 피범벅이 된 채 축 늘어져 버렸다.
천초사랑은 그 모습을 주시하며 음산한 웃음을 베어물었다.
"흐흐… 역시 하나로는 끝장낼 수가 없군!"
이어 그자는 가늘게 뜬 눈을 번뜩이며 두 번째 탈명비륜을 쳐들었다.
군옥은 극도의 고통과 과다한 출혈로 아득하게 정신이 흐려졌다.
'이것이 나 군여옥(君如玉)의 마지막인가?'
그는 혼미한 의식 속에서 천초사랑이 쳐든 탈명비륜을 주시하며 절망
의 표정을 지었다.
'용서하세요. 아버님, 소녀는 아버님의 원한을 풀어드릴 수가 없군요
!'
그는 가슴이 무너지는 듯한 처절한 절망과 회한을 느끼며 내심 중얼
거렸다.
한데 군여옥(君如玉)이라니.
폭풍잠룡 군옥의 진정한 정체는 사내가 아니라 여인(女人)이었단 말
인가?
모를 일이었다.
아득하게 정신을 잃어가는 군옥의 창백한 뺨으로 뜨거운 눈물이 흘러
내렸다.
"부디 극락왕생하시오!"
천초사랑이 축 늘어진 군옥을 바라보며 음산하게 말했다.
비이이잉!
이어 그자는 손에 쥐고 있던 두 번째의 탈명비륜을 세차게 던져냈다.
그자의 손을 떠난 탈명비륜은 맹렬하게 휘돌며 군옥의 목으로 날아
들었다.
드디어 탈명비륜에 의해 군옥의 목이 잘려지는 순간이었다.
한데 그 위기일발의 순간,
쩌어엉!
돌연 측면에서 한가닥 섬광이 벼락치듯 날아들었다. 그 발광체의 정
체는 찬연한 검기(劍氣)에 뒤덮인 한자루 장검이었다.
"어검… 술!"
요란한 금속성과 함께 천초사랑의 입에서 경악성이 동시에 터져나왔
다.
카카캉!
막 군옥의 목을 베려던 탈명비륜은 돌연히 측면에서 날아든 장검에
부딪쳐 요란한 금속성을 내며 튕겨져 나갔다.
그와 함께 허공으로 선연하게 번지는 핏줄기.
비록 어검술로 던져진 장검이 막아냈으나 탈명비륜이 날아들던 기세
는 완전히 멈춰지지 않았다. 그 때문에 탈명비륜은 군옥의 왼쪽 뺨을
스쳐 지나며 깊은 상처를 낸 것이었다.
하지만 군옥은 얼굴의 고통을 느낄 틈도 없이 반사적으로 장검이 날
아든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스스스! 파파팟!
그런 그의 시야로 어둠 속에서 수많은 검은 그림자들이 메뚜기떼처럼
날아올라 한쪽으로 덮쳐가는 것이 보였다.
무음(無音)의 암살자들,
꽈르르릉!
하지만 돌연 천지를 뒤흔드는 우레성이 터져나오며 덮쳐가던 암살자
들이 낙엽처럼 되튕겨졌다. 그 폭발은 강력하기 이를 데 없어 조금이
라도 폭발권에 든 인자들은 모조리 육신이 걸레쪽처럼 찢겨나가는 처
참한 죽음을 당했다.
그 놀라운 사태에 군옥은 경악으로 아연한 표정을 지었다.
'무서운 파괴력! 폭풍참(暴風斬)에 못지않다!'
아득하게 멀어지려던 그의 의식은 이 순간 찬물을 끼얹은 듯 생생해
졌고 힘없이 내려감겼던 두 눈도 경악과 충격으로 한껏 부릅떠져 있
었다.
하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나머지 인자들의 반응이었다. 그자들은 앞
선 동료들이 일거에 몰살당했으나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뒤이어 어둠
속으로 덮쳐가는 것이 아닌가?
피피핑! 쇄애애액!
덮쳐가는 그자들의 몸에서 갖가지 치명적인 암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가공하게도 수백 개의 암기들이 우박처럼 일제히 한점을 향해 쏘아
진 것이다. 어떤 고수라 해도 그같은 암기의 세례에는 견디지 못할
것이다.
"우우우!"
그 빗발치는 암기의 폭우 속에서 일순 사자의 포효와도 같은 쩌렁쩌
렁한 한소리 폭갈이 터져나왔다.
쐐애애액!
그와 동시에 하나의 인영이 믿어지지 않는 속도로 장권에서 치솟아
올랐다. 그 속도는 군옥이 알고 있는 한 우내에서 가장 빠른 인간인
무영천왕(無影天王)의 그것에 필적하는 것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신비인의 한소리 폭갈에 인자들은 오공에서 피를
뿌리며 벌렁벌렁 나자빠지는 것이 아닌가? 신비인의 장소성에는 인
간의 오장육부를 박살내는 무서운 살인음파가 실려있었기 때문이었다
.
그 광경에 군옥의 안색이 재차 일변했다.
'마음도(魔音島)의 고수인가?'
그의 안색이 핼쑥하게 변했다. 소리로 인간을 살상하는 공부하면 동
해(東海) 마음도(魔音島)의 그것에 필적하는 것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내 군옥은 고개를 저었다. 방금전 신비인의 음공에는 웅혼
한 구세불법(救世佛法)의 자비로움이 담겨있었다.
그것은 마음도(魔音島)의 살인적이고 비정한 음공(音功)에는 없는 것
이었다.
그때 일갈의 복마후(伏魔吼)로 두 번째 인자 무리들의 공격을 물리친
신비인을 향해 찬연한 섬광이 벼락같이 날아들었다.
검(劍)!
그것은 바로 그가 어검술로 던졌던 장검이었다.
그 장검은 빨려들 듯 신비인의 수중으로 날아들었다.
눈부신 섬광이 스러지자 장검의 형태가 드러났다. 그것은 평범한 장
검에 새카만 옻칠을 해서 광채를 숨긴 장검이었다.
돌연히 나타난 신비인은 물론 이검한이었다.
쏴아아아!
이검한이 장검을 받아드는 순간 인자들의 제삼파(第三派)가 마치 검
은 물결처럼 쇄도해 들어왔다.
오로지 눈빛만 번들거리며 덮쳐드는 인자들의 대열! 그 모습은 어지
간한 이검한조차 오싹 한기를 느낄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런 내심의 동요와 상관없이 이미 그의 손길은 치명적인 일
격을 내치고 있었다.
스악!
깨지기 쉬운 계란이라도 쥐듯 가볍게 쥐어진 장검이 완만한 호선을
주위에 그어냈다.
전혀 위력적이지도 특이해 보이지도 않는 일격이다.
그러나 그 직후 벌어진 놀라운 광경은 군옥 뿐만이 아니라 천초사랑
의 입조차 쩍 벌어지게 만들었다.
쩌저적!
문득 무엇인가 무른 것이 베어지는 듯한 소리가 어둠 속을 울렸다.
퍼퍼퍽! 후두두둑!
뒤이어 수많은 육신들이 토막토막 바닥으로 나뒹굴었다.
오오… 보라!
방원 이십 장 안에 있던 인자들이 모조리 도륙나 몰살 당한 것이 아
닌가?
"무… 무형천리검강(無形千里劍 )!"
군옥의 입에서 숨죽인 신음소리가 터져나왔다.
그는 알아본 것이다. 그 신비의 흑의청년 이검한이 장검으로 한차례
호선을 그리는 순간 무형무성의 검기가 일어나 사정권 내의 모든 것
을 두 동강 내버렸음을….
일시에 장내는 쥐죽은 듯 고요해졌다.
죽어간 인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사지가 잘라졌거나 몸통이 두 동강
났음에도 아직 숨이 붙어있는 인자들조차 단 한 마디의 신음도 흘리
지 않았다.
마치 무덤 속과도 같은 공포의 침묵.
그 가운데에서 군옥과 천초사랑의 시선은 돌연히 나타난 신비청년에
게 집중되어 있었다.
이검한은 유성신검황으로부터 얻은 복마신검결(伏魔神劍訣)로 은밀종
의 인자군을 몰살시킨 후 천천히 장검을 거두어들이고 있었다.
완만하고 느릿한 행동… 하지만 그런 그의 행동조차도 군옥과 천초사
랑에게는 오싹한 한기를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다.
"휴우우……!"
일거에 백여 명의 인자군을 몰살시킨 이검한은 장검을 거두어 들이며
나직하나 깊은 한숨을 토해냈다. 어떤 명분으로도 살인은 결코 유쾌
한 것이 될 수 없기 때문이었다.
"크크크!"
그의 한숨에 이어 돌연 쥐어짜는 듯한 웃음소리가 장내에 번졌다.
천초사랑!
그 웃음소리의 주인은 바로 천초사랑이었다. 졸지에 부하들을 모두
잃은 이가 흑풍조(黑風祖)의 조장인…
하지만 그자의 두 눈은 여전히 무심하기만 했다. 부하를 잃은 데 대
한 분노도, 이검한의 신위에 대한 공포도, 그리고 또 다른 어떤 감정
도 그의 눈에는 찾아볼 수 없었다.
최소한 겉으로 보기에는.
"훌륭한 신검법(神劍法)! 우리 대화(大和)의 긍지이신 신풍검조(神風
劍祖)님의 적수가 중원에 존재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천초사랑은 서툰 한어로 감탄했다는 듯 말했다. 그자의 말은 전혀 가
식이 아니었다.
"그대의 적수는 오직 신풍검조님 뿐이다! 그러나 먼저간 이가(伊架)
의 형제들을 위해 복수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스읏!
말과 함께 그자는 천천히 움직여 이검한의 삼 장 앞으로 다가섰다.
이검한은 말없이 천초사랑이 다가서는 것을 주시했다.
"이가(伊架) 섬안(閃眼)의 술(術)이란 것이다!"
천초사랑이 무감정한 어투로 이검한을 주시하며 말했다.
이어 그자는 눈에 쓰고 있던 나무로 된 가는 안경을 위로 벗어 올렸
다.
번쩍!
순간 천초사랑의 두 눈에서 돌연 태양빛보다 몇 배 강렬한 섬광이 작
렬했다.
"큿!"
이검한은 일순 신형을 휘청했다. 그 강렬한 섬광을 직시한 순간 그는
순간적으로 시력을 상실했다.
스악!
그 찰나를 노린 천초사랑! 이검한이 시력을 잃고 휘청하는 순간 천초
사랑의 신형이 유령처럼 이검한의 가슴팍으로 쇄도해 들어왔다.
그와 함께 미세한 금속성이 일며 가는 쇠사슬에 달린 날카로운 추(錘
)가 벼락같이 이검한의 가슴으로 날아들었다.
-유성탈명추(流星奪命錘)!
이가 흑풍조의 가장 무서운 살인암기다. 그것은 지극히 정밀하게 세
공되어 어떤 호신강기라도 꿰뚫을 수 있었다.
천초사랑의 섬안인술(閃眼忍術)에 시력을 잃은 이검한으로서는 마치
독사의 이빨같이 파고드는 유성탈명추를 전혀 피할 수 없을 듯이 보
였다.
하지만 눈을 감고 신형을 휘청이던 이검한의 손이 일순 미묘한 각도
로 흔들렸다.
실로 놀라운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이검한의 손에 들린 장검이 슬
쩍 흔들리는가 싶더니 그의 가슴으로 파고들던 유성탈명추를 정확히
쳐내 옆으로 흐르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
뿐이랴? 유성탈명추를 쳐낸 그의 장검은 달려들던 천초사랑의 가슴을
비스듬히 그어내렸다.
그렇다. 이검한의 검법은 이미 어떤 초식이나 상궤를 벗어난 수법이
었다. 그저 영감이 지시하는 대로 검이 움직일 뿐이었다.
그것은 바로 심검(心劍)이라 불리는 초극검예(超極劍藝)의 경지였다.
막 유성탈명추의 끝에 달린 낫으로 이검한의 정수리를 내리찍으려던
천초사랑은 두 눈을 한껏 부릅떴다.
그런 그의 상체는 가슴에서 옆구리까지 찢긴 상처에서 피가 확 번져
올랐다.
쿠우웅!
직후 순간적으로 굳어졌던 천초사랑의 몸뚱이가 뒤로 벌렁 나자빠졌
다.
그자의 외상은 그리 깊지 않았다. 하지만 이검한의 장검 끝에서 일어
난 검경이 그자의 폐부를 박살내버린 것이었다.
"크크읏! 역시다! 귀하는 나같은 인자(忍者) 따위가 이길 수 없는 상
대였다!"
천초사랑은 죽어가는 눈으로 이검한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신풍검조님에 필적하는 명인(名人)의 손에 죽는 것이니 나같은 하류
(下流)의 인간으로서는 영광이다!"
그자는 깨끗하게 자신의 패배를 시인하며 이검한의 능력에 찬탄을 아
끼지 않았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서서히 꺼져가는 눈빛.
하지만 죽음 앞에서도 천초사랑의 눈빛은 너무나 태연해 보였다. 영
문은 알 수 없었지만 그자의 눈가에는 어떤 안도감마저 떠올랐다.
그자는 바닥에 떨어져 있는 유성탈명추를 일견하며 끊어질 듯 미약한
음성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유성탈명추는 졸자의 분신(分身)이나 다름 아니다. 마사무네[正宗]
명인께서 백련정강(百鍊精剛)하여 만드신 명품이니 버리기에는 아까
운 물건이다. 귀하에게 전리품(戰利品)으로 주고 싶다!"
전혀 예기치 못했던 천초사랑의 뜻밖의 제안에 이검한은 흠칫했다.
그로서는 실로 납득할 수 없는 천초사랑의 태도였다.
하지만 천초사랑은 꺼져가는 미약한 음성으로 재차 간곡하게 말했다.
"부디 사양하지 마시기를!"
그 말과 함께 그자는 서서히 눈을 감았다.
'후훗! 나 천초사랑으로서는 사명을 다한 것이다!'
그자의 파리한 입가에 한가닥 야릇한 미소가 번졌다.
'유성탈명추에는 만리향(萬里香)이 묻어있고 네놈이 유성탈명추를 지
니고 있는 한 신풍검조님이나 호접야차희께서 너를 찾아내 복수를 해
주실 것이다.'
천초사랑의 사념은 거기에서 끝이 났다.
마침내 그자는 영겁의 세계로 돌아간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천초사랑의 내심을 알 리 없는 이검한은 의아함을 금치
못하며 검미를 찌푸렸다.
'이상한 자로군. 죽으면서 자신의 애병(愛兵)을 받아달라고 애원하다
니.'
그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어쨌든 굳이 천초사랑의 마지막 부탁을 저
버리고 싶지는 않았다. 그는 허리를 굽혀 바닥에 떨어져 있는 유성탈
명추를 집어들었다.
유성탈명추!
그것은 아주 가는 쇠사슬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것의 한쪽 끝에는 날
카로운 방추가 달려있었으며 다른 끝에는 접을 수 있는 형태의 낫이
한 자루 달려 있었다.
사슬의 길이는 삼 장 정도인데 둘둘 말면 한주먹에 들어갈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유성탈명추를 살펴보던 이검한은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의 표정을 지
었다.
'훌륭한 병기다. 동영제일의 명인(名人)이 만든 명기(名器)답다!'
그는 천초사랑의 유언대로 그것을 챙겨 품 안에 갈무리했다.
이어 그는 몸을 돌려 폭포 쪽으로 걸어갔다.
폭풍잠룡 군옥은 여전히 무흔탈명사에 감겨 허공에 떠 있는 상태였다
. 그는 허공에 뜬 채 다량의 출혈과 몸에 침투한 독기 때문에 반실신
해 있었다.
"곧 구해드리리다!"
이검한은 군옥을 향해 나직한 어조로 말했다.
차차창!
그는 장검에 무형천리검강을 실어 군옥의 몸을 옭아매고 있던 무흔탈
명사를 일거에 끊어 버렸다.
그와 함께 그는 질풍같이 날아올라 밑으로 떨어지는 군옥의 몸을 두
팔로 안아들었다.
군옥은 당당한 체격의 소유자였다.
하지만 이검한이 그를 두 팔로 안는 순간 이상하게도 나긋나긋한 느
낌이 전해졌다.
이검한은 그 느낌에 의아했으나 깊이 생각지 않았다. 그는 군옥을 안
아든 채 맞은편의 절벽으로 날아올랐다.
"고맙소! 누구신지 모르나!"
군옥은 이검한에게 안긴 채 비몽사몽 간에도 쓴웃음을 지으며 사의를
표했다.
"그런 말씀 마시오! 사해(四海)가 동포이거늘 같은 강호인이 어려움
을 당했을 때 돕는 것이야 당연한 일이 아니겠소?"
이검한은 미소 지으며 말했다.
이어 그는 절벽 위로 내려서며 조심스럽게 군옥의 몸을 바닥에 누였
다.
'끔찍하군!'
다음순간 이검한은 처참하게 상처를 입은 군옥의 모습에 소리없는 신
음을 발했다. 군옥의 몸은 무흔탈명사에 휘감겨 여기저기 자상을 입
은 상태였다.
그 중에서도 가장 심한 상처는 세 군데였다.
독바른 비수에 찔린 허벅지와 어깨의 상처. 그리고 탈명비륜(奪命飛
輪)이 박힌 가슴이었다.
이검한은 군옥의 상세를 살펴보며 문득 쓴웃음을 지었다.
'쯧! 이 친구를 치료해 주다가는 여기서 밤을 새겠군!'
그는 내심 혀를 찼다.
그는 폭풍군도의 맹주 폭풍잠룡을 암살할 목적으로 유황곡을 빠져나
왔다.
한데 생각지도 않게 왜국 인자들의 살수행과 조우하여 이 정체 모를
미청년을 구하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자신이 왜국 인자들의 손에서 구한 미청년이 다름아닌 폭풍잠룡 군옥
임을.
얄궂은 운명의 장난으로 이검한은 자기가 암살해야 할 대상을 오히려
구하고 만 것이었다.
이검한이 검미를 찡그리며 군옥의 상세를 살펴보고 있을 때였다.
"우우우!"
돌연 멀리서 한줄기 우렁찬 장소성이 들려왔다.
그와 함께 어둠 속으로 여러 개의 인영들이 빠르게 질주하는 것이 보
였다.
그 광경에 이검한은 흠칫했다.
'폭풍군도의 고수들인가?'
"어서 그들이 나를 찾지 못하는 곳으로 데려가 주시오!"
그때 반실신한 군옥이 다급한 어조로 더듬거리며 말했다.
어찌된 일이란 말인가! 다가오는 자들은 분명 폭풍군도의 고수들일
텐데 왜 군옥은 자신의 수하들에게서 피하려는 것일까?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알 리 없는 이검한은 군옥의 말대로 급히 그의 몸을
안아 들었다.
'이 친구 역시 폭풍군도의 적인 모양이군!'
그는 나름대로 그렇게 생각했다.
군옥을 안아든 그의 모습은 이내 유령같이 사라졌다.
"이럴 수가……!"
직후 경악성과 함께 여러 줄기의 인영들이 속속 장내로 날아 내렸다.
그들은 바로 흑수교룡과 폭풍군도의 고수들이었다.
장내에 내려선 순간 그들은 폭포 주위에 널려진 인자들의 무참한 시
체를 발견하고는 입을 쩍 벌리고 말았다.
그들은 안색이 대변하여 낭패한 표정을 지었다.
흑수교룡은 수하들을 향해 다급한 어조로 버럭 외쳤다.
"찾아라! 주군께서 위경에 처하신 것이 분명하다!"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폭풍군도의 고수들은 대답과 함께 일제히
신형을 날려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흑수교룡은 분노에 치를 떨며 이를 부득 갈았다.
"이것은 분명 군유강의 짓이다!"
그는 줄기줄기 분노의 살광을 폭사하며 중얼거렸다.
"소주의 옥체에 무슨 일이 생겼다면 네놈을 갈아먹고 말겠다. 군유강
!"
다음 순간 그 역시 몸을 날려 장내에서 사라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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