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천년 3-7
네코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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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분전
第7章 처절(悽絶)한 낙화
하나의 은밀한 산동(山洞)!
그 산동의 입구는 온통 무성하게 자란 칡과 등나무 넝쿨로 가려져 있
었다.
자세히 보면 동굴의 입구를 발견할 수 있었다.
폭풍군도의 고수들은 몇번이나 그 산동 앞을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누구도 그 산동을 발견하지는 못했다.
그것은 산동 주위에 한 가지 신묘한 진법(陣法)이 배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둔형육합진(遁形六合陣)!
바로 삼절진인(三絶進人)이 남긴 세 권의 기서 중 귀곡천서(鬼谷天書
) 상의 기문둔갑진이다.
귀곡천서 수준의 기문진학을 연마한 자가 아니면 그 진세를 파악하지
못한다.
"이럴 수가!"
문득 둔형육합진으로 위장된 산동의 안쪽에서 당혹에 찬 이검한의 신
음성이 흘러나왔다.
동굴의 안쪽에는 마른 풀이 깔려있어 쉴 만한 장소로는 부족함이 없
었다.
마른 풀 위에는 정신을 잃은 군옥이 반듯하게 누워있는데 그 옆에는
이검한이 황당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지금 군옥의 상의는 풀어 헤쳐져 있었다.
헌데 온통 피범벅된 상체의 가슴팍은 두터운 천으로 칭칭 감겨있지
않은가?
이검한이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를 리 없었다.
'이 친구, 여자였단 말인가?'
그는 당혹함을 금치 못하며 실소를 발했다.
여자(女子)!
그렇다. 폭풍잠룡 군옥은 사내가 아니라 여자였다. 여자라는 것을 숨
기기 위해 두터운 천으로 젖가슴을 칭칭 감아 가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 아니 그녀의 체격은 사내 못지 않게 당당했다.
육 척에 가까운 늘씬한 키에 탄탄한 근육질의 체형. 젖가슴만 감춘다
면 누구도 그녀가 사내라는 것을 의심치 않을 것이다.
이검한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서 사내치고는 너무 예뻤군!'
그는 비로소 군옥, 아니 군여옥(君如玉)을 보자마자 여자같은 느낌을
받았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말 못할 사정이 있었겠지!'
내심 그렇게 생각한 이검한은 조심스럽게 군여옥의 몸을 묶은 천을
풀기 시작했다.
지금 군여옥의 상세는 몹시 위독했다. 남녀의 예의를 따질 겨를이 없
는 것이다.
당당한 체격의 여인의 건장한 나신, 하지만 상대적으로 그녀의 살결
은 눈부시도록 흰색이었다.
이검한은 눈을 크게 뜬 채 군여옥의 당당한 몸을 주시했다.
'이 육중한 것을 감추어야만 했으니 꽤나 힘들었겠군!'
그는 실소를 발하며 내심 중얼거렸다.
그러나 그는 군여옥의 몸을 한가하게 감상할 여유가 없었다.
그녀의 하얀 가슴 사이에는 직경 반 자 길이의 하나의 날카로운 륜이
깊숙이 박혀있지 않은가?
먼저 이검한은 지력으로 군여옥의 혈도를 봉쇄하여 더 이상 피가 흐
르지 않도록 막았다.
그런 이검한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이어 그는 조심스럽게 가슴에 박힌 탈명비륜을 뽑아냈다.
륜의 표면에 여인의 붉은 피가 흥건히 묻어나왔다. 종이같이 얇은 탈
명비륜은 군여옥의 가슴에서 뽑혀나오며 날카로운 금속성을 냈다.
이검한은 검미를 모으며 내심 염두를 굴렸다.
'독상도 입었다. 어깨와 허벅지가 상구다!'
탈명비륜을 제거한 그는 이번에는 군여옥의 어깨에 우장을 붙였다.
군여옥의 어깨 부분은 시퍼렇게 변색되어 있었다. 지독한 극독에 중
독 당한 상처였다.
그녀가 어렸을 때부터 독(毒)을 상복하여 독에 대한 내성이 없었다면
독기는 이미 그녀의 골수에까지 미쳤을 것이다.
이검한은 군여옥의 모습을 내려다보며 내심 감탄의 표정을 지었다.
'대단히 강인한 체질이다. 태어나자마자 벌모세수를 받았기 때문이겠
지.'
그는 내심 중얼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그는 군여옥의 어깨에 댄 우장으로 한 가지 심법을 운용했다.
무형독강(無形毒 )!
바로 그것이었다. 독천존(毒天尊) 서래음으로부터 전수받은 독문 최
강의 독공(毒功)인…
츠츠츠!
무형독강을 운용하자 군여옥의 상처에 배인 독기는 빠른 속도로 이검
한의 수중으로 흡수되었다.
이검한의 오른손이 삽시에 새파랗게 물들었고 반면 군여옥의 피부는
원래의 뽀얀 피부빛을 회복하고 있었다.
이검한은 한차례 심호흡을 했다.
'휴… 여기는 끝났는데 문제는 저기다!'
그는 군여옥의 어깨에서 손을 떼며 그녀의 하체를 주시했다.
그런 그의 얼굴에는 난색이 떠올랐다.
군여옥의 허벅지 쪽은 온통 시뻘건 피로 물들어 있었다.
잠시 망설이던 이검한은 쓴웃음을 지었다.
'지체할 수 없다!'
내심 결심한 그는 더 이상 지체하지 않고 군여옥의 바지를 벗겨내렸
다.
그러자 잘록하게 들어간 허리와 그 아래로 풍만하게 벌어진 군여옥의
하반신이 드러났다.
탄탄하고 미끈한 근육질의 허벅지. 비록 근육질이었으나 그녀의 피부
는 옥같이 희고 매끄러웠다.
한데 그런 군여옥이 왼쪽 허벅지 안쪽은 시퍼렇게 변색되어 있었다.
독바른 비수가 그녀의 허벅지 안쪽을 찔렀던 것이다.
탄탄한 허벅지의 피부색이 시리도록 푸르게 썩어있었다.
그곳은 작은 옷으로 위태롭게 가려져 있었다.
이검한은 자신의 눈앞에 드러난 군여옥의 하반신을 바라보며 쓴웃음
을 지었다.
이윽고 상처가 난 곳이 허벅지 안쪽 부분이었으므로 어쩔 도리가 없
었다.
이검한의 양손이 군여옥의 다리를 잡는 순간 군여옥의 짙은 눈썹이
한차례 미미한 경련을 일으켰다.
하지만 이검한은 미처 그것을 발견하지 못했다.
이윽고 이검한은 떨리는 손으로 군여옥의 독기 서린 다리를 치료하기
시작했다.
이내 상처를 통해 독기가 이검한의 손으로 흡수되었다.
그와 함께 군여옥의 상아빛 다리는 다시 급격히 원래의 색을 회복하
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그녀의 몸은 치료된 것이다.
"휴… 겨우 끝났군!"
잠시후 이검한은 이마의 땀을 닦으며 군여옥의 몸에서 손을 떼었다.
'정말 당당한 체격이다!'
그는 새삼 감탄의 눈으로 군여옥을 내려다 보았다.
작은 옷 하나만으로 몸을 가린 채 무방비 상태로 누워있는 여인의 그
것은 강렬한 유혹을 물씬 풍겼다.
이검한은 어쩔 수 없이 마음에 작은 파문이 임을 느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건강한 사내로서의 본능적인 반응일 뿐이
었다.
잠시 군여옥을 내려다보고 있던 이검한은 이윽고 조심스럽게 군여옥
의 다리를 모으고 그녀의 옷을 입혀주려 했다.
한데 그때였다.
"그럴 필요 없어요!"
문득 죽은 듯 누워있던 군여옥의 입에서 한소리 나직한 탄식성이 흘
러나왔다.
이검한은 그 말에 움찔했다.
'깨어 있었군!'
그는 낭패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 군여옥은 이검한이 어깨의 상처를 치료할 때부터 이미 깨어 있
었던 것이다.
"저… 사실은 그게 아니라!"
이검한은 당황하며 어쩔 수 없는 일이었노라고 황급히 변명하려 했다
.
하지만 군여옥의 입에서 다시 흘러나온 말을 들은 이검한은 그럴 필
요가 없음을 알게 되었다.
"한 가지 부탁을 드려도 될까요?"
군여옥은 눈을 꼭 감은 채 여리게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말씀하십시오!"
이검한은 그녀의 태도에 의아했으나 내색하지 않았다.
군여옥은 한차례 길게 한숨을 내쉬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대강 짐작하셨겠지만 소녀는 피치 못할 사정으로 평생 남자로 위장
하고 살아가야만 하는 신세랍니다!"
그녀의 그 말에 이검한은 움찔했다.
'무슨 말을 하려는 게지?'
그는 뭔가 불길한 예감을 느꼈다.
그리고 그의 불길한 예감은 여지없이 들어맞았다.
군여옥은 여전히 눈을 꼭 내리감은 채 떨리는 음성으로 말을 계속했
다.
"소녀의 유모 부부 외… 은공께서 소녀가 여자라는 사실을 아는 유일
한 분이에요."
"……!"
"해서… 염치없는 부탁을 드리고 싶어요!"
거기까지 말한 군여옥은 얼굴이 새빨갛게 물든 채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다가 그녀는 용기를 내어 기어들어가는 음성으로 힘겹게 말했다.
"소녀를 여자로 만들어 주시지 않겠어요?"
이검한은 어안이 벙벙해지고 말았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으나 막상 군여옥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을 듣자
그는 뒷골이 띵해지는 충격을 받은 것이다.
"……!"
"……!"
동굴 안은 숨죽인 침묵으로 가득찼다.
군여옥은 수치와 긴장으로 숨조차 쉬지 못했다.
그녀의 오만함과 자존심은 이 순간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었다. 오직
이검한의 대답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그녀의 새빨개진 옥용을 내려다 보는 이검한의 안면은 곤혹함으로 물
들었다.
짧은 순간 그의 안색은 여러 차례 변했다.
그러다가 마침내 그는 결심하고 침중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후회하지 않겠소?"
그 물음에 군여옥은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절대로……!"
그녀의 어조는 나직하나 단호했다.
이검한은 내심 염두를 굴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되면 달아날 방법도 없다. 이 여자로서는 필사적으로 용기를
낸 부탁이었을 테니!'
그의 입가에 빙긋 미소가 떠올랐다. 사내처럼 당당한 체격을 지닌 군
여옥이 갑자기 사랑스럽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이검한은 조심스럽게 군여옥의 몸으로 손을 가져갔다. 그의 그런 행
동은 순진한 아이와도 같았다.
순간 군여옥은 눈을 감은 채 몸을 움찔했다. 자신의 몸에 남자의 손
이 닿자 마치 전기가 오른 듯 전신에 파르르 경련이 일었다.
이검한은 그런 그녀의 옷을 조심스럽게 벗겨 내렸다.
군여옥은 본능적으로 허리를 들어 이검한이 자신의 옷을 벗기는 것을
도와주었다.
천천히 그녀의 옷을 벗기는 이검한의 손도 떨리고 있었다.
'부끄러워!'
군여옥은 이검한의 시선이 자신의 몸에 닿음을 느끼고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이루 말할 수 없는 부끄러움과 알 수 없는 벅찬 감정
의 소용돌이가 그녀의 가슴을 두방망이질 치게 만들었다.
이검한은 수줍음에 떠는 군여옥의 얼굴을 바라보며 사랑스러움을 느
꼈다.
이검한의 손이 마침내 군여옥의 비역을 가린 마지막 보루에 닿았다.
순간 본능적으로 군여옥의 새하얀 알몸이 움찔하며 경직되었다. 하지
만 이내 그녀는 체념한 듯 몸에 힘을 뺐다.
자그마한 천이 벗겨지며 군여옥의 고귀한 처녀지도 이검한의 시야에
적나라하게 들어왔다.
이검한은 잠시 숨을 죽이며 눈 앞에 아낌없이 노출된 여체의 아름다
움을 응시했다. 사내 못지 않게 강건한 여장부의 육체다. 근육질의
팔다리는 이검한 자신에게 비해 전혀 못하지 않다.
그러면서도 그녀의 육체는 여자다움을 전혀 잃지 않고 있다.
속박에서 해방된 젖가슴은 어지간한 수박만한 크기인데 반해 그 위에
올라앉은 유실은 앵두보다도 작고 색도 엷어 귀엽기만 하다.
한아름은 됨직한 허벅지는 강철같이 탄탄해 보이는데 꼭 붙어서 그
중심부를 필사적으로 숨기고 있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그녀는 그다
지 체모가 많은 편이 아니라 허벅지 사이의 둔덕 아래로 깊이 파여내
려간 흠의 형상이 그대로 드러나 보인다.
군여옥의 알몸을 훑어보면서 이검한도 어느덧 극한에 이른 흥분으로
인해 숨이 막힐 듯했다.
그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자신도 서둘러 옷을 벗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군여옥의 탄탄한 육체 위에 겹쳐 누웠다. 그녀의
육체는 이검한에 비해 결코 작지 않다.
하지만 그 탄탄한 몸 위에 이검한의 몸이 겹쳐 눕는 순간 군여옥의
몸이 움찔 경직되며 창백한 입술에서 숨가쁜 신음이 새어나왔다.
아랫배에 느껴지는 육중한 사내의 체중, 그와 함께 온몸에 와닿는 타
인의 체온에 군여옥은 전율을 금치 못했다.
"소저……!"
이검한은 뜨거운 숨결을 내뿜으며 그녀의 몸을 더듬기 시작했다. 이
검한의 능란한 손길에 여체는 자지러진다.
이내 동굴 안은 후끈한 열기로 달아올랐다. 두 남녀가 내뿜는 숨결은
점점 고조되어갔다.
군여옥은 사내가 자신의 몸을 만져주는 게 그토록 기분 좋은 줄 난생
처음 알았다.
마력이 실린 이검한의 손길이 자신의 젖무덤을 터트릴 듯 거칠게, 그
러다가 봄바람처럼 보드랍게 어루만져줌에 따라 온몸이 자꾸만 위로
떠오르는 것 같다.
자신의 자그마한 유실을 살살 핥다가 또 갑자기 포악하게 잘근거리거
나 세차게 빨아대는 이검한의 탐닉은 아찔아찔한 현기증을 일으키게
만든다.
그녀는 자신의 몸이 저절로 음란하게 꿈틀대는 것을 느끼고 당혹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그녀도 자신의 몸을 통제할 수가 없었다. 허리
와 아랫배와 둔부가 저절로 민망하기 이를 데 없는 요동을 보이며 정
복자의 학대를 갈구한다.
몸의 중심부가 불로 지지는 듯 뜨거워진다. 철이 든 이래 간간히 느
꼈던 그 화끈거리는 작열감이 수십 배 수백 배로 더 강해져서 그곳으
로부터 온몸으로 번져가는 것이다.
빨리 그 열기를 가라앉히고 싶었다. 화끈한 것으로 누벼줘야만 그 견
딜 수 없는 미열의 작열감이 해소될 것이다.
자신도 모르게 군여옥은 이검한에게 하체를 부벼대며 안타깝게 재촉
했다. 그녀의 몸은 이미 스스로 열려있었다.
이검한은 그녀의 요구에 따랐다. 무쇠같이 강인한 그의 무기가 성문
으로 진입을 시작했다. 달아오를 대로 달아오른 성문은 꿀물이 낭자
한 채 한껏 벌어져 정복자를 맞아들였다.
그러나 아무리 달아올라 있다고 해도 그녀는 처녀의 몸이다.
군여옥은 무쇠공이 같은 단단하고 부젓가락처럼 뜨거운 공성구가 자
신의 비좁은 성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 몸이 둘로 찢기는 듯한 엄청
난 고통에 자지러졌다.
무쇠같은 다리를 활짝 벌린 채 그녀는 바들바들 떨었다. 자신이 마치
회초리에 맞아 기절한 개구리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드는 그녀였다.
그 사이에도 이검한의 회초리는 멈추지 않고 진입을 계속했다. 그 진
입이 얼마나 긴지 마치 목구멍까지 치미는 기분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아프면서도 싫지가 않았다. 한치 한치 자신의 몸
속으로 삼켜지는 사내가 너무도 뜨겁고도 사랑스러웠다. 자신의 마음
을 한 눈에 빼앗아간 이 헌앙한 청년을 모조리 자신의 몸이 삼켜버리
는 것만 같은 기분이다.
마침내 이검한은 완전히 군여옥을 정복했다. 자신을 뿌리까지 그녀의
몸에 결합시킨 이검한은 군여옥의 눈가에 맺힌 고통의 눈물을 부드
러운 손길로 닦아주었다.
이검한의 그 손길에 군여옥은 감격으로 몸을 떨었다.
서툴게나마 그녀도 이검한에게 매달려 몸을 움직였다.
서로의 결합 부위가 움직일 때마다 아찔한 작렬감이 느껴졌지만 그것
은 충분히 참을 만했다. 너무도 선명한 그 고통이 소녀에서 성숙한
여인으로 탈각하는 엄숙한 의식임을 그녀는 자각하고 있었다.
이검한도 조심스럽게 그녀의 드넓은 몸 위에서 파도를 타기 시작했다
.
미약하게 시작된 열풍(熱風)은 오래지 않아 광풍폭우(狂風暴雨)로 변
해 동굴 안을 몰아치기 시작했다.
뜻하지 않은 정사(情事), 그러나 뜨겁고 격렬한 정사였다.
* * *
삼경(三更) 무렵,
밤은 깊을 대로 깊어 사위는 온통 칠흑같은 어둠 속에 묻혀 있었다.
적막 속에 잠긴 유황곡(硫黃谷)!
열화대진(熱火大陣)으로 철통같이 방호된 유황곡의 외곽에는 한 명의
소녀가 어둠 속을 서성이고 있었다.
"아아… 제발 이가가께서 무사하셔야 할 텐데!"
초조한 표정으로 중얼거리며 잠 못 이루고 있는 소녀.
그녀는 나이답지 않게 숙성한 몸매를 지니고 있었다.
-벽력화(霹靂花) 뇌화영!
바로 그녀였다.
그녀는 지금 가슴 가득 한 명의 청년을 담은 채 남 몰래 연모지정으
로 애태우고 있었다.
이검한!
그 대상은 물론 이검한이었다.
뇌화영은 이검한을 만나는 순간 그에게 반하고 말았다.
하물며 그녀는 본의 아니게 자신의 깊은 곳까지 이검한에게 보여주고
말았다. 그런 이유로 그녀는 자신이 이검한의 여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알지 못했다. 이검한이 자신을 그저 귀여운 누이 정도
로만 알고 있다는 사실을…
그같은 이검한의 마음을 알 리 없는 뇌화영은 일방적으로 이검한을
연모하고 있었다.
한데 그런 이검한이 지금 폭풍군도의 수뇌부를 암살하겠다고 단신으
로 폭풍군도의 본영으로 떠나버렸다. 뇌화영이 안절부절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한데 뇌화영이 초조하게 서성대고 있을 때였다.
스슷!
돌연 한줄기 인영이 급히 열화대진 쪽으로 날아왔다. 초조한 기색으
로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다가오는 청년은 일신에 검은 야행복을 걸친
미청년이었다.
'이가가!'
순간 뇌화영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녀의 가슴은 세차게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청년은 분명 초저녁 유황곡을 빠져나간 이검한이 아닌가?
한데 어찌된 일이란 말인가? 이검한은 지금 폭풍군도의 젊은 도주 군
여옥과 함께 있지 않은가?
그런 이검한이 어떻게 이곳 유황곡에 나타났단 말인가?
옥비룡!
그렇다! 그자는 바로 이검한과 똑같은 모습으로 성형 수술을 받은 옥
도공자 옥비룡이었다.
하지만 그같은 사실을 까마득히 모르는 뇌화영은 희색이 만면하여 급
히 열화대진 밖으로 뛰쳐나갔다.
"이가가! 여기예요!"
그녀는 반색하며 외쳤다.
옥비룡은 돌연 열화대진 밖으로 뛰쳐나온 뇌화영을 보고 움찔 놀라는
기색을 지었다.
하지만 그자의 교활한 머리는 이내 이 소녀가 누군지 알아차렸다.
'뇌화영! 화왕(火王) 뇌곤륜의 쌍둥이 남매 중 딸쪽인 벽력화 뇌화영
이로구나!'
그와 함께 그자의 뇌리에 혈영여제 하후진진의 명령이 떠올랐다.
-유황곡으로 잠입하면 이검한으로 위장하여 벽력당의 계집을 아무나
좋으니 능욕하라. 열화잠룡(熱火潛龍)이란 어린 놈과 이가놈을 이간
질 시켜야 하는 것이니 가능한 화왕의 미망인을 겁탈하는 것이 효과
적일 것이다!
하후진진은 옥비룡에게 그렇게 명했었다.
그렇다. 그녀가 옥비룡을 벽력당에 보낸 이유는 바로 이검한과 열화
잠룡 뇌화룡 사이를 이간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러기 위해서 가장 효과적인 것은 이검한으로 위장한 옥비룡이 화왕
부인(火王婦人)을 겁탈하는 것이었다.
옥비룡은 빠르게 염두를 굴리며 뇌화영을 주시했다.
'꿩 대신 닭이다. 이가놈은 언제 돌아올지 모르니 이 어린 계집을 해
치워야겠다!'
내심 생각을 마친 옥비룡은 이내 안색을 친근하게 바꾸며 뇌화영을
맞았다.
"뇌매! 위험한데 왜 진세 밖으로 나왔느냐?"
이검한으로 위장한 옥비룡의 다정한 말에 뇌화영의 커다란 두 눈에는
찰랑찰랑 기쁨의 빛이 고였다.
"오빠가 걱정되어서 편히 쉴 수만도 없었어요!"
그녀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옥비룡의 팔에 매달렸다.
그런 뇌화영의 태도에 옥비룡은 내심 득의했다.
'이것봐라? 요 어린 계집이 먼저 꼬리를 치지 않는가?'
그자는 뜻밖에도 일이 순조롭게 풀리자 절로 기분이 유쾌해졌다.
그런 그자의 내심을 까마득히 모르는 뇌화영은 그윽한 눈으로 옥비룡
을 응시하며 물었다.
"그런데 왜 벌써 돌아오셨어요?"
옥비룡은 그녀의 질문을 미리 예상하고 있었던 듯 태연하게 대꾸했다
.
"놈들의 경계가 너무 심해 침투할 수가 없었다. 좀 쉬었다가 새벽녘
에 다시 시도해 봐야겠다!"
그 말에 뇌화영은 환하게 미소 지었다.
"잘 생각하셨어요. 우선 진세 안으로 들어가세요. 언제 폭풍군도 놈
들이 습격해올지 모르니!"
그녀는 옥비룡을 끌다시피 하여 열화대진 안으로 들어갔다.
옥비룡은 못이기는 척 하며 그녀에게 끌려들어갔다.
이윽고 두 사람은 진세 속으로 들어섰다.
"잠깐! 뇌매."
순간 옥비룡이 급히 뇌화영의 손을 잡아끌었다.
더 이상 진세 깊숙이 들어가면 빠져 나오기가 힘들어진다.
해서 그자는 진세 외곽에서 뇌화영을 해치울 속셈이었다.
"왜 그러세요, 이가가?"
옥비룡의 엉큼한 내심을 모르는 뇌화영은 의아한 표정으로 즉시 돌아
섰다.
"흑!"
다음 순간 뇌화영의 입에서 다급한 비명이 터져나왔다. 옥비룡이 갑
자기 와락 뇌화영을 끌어안고 그녀의 입술을 덮친 것이다.
옥비룡의 돌연한 행동에 뇌화영은 기겁했다.
하지만 그녀는 저항하지 않았다. 그가 이검한이 아니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그녀 쪽이 이같은 상황을 바래오지 않았는가?
옥비룡은 이내 뇌화영을 바닥에 쓰러뜨렸다.
이어 그자는 능숙하게 뇌화영의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뇌화영은 가슴이 마구 두방망이질 침을 느꼈다.
'아아… 이분도 나를……!'
그녀는 흥분과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그러나 두렵지만 동시에 한없이 기쁘기도 했다.
그토록 가슴에 품었던 낭군이었기에 그녀는 옥비룡의 짐승같은 행위
가 오히려 이검한이 자신을 사랑하는 증거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녀의 오해가 실로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을 초래할 줄이야.
삽시에 뇌화영은 옥비룡의 거친 손길에 의해 실오라기 한올 걸치지
않은 알몸이 되었다. 어둠 속에 뽀얗게 떠오른 그녀의 탄력있는 새하
얀 지체는 탐스럽기 이를 데 없다.
옥비룡은 거침없이 여린 그녀의 육체를 덮쳤다.
옥비룡의 무자비한 손길 아래 유린당하며 뇌화영은 당혹과 부끄러움
으로 신음을 터트렸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옥비룡의 손길을 거부하지 않았다. 그자를 이검한
으로 알고 있는 그녀인지라 오히려 옥비룡이 자신의 몸을 핥고 더듬
으며 욕심을 채우는 것을 보며 기쁨을 느꼈다.
자신의 육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즐거움을 준다는 사실이 가슴 뿌듯
한 그녀였다.
한순간 옥비룡이 그녀의 다리를 벌리고 들어왔다. 뜨거운 살덩이가
허벅지 안쪽에 닿는 것을 느낀 그녀는 진저리를 쳤다. 직접 보지 않
아도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두려웠지만 뇌하영은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질근 이를 악물며 옥비
룡이 쉽게 자신을 정복하도록 한껏 다리를 벌려주었다.
그것을 본 옥비룡은 음험하게 웃으며 가여운 소녀의 육체에 지워지지
않을 낙인을 찍었다.
화끈한 둔통과 너무도 생경한 이물감에 뇌화영은 자신도 모르게 신음
을 터트렸다.
손으로 땅바닥을 긁으며 필사적으로 고통을 참는 그녀의 몸으로 옥비
룡은 무자비하게 자신을 밀어넣었다.
곧 옥비룡의 짐승같은 헐떡임과 뇌화영의 고통을 억누른 신음성이 한
데 어울려 터져나왔다.
그들의 뜨거운 숨소리는 깊은 밤의 공기를 후끈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
뇌화영!
꿈 많은 한 소녀의 순결이 야수에게 잔인하게 짓밟히는 순간이었다.
한순간의 오해 때문에…
'저… 저럴 수가……!'
어둠 속에서 한 명의 소년이 돌같이 굳어진 채 두 눈을 찢어질 듯 부
릅뜨고 있었다.
뇌화룡!
그는 바로 열화잠룡 뇌화룡이었다.
뇌화영의 쌍둥이 오빠인 뇌화룡 역시 이검한이 걱정되어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열화대진 주위를 순시하던 중이었다.
한데 그가 열화대진 쪽에 이르렀을 때였다. 흐느끼는 듯한 소녀의 신
음성이 그의 귓전을 자극했다.
그와 섞여 흘러나오는 사내의 거친 숨결에 의아함을 느끼며 다가서던
뇌화룡은 질겁했다.
짙은 어둠 속에서 하나의 새하얀 교구가 건장한 사내에 깔려 허우적
거리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한데 믿어지지 않게도 그 소녀는 다름아닌 자신의 쌍둥이 누이인 뇌
화영이 아닌가?
그리고 실오라기 한올 걸치지 않은 알몸의 누이를 겁탈하고 있는 자
가 누군지 안 순간 뇌화룡은 그만 정신이 아득해졌다.
'이… 이형님이 영아를!'
그는 엄청난 충격에 아찔함을 느끼며 신형을 휘청했다.
그도 역시 옥비룡을 이검한으로 오인한 것이다.
물론 뇌화룡도 이검한을 좋아하고 있었다.
그는 이검한을 친형처럼 여기며 신뢰했다.
이검한 정도라면 자신의 사랑하는 누이의 일생을 충분히 맡길 수 있
으리라.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정당한 절차를 거쳐서이지 눈앞에서 벌어
지고 있는 이런 야합이 아니었다.
한데 지금 이검한은 짐승으로 화해 뇌화영을 겁탈하고 있지 않은가?
물론 뇌화영은 지금 누이 뇌화영을 유린하고 있는 자가 이검한으로
위장한 옥비룡을 알 리 없었다. 그의 변장술은 너무나 정교하게 이검
한을 쏙 빼닮았기에.
그러니 뇌화룡이 받은 충격과 분노가 어떠했겠는가?
'용서 못한다. 비록 당신이 우리 뇌가의 대은인이라 해도!'
그는 내심 중얼거리며 두 주먹을 피가 나도록 움켜쥐었다.
이제껏 품어왔던 이검한에 대한 존경심이 이 순간 엄청난 실망과 살
기로 변해 버렸다.
생각 같아서는 당장 뛰쳐나가 이검한을 응징하고 싶었다.
하지만 뇌화룡은 그런 충동을 억지로 억눌러 참았다.
나무는 배로 화하고 쌀은 익어 이미 밥이 된 형국이 아닌가?
이미 뇌화영의 순결은 더럽혀진 상태였다.
또한 지금 뇌화룡의 능력으로는 이검한의 적수가 되지도 못했다.
뇌화룡은 통한과 분노에 치를 떨었다.
'내 손으로 죽인다. 언제고 기회가 올 것이다!'
그는 으스러져라 이를 악물며 소리없이 장내에서 물러섰다.
하지만 뇌화룡이 자신들의 행위를 발견했다는 것을 알 리 없는 두 남
녀의 열기는 점점 고조되어갔다.
비극의 밤.
가녀린 한 송이 꽃이 음적의 손에 꺾이고 장차 이로 인해 생긴 오해
가 대비극을 초래할 슬픈 밤이었다.
* * *
새벽 무렵,
이검한은 멍하니 누운 채 동굴의 천정을 올려다 보았다.
왠지 옆자리가 허전했다.
지금 동굴 속에는 그 혼자만이 남아 있었다.
격렬한 부대낌, 서로에 대해 자세히 알지도 못하는 관계에서도 남녀
의 본능적인 행위는 성사되었던 것이다.
그것은 이검한이 이제껏 경험하지 못했던 강렬한 것이었다.
폭풍잠룡 군여옥은 그 당당한 체격답게 본능의 욕구 또한 사내를 무
색케 할 만큼 격렬했다. 그런 격렬한 군여옥의 반응에 어지간한 이검
한조차 정신없이 말려들었다.
마침내 이검한은 지쳐 잠에 곯아 떨어져 버렸다.
그리고 그가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동굴 속에는 이미 군여옥의 모습
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 혼자만이 덩그라니 누워 있었을 뿐,
꿈을 꾼 것일까?
하지만 그것은 분명 꿈이 아니었다.
아직도 어젯밤의 기억이 뇌리에 역력했다.
그리고 한쪽의 마른 풀잎 위에 점점이 흘러 선명하게 피어있는 붉은
혈화(血花).
그것은 군여옥이 처녀의 몸이었음을 나타내 주는 증거였다.
결코 꿈이 아닌 것이다.
이검한은 군여옥이 떠나버린 동굴 안이 왠지 텅 비어 허전해지는 느
낌을 받았다.
'그러고보니 그녀의 이름이 무엇인지도 물어보지 못했구나!'
그는 군여옥이 자신이 찾던 폭풍잠룡임을 생각도 못했다.
그는 쓴웃음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아쉬움인가? 알 수 없는 한가닥 여운이 그의 가슴에 맴도는 듯했다.
하지만 이검한은 곧 몸을 일으켜 의복을 걸치기 시작했다.
'인연이 있으면 다시 만날 날이 있겠지!'
그는 내심 그렇게 중얼거렸다.
꼭 그렇게 되리라 기대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은 왜일까?
이어 그는 천천히 동굴을 나섰다.
밖은 어느덧 사경(四更)도 지나 새벽이 멀지 않은 듯했다.
이검한은 자신이 너무 지체했음을 깨달았다.
'서둘러야겠군! 이밤이 다 새기 전에 폭풍잠룡이란 친구를 만나 보려
면!'
다음 순간 그는 어둠 속으로 신형을 날렸다.
하지만 그는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조금 전 자신과 뜨거운 관계를
가진 그 이름 모를 남장여인이 바로 폭풍잠룡 군옥임을,
바로 이검한 자신이 암살 목적으로 찾고 있는…
* * *
열화대진으로 둘러싸인 유황곡에도 희끄무레 여명이 밝아오고 있었다
.
"가가… 영아를 버리지 않으시는 거죠?"
문득 어슴푸레한 어둠 속에서 수줍음과 불안이 섞인 소녀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뇌화영은 노출된 가슴을 손으로 가린 채 앞을 올려다 보았다. 사내를
알아버린 뇌화영은 이미 더 이상 소녀가 아니었다.
그녀의 앞에는 한 명의 청년이 의복을 추스리고 있었다.
물론 이검한으로 위장한 옥비룡이었다.
그는 뇌화영에게 등을 보인 채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었다.
그런 그자의 얼굴에 떠오르는 음험한 비웃음을 순진한 뇌화영이 알
리 없었다.
"가가에게 이미 예쁜 언니들이 많이 있는 것을 잘 알고 있어요. 하지
만 영아는 상관없어요. 가가 옆에 있게만 해주신다면!"
그녀는 수줍게 고개를 떨구며 말했다. 지금 여린 그녀의 가슴은 미래
에의 꿈과 행복과 기대감으로 두근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같은 그녀의 행복한 예감은 이내 산산이 깨어지고 말았다.
"뭔가 오해를 하고 있군, 화영!"
의복을 모두 추스린 옥비룡이 음산하게 웃으며 돌아섰다.
순간 갑자기 음침하게 변한 옥비룡의 목소리에 뇌화영은 흠칫하며 고
개를 들었다.
그런 그녀를 향해 옥비룡은 잔인한 표정으로 말했다.
"흐흐! 내가 언제 너를 책임진다고 말했느냐?"
"무… 무슨 말을 하시는 거예요, 오빠?"
뇌화영은 놀라움과 불안에 흔들리는 눈빛으로 옥비룡을 올려다 보았
다.
갑자기 돌변해 버린 옥비룡의 태도가 그녀로서는 믿어지지 않는 표정
이었다.
그러나 옥비룡은 음험한 눈빛으로 뇌화영을 쓸어보며 잔혹한 어조로
말했다.
"네가 귀여운 계집아이임은 사실이다. 하나 너같이 촌스러운 계집아
이를 평생 데리고 살 마음은 없으니 꿈깨라."
"뭐… 뭐라구요?"
뇌화영은 그자의 말에 엄청난 충격을 받은 듯 전신을 부르르 떨며 사
색이 되었다.
옥비룡은 그런 그녀를 향해 재차 잔인하게 내뱉았다.
"크하하! 잘못 들었다면 알기 쉽게 말하겠다. 너는 한 번 즐길 대상
이었지 마누라 삼을 만한 계집이 아니란 말이다!"
화라락!
그 말과 함께 그자는 미련없이 열화대진 밖으로 날아갔다.
"핫하! 하여간 즐거운 밤이었다. 잊지는 않겠다!"
음흉한 웃음 소리와 함께 이내 옥비룡의 모습은 뇌화영의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
뇌화영은 멍하니 옥비룡이 사라진 곳을 주시했다.
그런 그녀의 몸은 폭풍을 만난 듯 경련을 일으켰다.
너무도 엄청난 충격에 그녀는 일시 사고가 정지된 듯했다.
귓가로 마치 수만 마리의 벌이 날아다니는 듯한 진동이 일어났다.
황홀하고 달콤하기 이를 데 없었던 꿈의 나락.
뇌화영은 마치 천상을 노니는 듯한 지극한 행복감에 도취해 있다가
한순간에 너무도 아득한 지옥(地獄)으로 떨어져 버린 것이 아닌가?
한순간 그녀는 입에서 한 모금의 피를 울컥 토해내며 앞으로 고꾸라
졌다. 너무 엄청난 충격에 기혈이 뒤집어진 것이었다.
이검한에게 당한 배신의 충격은 그녀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물론 방금 자신이 처녀를 짓밟힌 상대가 이검한이 아니라 그로 위장
한 옥비룡임을 그녀가 알 리 만무했지만,
뇌화영은 결연한 눈빛으로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죽자. 이런 수모를 당하며 더 이상 살아 무엇하겠는가?'
엄청난 배신감과 분노에 그녀는 삶의 의미를 잃어버렸다.
처연한 표정으로 몸을 일으키는 그녀의 안색은 핏기 하나 없이 창백
했다. 눈물 젖은 커다란 두 눈은 절망의 빛이 가득했다.
그녀는 천천히 한 자루 비수를 꺼내 자신의 목에 겨누었다.
'나쁜 꿈이라면 어서 깨어다오!'
그녀는 눈을 감은 채 내심 간절히 기원했다.
그와 함께 손에 쥐고 있던 비수로 자신의 목을 찔러갔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안된다!"
피잉! 따다당!
다급한 일갈과 함께 한가닥 지력이 벼락같이 날아들어 뇌화영의 수중
에 들린 비수를 후려쳤다.
간발의 차이로 비수는 뇌화영의 목을 빗나갔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피
한 것은 아니었다. 그녀의 목에는 길게 상처가 생기고 말았다.
그 상처에서 삽시에 선홍빛 피가 흘러나와 탐스러운 뇌화영의 젖가슴
으로 흘러내렸다.
"오빠……!"
뇌화영은 비로소 눈을 뜨며 처연한 울음을 터뜨렸다.
화라락!
한줄기 인영이 다급히 뇌화영의 앞으로 날아들었다.
뇌화룡! 그 인영은 바로 뇌화룡이었다. 그가 주위를 떠나지 않고 있
다가 위기의 순간 지력을 날려 뇌화영의 자결을 막은 것이다.
"이 바보야! 억울하지도 않느냐? 복수를 할 생각은 않고 죽을 작정부
터 하다니!"
그는 분노와 배신감에 떨며 이를 갈았다. 무참하게 짓밟힌 누이의 모
습은 그의 억장을 무너지게 만들었다.
순간 뇌화영이 와락 울음을 터뜨리며 무너져 내렸다. 한날 한시에 태
어난 오라버니를 본 순간 설움이 복바친 것이다.
"이 녀석아!"
뇌화룡도 눈물을 뿌리며 누이의 앞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
"흐윽… 영아는 어쩌면 좋아, 오빠? 흐윽!"
뇌화영은 처연하게 울부짖으며 몸부림쳤다.
뇌화룡은 그런 뇌화영을 꼭 끌어안았다.
그는 애처롭게 떨고 있는 누이의 등을 꼭 끌어안으며 입술을 피가 나
도록 악물었다.
'이검한!'
그의 두 눈은 타는 듯 무섭게 이글거렸다.
'용서치 않겠다. 화영이를 짓밟은 네 놈의 죄가는 열 번 죽어도 모자
란다!'
그는 내심 부르짖으며 굳게 결의했다.
'기필코… 기필코 나 뇌화룡의 손에 죽여준다. 용서받지 못할 음적!'
그는 질끈 입술을 악물며 맹세를 다졌다.
뇌화영은 그런 뇌화룡의 품에 안긴 채 서럽게 오열하고 있을 뿐이었
다.
한편 열화대진의 외곽 그늘에서 한 명의 여인이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신형을 휘청이고 있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그녀는 엄청난 충격으로 몸을 가누지 못하고 있었다.
화왕부인 당숙하! 바로 그녀였다.
당숙하 역시 이검한이 벽력당을 떠난 뒤 조바심으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불안감으로 열화대진 근처를 서성이던 당숙하는 우연히 뇌화룡 남매
가 서로를 부여안은 채 오열하고 있는 장면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그녀는 어린 딸 뇌화영이 벌거벗고 있는 모습을 보고 무슨 일이 있었
는지 이내 알아차렸다.
그녀가 받은 충격 또한 이루 형언할 수 없을 정도였다.
'검한이가, 그 아이가 이런 짐승만도 못한 짓을!'
그녀는 충격을 감당하지 못하고 하나의 바위 뒤로 털썩 무너지듯 주
저앉았다.
그녀는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았다. 그토록 진실해보이던 이검한이 자
신의 딸 뇌화영에게까지 손을 댔다는 사실이.
하지만 그같은 비극은 현실이었다. 물론 당숙하 역시도 뇌화영을 능
욕한 것이 옥비룡이라는 사실을 알 리 없었지만.
당숙하의 안색은 핏기 하나 없이 창백하게 탈색되었다.
'내… 내가 사람을 잘못 보았구나!'
그녀는 뜨거운 회한의 눈물을 뿌리며 고통에 몸을 떨었다.
이어 그녀는 비칠거리며 어둠 속으로 사라져갔다.
또 하나의 비극이 잉태되는 순간이었다.
멀어지는 당숙하의 귓전으로 무참하게 유린당한 뇌화영의 숨죽인 오
열 소리가 비수처럼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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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메딕 후기작성시 10,000포인트 증정


윤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