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기한 이야기-7
잠깐 자고 일어나니 옆에서 와이프가 곤하게 자고 있었다.
다 벗은 채 옆으로 누워 자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살짝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역시 카톡이 와있었다.
-오늘 오세요?
아직 사라지지 않은 1을 없애며 내가 답장을 했다.
-오랜만에 와보니 일이 많네요.
-그러실 것 같았어요. 천천히 오세요.
-팬션에 손님 들어왔어요?
-아뇨. 오늘은 다행히도 없네요.ㅋ
-제가 출발할 때 톡할게요.
-네.
이렇게 하고 있는데 아내가 나왔다.
"뭐해?"
"응. 톡 좀 하느라고."
"저녁 먹을까?"
"벌써?"
"배 안 고파?"
"난 아직인데. 배고파?"
"그럼.. 우리 나가서 먹을까? 오랜만에."
좋은 생각이었다.
우리는 옷을 입고 차를 타고 근처에 자주 가던 식당에 들렀다.
사장이 우릴 보더니 반가워했다.
"어머~~ 오랜만에 오시네요! 두 분 그동안 바쁘셨나와~"
어쩌면 소문이 났을지도 모르는 동네 식당인데 사장은 넉살 좋게 잘 넘겼다. 역시 연륜이다. 식당을 해보면 이런 걸 알 수 있다. 갑자기 한동안 안오면 사업이 안되거나 이혼했거나 사별했거나 그런 경우도 꽤 있었다. 그러다 다시 나타나면 다행인데 그럴 때 처신을 잘해야 한다. 말실수 한마디에 손님이 끊어진다. 제일 좋은 건 모른척하는 건데 그것도 평소에 인사를 안하던 사이면 몰라도 자주 오는 단골인데 인사 잘 하다가 괜히 모르는척하면 그건 더 이상하다. 소문 들었나? 이렇게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역시 사장은 우리 사정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늘 드시던거? 그거 해드리까?"
위로하려는 걸까? 우리가 뭘 먹고 살았는지 몇 년이 지났는데 기억하고 있었다.
"네. 뭔지 기억하시네요?"
"에이. 단골이신데~ 얼른 해드리께~"
이런 평범한 말들도 와이프와 오랜만에 와보니 그냥 너무 좋았다. 이게 뭐라고.. 이런 걸 즐기지 못하고 그렇게 지냈나 싶었다.
자꾸 팬션을 잊게 된다. 와이프와 같이 밥을 먹으면서 이대로 다시 이전처럼 지낼 수 있지 않을까? 와이프가 너무 많이 변했고 노력도 엄청나게 하고 있는데..
이런 생각을 하면서 밥을 먹고 있는데 사장이 우리쪽으로 오더니 "뭐 서비스 좀 드릴라구. 이거 새로 시작한건데 한번 맛들 보셔~" 라고 하면서 작은 부침개를 가져왔다.
많이들 먹는다는 파래 부침개였다. 와이프가 그걸 보더니 함박웃음을 지으며 좋아했다.
사장이 우리 눈치를 꽤나 보면서도 딱히 말을 걸진 않았다. 그 배려가 좋았다. 괜히 와서 그동안 뭐했냐고 물어보면 정말 힘들뻔했다.
저녁을 먹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와이프가 물었다.
"참 오랜만에 오는데도 어제까지 왔던 것 같아. 그치?"
"그러게.. 신기하네."
"이렇게 별것도 아닌데 왜 우리가 그렇게 살았을까?"
그순간 카톡이 왔다.
-손님이 들어왔어요. 단체. 어떡하죠? 못받는다고 해야 할까요?
예약 없이 들어온 단체다. 이런 경우 그냥 보내야 하는데 지금 이 늦은 시간에 다른 데로 가라고 하면 그들도 난감할 것이다.
-예약이 뭔가 잘못 됐다고 검색해서 무작정 여기로 왔는에 애들도 있고.. 어떻게 할지 너무 무서워요...
아직 제수씨는 완전하게 안정된 게 아니었다.
-그럼 일단 받으세요. 제가 갈게요.
-그래주실 수 있어요? ㅠㅠ 죄송해요..
-아뇨. 일단 받으시고 제가 갈때까지만 잘 버텨요.
-네. 그럴게요.
카톡을 보고 내가 심각한 얼굴을 하자 와이프가 물었다.
"왜? 무슨 일 있어?"
"아.. 친구가 운영하는 패션이 있는데 내가 도와주고 있었거든. 근데... 암튼 사정이 있어서 내가 지금 가봐야겠어."
"어딘데? 나도 같이 갈까?"
"어?... 아니. 내가 혼자 가도 돼. 당신이 가서 할 일도 없고."
"어차피 갔다가 와야 하잖아. 내가 운전해줄게."
"아... 그게.. 야간 손님이라서 내가 거기서 자야 할 수도 있어."
"거기서 자기도 해?"
"응. 팬션 일이 원래 그래.. 암튼 갔다 올게."
"여보. 그러지 말고 나랑 같이 가. 나도 팬션 구경도 하고 거기서 자면 되지."
이렇게까지 말하는 와이프에게 자꾸 안된다고 하면 이상하게 생각할 것 같았다.
하는수없이 같이 가자고 했다.
와이프가 집에 도착해서 이것저것 잘 때 필요한 것들을 준비하는 동안 나는 빠르게 카톡을 했다.
-죄송한데.. 와이프가 같이 갈거예요.
-아... 네.
이미 예상한 걸까? 아니면 놀라서일까? 제수씨는 꽤나 당황한 것 같은데 톡에서는 담담했다.
-저.. 부탁이 있어요. 제 물건들.. 다른 방에다 좀..
-아.. 네. 그렇게 할게요..
무슨 말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제수씨와 지내면서 온통 내 물건들을 그 집에 뒀다. 그걸 다른 방에다 옮겨달라는 것이다. 그래야 와이프가 눈치를 못챌 것이기 때문이다.
와이프는 여행을 가는 것처럼 살짝 들떠서 가방을 들고 나왔다.
예쁜 옷차림이었다. 이렇게 밝은 모습의 여자였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문제가 있으면 사람은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걸 알게 됐다. 나도 정신과에 가서 내 문제를 한번 진단해보고 싶어졌다.
차에 가방을 싣고 팬션으로 향했다.
가는 도중에 와이프는 내게 자꾸 기댔다. "여보. 나 지금 여행 가는 것 같아서 너무 기분이 좋아. 당신은 일하러 가는 거지만."
"당신 좋으면 됐어."
음악도 틀고 밤운전이라 조심해서 천천히 달렸는데 와이프는 밖을 보다가 내게 기댔다 하면서 뭔가 즐거운 분위기였다.
이렇게 좋아하는데 나는 지금 팬션에서 혼자 바쁘게 움직일 제수씨를 생각하니 양쪽에게 다 미안했다.
한시간 넘게 달려서 도착해보니 마당에는 이미 캠퍼들이 준비를 다 마치고 왁자지껄 중이었다.
주차장에서 내려 숙소쪽으로 다가갔다.
제수씨는 캠핑장과 세면장 쪽을 오가면서 뭔가 바쁘게 일하고 있었다.
"제수씨. 저 왔어요."
내가 좀 큰 목소리로 불렀다.
제수씨가 나를 보더니 살짝 웃으면서 인사를 했다. 그리고 옆에 서있는 와이프를 보고도 고개를 숙였다.
와이프도 반가운 얼굴을 하며 인사를 했다.
제수씨는 어떤 방에 내 짐을 옮겼는지 알려주려는 듯 손짓으로 팬션 한쪽을 가리켰다. 저기구나.
"당신 저기 숙소 보이지? 거기로 가서 짐 내려놓고 안에서 기다려. 난 여기 밖에서 일좀 보고 올게."
"응. 알았어. 가방은 내가 가지고 갈게."
나는 곧장 제수씨가 혼자서 바쁘게 일하는 곳으로 갔고 와이프는 우리가 잘 숙소로 갔다.
제수씨는 나를 보더니 반갑고 당황스러운 복잡한 심경을 내비쳤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혹시라도 와이프가 눈치를 챌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아내는 팬션 안으로 들어갔고 불을 켰다. 방에 불이 켜진 걸 보고 나는 세면장 안으로 제수씨를 끌었다.
"미안해요. 와이프가 와있더라구요. 예상도 못했고..."
"아.. "
제수씨는 갑자기 내 목을 손으로 잡더니 키스를 했다. 이렇게 도발적이라고? 너무 놀랐는데 그게 자극적이라서 나도 모르게 제수씨 허리를 감싸 안고 격하게 키스를 했다.
제수씨는 내 혀를 강하게 빨면서 자기 몸을 내게 안겨왔다. 내 허리와 엉덩이를 마구 잡고 당겨댔다. 금방이라도 여기서 어떻게 좀 해달라는 몸짓이었다.
하지만 캠퍼들도 있고 와이프도 있다. 이러는 건 위험했다.
내가 몸을 떼고 입술을 떼자 아쉬운 듯 나를 바라보던 제수씨는 옷매무새를 고쳤다.
장작을 나르고 물통에 물도 채워야 했다. 밤에 샤워할 사람들이 쓸 세면도구나 부족한 물품들을 정리하면서 바닥도 다시 닦았다.
가끔 하수구가 막히기 때문에 거기도 확인했다. 그러고 나니 벌써 한시간이 흘렀다.
나는 와이프가 있는 숙소로 갔다. 와이프는 뭔가 열심히 만지작거리고 있었는데 집에서 가져온 것들을 꺼내놓고 있었다.
하루 자고 가는데 뭘 그렇게 가져왔다 해서 봤더니 우리가 자주 보던 사진첩이었다.
요샌 다들 스마트폰이나 패드로 보지만 우린 50대다. 우리 땐 앨범이 있었다.
"당신하고 여행 같은 거 오는데 이거 찾아서 갖고 왔어."
그러면서 앉아서 하나씩 넘기는 모습을 보니 와이프가 귀엽게 보였다.
내가 나쁜놈이구나 싶었다.
하지만 제수씨를 보면 내 욕정은 불타올랐다.
이게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정말 알 수 없었다. 마음은 두갈래로 갈라지고 두 여자는 모두 나를 믿고 있다.
캠퍼들은 하나둘씩 불을 끄고 잠을 청하는 것 같았다.
제수씨는 아직도 밖에서 이것저것 일을 하고 있었다.
"당신 늦게까지 일해야 해?"
"응. 캠핑이란 게 원래 이래. 밤새서 할 때도 있고.."
"근데 당신 친구는 왜 안보여? 바쁜가?"
"아... 그게... 친구가 얼마전에 사고로 죽었어."
크게 놀라며 와이프가 나를 봤다.
"정말? 그럼 아까 저 여자분이..."
"응. 맞아. 친구 와이프야. 내가 제수씨라고 부르고 있고."
"아... 그랬구나.."
와이프는 고개를 끄덕였는데 묘한 기분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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