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 제8회
"엄마, 저 사람 내치면 나 진짜 죽어버릴 거야……! 나도 엄마처럼 평생 미혼모로 살게 만들고 싶어?"
소희의 입에서 튀어나온 '죽음'과 '미혼모'라는 잔인한 단어들이 은하의 가슴팍에 깊숙이 비수처럼 꽂혔다.
그 상처 입은 눈망울과 악에 받친 절규는 20년 전 홀로 남겨졌던 은하 자신의 모습과 지독하게 닮아 있었다.
자신이 겪었던 그 지옥 같은 설움을 제 딸에게 고스란히 물려줄 수는 없었다.
절대로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되었다.
하지만 천륜이 뒤틀려버린 이 잔인한 상황에서 은하에게는 아무런 방법이 없었다.
머릿속이 엉망으로 뒤엉켜 터질 것만 같았다.
한참을 귀가 먹먹해지는 침묵 속에서 괴로워하던 은하가 겨우 거친 숨을 고르며 떨리는 입술을 뗐다.
"……생각할 시간을 다오. 당장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야."
은하는 핏기가 가신 얼굴로 겨우 말을 뱉어낸 뒤, 시선을 돌려 묵묵히 서 있던 정우를 바라보았다.
그의 깊고 어두운 눈동자를 마주하는 순간 가슴 한구석이 아릿하게 저려왔지만, 은하는 기어이 냉정함을 가장했다.
"정우 씨라고 했나요. 일단 돌아가서 내 연락을 기다리세요.
생각 좀 해보고 연락을 줄 테니, 거기 탁자 위에 전화번호를 남겨두고 가요."
마치 사위를 시험하는 장모처럼 짐짓 차분하게 건넨 말이었지만, 그 속에는 이 파멸의 고리를 어떻게든 끊어내기 위한 처절한 계산이 깔려 있었다.
정우는 은하의 단호하면서도 기묘하게 흔들리는 태도에서 무언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이질감을 느꼈지만,
임신한 소희와 장모의 갈등을 더 키울 수 없어 조용히 메모지에 자신의 번호를 적어 내려갔다.
하지만 엄마의 무거운 가슴속을 알 리 없는 소희는, 은하가 갑자기 태도를 바꾸어 정우의 번호를 묻는 것이 불안하기만 했다.
정우와 자신이 보냈던 그 미치도록 지독하고 농염했던 밤들의 기억,
그리고 서로에게 걸어두었던 중독 같은 집착이 혹여나 엄마의 손에 의해 끊어질까 봐 겁이 났다.
소희는 정우의 옷자락을 꽉 움켜쥐며 은하를 향해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엄마…… 나 놔두고 아저씨 혼자 몰래 만나려는 건 아니지?
만나서 돈 봉투라도 던지면서 나한테서 떠나달라고 이상한 말 하려는 거면 꿈도 꾸지 마. 나 아저씨랑 절대 안 헤어져."
자신이 목숨을 바쳐 낳은 딸이,
자신이 평생을 그리워했던 첫사랑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불신하며 으르렁거리는 이 기괴하고 잔인한 풍경.
은하는 겉으로는 굳건한 표정을 지었지만, 속으로는 이미 온몸의 피가 바싹 말라붙어 재가 되는 듯한 비참함을 느꼈다.
세 사람을 감싼 공기는 당장이라도 터질 듯 불길한 텐션으로 가득 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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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b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