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혼으로 깨닫게 된 여자로서의 본성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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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시간전
재혼으로 깨닫게 된 여자로서의 본성 (부제 : 나쁜 엄마의 고백)
프롤로그
(여기서 말하는 이름과 지명, 시기는 모두 다 가명입니다. 우리 모녀의 정체를 알게 될 사람이 있을 수도 있어서요.)
남편과 난 동갑으로 둘 다 고아였습니다.
둘 다 부모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1990년 어느 겨울날 고아원 앞에 겨우 1주일 상간으로 놓여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우리 둘은 어렸을 때부터 거의 친남매보다 더 친한 사이로 자랐습니다.
뭐 내 고집에 남편이 주로 맞춰주는 게 일이었지만 말입니다.
남편은 평범한 외모에 비해서 전 어렸을 때부터 꽤 예쁜 편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중학생일 때부터 고아원 안에서 절 좋아하는 남자동기들이나 오빠들이 많았지만 내 눈에는 남편 밖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우린 고 1 때 원장님과 다른 애들의 눈을 피해서 첫관계를 가졌습니다.
남편과의 첫경험은 육체적으로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마침내 이 남자의 여자가 되었다는 사실에 정신적으로 큰 만족감을 느꼈던 것 같았습니다.
우린 그렇게 19살이 되어서 고아원을 나갈 때까지 남들의 눈을 피해서 관계를 가졌습니다.
콘돔을 쓰거나 내가 꾸준히 피임약을 먹거나 하지는 않고 그냥 사정을 조심하는 정도로만 피임을 했는데 놀랍게도 임신은 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야 남편이 무정자증까지는 아니더라도 소정자증으로 임신을 하기가 매우 어려운 체질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쨌든 그렇게 우린 19살이 되었고 고아원을 나와서는 직장이 많아 보이는 경기도로 가서 동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남편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대형면허를 따서는 그걸 이용해서 대형운수회사에 장거리 운전수를 취직을 했습니다.
난 미용기술을 배우면서 미용실에서 직원으로 일을 하기 시작했고요.
그렇게 1년 정도 지나서 내가 20살이 되었을 때 놀랍게도 난 임신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해 겨울에 우리 부부에게는 천사와도 같은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외동딸인 제니가 태어났습니다.
아마 제니가 복덩이임에 틀림이 없었던 것 같았습니다.
애를 키우느라고 힘이 들기는 했지만 그 후로는 모든 게 다 잘 풀리는 것 같았거든요.
제니가 돌이 되었을 무렵 남편은 아는 선배에게서 중고 트럭을 꽤 싼 값에 구입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운송회사 직원이 아닌 개인 사업자로 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다행히 남편은 성격과 인성이 좋았기 때문에 대형가전제품을 공장에서 받아서 지방의 대리점으로 운송하는 사업권을 따낼 수 있었습니다.
유일한 단점은 먼 지방으로 출장을 가는 일이 많았기 때문에 이제는 1주일에 거의 두 세 번 정도 밖에 같이 잠을 자지 못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네, 맞아요. 우리 부부는 여전히 부부 관계가 매우 좋았습니다. 그리고 남편이 사고로 저 세상에 갈 때까지 내 인생에서 남자라고는 남편 한 사람 뿐이었습니다.)
저 또한 이제 독립할 수 있을 정도로 기술을 익혔기 때문에 동네에서 작게 미용실을 운영하기 시작했습니다.
다행히 내가 손재주가 있는 편이어서 머리를 하기 위해서 찾아오는 동네 아줌마들과 혹은 내 미모에 반해서 찾아오는 남자 손님들이 꽤 있었기 때문에 미용실은 내 생각보다 빠르게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잠깐 내 외모에 대해서 말해주겠습니다.
내 자랑같기는 한데 어느 날 TV에서 아이돌 가수들이 나와서 노래를 부르는 쇼프로를 볼 때 남편이 반쯤 장난삼아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습니다.
“어, 저 가수, 당신이랑 엄청 닮았는데. 모르는 사람이 보면 자매인 줄 알겠어. 진짜로 당신 친동생이거나 친척 아닐까?”
남편이 보며 그렇게 말한 가수는 키오프(키스 오브 라이프)의 나띠였습니다.
잘 모르는 분을 위해서 말하자면 나띠는 태국 출신의 가수로 167센티의 키에 탄탄하고 날씬한 글래머의 몸매에 매우 섹시한 얼굴을 지닌 가수입니다.
반쯤 농담으로 듣기는 했지만 그러고 보니 나띠와 매우 닮은 것 같기도 했습니다.
전 여자치고는 꽤 큰 편인 170센티의 키에 그렇게 운동을 열심히 하지 않아도 날씬하고 탄탄한 몸매를 유지할 수 있었고 원래 D컵으로 꽤 큰 편이었던 젖가슴은 딸아이를 낳은 이후에는 더욱 더 커져서 이제는 거의 E컵이 되어 있었으니까요.
쉽게 설명하자면 타짜에 나온 김혜수 정도의 크기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얼굴도 전형적인 한국미인이 아니라 약간 동남아 느낌이 나는 섹시미인형으로 부모 중 한 분이, 혹은 두 분 다, 동남아인이 아닐까 하고 어렸을 때 생각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딸아이인 제니가 10살이 되었을 무렵 우린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남편은 트럭을 살 때 빌렸던 돈을 모두 다 갚을 수 있었고 우린 은행대출이 반이긴 하지만 오래된 30평짜리 아파트를 2억에 살 수 있었으니까요.
그렇게 우리 세 가족이 한참 행복에 부풀어올라 있었을 때였습니다.
하지만 불행은 바로 그럴 때 찾아온다는 말이 맞았습니다.
아파트를 산지 2년 정도 지났을 때였습니다.
제니가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그 때, 여름의 장마가 막 시작되기 시작한 7월 초의 어느 날이었습니다.
평소처럼 지방으로 배송을 나간 남편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 날은 전국적으로 소나기가 많이 오는 날이었습니다.
고속도로가 너무 막히니까 남편은 한밤중인데도 산기슭을 통해 나 있는 국도를 달리고 있었던 것 같았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도로로 튀어나온 고라니를 피하려고 한 것인지 아니면 깜빡 하고 졸음운전을 한 것인지 몰라도 빗길에 미끄러지는 바람에 도로 옆의 가드레일까지 뚫고서 낭떠러지로 떨어지고 만 것입니다.
다음 날 아침 경찰에게 걸려온 그 전화를 받았을 때 난 너무 놀라서 그 자리에서 기절하고 말았습니다.
그 후로 약 2주일 동안은 도대체 어떻게 지나간 것인지 아직도 기억이 제대로 나지 않습니다.
마치 나 혼자서 뿌옇게 안개가 나 있는 길 위를 한참동안 걸어가고 있었던 것 같은 기분 밖에는 말입니다.
아까도 말했듯이 우리 부부는 둘 다 고아였기 때문에 이런 상황에서 우릴 도와줄 직계 가족이나 친척 어른 같은 분들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내 미용실이 있는 상가의 건물주인 박 관장님이 아니었다면 남편의 장례도 제대로 치르지 못했을 것입니다.
나중에 내 새남편이 된 박 관장님에 대해서는 조금 후에 더 자세히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어쨌든 박 관장님의 도움으로 운송회사와 보험회사가 얽힌 금전 문제며 사고경위를 조사하기 위해서 찾아온 경찰관들을 상대하는 일이며 남편의 장례식이며 사망신고며 모두 다 관장님이 알아서 처리해 주었으니까요.
뭐 나에게 어느 정도 사심이 있었다고는 해도 매우 고마운 분임에는 틀림이 없었습니다.
자, 이제 관장님에 대해서 얘기하겠습니다.
박 진철 관장님은 우리 부부보다 10살 연상이 남자로 자라온 고향은 다르지만 우리와 마찬가지인 고아로 엄청난 덩치를 지닌 남자였습니다.
관장님은 그렇게 잘생긴 얼굴은 아니었습니다.
조금 전에 TV에서 나띠를 보고서 남편이 나더러 닮았다고 할 때처럼 얼마 전 중증외상센터에서 외과과장 역할을 한 윤경호라는 배우를 봤을 때 전 바로 박 관장님이 떠올랐습니다.
얼굴이 그 배우와 엄청 닮았거든요.
대신 관장님은 190센티의 엄청 큰 키에 100kg의 완전 근육으로 뒤덮인 보디빌더와도 같은 몸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 지역에서는 고등학생 때부터 그 엄청난 덩치와 험악한 인상, 싸움 실력으로 유명했다고 하더라고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관장님은 해병대에 지원을 했는데 그 실력(?)을 알아본 교관이 아예 특수부대로 데려가 버렸다고 하더라고요.
얼마 전에 종영한 ‘김부장’이라는 드라마에 나오는 북한침투를 목적으로 하는 특수부대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진짜로 북한에 침투해서 공작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고 우리 부부와의 술자리에서 웃으면서 얘기를 하더라고요.
그런 드라마는 전부 다 뻥이라고 하면서요.
대신 월급이며 수당 같은 건 일반 사병들보다 많이 받았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군대에서 4년 정도 하사관으로 근무하다가 거기에서 알게 된 선배와 같이 군대를 나와서 소위 말하는 보디가드라는 경호회사를 차렸다고 했습니다.
의외로 거기서 돈을 많이 벌었고 - 그 얘기는 자세히 하지 않지만 완전 100% 합법적인 일들만 한 것은 아니라는 눈치를 받았습니다. - 40살이 되었을 때 그 동안 모아놓은 돈으로 지금 내가 운영하고 있는 미용실이 있는 5층짜리 건물을 매입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그 5층에서 헬스클럽을 운영하기 시작했다고 하더라고요.
“돈 때문이 아니라 이 나이에 벌써 놀고만 있을 수는 없잖아. 뭐 운동을 원체 좋아하기도 하니까 취미 겸 일을 하는 거지.” 라고 말을 하면서요.
관장님은 30대 초반에 한 번 결혼을 했다가 몇 년 전에 이혼을 한 경력이 있었습니다.
40대 초반의 이혼남에다가 잘생긴 얼굴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경기도 지방이긴 하지만 5층짜리 상가의 건물주에다 큰 키에 근육질의 몸매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관장님은 동네 아줌마들 사이에서 꽤 인기가 많은 편이었습니다.
미용실에 오는 3, 40대, 심지어 50대인 아줌마들조차 가끔 나에게 “저기, 사장님, 혹시 5층의 헬스장 관장님이랑 잘 아는 사이에요?” 라고 물어보면서 관장님에 대해서 물어보는 여자들이 꽤 많이 있었거든요.
나중에 친한 사이가 되고 난 후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남편의 말로는 여친까지는 아니고 두 명 정도 만나고 있는 섹파가 있다고 하는데 확실하지는 않다고 했습니다.
뭐 나와 사귀는 사이도 아닌데 섹파가 두 명이나 있다는 말에 내가 왜 괜히 심술이 났는지 모르겠네요.
그렇게 박관장님과는 2년 전 내가 그 건물 1층에 있는 빈 상가에 미용실을 차리면서부터 알게 되었습니다.
관장님은 우리 부부가 자신과 같은 고아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에는 우리 부부에게 매우 잘해주었습니다.
월세도 10만원이나 깎아주었을 뿐만 아니라 무슨 기념일이면 - 명절이나 우리 가족들의 생일날 같을 때 - 항상 선물을 챙겨주었으니까요.
또 우리 부부와 같이 저녁을 먹거나 술을 마시며 어울리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뭐 아내가 없이 혼자 살고 있었으므로 집밥을 먹을 일이 거의 없을 거라는 생각에 우리 집에 저녁을 먹으러 오라며 자주 초대도 해 주었고요.
그럴 때마다 관장님은 딸인 제니에게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용돈을 주곤 했습니다.
딱히 친척들이 없었기 때문에 다른 애들처럼 어른들에게 용돈을 받을 일이 거의 없었던 제니는 곧 관장님을 큰삼촌이라고 부르면서 매우 잘 따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관장님은 딱히 가족이나 친한 친구가 없는 우리 부부로서는 진짜로 친형이나 친오빠와도 같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남편이 그렇게 갑자기 사고로 돌아가게 되었을 때도 자신의 인맥을 총동원해서 경찰에 찾아가서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보거나 자동차 보험회사와 보험금에 대해서 협상하거나 운송회사에 입힌 - 사고 당시 고가의 가전제품을 운송하고 있었는데 그게 다 불타 버렸으니까요. - 손실금 보상에 관한 일들을 처리해주었습니다.
다행히 졸음운전이나 음주운전같은 게 아닌 걸로 결론이 나서 남편의 과실은 거의 없는 것으로 결론이 났습니다.
운송회사에 입힌 손해액은 자동차 보험회사에서 모두 다 해결해주기로 했고 대신 우리 가족에서 주는 보상금은 거의 없는 수준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뭐 저로서는 그 사고로 빚이 생기지 않았다는 사실에 고마울 지경이었습니다.
서론이 너무 길어지는 것 같네요.
이제 다 끝나가니까 조금만 더 참고 들어주세요.
남편 때문에 더 이상 빚은 생기지 않았지만 남편과 같이 맞벌이로 살아가던 우리 부부에게는 경제적으로 큰 손실이 생긴 거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남편의 장례식이며 사고 뒤처리를 하느라고 거의 1달 이상 미용실 문을 닫고 있었기 때문에 미용실 손님도 꽤 많이 떨어진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이제 곧 딸아이가 중학교에 들어갈 건데 다들 아시겠지만 학원이니 뭐니 중학생이 되면 초등학생 때와는 돈 들어가는 금액의 앞자리가 달라지잖아요.
남편의 갑작스런 사망에서 정신을 추스리기도 전에 전 가계부 걱정을 해야 했습니다.
다행히 관장님은 3달 동안 월세는 주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을 했지만 그래도 매달 적자가 되고 있었습니다.
아파트 대출을 위해 빌렸던 돈은 아직 7천만원도 더 남아 있었고 남편이 사망했다는 것을 이제 곧 은행에서 알게 되면 내년에 있을 대출 연장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런 힘든 시기에 관장님은 저에게 큰 위안이 되어주고 있었습니다.
미용실에 출근해서 오전 10시쯤이 되면 관장님이 꼭 커피를 사다가 갖다주거나 점심 때는 맛있는 도시락을 배달시켜 준다거나 하면서 말이죠.
그리고 1주일에 두 번 정도는 꼭 저희 모녀에게 저녁을 사주고 있었습니다.
그 때문인지 아빠의 죽음 때문에 매우 우울해하던 제니 역시 빠르게 기운을 되찾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물론 저에게도 매우 많은 위안이 되고 있었고요.
자, 서론이 너무 길었네요.
지금부터 본격적인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 이 썰의 시리즈 (총 3건) | ||
|---|---|---|
| 번호 | 날짜 | 제목 |
| 1 | 2026.08.02 | 재혼으로 깨닫게 된 여자로서의 본성 3 (6) |
| 2 | 2026.08.02 | 재혼으로 깨닫게 된 여자로서의 본성 2 (7) |
| 3 | 2026.08.02 | 현재글 재혼으로 깨닫게 된 여자로서의 본성 1 (6) |
블루메딕 후기작성시 10,000포인트 증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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