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한 군대동기 썰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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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시간전
그래서 은비의 보지를 조금 빨아준 후 내 위로 올라오라고 했어요.
내가 직접 은비의 처녀 보지 속에 자지를 집어넣는 것보다 은비가 여성상위 자세로 자신이 직접 내 자지를 집어넣는 편이 덜 아플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결국 은비는 내가 시키는 대로 내 자지를 보지 속으로 집어넣었어요.
그래도 아픈지 엄청 얼굴을 찡그리면서도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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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내가 별로 좋지 않았다는 거예요.
처녀보지라서 그런지 엄청 빡빡했어요.
내가 좃질을 하기가 진짜로 힘들 정도로 말이에요.
게다가 내가 조금만 빠르게 움직이려고만 해도 은비는 아프다면서 울려고 그러지....
엄마가 보여주었던 그 환상적인 테크닉 따위는 1도 기대할 수가 없었어요.
결국 난 10분 정도 은비의 보지를 박아주다가 사정도 하지 못한 채 빼고 말았어요.
은비는 괜찮다고 말을 하고 있기는 했지만 진짜로 눈가에 눈물이 잔뜩 고여 있어서 도저히 흥분이 되지가 않았어요.
어떤 남자들은 그렇게 여자애가 막 아파하는 걸 보면 더 흥분한다고 하는데 난 그런 종류가 아니었던가 봐요.
어쨌든 그렇게 우리의 첫경험은 둘 다 좋지 않은 기억을 가지고 끝이 났어요.
은비는 아프기만 한 것 같았고 난 엄마하고 했던 것만큼 그렇게 좋지 않았다는 기억만 남아 있었어요.
게다가 내가 예상한 대로 그렇게 한 번 하고 나니까 은비는 더욱 더 나에게 집착하기 시작했어요.
거의 날마다 나에게 전화를 하고 아무 말도 없이 집으로 찾아올 때도 있었어요.
결국 엄마에게 들키고 말았죠.
첫섹스를 한 후 한 달 정도 지난 때였어요.
네, 나도 알아요.
섹스도 별로였다면서 왜 헤어지지 않았냐고요?
형도 나중에 사진 보면 알겠지만 진짜 예뻤다고요.
엄마만큼 엄청나게 큰 젖가슴까지는 아니었지만 몸매도 꽤 좋은 편이었고요.
게다가 숫처녀였다고 말했잖아요.
한 번 따먹고 버리기는 아깝잖아요.
게다가 내가 시키는 대로 열심히 하려고 하기도 했고.....
어쨌든 그 날도 엄마가 부산으로 가 있을 때라서 집으로 불렀는데....
내가 자지를 빠는 방법을 열심히 가르쳐주고 있었는데 갑자기 엄마가 집으로 돌아온 거예요.
당연히 난리가 났죠.
엄마는 은비에게 당장 나와 헤어지지 않으면 그 애 부모님에게 찾아가서 네가 걸레라고 말할 뿐만 아니라 학교에도 소문을 낼 거라고 했어요.
결국 얼마 안 있어서 은비는 휴학을 하고서 미국으로 어학연수를 떠나고 말았어요.
“그럼 너랑 엄마는?”
당연히 엄마하고 나도 난리가 났죠.
엄마는 마치 내가 아내를 두고서 바람을 핀 남편처럼 대하고 있었어요.
뭐 어떤 의미에서는 맞는 말이긴 했죠.
하지만 진짜 바람을 핀 것은 엄마잖아요?
아빠를 두고서 나와 바람을 핀 거니까....
게다가 우린 친엄마와 친아들 사이잖아요, 진짜 부부가 아니라....
지금이 통일신라나 고려 시대도 아니고 우린 진짜 연인이 될 수가 없는 관계잖아요.
물론 남들이 보기에 겉으로는 모자사이인 것처럼 굴면서 속으로는 부부처럼 지낼 수도 있겠죠.
하지만 과연 평생 동안 그렇게 지낼 수 있을까 전 확신을 내릴 수가 없었어요.
게다가 아빠 문제도 있었으니까요.
결국 엄마와 나 둘 다 서로에게 삐져서는 우린 냉전 상태에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좋아하는 섹스도 하지 않았어요.
물론 엄마나 나 둘 중 아무라도 손만 내밀면, 아니 나 같은 경우에는 자지를, 엄마의 경우에는 가랑이만 벌리면 우린 당장이라도 서로를 격렬하게 박아댈 수 있었을 거예요.
하지만 서로 자존심이 있었기 때문에 먼저 하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었어요.
그렇게 1주일 정도 시간이 흘렀어요.
어떤 의미에서는 그건 진짜 기록이었어요.
2년 전 엄마가 처음 내 자지를 빨아주었던 때 이후로 우리가 1주일이나 서로에게 손을 대지 않고 지냈던 건 이번이 진짜 처음이었거든요.
결국 1주일이 되던 때 엄마가 먼저 나에게 말을 걸었어요.
“야, 이 기영! 너 진짜 잘못했다고 말 안 할 거야?”
하지만 난 엄마가 은비에게 한 짓 때문에 여전히 화가 나 있었어요.
그 때쯤 은비는 아예 학교도 나오지 않고 있었거든요.
들리는 말로는 미국으로 유학을 갈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엄마 말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자 엄마는 매우 화가 난 목소리로, “좋아, 그럼 나도 나가서 아무 남자하고 자고 올 테니까 너도 그냥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라고 하고서 아파트의 현관문을 “쾅!” 크게 소리를 내며 닫고서 나가 버렸어요.
그 때서야 저도 좀 후회가 되더라고요.
애초에 바람을(?) 피운 건 내가 맞았으니까요.
하지만 우린 엄마와 아들 사이잖아요.
게다가 나이 차이도 무려 20살도 넘게 나니까요.
지금이야 엄마가 41살이지만 10년이 지나 내가 서른 살이 되면 엄마는 무려 50대라고요.
과연 그 때도 내가 엄마와 사이좋게 지낼 수 있을까요?
결혼도 하지 않고 계속 엄마와 같이 살 수 있을까요?
그리고 아빠는요?
그래서 난 엄마가 그렇게 화를 내면서 나갔는데도 도저히 잡을 수가 없었어요.
아니, 어쩌면 엄마도 이런 사실들을 나보다 더 잘 알고 있었을지도 몰라요.
그래서 더 화가 났을지도 몰라요.
여자는 나이가 깡패라는 말이 있잖아요?
엄마가 아무리 운동을 열심히 하고 피부과를 다니며 관리를 열심히 받아도 결국 20살의 은비에 비하면 나이 많은 아줌마일 뿐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몰라요.
엄마는 그날 밤 집에 돌아오지 않았어요.
난 걱정이 됐어요.
엄마가 진짜로 성인나이트클럽 같은데 가서 원나잇을 했을까봐 걱정이 됐기도 했지만 그러다가 진짜로 이상한 똘아이를 만나서 무슨 사고라도 당하지 않았을까 해서 말이에요.
(그 때는 핸드폰이 없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기영이 엄마처럼 갑자기 집을 나가고 나면 그녀가 먼저 연락을 하기 전에는 연락을 할 방법이 없었다.)
다행히 다음 날 아침 10시경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어요.
지금 부산이니까 걱정하지 말라면서요.
하지만 난 엄마가 어제 나와 싸운 후 바로 부산으로 내려갔는지 아니면 나이트클럽이나 호스트바 같은 델 가서 원나잇을 한 후에 부산으로 내려갔는지 알 수가 없었어요.
어쨌든 엄마는 이번에 진짜로 화가 났는지 2주일이 지나도 서울에 올라오지 않고 있었어요.
저녁에 내가 부산의 집으로 전화를 걸면 아무도 받지 않을 때가 많았고 가끔 엄마가 전화를 받을 때에도 지금은 일이 좀 있어서 못 올라가니까 밥이나 잘 챙겨먹고 다니라는 말만 하고 끊었어요.
그렇게 두 달이 다 지나가고 있을 때까지도 엄마는 여전히 올라오지 않고 있었어요.
그 동안 난 뭘 하고 있었냐고요?
당연히 공부를 했죠.
곧 기말고사 시험이 다가왔기 때문에 공부를 할 수 밖에 없었어요.
의대는 유급이라는 제도가 있어서 학점을 따지 못하면 내년에 신입생들이랑 또 다시 1학년 수업을 전부 다 들어야 했거든요.
게다가 의대 공부는 내 적성에 잘 맞았거든요.
그렇게 기말고사가 끝난 시점이었어요.
엄마는 여전히 올라오지 않고 있었는데.....
미안한데 형님....나가서 바람 좀 쐬고 술을 좀 더 사와야 할 것 같아요.
지금부터는 도저히 제정신에 얘기를 못 하겠거든요.
‘씨발, 아직까지 한 얘기들은 다 뭐야? 그런 얘기보다 더 심각한 얘기가 있다고?’
(난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기영이를 따라서 밖으로 나갔다.
그 동안 좁은 모텔 방안에서 담배를 피우며 얘기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 둘 다 바람을 좀 쐴 필요가 있기는 했다.
우린 차가운 밤공기를 맞으면서 소주 3병과 적당한 안주거리를 사서 다시 모텔방으로 돌아갔다.
방으로 돌아가자 기영이 녀석이 소주를 병째로 들어서 반이나 마시고 있었다.
씨발, 진짜 무슨 얘기를 하려고 저려는 걸까?)
제 6 장
기말고사가 끝난 후 우린 종강파티를 했어요.
난 술을 진탕 마셨고 다음날 전화소리에 잠에서 깨어났어요.
시계를 보니까 12시가 조금 넘었더라고요.
그건 엄마였어요.
아버지가 위독하니까 부산으로 빨리 내려오라는 내용이었어요.
난 깜짝 놀라서 고속버스를 타고서 당장 부산으로 내려갔어요.
그리고 엄마가 말한 대학병원으로 갔어요.
아버지는 대학병원의 호스피스 병실 1인실 침대에 누워 있었고 엄마는 얇은 원피스 차림으로 그런 아빠의 옆에 앉아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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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아버지는 아직 의식이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급성 췌장암이었습니다.
몸이 너무 피곤해서 대학병원에서 근무하는 동기 의사를 찾아가서 검사를 받았는데 췌장암 4기라고 했다는군요.
이미 다른 장기로 전이가 돼서 수술은 안 되고 그 동안 항암요법만으로 치료를 받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 때문에 엄마가 서울로 오지 못한 거였고 내 공부에 방해가 될까 싶어서 아직까지 비밀로 했다는군요.
뭐 나에게 미리 알려줘 봤자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할 거고 괜히 내 마음만 심란해진다고 생각하셨던 같습니다.
처음에 말했었나?
아버지와는 그렇게 사이가 나쁜 편이 아니었다고 말이에요.
그냥 엄마의 학구열이 너무 강했을 뿐이었다고 말이에요.
아버지는 나에게 자신이 그렇게 바랬던 서울대의대에 붙어서 너무 자랑스럽다는 말과 그 동안 벌어놓은 돈은 꽤 있으니까 그거면 엄마와 나 둘이서 충분히 먹고 살 수 있을 거라는 말, 그리고 열심히 공부해서 자신의 병원을 꼭 물려받아서 운영했으면 좋겠다는 등의 유언을 남겼습니다.
그 동안 아버지는 엄마와 나의 안정된 장래를 보장하기 위해서 아픈 몸을 이끌고 바쁘게 움직였던 것 같았습니다.
해운대 쪽에 있는 상가 건물 두 채를 하나는 엄마, 그리고 하나는 내 앞으로 돌려놓았고 제일 중요한 병원은 변호사를 통해서 신탁관리 비슷하게 운영되게 해 놓았더라고요.
지금 아버지의 친한 후배가 부원장으로 있는데 그 부원장과 나에게 병원지분을 각각 50%씩 나누어주고서 내가 나중에 의사면허를 따면 아빠 병원을 물려받게 손을 써 놓았더라고요.
물론 그 때 가서 내가 원하지 않으면 그 지분을 다른 사람에게 팔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난 이틀 정도 앞으로의 일과 이런저런 옛날얘기를 아버지와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3일째 되는 날 아버지는 의식을 잃었습니다.
형님, 혹시 주위에 암으로 돌아가신 분이 있었나요?
없었다고요, 다행이네요.
아버지는 의식을 잃었지만 아직 돌아가시지는 않았어요.
이런 말기 암환자의 경우에는 고통이 너무 심해서 마지막에는 소위 모르핀이라고 불리는 강한 마약성 진통제와 수면제를 동시에 처방하거든요.
그래서 거의 잠을 자는 상태로 하루나 이틀 정도 있다가 돌아가시게 돼요.
아버지도 그런 주사제를 투약 받았는데 반쯤 수면상태에서 눈을 떴다가 감았다가 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눈을 뜨고 있을 때에도 초점이 거의 없이 병원천정만 쳐다보고 계셨고 나나 엄마가 하는 말에도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어요.
그 때쯤 되면 온몸에 심전도며 각종 기계들을 달아놓고 있어요.
종합병원이 나오는 영화나 드라마에 보면 자주 나오는 장면들을 상상하면 될 거예요.
그래서 그 기계에서 “삐삐삐!” 하는 소리가 나오지 않으면 간호사도 3, 4시간마다 하는 정기적인 체크 외에는 거의 병실에 오는 일이 없어요.
그렇게 엄마와 나는 1인실 병실 안에서 아버지의 임종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의사 말로는 길어야 이틀 정도라고 했지만 당장 오늘 밤이라도 돌아가실 수 있었고 3일 후에도 여전히 살아계실 수도 있었어요.
그건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으니까요.
그날 밤이었어요.
아마 새벽 1시쯤인가 그랬던 것 같아요.
병실에는 아버지가 누워 있는 환자용 침대 옆에 보호자들이 누워서 쉴 수 있는 보조침대가 하나 더 있었어요.
여기가 1인용 병실이라서 그런지 보조침대도 꽤 커더라고요
조금 좁지만 엄마와 나 둘이 같이 나란히 누워서 잘 수 있을 정도로 말이에요.
엄마와 난 서로 돌아가면서 아버지를 지켜보기로 했고 내가 먼저 침대에 누워서 잠깐 눈을 붙이기로 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사타구니에서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 난 잠에서 깨어났어요.
그리고 아래를 내려다본 순간 난 깜짝 놀라고 말았어요.
씨발, 엄마가 내 다리 사이에 쭈그리고 앉아서 내 자지를 빨고 있는 게 아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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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발! 뭐? 네 아버지가 아직 살아서 옆에 누워 있는데?”
(난 도저히 내 귀를 믿을 수가 없었다. 비록 의식이 없긴 하지만 자기 남편이 아직 살아서 바로 옆에 누워 있는데 아들의 자지를 빤다고? 씨발, 이 여자는 진짜 미쳤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네.
나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어요.
처음에는 그게 꿈인 줄 알았다니까요.
하지만 곧 그게 꿈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어요.
자지를 빨리는 느낌이 너무 생생했으니까....
난 너무 깜짝 놀라서 엄마에게 제발 그만 하라고 했어요.
하지만 엄마는 막무가내였어요.
내 말은 들은 체도 하지 않고서 내 자지를 더욱 더 세게 빨기 시작했어요.
아니 그 뿐만이 아니었어요.
엄마는 아예 내 사타구니 위로 올라와서는 스커트를 위로 걷어 올리고 있었어요.
씨발, 그런데 그 안에 아무 것도 입고 있지 않은 노팬티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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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는 내 자지를 붙잡더니 허리를 위로 들어 올려서는 내 귀두를 흠뻑 젖어 있는 보지구멍에다 갖다 댔어요.
그리고는 엉덩이를 떨어뜨렸어요.
내 자지가 너무나 탄탄하고 뜨거운 엄마의 보지 속으로 미끈거리며 들어가는 너무나 익숙한 느낌이 밀려왔어요.
생각해 보니까 엄마와 섹스를 하지 못한 게 벌써 두 달, 아니 세 달 가까이 되어가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나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어요.
아래를 내려다보니 이제 내 자지는 완전히 뿌리까지 엄마의 보지 속에 박혀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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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익숙한 보지의 감촉, 내가 태어난 바로 그 구멍이 내 자지를 세게 감싸주고 있다는 사실에서 오는 배덕감은 또 다시 날 미치게 만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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