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기한 이야기-5
여기서 말하는 아내의 연락은 그동안 소소한 일로 무슨 서류 보내달라고 하든가 아니면 가족 일로 필요한 거 요청하면 내가 보내주던가 하는 그런 연락 외에 만나자는 연락을 뜻한다.
아내가 갑자기 좀 보자니 무슨 일이 난건지 걱정도 되고 지금 내 상황이 이러니 뭔가 들킨건 같은 생각도 들어서 뒤숭숭해졌다.
저녁에 온 카톡 때문에 신경이 쓰여서 자꾸 멍하게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지자 제수씨가 물었다.
"무슨 일이에요? 혹시 집에서..."
하지만 여자들은 촉이란 게 있다.
"네."
"다녀오세요. 마침 주말도 지났고.."
"그래도 될까요? 혼자 괜찮겠어요?"
"네. **씨가 다 해놔서 잔디 물만 주면 돼요."
"그래요. 그럼 얼른 갔다 올테니까 이틀 정도만 혼자 있어줘요. 무슨 일 생기면 바로 전화나 톡하고."
"네."
그렇게 밤이 되자 제수씨는 내게 다가왔다.
"내일 아침에 일찍 갈거예요?"
"네. 그래야 빨리 갔다 오지."
"빨리 다시 올거죠?"
"그럼요. 여기 일이 산더민데."
"일 때문에? 난?"
내가 제수씨를 덥썩 안았다. 그리고 강하게 키스했다. 제수씨는 다시 새처럼 연약한 여자가 되어 있었다.
침대로 가서 눕히고 그대로 뜨거운 사랑을 나눴다. 내 밑에서 나를 바라보면서 가면 다시 안올 사람처럼 생각하는 건 아닐까? 살폈다.
제수씨는 내 몸에 반응하면서 신음소릴 내고 있었지만 역시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었다.
내가 움직이다 멈추고 물었다.
"왜요? 신경 쓰여요?"
"네.. 왠지 **씨 가면 안올 거 같아요."
"그런 생각 아예 하지도 말아요. 안오긴 내가 왜.."
제수씨는 밑에서 허리를 움직이면서 내 엉덩이를 손으로 눌렀다.
"정말 다시 올거죠?"
"그럼요. 진짜. 약속해요. 그냥 얘기만 하고 올게요."
나는 제수씨의 그런 불안감을 없애주려고 본격적으로 허리를 움직였다. 그제서야 좀 안심이 되는지 제수씨는 내게 매달리며 우는 듯한 신음소릴 냈다.
그게 자극이 됐다. 제수씨 안에 폭발하듯 정액을 분출했다. 내가 옆으로 누워 가슴을 애무하면서 부드럽게 제수씨의 보지를 만졌다.
미끌거리는 느낌이 좋았다. 그리고 아직도 잘록한 허리를 부드럽게 감싸 안고 키스했다.
제수씨는 가만히 내 입술을 받고 혀를 내밀었다. 우린 서로 부드럽게 핥아주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몰래 나가려고 했는데 제수씨는 이미 일어나 있었다.
눈을 뜨니 옆에 없었다. 샤워를 하려고 욕실로 가는데 주방에서 뭔가 준비하는 모습이 보였다.
반찬을 약간 싼 것 같았다.
"이거 가져가서 드세요. 집에 아무것도 없을텐데.."
우리집 사정을 아는 제수씨가 이틀 정도 집에 있어야 한다고 반찬을 준비해준 것이다.
의외의 일이라 약간 놀라고 있는데 "그래야 여기 잊지 않을거니까." 라면서 살짝 웃었다.
기묘한 수법이었다. 나도 모르게 ㅎㅎ 하면서 크게 웃었다.
어쨌든 짐을 좀 챙겨서 나서는데 영 기분이 막막했다.
혹시 그 사이에 주중 캠퍼가 들어오면 혼자 감당이 가능할지 걱정이었다.
그래도 밖에서 일할 땐 엄청나게 카리스마가 있어서 나도 놀랄 정도의 여자니 큰 걱정은 없었다.
오랜만에 시동을 거는 내 차는 클클거렸다.
출발해서 집까지 오는데 우리집이 이렇게 가까웠나 싶을 정도로 순식간에 도착했다.
집으로 들어가는데 와이프 차가 보였다.
괜히 가슴이 덜컥 했다.
비번을 누르면서 '혹시 비번을 바꾸거가 그러진 않았겠지?' 하면서 눌렀다. 내가 드라마를 너무 봤나? 하면서 안으로 들어갔다.
집안은 사람이 오래 없었던 티가 났다. 그런데 뭔가 안에서 소리가 났다. 와이프가 청소기를 돌리고 있었다.
생전 집안 일이라고는 손을 떼고 사는 여자였는데 갑자기 청소를?
윙윙거리면서 방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 그건 와이프 방이 아니라 내방이었다.
이상한 생각에 들어오자마자 내방으로 갔다.
안에서는 반바지 차림에 와이프가 열심히 바닥을 청소기로 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청소기 소리에 내가 가는 줄도 모르고 있다가 내가 문앞에 서있는 걸 보더니 놀라서 비명을 질렀다.
"으악! "
곧 난 줄 알고는 "아휴. 놀랐잖아. 왔으면 왔다고 말을 좀 하지!"
몇 백년 만에 들어보는 와이프의 목소리였던가? 이 여자의 목소리가 이렇게나 맑았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어.. 미안." 이라고 간단하게 말하면서 거실로 나왔다.
마침 청소가 다 끝났는지 와이프는 청소기를 갖고 나와 거치대에 꽂더니 나를 보고 약간 어색한지 말을 걸었다.
"집안꼴이 이게 뭐야? 청소라도 좀 하지.."
뭐지? 이 분위기는. 마치 매일 대화라도 하고 산 여자처럼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진짜 어색하고 이상했다. 전혀 딴사람 같이 구는 게 기분이 나빠질 정도였다.
"밥은 먹었어?"
내가 지금 꿈을 꾸는 건가? 내가 먹고 사는지 아닌지 궁금한 와이프라니...
점점 이상하게 구는 와이프가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어... 근데... 갑자기 왜..."
말을 더듬거리자 와이프는 나를 가만히 보더니 "내가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지도 않았어? 어떻게 연락도 없이.."
"가끔 연락은 했잖아. 카톡..."
"그게 연락이야? 자기 마누라한테. 목소릴 들어야지."
지난 몇 년간 들은 가장 많은 말이었다.
"암튼 왜 보자고 했어?"
내가 좀 냉랭하게 대하기 시작하자 이건 아니다 싶었는지 와이프가 그 이유를 말했다.
"나... 친정 가서 지내면서 생각도 많이 하고 또... 반성도 많이 했어. 그리고 결론 내렸어. 당신하고 잘 해보려고."
"갑자기?.. 무슨 일이 있었길래..."
"아니.. 무슨 일은 아니고.. 내가 정신과에 다녔거든."
"상담 같이 받아보자고 할 때 그렇게 반대하던 사람이 정신과?... 별일이네.."
이미 내 말투는 좀 비뚤어져 있었다. 왜 그런지는 몰라도 아내의 그 혼자 결정하고 혼자 결론까지 내려버리는 태도에 그간의 기억이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나도 사실은 많이 비뚤어져 있었다. 정신과를 가려면 나도 갔어야 한다.
"맞아. 그런데 거기서 만난 선생님이 진짜 좋은 분이더라고. 내 문제가 뭔지 잘 짚어주셨거든. 나 이제 진짜 많이 좋아졌어. 당신한테 미안한 마음도 크고."
"그래서 나랑 다시 시작해보겠다고? 우리가 뭐 이혼이라도 했나? 다시 시작한다는 게..."
"여보. 그렇게 생각하지 말고 우선 내가 그냥 여기서 당신이랑 시간을 같이 보내면서 서로에 대해 다시 바라보는 시간을 가지면..."
"아냐. 난 그러고 싶지 않아. 당신에 대해 생각해 보고 말고 할 것도 없이 그냥 우린 이미 너무 멀리 왔어."
단호하기까지 한 내 태도에 놀란 와이프는 눈을 크게 떴다.
얼굴은 긴장한 얼굴로 변했고 자기 생각대로 안되자 조금씩 화가 나는 얼굴이 되어 갔다.
"여보. 내가 다 잘못했다고 하고 우선 시간을 같이 보내는 게 어떨까? 나 진짜 용기 많이 냈어."
내가 와이프에게서 질리는 게 이런 부분이었다. 늘 제멋대로였다. 사실 이러는 것조차도 자신만을 위해서지 나를 위한 게 아니지 않은가?
그리고 순간적으로 빨리 팬션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 가면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제수씨가 있다. 나에게 전부를 다 주는 여자다. 마음대로 안고 키스하고 섹스할 수 있는 여자다.
내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행복한 순간을 함께 할 수 있는 여자가 거기 있다.
그 순간 이 집이 감옥처럼 느껴졌다. 와이프의 모습은 나를 감옥에 가두려는 간수처럼 무시무시하게 변했다.
와이프는 내가 말이 없자 당황스러웠던 모양이다.
내게 다가오더니 어색하게 나를 안으려고 했다. 이것도 정신과에서 시킨 건 아닐 것인데 나름 노력하려고 하는것 같았다.
내가 몸을 좀 피하면서 들고온 가방을 발로 툭 건드렸는데 거기 들어있던 것들이 쏟아졌다.
락앤락에 담긴 반찬통도 튀어나왔다.
그걸 보더니 와이프가 "어머.. 이거 뭐야?" 하면서 주섬주섬했다.
그리고는 "반찬인가? 당신 어디서 이거 가져왔어? 판매용은 아닌 것 같은데?" 라고 물었다.
나는 아무 말없이 반찬통을 냉장고에 넣으려고 문을 열었다. 냉장고 안은 몇 달 집을 비운 까닭에 엉망아 되어 있었다.
와이프가 그걸 보더니 내가 그동안 집에 없었다는 걸 눈치챘다.
청소를 하면서 이상하다 했겠지만 이런 정황이 확실하게 알게 해준 것이다.
"당신 그동안 집에서 안지냈어? 그럼 어디서 지낸 거야?"
그러면서 내 모습도 찬찬히 살피더니 옷이 비교적 깨끗하게 보이는 것도 눈치를 챘다.
여자의 촉이란 건 무서운 것이었다.
와이프의 눈빛이 변했다.
"당신 여자 생겼어?"
차갑게 물어보는 와이프의 얼굴을 더 보기 싫어서 그냥 이대로 다시 팬션으로 돌아가야겠다 마음먹었다.
다시 들고온 가방에 반찬을 넣으려고 움직이자 와이프는 내 뒤에서 나를 붙잡았다.
"여보! 미안해. 그게 아니라... 여보. 잠깐만.. 제발.."
나는 사실 늘 하던대로 하는 것이었지만 와이프는 그게 아닌 것이었다. 절박한 목소리가 들리자 나도 어쩔 수 없이 돌아서서 가방을 내려놓고 내방으로 들어갔다. 뒤에서는 반찬을 냉장고에 넣고 있는 와이프의 모습이 느껴졌다.
냉랭해진 내 마음은 오랜만에 보는 와이프를 보고도 전혀 반갑지가 않았다.
내 마음 속에는 이미 제수씨의 모습만 있을 뿐이다. 와이프도 남못잖은 미인이고 어디 가서 빠지지 않은 여자지만 이젠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나에겐 온통 팬션에 남겨두고 온 제수씨만 있을 뿐이다. 이틀 동안 나를 기다리면서 불안해 하고 있을 여자다. 나에게만 모든 걸 다 주는 여자다. 내 아래에서 나를 받아주면서 내 온 몸을 애무해주는 최고의 여자가 거기 있다.
책상에 앉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밖에서 왔다갔다 하는 와이프가 성가시게 느껴질 정도였다.
막상 집에 와보니 청구서도 꽤 있고 공과금 밀린 것도 있고 정리할 게 많았다. 그걸 다 정리하고 일어서니 저녁이 됐다.
밖에 나가서 담배나 한대 피워야게다 싶어서 옷을 걸치고 나오는데 놀랄 장면이 펼쳐졌다.
와이프가 식탁에 저녁을 차려놓고 있었다.
"여보. 저녁 먹자. 내가 맛있게 해봤어. 당신 좋아하는 갈치 조림도 했고."
정말 식탁에는 내가 너무 좋아하는 갈치조림이 준비되어 있었다.
결혼 초에 내가 하도 갈치조림을 좋아하니 와이프가 갈치랑 원수지간이냐고 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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