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사랑 빼빼로 썰

벌써 한참 전의 이야기야.
나 땐 초등학교라 안 하고 국민학교라고 했다.
아무튼 국민학생일 때 짝사랑하던 여자애가 있었는데, 운이 좋았는지 아니면 내가 살던 동네가 좁아서 그랬던지 같은 중학교에 입학하게 됐어.
중학생이 되어서도 바보 병신처럼 계속 짝사랑했었다. 근데 걔가 좀 논다 하는 일진들과 어울리고 금방 발랑 까져버리는 모습을 보고 절대 무서워서가 아니고 양아치 같은 여자는 내 타입이 아니라서 짝사랑을 그만두게 되었어.
그 까져버린 애를 아직 좋아하고 있는 동안, 같은 반에 수진이라는 공부를 매우 잘하던 여자애가 있었다. 번호 순으로 자리를 배정받아서 6개월 넘게 수진이랑 짝이 될 수 있었어.
나는 그 당시 수줍음이 많아서 여자들이 말 걸면 얼굴에 티 나게 빨개지던 그런 아이였어. 이상하게 수진이랑은 오랜 기간 짝이어서 그런 건지 굉장히 마음이 편한 사이가 되었어.
내가 걔 공책을 빌려서 거기다가 낙서를 해서 돌려줘도 아무런 말 안 하는 그런 친구가 되었다.
중학교 1학년, 11월 11일. 그때까진 점점 양아치화 되어가는 그녀였지만 아직 좋아하고 있어서 학교 매점에서 빼빼로를 사서 전해주려고 마음먹었어. 이왕 주는 거 포장해서 주는 게 좋겠다 생각해서 짝이었던 수진이에게 포장을 부탁했다.
이미 반년간 짝이어서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 나누던 수진이는, 본인이 포장하던 그 빼빼로가 누구에게 선물 될지는 잘 알고 있었을 거야.
그녀가 정성스레 포장을 해준 빼빼로를 교복 마이 안쪽 주머니에 조심히 넣고 짝사랑하던 그녀의 반으로 나섰어.
교실 밖으로 나가서 그녀의 반으로 향하던 차,
드르륵 교실 앞문이 열리면서 수진이가 내게 상기된 얼굴로 불러 세우고는
"그 빼빼로... 그냥 나 주면 안돼..? 라고 말했어.
차마 짝사랑하던 여자에게 줄 거라는 말은 못하고 "이거 부모님 드릴 거야"라는 말도 안되는 변명을 하고
그녀의 반으로 향했다.
짝사랑의 한계였던지 아님 고백 아닌 고백의 마음이 담긴 빼빼로를 전하는 게 두려웠던 건지
그날 난 누구에게도 빼빼로를 전해주지 못 했다.
이제 완전체 양아치가 된 내 짝사랑에 대한 내 마음은 완전히 식어버렸다.
어떻게 된 일인지 나는 전혀 관심도 없었던 내 짝 수진이가 좋아지기 시작했어.
한 번 좋아하기 시작한 혼자만의 사랑은 멈출 수 없이 커져가기만 했고
그렇게 중학생 내내 수진이만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고 심장이 떨려오는 진짜 심각하게 그녀에게 빠지게 되었다.
2학년이 지나고 3학년이 되었을 때 내 염원이 이루어진 건지
수진이와 나는 같은 반에 배정이 되었어.
그런데 이미 나에 대한 마음이 식어버린 그녀는, 그리고 이제 점점 더 성숙해져 여자가 되어가는 그녀에게는
키도 작고 아직 2차 성징이 시작되지도 않은 어린 티가 남아있던 평범한 소년은 그녀의 관심 밖 대상이었을 거야.
중학교 3학년. 11월 11일.
같은 빼빼로였지만 담긴 마음은 달랐던 그날.
나는 수진이에게 용기를 내서 빼빼로를 전해줬지만 수업이 끝날 때까지 그녀에게서 아무것도 받지 못했어.
본인과 친한 몇몇 남자에게 빼빼로를 전해주던걸 목격했지만 나에게는 주지 않더라.
마음은 점점 굳어져가고 무거워지면서 쓸쓸히 하교를 하려고 할 때
그녀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나를 불러 세우고는, 어제 본인이 직접 만든 빼빼로라면서 내게 건네주었다.
그녀에게 받은 건 그냥 빼빼로였지만, 왠지 마음을 받은 거 같아서 지금까지 살면서 손에 꼽을 정도로 무척이나 행복해했던 기억이 난다.
이미 행복에 도취되어서 제정신이 아닌 나는 받았던 빼빼로를 고이 싸 들고 집으로 오게 됐다.
집에 와 정신을 좀 차리고 행복한 마음에 수진이가 준 빼빼로를 꺼내 먹게 되었어.
그녀 생각을 하면서 기쁜 마음으로 빼빼로를 먹는데, 아무리 수제 빼빼로라고 하지만 맛이 상당히 특이했다.
초콜릿 때문에 전체적인 맛은 달콤했지만 거뭍거뭍한 빼빼로에 수상하게 입혀진 하얗게 굳어진 정체불명의 액체 때문에
시큼한 맛이 났다.
그땐 중학생이라 내가 먹으면서 느꼈던 시큼한 맛의 정체를 알 수 없었지만
나이가 들고 그녀가 내게 상기된 얼굴로 "아무에게도 주지 말고 너 혼자 먹어야 해"라는 말을 떠올려보면
내가 먹었던 정체불명의 하얗게 굳어진 액체가, 여자들이 흥분하면 소중한 곳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매년 빼빼로 데이가 될 때마다 중학생 때 열렬히 좋아했던 수진이가 생각이 난다.
세줄 요약
1 중학교 때 짝사랑하던 여자애한테서
2 빼빼로를 받았는데
3 시간 지나 생각해보니 보빼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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