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머니 1
1-부 6:25 사변의 발발-1
대장… !!
내가 5 학년에 올라가서 공부를 하기시작한지도 벌써 3 개월 가까이 지난 6 월 말 경의 어느 날이었어.
6 월이면 초여름이 시작되는 계절인데다 그해는 유난히 일찍부터 더워지고 있었어.
다들 금년 여름에도 어지간히 무덥고 지루한 장마에 시달려야겠다고 걱정들이 태산 같았었는데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이 6 월 달 초부터 찌푸린 날씨가 계속 오락가락 하고 있는 거야.
아니나 다를까 그 달 중순경쯤부터 빗줄기가 본격적으로 굵어지기 시작했어.
소위 올 장마가 시작되고 있는 거였어.
그런데 또 어느 날부터 인지「대전」시내에는「서울」같은 대도시에서나 볼 수 있는 고급 자동차들이 갑자기 많이 다니는걸 보게 되었어.
도시의 큰길에는 평소 못 보던 이상한 사람들이 많이 왔다 갔다 하면서 어딘지 모르게 도시 전체가 어수선하고 웅성거리는 느낌이 드는 거야.
그리고 나서 다음날 나는 비를 맞으며 학교엘 갔었어. 학교에서도 마찬가지였어.
웬 지 모르게 분위기가 어수선하고 아이들도 웅성거리며 모두들 들 떠 있는 거야.
무슨 난리가 났다는 거지…
무언지 는 몰라도『38 도선』을 넘어서 북쪽의 공산당인「인민군」들이 우리 나라로 쳐내려 온다는 둥... !? 또 그것을 우리 국군이 다시 밀고 북쪽으로 올라간다는 둥 도무지 영문을 알 수 가 없는 거야.
또 지금쯤「서울」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피난을 갔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고...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이상한 말들이 떠돌고 있는 거야.
어린 나이인 우리 반 아이들도 난리가 무언지도 모르면서 공연히 마음들이 들떠서 저마다 끼리끼리 떠들고들 있는 거야. 이윽고 담임선생님이신「국상운」선생님이 교실로 들어오셨어.
그리고 하시는 말씀이 38 도선 이북에 있는「공산당」인「인민군」들이 우리나라로 쳐들어 왔는데 역시 소문대로 용감한 우리 국군이 이들을 물리치기 위해 싸우고 있으니까 혹시 그 싸움에 너희들이 다칠지도 모르니까 너희들은 학교에서 별도의 통지가 갈 때까지 부모님 말씀 잘 듣고 당분간 학교에 오지 말라는 말씀을 하셨어.
- 와 아… ! -
우리들은 우선 학교가 쉰다는 말씀에 마치 방학이라도 맞이한 것처럼 기뻐서 소리를 지르며 기뻐하고 있었던 거야... 그리고는 각자 자기들 집으로 돌아가고 만 거지.
그렇게 헤어진 것이 우리들 친구들 간에 이 세상에서 마지막 헤어짐이 되리라고는 그 당시 어느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거지. 물론 그 중에서 대부분은 그 후에 다시 들 만났지만 말이야….
훗날 이야기이지만 다시 못 만난 친구중의 하나가 나 자신도 끼게 된 것이지.
내가 맨 마지막으로 교실을 나오려고 할 때「국상운」선생님께서 나를 부르시더니 한참동안 아무말씀도 안 하시고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시기만 하는 거였어.
아마도 무언가 이상한 예감이 들었었나봐….
또 내 엄마에 대한 애절한 미련도 떨쳐 버릴 수가 없기도 하셨나봐… !?
사실 그 전쟁이 얼마나 민족적인 비극을 낳게 되리라고는 그당시에는 그 어느 누구도 몰랐었지.
멋도 모르고 나는 신나는 기분으로 집으로 돌아 왔어.
집에서도 어수선한 분위기는 마찬가지였어.
내 아버지께서는 그 당시에 그토록 귀한 라디오를 틀어놓고 양조장의 일꾼들과 근심 어린 걱정을 하시고 계셨어.
엄마도 바쁘게 돌아가고 있는 내 아버지 옆에서 정국(政局)의 추이(推移)를 걱정하시며 집안 내의 이런 저런 일들을 도와주고 계신 거지.
그런지 며칠이 지나지 않아서 어쩔수 없이 엄마는 어린 두 동생들을 데리고 신도안으로 먼저 가셨어.
그때까지 아직은 기차가 다녔기 때문에 대전역에서 호남선열차를 타고 두게 역 까지 가셔서「신도안」으로 가신거지.
엄마가「신도안」으로 가신 그날저녁때부터 그나마 다니던 기차마저 끊어졌다고「대전」우리 집 근처에 사는「신도안」의 같은 마을 사람들이 우리 집에 몰려와서 내 아버님을 붙잡고 걱정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속으로 무척이나 재미있어 했었지….
그러나 차차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철없이 재미있어 할 상황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기 시작한 거야.
「대전」시내의 상황이 점점 심각해지고 있는 거야...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벌써 인민군의 전방부대인「팔로군」들이「대전」시내를 포위하고 그 주변 산을 타고 내려가서「금산」까지 점령했다고도 하고 또「유성」쪽이나「대평리」는 이미 적군의 손에 넘어 갔다고들 하는 거야.
자칫 잘못하면 피난 갈 시기를 놓치게 될지도 모른다는 거래.
다급해 진 거지….
나는 아빠와 함께 맨 마지막으로 집안 단속과 양조장의 문을 잠그고「신도안」으로 가기 위해 집을 나섰어.
집을 떠나기 전에 아버지는 나에게 한 뭉치의 돈 다발을 건네주셨어.
- 니… 이 돈을 단단히 간수했다가 행여 이 아버지와 떨어지거나 위급할 때 가 되 문 쓰 그 레 이… 잉… ! 알긋나… ? -
정말 난리가 났다는 걸 실감 할 수가 있었어.
나는 그 돈을 내 속옷 안쪽에다 넣고 바늘과 실로 꿰매어 간수했어.
단단히 준비를 하고 길을 나선거지.
동네는 언제부터인지 지나가는 개 한 마리도 보이지 않게 조용하기만 했어.
정말 유령 도시 … 죽은 도시란 말이 실감나는 정경이었어.
아침부터 다 저녁 때 까지 걸었는데도 겨우「유성」을 조금 지나고 있는 거야.
이 세상천지 어디에도 군인이나 경찰이라는 사람들은 어느 누구도 없는 거야.
이 쪽 편이거나 저쪽편이거나 완전히 국가라는 권력기관이 공백인 상태 인 것이지. 정말 무서웠어.
또 한 여름의 뙤약볕아래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걷는다는 건 정말로 싫었어.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것 아닌가 말이야.
「유성」을 지나 막 하카리라는 마을을 지날 때쯤이었어.
「하카리」뒤 편 산모퉁이에 무슨 누런 줄무늬 같은 띠가 주-ㄱ 둘러 쳐져서 그 줄이 일렁일렁 흔들리고 있었어.처음에는 그것들이 무언지 모르고 지나가던 사람들이 의아하게 생각했었는데 차츰 그것들이 가까워 오는걸 보니까 … ! 알고 보니까 그 줄은 바로 사람들이 줄을 서서 차례로 움직이듯이 꿈틀거리는 광경인 거였어.
앗-차 … ! 「인민군」들이었어 … !
수백 명 아니 수천 명인지도 몰랐어. 아버지와 나는 기절초풍 한 거지.
그러나 그렇게 많은 군인들이 산등성이를 타고 내려오는데도 기침소리나 발소리 하나 없이 조용하기만 하고 질서 정연했어. 그래도 우리는 지금 피난 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들에게 붙잡히면 큰일이다 싶어 근처의 수풀더미 속으로 숨어야했어.
그런데 이상한 일이 발생한 거야.
우리가 숨어있는 바로 옆을 그들은 지나가면서 아무런 제재나 검문도 하지 않고 그대로 지나가는 거야.
- 동무들… 너무 그렇게 무서워하지 말기요… ! 미제(美帝) 놈들 때문에 고생들이 많 수다… ! 조금만 더 참으면 살기좋은 날이 오 갔지요… ! -
우리 딴 에는 한참을 웅크리고 숨는다고는 했지만 마치 꿩이라는 새가 숨는다고 머리만 처박는 형국처럼 되어버린 꼴로 있었는데 갑자기 머리 위에서 낯선 이북 사투리의 말소리가 들려 왔어.
얼마나 놀랬는지 … !? 그러나 그들은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듯이 유유자적하게 우리들 곁을 지나「유성」쪽으로 행군을 계속 하고 있었어.
일종의 감격이라 할까 … ?
나는 북한 괴뢰도당이라고 하며 마치 무슨 사람잡아먹는 괴물이라고 배워왔던 그들 인민군대에 대한 느낌이 일시에 사라져 버리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었어.
이것도 다 그들의 대민 선무 작전(對民宣撫作戰) 인지는 몰라도 … ?
그 바람에 우리는 한나절이라는 시간을 허비하고 그날 밤은「하카리」근처의 민가에서 자고 다음날 저녁 무렵이 훨씬 지나서야「작산리」마을에 도착 할 수가 있었어.
그래도 내 아버지는 한 참 혈기 왕성한 장정이었기 때문에 힘들다고 징징거리는 나를 잘 달래가면서 피난 보따리를 한 짐씩 지고서도 이틀 만에「대전」에서부터「신도안」까지 올 수가 있었어.
「신도안 」의 집에서는 우리들이 올 때가 지났는데도 빨리 오지를 않자 전 식구들이 얼마나 들 걱정을 하고 있었는지 … !? 특히 내 엄마는 몸 져 누우실 정도였었나 봐.
엄마는 아버지 보다도 나를 붙잡고 너무너무 기뻐하시는거야.
「신도안」의 집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였어.
그곳의 어른들은 이미 여러 번 난리를 겪었던 경험이 있는 사람들도 더러는 있었지만 대개는 순박한 시골 사람들이라 이번 난리에 대해서 우왕좌왕 하기는 모두가 마찬가지 였 던 거야.
왜정시절(倭政時節)「일본군」에 의해서 징용이나 군인에 끌려갔었던 사람들도 이번처럼 같은 민족끼리의 전쟁은 처음 경험하는 거지.
세상이 바뀐 거야... !!
드디어「대전」도 우리가 사는「신도안」도 또 이웃고을인「공주」나... 온통 세상이 빨갱이들 공산주의 천지로 바뀌고 만 거야.
이제부터는 그 동안 못살고 가난해서 남의 집 소작농(小作農)이나 부쳐 먹고살던 사람들이 주인이 되는 세상이 되었다고 온통 마을 전체가 떠들 썩 해진 거지.
그 동안 땅도 많고 머슴도 많이 부리던 양반 집 부자들은 모두들 쥐구멍 속으로라도 들어가려는 듯 어쩔 줄을 못 하고 있는 거야.
동네에 떠도는 소문으로는 어느 동네의 누구누구네 영감님은 새로 조직된「민청」의 청년들에게 맞아 죽었다 는 둥 또 어느 집의 누구누구 네 아들은 내무서의 어디로 잡혀갔다 는 둥 소문도 요란하기만 했어.
그러나 역시「신도안」이라는 이름의 고장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우리 동네만은 아직까지 그토록 요란하지는 않고 그저 조금 술렁대고 있을 뿐이었어.
특히 내 할아버님은 워낙에 인심을 많이 얻어 놓으셨기 때문에 동네 사람들이나 북(北)에서 왔다는 사람들 내무서의 높은 사람들도 우리 식구들에게는 아무런 행패를 부리지는 안 했어.
그 당시 내 고모들도「대전」집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었지만 이번 난리 통에 모두들「신도안」집에 모여서 함께 살고 있는 거야.
나는 오히려 이런 난리라면 너무도 좋기만 하다고 속으로 생각을 하고 있었어.
또 들리는 말에 의하면「대전」시내는 미국 놈들의 폭격 때문에 대부분 부서지고 거리에는 거지 떼들이 우글거리고 있다고도 하는 거야.
나는 이런 상태에서 피난 생활이 아닌 여름방학을 보내는 기분으로 지내고 있는 거지.
그러나 날이 갈수록 그곳의 그토록 이나 순박하고 평화롭던 사정도 험악하게 변해 가기 시작 하는 거야.
사람들은 모두가 무언지 모르게 달라지는 세상에서 자기만 빠지면 안 된다는 듯이 설쳐대기 시작들을 하는 거지.
저녁마다 마을 앞 공회당(公會堂)에서 무슨 장군의 노래라든가 무슨「빨치산」노래 등을 부르며 붉은 기를 흔들고 열을 지어서 이리저리 몰려다니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게끔 마을의 분위기도 변해가고 있었어.
나도 덩달아 무슨 소년단원이라는 곳에 가입해야만 했어.
그리고는 저녁마다 마을 안팎으로 몰려다니면서 목청이 터져 라고 소리를 지르며 붉은 기를 흔드는 거지.
사실 나는 인공정권(人共政權) 초기에는 그들의 세상에 되는것도 좋을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어...
아무 것도 모르기는 하지만… !!??
나와 내 아빠가 피난 오던 날「유성」근처「하카리」마을에서 그들을 만났을 때 너무나도 질서정연하고 늠름하던 그들의 모습과 특히 그들의 맨 뒷줄에서 그들을 통솔하는 것처럼 보이던 장교의 당당한 태도와 또 우리들에게 건네어 주던 위로의 말을 잊을 수가 없었었어.
내 고모들도 또 무슨 여성동맹원(女性同盟員)이다 하고 몰려다니지 않으면 안 되게 되기 도 했어.
다 들 새로운 세상의 흐름에 뒤떨어지면 안 된다는 투의 행동들이었어.
그러나 어딘지 모르게 나 나 우리 집 식구들은 그들로부터 별로 환영받지 못하는 처지인 것 만은 틀림없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하는 거지. 역시 우리 집 식구들은 누가 무어라고 해도 부르-조아 계급들 인 거지 ….
내 할아버님이나 내 어머님은 말씀들은 안 하시지만 이렇게 바뀐 세상에서 상당히 몸들을 사리시며 걱정이 태산 같으신 모양들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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