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천년 3-4
네코네코
0
5
0
2시간전
第4章 폭풍군도(暴風群島)의 상륙
외부와 완전히 격리된 한 칸의 밀실!
숨막힐 듯한 적막이 터질 듯 밀실 안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 적막 속 한 명의 여인이 돌침상 위에 앉아 있다.
온몸에 타는 듯 붉은 혈의를 걸친 여인으로 그녀의 모습은 실로 섬뜩
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녀는 얼굴에도 옷 색깔과 같은 핏빛 면사를 쓰고 있었는데 머릿결
과 눈썹까지 피칠을 한 듯 시뻘건 빛을 띠고 있었다.
온통 피를 뒤집어 쓴 듯한 섬뜩한 분위기였다.
하후진진!
바로 그녀였다. 자칭, 타칭 혈영여제(血影女帝)라 불리는.
츠으으!
가부좌를 튼 채 눈을 감고 있는 하후진진의 몸 주위로 노을같은 핏빛
기류가 번져나오고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핏빛 기류가 아니었다. 자세히 보면 가는 명주살같은
핏빛 기류가 그녀의 팔만사천모공으로 끊임없이 드나들고 있지 않은
가?
드디어 하후진진은 내공의 정화를 명주실처럼 가늘게 뽑아낼 수 있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후욱!"
하후진진은 핏빛 눈을 부릅뜨며 거칠게 숨결을 토해냈다.
나직하나 심혼을 으스러뜨리는 듯 강렬한 폭갈과 함께 그녀의 몸에서
수천 개의 낙뢰가 치는 듯 강렬한 섬광이 폭발했다.
콰콰쾅!
직후 굉렬한 굉음이 짓터져 오르며 석실 내의 모든 것이 단번에 바스
러졌다. 하후진진의 몸에서 토해진 수십만 가닥의 핏빛의 칼날이 스
치는 모든 것을 박살낸 것이다.
그녀가 앉아있던 돌침상마저 수북한 모래로 화해 있었다.
그뿐 아니라 밀실의 천정과 바닥, 사면 벽이 마치 두부처럼 으깨져
내리는 것이 아닌가?
쿠쿠쿵!
석실 전체는 온통 무너져 내릴 듯 세찬 진동을 일으키며 뒤흔들었다.
그 속에서 부서진 돌가루가 비 오듯 떨어져 내렸다.
잠시 후 진동이 멎은 석실 안은 실로 놀라운 변화가 일어난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리 넓지 않은 석실은 놀랍게도 지금 반경 수십 장의 지
하광장으로 변해 있는 것이 아닌가?
스으으!
지하광장의 천정을 통해 음산한 달빛이 스며들고 있었다.
하후진진의 머리에서 폭사된 파멸강살(破滅 煞)이 석실의 천정을 박
살내었고 그 결과 석실 천정이 직경 삼 장 넓이로 관통되었기 때문이
다.
그 길이는 무려 오십여 장으로 부스러진 그 천정 틈으로 음산한 달빛
이 스며들고 있는 것이다.
가히 인간의 몸에서 발출된 파괴력이라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호호! 드디어 지옥혈강(地獄血 )이 십성 수준에 이르렀다!"
하후진진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지금 그녀의 몸에는 실오라기 한올 걸쳐져 있지 않았다. 그녀의 파멸
강살은 석실뿐 아니라 그녀의 의복마저도 모조리 재로 바스러뜨려 버
린 것이었다.
그런 그녀의 얼굴을 가렸던 면사도 흔적없이 부서져 나가고 없었다.
헌데 어찌된 일이란 말인가? 면사 속에 드러난 하후진진의 얼굴은 전
과는 전혀 달라져 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이검한의 칼에 스쳐 깊은 자상을 입었다.
놀랍게도 그 자상은 말끔히 치료되어 있었다.
게다가 그녀의 용모 또한 판이하게 달라져 있었다. 천잔독마가 옥도
공자 옥비룡(玉飛龍)뿐만 아니라 하후진진의 얼굴도 고쳐준 것이다.
성형된 하후진진의 용모는 여러모로 전과는 달라보였다.
표독해 보이던 인상이 아주 부드럽게 고쳐졌을 뿐 아니라 얼굴에서는
지극히 섬세하고 연약한 분위기마저 물씬 풍기는 것이 사내로 하여
금 절로 보호 본능을 일게 만드는 그런 모습이었다.
하후진진은 무엇 때문에 얼굴을 뜯어고친 것일까?
그녀는 두 눈에 강렬한 혈광을 번득이며 중얼거렸다.
"지옥혈강이 십성에 이른 이상 내 능력만으로 충분히 이가놈을 죽일
수 있다!"
그녀는 원독의 표정으로 이를 바득 갈았다.
"하지만 그렇게 간단히 네놈을 죽이지는 않겠다, 이검한!"
그녀는 눈을 가늘게 뜨며 표독한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네놈은 온갖 누명과 수모를 겪은 후 가장 비참하게 죽게 될 것이다!
"
그때였다.
"대공을 축하드립니다, 여제님!"
하후진진의 귓전으로 한줄기 간살스러운 음성이 들려왔다.
지하광장으로 변한 석실의 입구에는 한 명의 사내가 허리를 굽신거리
며 서 있었다.
비굴하고 간살스러운 웃음을 흘리는 사내의 얼굴은 이검한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자는 물론 진짜 이검한이 아니었다.
이검한의 용모와 똑같이 성형한 옥도공자 옥비룡, 바로 그자였다.
"무슨 일이냐, 옥비룡?"
하후진진은 허옇게 드러난 속살을 감추지도 않은 채 태연한 표정으로
옥비룡을 돌아보았다.
탐욕어린 시선으로 하후진진의 몸매를 훔쳐보던 옥비룡은 찔끔하며
급히 시선을 피했다.
그자는 즉시 허리를 굽히며 말했다.
"지옥마교에 심어넣은 우리측의 간세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이가놈
이 지금 막 운중마부로 떠났다고 합니다!"
"그래?"
하후진진은 핏빛 눈을 강하게 번득였다.
"그럼 너도 즉시 벽력당으로 출발하여 원래의 계획대로 수행하도록
하라!"
그녀는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옥비룡에게 말했다.
"분부 받들겠습니다. 여제님! 하온대……!"
옥비룡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으나 더듬거리며 말 끝을 흐렸다.
"무슨 일이냐?"
하후진진은 아미를 상큼 찡그리며 싸늘한 눈빛으로 옥비룡을 주시했
다.
옥비룡은 걱정스러운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괜히 허탕치는 것은 아니온지요? 폭풍군도의 기세로 봐서 이가놈이
폭풍군도의 무리와 싸워 이긴다는 보장이 없지 않습니까?"
그자는 꺼림직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만일 이가놈이 폭풍잠룡에게 패해 죽기라도 한다면 만사휴의가 아닙
니까? 듣자하니 폭풍잠룡은 제 아비 폭풍천왕보다도 오히려 강하다던
데……!"
그자의 말에 하후진진은 싸늘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그런 걱정 마라. 놈은 반드시 이긴다!"
그녀는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놈은 나의 양부님과 싸울 때도 누가 놈이 양부 혈황님을 이기리라
생각했느냐?"
그녀는 싸늘한 핏빛 눈을 번득이며 자신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
"강적을 만날수록 강해지는 것이 그놈의 무서운 힘이다. 이번에도 놈
은 틀림없이 폭풍잠룡이란 애송이에게 이길 것이다!"
"그렇기는 합니다만……!"
옥비룡은 그래도 마음이 안 놓이는 듯 주저하는 기색이자 하후진진은
의미심장한 눈빛을 지으며 말했다.
"너는 본녀가 시키는 대로 하면 된다. 사실 내가 폭풍천왕의 시체를
폭풍군도에 보낸 것도 다 이날을 위해서였다!"
말과 함께 그녀는 득의의 표정으로 배시시 웃었다.
그 모습에 옥비룡은 자신도 모르게 진저리가 쳐졌다.
'무서운 여자!'
사실 폭풍군도에 폭풍천왕의 시신을 보낸 것은 바로 하후진진 자신이
었다.
그녀는 폭풍천왕의 시신을 발견한 폭풍군도가 이를 빌미로 중원을 침
공할 것을 미리 예상하고 있었다.
그리고 폭풍군도의 중원 침공시 제일 먼저 부딪히게 될 장애물이 바
로 벽력당이라는 것도 그녀의 예측 속에 들어있었던 일이었다.
벽력당은 폭풍군도의 진격을 일시 멈추기는 하겠지만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당연히 벽력당은 이검한에게 구조를 요청하게 되리라.
그리고 이검한은 지체없이 벽력당을 구하러 복건성으로 달려올 것이
다.
그때를 기해 하후진진은 이검한을 돌이킬 수 없는 궁지에 몰아넣을
심산이었다.
그녀가 옥비룡을 역용시킨 것도 바로 이날을 위해서였다.
하후진진의 그같은 심모원려한 독계가 폭풍군도의 중원 침공의 배후
에 깔려 있음을 알 리 없는 이검한은 지금 그녀의 공작대로 벽력당으
로 날아가고 있는 것이었다.
하후진진은 득의의 눈을 번득이며 옥비룡에게 명했다.
"너는 즉시 신응을 타고 벽력당으로 가라. 그 뒤는 어떻게 해야되는
지 잘 알고 있겠지?"
"헤헤! 물론입니다, 여제님!"
옥비룡은 허리를 굽신거리고는 석실에서 물러나갔다.
사라지는 옥비룡의 뒷모습을 주시하고 있던 하후진진의 두 눈이 문득
살벌하게 번쩍였다.
'이검한! 나 하후진진의 원수가 된 것을 뼈저리게 후회하게 만들어주
마!'
그녀는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내심 중얼거렸다.
과연 그녀는 무슨 음모를 꾸미고 있는 것일까?
그녀가 옥비룡에게 지시한 일은 대체 어떤 것일까?
모를 일이었다.
* * *
유황곡!
복건성의 오지에 자리한 협곡으로 인적이 드물던 그곳은 바야흐로 태
풍의 눈으로 화해 있었다.
질풍노도같이 북상하던 폭풍군도의 기세와 감연히 맞선 자랑스러운
가문의 본거지.
-벽력당(霹靂堂)!
이제 누구도 벽력당을 남황 오지의 별볼일 없는 가문으로 여기지 않
았다.
위기에 닥쳐야 진정한 용자(勇者)가 가려지는 법.
단기로 폭풍군도를 막아낸 벽력당은 이제 당당한 중원 긍지의 상징이
되었다.
정작 벽력당 뇌씨 일족에게는 지금 긍지고 자랑이고 그런 것을 따질
여유가 없었다.
거의 다 떨어져가는 식량,
갈수록 거칠어지는 폭풍군도의 공격.
비록 지금까지는 의연히 버티어 왔지만 벽력당 일족의 운명은 마치
풍전등화와도 같은 위태위태한 지경에 처해 있었다.
그 사이 한 명의 강력한 조력자가 복건성을 향해 빠르게 접근해 오고
있었으니…
바로 이검한이었다.
* * *
운중마부(雲中魔府)의 깊은 곳에 한 채의 아담하고 운치있는 전각이
그림같이 자리하고 있었다.
잘 가꾸어진 정원에는 온갖 향기로운 화초들이 다투어 화향(花香)을
발산하고 있었다.
그 정원 가운데 물밑까지 투명하게 들여다 보이는 아담한 연못이 교
교한 달빛을 받아 찰랑거리고 있었다.
지금은 사경(四更)이 가까운 깊은 밤이다.
전각 안은 화려하고 아늑하게 치장된 실내로 정원쪽으로 커다란 창문
이 나 있었고 분홍빛 휘장이 드리워진 한쪽은 정갈하게 정돈된 침상
이 놓여 있었다.
전각의 창문가 어둠 속에 흰 속살을 내민 달빛이 은은하게 창문을 두
드리고 있었다.
"휴! 설매는 지금 어디를 헤매고 있는 것일까?"
문득 전각의 창가에서 수심이 가득한 한소리 탄식성이 흘러나왔다.
창문가에 한 명의 여인이 그림처럼 기대서 있었다.
일신에 새하얀 소복을 걸친 그윽하고 기품있는 용모의 여인의 나이는
이십대 초반 정도로 보였다.
백리예향!
바로 그녀였다. 십대천마(十大天魔)의 일인인 천수마야(千手魔爺) 백
리공의 천금이자 운중악의 약혼녀이기도 한…
천성이 곱고 착한 성품을 지닌 백리예향의 조각같이 단아한 옥용은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지금 그녀는 설옥상의 안위를 걱정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녀는 설옥상 때문에 죽을 고비를 넘긴 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진심으로 설옥상에 대한 염려와 걱정을 아
끼지 않는 것이었다. 실로 후덕한 성격이 아닐 수 없었다.
"제발 설매에게 아무 일도 없어야 할텐데!"
백리예향은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우울하게 탄식했다.
그러다 그녀는 흠칫했다.
"……!"
창 밖으로 내다보이는 정원의 어둠 속에 누군가 우뚝 서 있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백리예향은 놀라움으로 눈을 동그랗게 떴다.
놀라움으로 물들었던 그녀의 눈에 이내 안도감이 떠올랐다.
"이공자! 어찌된 일이지요? 지금쯤 벽력당을 향해 가고 계신줄 알았
어요!"
그녀는 창가에서 일어서며 미소 지었다.
어둠 속의 정원에 우뚝 서 있는 인물은 헌앙한 용모를 지닌 한 명의
청년이었다.
이검한! 바로 그가 아닌가?
대체 어찌된 일이란 말인가? 이검한은 지금 촌각을 다투며 남황(南荒
)의 벽력당으로 가고 있는 중이 아닌가?
그런 그가 어떻게 운중마부에 다시 나타난 것일까?
"한 가지 잊어버린 것이 있어 다시 돌아왔소!"
이검한은 빠르게 주위를 돌아보며 백리예향에게 다가섰다.
그 모습에 백리예향은 아미를 곱게 찌푸렸다.
'이상하네? 마치 몰래 숨어들어온 듯한 태도라니……!'
그녀는 본능적으로 이검한의 태도가 이상한 것을 느끼며 의아함을 금
치못했다.
하나 자신을 구하기 위해 사지(死地)로 서슴없이 뛰어들었던 이검한
인지라 그녀는 별로 경계하지 않았다.
"무엇을 잊어버리셨기에 다시 돌아오셨나요?"
그녀는 다가오는 이검한을 향해 미소 지으며 물었다.
"바로 이것이오!"
파앗!
돌연 이검한이 벼락같이 지력을 날려 백리예향의 연마혈을 찍어 버렸
다.
"악!"
백리예향은 날카로운 비명과 함께 무기력하게 쓰러지고 말았다. 아무
런 경계도 없었는데도, 또 너무 가까운 거리에서 창졸간에 벌어진 일
인지라 미처 피할 틈이 없었던 것이다.
"무, 무슨 짓이죠. 이공자?"
백리예향은 아연한 표정으로 이검한을 올려다 보았다.
그러자 이검한은 짐짓 고뇌의 표정으로 전각의 창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섰다.
안으로 들어선 그는 쓰러진 백리예향의 교구를 안아들며 한숨 섞인
어조로 말했다.
"나는 한눈에 백리소저를 사모하게 되었소! 이런 내 마음을 나 자신
도 어쩔 수가 없구려!"
이어 그는 한쪽의 침상으로 다가가 백리예향을 누였다.
백리예향은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무, 무슨 그런……!"
그녀는 전혀 예기치 못했던 사태에 도무지 믿기지 않는 표정을 지었
다.
"잊었나요? 저는 운가가의 약혼녀예요. 이공자는 운가가와 결의형제
를 맺은 사이가 아닌가요?"
그녀는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이검한을 설득하려 했다.
"제발 저를 풀어주고 여길 나가세요! 그럼 오늘 일은 없었던 것으로
하겠어요!"
그녀는 간절한 표정으로 이검한을 올려다보며 애원했다.
"그럴 수는 없소, 백리소저!"
이검한은 이글거리는 눈동자로 백리예향을 내려다보며 그녀의 보드라
운 뺨을 쓰다듬었다.
"백리소저를 내 여자로 만들지 못하면 내 가슴은 몽땅 타 재로 변해
버릴 것 같소!"
그는 단호한 결심을 한 듯 욕정에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당, 당신이 이런 파렴치한 짓을!"
백리예향은 너무나 놀라고 어이가 없어 넋이 나가고 말았다.
그는 그런 그녀를 내려다보며 음험하게 히죽 웃었다.
"소저가 원하지 않아도 소용없소! 오늘밤 소저를 내 여자로 만들고
말겠소!"
찌직!
말과 함께 그는 거칠게 백리예향의 상복 저고리를 찢어냈다. 저고리
고름이 뜯기며 백사같이 새하얀 속살이 드러났다.
백리예향은 안색이 하얗게 질리며 비명을 내질렀다.
"제발, 그만둬요!"
그녀는 충격과 두려움으로 전신을 바들바들 떨며 애원했다.
하지만 이미 욕정에 눈먼 사내에게 그것이 통할 리 만무했다.
삽시에 백리예향은 상체가 벌거벗겨졌다. 가녀린, 그러나 눈부시게
하얀 그녀의 상체가 그의 눈앞에 아찔하게 노출되었다.
여린 어깨에 비해 그 아래에 자리한 그녀의 젖가슴은 놀랍도록 풍만
했다.
"흐흐! 당신의 육체는 최고요. 백리소저!"
그는 드러난 백리예향의 몸매가 몹시 만족스러운 듯 음소를 발하며
감탄의 눈빛을 지었다. 이어 그는 백리예향의 치마와 고의마저 거침
없이 벗겨 내렸다.
"악! 안돼요! 제발!"
백리예향은 다급하고도 처절한 비명을 내질렀으나 이미 엎질러진 물
이었다. 그녀의 치마와 고의는 한꺼번에 그의 손에 의해 거칠게 벗겨
져 나갔다.
지금껏 단 한 번도 타인의 눈앞에 내보인 적이 없는 은밀하고 희디흰
여체의 속살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한줌밖에 안 되는 잘록한 허리, 미끈한 허벅지. 도자기같이 매끄러운
아랫배 아래 자리한 여인의 부끄러운 곳. 실로 뇌쇄적인 몸매였다.
"다, 당신이 당신이 이럴 수가!"
자신의 부끄러운 곳을 샅샅이 내보인 백리예향은 너무나 기가 막혀
와락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불회마곡에서 도움을 받은 이래 약혼자 운중악보다 오히려 더 신뢰하
게 된 이검한이 아닌가?
한데 믿어지지 않게도 그가 갑자기 짐승으로 화한 것이다.
"흐흐흐! 곧 내게 감사하게 될 것이오. 백리소저! 여자를 죽여주는
내 재주는 천하무적이거든……!"
이검한은 음탕하게 웃으며 양 손을 백리예향의 무릎 사이에 넣었다.
허벅지가 무기력하게 벌어지며 그 안쪽 깊이 숨어있던 여인의 가장
부끄러운 곳이 사내의 시야에 확연히 들어왔다.
"안돼!"
백리예향은 음탕한 그의 시야에 자신의 신체가 노출되자 분함과 수치
스러움을 참지 못하고 그만 반실신하여 축 늘어지고 말았다.
하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그는 히죽 웃으며 반실신한 백리예향의
몸에 손을 가져갔다.
헌데 그자가 막 음탕한 손으로 백리예향의 몸을 희롱하려는 순간이었
다.
피이잉!
문득 한가닥 미약한 파공음이 그의 귓전에 들려왔다.
'드디어 나타나셨군!'
그 파공음을 감지한 그의 입가에 회심의 미소가 어렸다.
스읏!
이어 그는 미련없이 백리예향의 침실 밖으로 날아나갔다.
그가 사라진 직후였다.
"예향!"
한소리 다급한 외침과 함께 한 명의 장한이 백리예향의 침실로 뛰어
들었다. 그는 바로 백리예향의 약혼자인 운중악이었다.
"이… 이런!"
침실 안으로 뛰어든 운중악의 두 눈이 한껏 부릅떠졌다.
그는 엄청난 충격으로 신형을 휘청했다. 사랑하는 약혼녀 백리예향이
실오라기 한올 걸치지 않은 알몸으로 침상 위에 널브러져 있지 않은
가?
처참하게 난행당한 듯한 그녀의 모습을 보는 순간 운중악은 완전히
눈이 뒤집히고 말았다.
"으아아아!"
그의 입에서 걷잡을 수 없는 분노가 실린 울부짖음이 터져나왔다. 그
비통한 울부짖음은 깊은 밤의 운중마부를 송두리째 뒤흔들었다.
운중마부가 내려다 보이는 하나의 산봉 위.
어둠 속에 두 명의 남녀가 우뚝 서 있었다.
둘 중 여자쪽은 전신이 섬뜩한 핏빛으로 뒤덮여있는데 그 여인의 얼
굴을 가린 핏빛 면사 사이로 드러난 두 눈에는 가득 득의의 빛을 띠
고 있었다.
혈영여제 하후진진!
그녀가 아니고 누구겠는가?
그녀의 옆에 서 있는 사내는 바로 방금 전 백리예향을 욕보였던 그
사내였다.
이검한의 용모로 위장했던 그 사내는 다름아닌 유령잠룡(幽靈潛龍)
유운학이었다.
하후진진은 이검한과 운중악의 사이를 갈라놓기 위해 이검한의 인피
면구를 뒤집어쓴 유운학으로 하여금 백리예향을 난행케 한 것이었다.
"호호호! 이로써 운중악과 이가놈의 혈맹 관계는 산산이 와해되었다!
"
하후진진은 득의의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러나 과연 운중악이란 놈이 그리 쉽게 속아 넘어 가겠소? 그래도
차기 마교지존이 될 놈인데……!"
유운학은 무뚝뚝한 어조로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말과 함께 그자는 얼굴에 쓴 인피면구를 벗었다.
그러자 드러나는 그자의 얼굴은 확연히 변해 있었다.
운중악!
바로 그와 흡사한 용모로 탈바꿈한 것이 아닌가?
하후진진은 유운학의 말에 요사한 웃음을 지었다.
"물론 의심은 하겠지!"
그녀는 어둠 속에서 핏빛 눈을 야릇하게 번뜩이며 말했다.
"하지만 이가놈의 악행을 증언해줄 피해자들이 나서면 운중악이라 해도 속아 넘어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그리고 남자란 동물들은 자기보다 잘난 남자인간인 같은 남자를 그냥 두고 보지 못하게 되어 있지.그렇기에 더욱 의심 않고 이검한을 제거 하려 들것이다.
호호..남자의 원초적 본능이란 것은 정말 단순한것이지.“
그녀의 말에 유운학은 흠칫했다.
"증인까지 준비해 두셨단 말이오?"
"호호호! 물론이다! 천하패권을 차지하기 위한 일인데 준비를 허술히
할 수야 없지 않겠느냐?"
하후진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득의의 교소를 터뜨렸다.
그 모습에 유운학은 자신도 모르게 전신에 오싹 한기가 끼침을 느꼈
다.
'무서운 계집!'
그자는 내심 설레설레 고개를 흔들었다.
'이검한, 그 놈이 아무리 악운에 강하다고 해도 이 요녀의 마수를 벗
어나지는 못할 것 같구나!'
하지만 하후진진은 그런 유운학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핏빛 눈을
요사하게 빛내며 남쪽을 주시하고 있었다.
"지금쯤 옥비룡도 벽력당 근처에 이르렀을 것이다!"
그녀는 득의의 음성으로 나직이 중얼거렸다.
"옥비룡이 벽력당에서 제대로 분탕질을 쳐주면 이가놈은 그야말로 사
면초가(四面楚歌)의 지경에 빠지고 말 것이다!"
그녀는 만족스러운 듯 깔깔 득의의 교소를 터뜨렸다.
과연 하후진진은 옥비룡에게 어떤 짓을 명한 것일까?
* * *
유황곡(硫黃谷)!
벽력당이 자리한 복건성의 험지.
현재 유황곡 일대에는 가히 천라지망(天羅之網)이라할 만한 포위망이
구축되어 있었다. 수만 명에 이르는 폭풍군도의 고수들이 물샐틈없
는 포위망을 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양 진영의 전세는 소강상태였다.
한때 치열한 포격전이 피아간에 벌어졌었다.
그 결과 화포의 성능은 벽력당 쪽이 다소 우세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벽력당의 구중연환포의 위력은 가히 압도적이었다. 화탄의 날아
가는 거리가 길 뿐 아니라 구중연환포로 날려지는 벽력진천뢰(霹靂震
天雷)의 위력은 실로 괴멸적이었다.
그로 인해 폭풍군도는 치열한 포격 끝에 숱한 희생을 치르어야만 했
다.
도리없이 그들은 벽력당의 화포 사정거리 밖으로 후퇴할 수밖에 없었
다.
하지만 벽력당은 정작 포격전에서 이겼다고 환호작약할 수만은 없었
다.
지형적인 이유로 유황곡에는 식량과 식수의 지급이 불가능했다. 항상
그래왔지만 외부로부터 보급받아야만 하는 것이다.
그같은 사정을 간파한 폭풍군도의 강병들은 벽력당에서 멀찌감치 떨
어져 포위망을 구축한 채 한치도 움직이지 않았다.
이로써 양 진영의 대치는 소강상태로 들어간 것이다.
하지만 벽력당의 뇌씨일족은 실로 괴로웠다. 곧 식량과 식수가 바닥
이 날 지경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이다.
구워어억!
한소리 우렁찬 거조의 울음소리와 함께 한 마리 신응이 벽력당으로
날아들었다.
칠익신응!
그놈은 바로 철익신응이었다. 급전을 받은 이검한이 밤을 도와 운중
산에서 이곳 복건성으로 날아온 것이었다.
"이대협이 오셨다!"
"드디어 남해의 해적무리들을 쫓아버릴 수 있게 되었다!"
벽력당의 의사청 앞으로 날아내리는 철익신응의 주위로 벽력당의 가
솔들이 떼를 지어 몰려나오며 저마다 환호성을 울렸다.
그들은 보름 가까이 계속된 격전 끝에 모두들 지칠 대로 지친 모습이
었다.
하지만 철익신응을 타고 날아내리는 이검한을 보는 순간 그들의 얼굴
에는 생기가 완연해졌다.
그들은 믿었기 때문이다. 이검한의 신위와 능력을!
두 달 전 지옥마교의 공격에서 그들을 구해주었듯이 또 한번 이검한
이 자신들을 구해줄 것이라 믿었다.
"수고했다, 철익!"
이검한은 철익신응의 머리를 한차례 다독여 준 후 그놈의 등에서 뛰
어내렸다.
철익신응은 오 일 밤낮을 날아 중원을 종단해 왔다. 제 아무리 신력
을 지닌 철익신응이라도 지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서 오십시오, 형님!"
"오빠!"
철익신응의 등에서 내려서는 이검한의 앞으로 비슷한 용모를 지닌 소
년소녀가 환성을 울리며 달려왔다.
-열화잠룡(熱火潛龍) 뇌화룡(雷火龍)!
-벽력화(霹靂花) 뇌화영(雷火英)!
바로 그들 남매였다. 화왕(火王) 뇌곤륜과 화왕부인(火王婦人) 당숙
하의 쌍둥이 남매인……!
뇌화룡은 가주로서의 체통을 지키느라 내심 기쁨을 억지로 참았다.
"구해주러 올줄 알았어요, 이가가!"
하지만 발랄한 성격의 뇌화영은 환하게 미소 지으며 그대로 이검한의
품으로 날아들어 안겼다.
이검한은 자신의 목에 매달리는 뇌화영의 갑작스런 행도에 당황을 금
치 못했다.
하지만 그는 어쩔 수 없이 뇌화영의 교구를 끌어안을 수밖에 없었다.
그의 팔 안에 안긴 뇌화영의 탄력있는 육체가 파닥파닥 흥분에 떨고
있었다.
비로소 느껴지는 안도감, 그리고 남몰래 사모해온 이검한에 대한 연
정이 그녀의 가슴을 뜨겁게 달구어 콩닥거리게 만드는 것이었다.
백주대낮에 남녀가 서로 포옹하는 것은 당연히 비난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워낙 위경에 몰리던 벽력당의 가솔들인지라 뇌화영이 이검한
에게 매달리는 것을 보고 손가락질은커녕 오히려 환호의 표정을 지었
다.
만일 뇌화룡이 헛기침을 하여 주의를 주지 않았다면 뇌화영은 언제까
지라도 이검한의 품에 안겨 있었을 것이다.
"잘 버티어 주었다, 화룡!"
이검한은 뇌화영을 안은 채 뇌화룡의 어깨를 다독거렸다.
"뭘요. 집안 어른들께서 분투해 주신 덕분이지요!"
뇌화룡은 이검한의 말에 멋쩍게 웃었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그의 얼굴에는 자부심이 가득 떠올랐다.
벽력당의 원로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눈 이검한은 곧 뇌화룡 남매와
함께 열화대진의 외곽을 둘러보았다.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으냐!"
이검한은 걸음을 옮기며 뇌화룡을 향해 물었다.
뇌화룡은 그의 물음에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좋지 않습니다. 식량은 그렇다고 쳐도 식수는 당장 내일이면 바닥이
날 것입니다!"
이검한의 안색도 침중하게 굳어졌다.
'안좋군.'
현재 북망산에서 음월방 등이 벽력당을 돕기 위해 남하하고 있는 중
이기는 했다.
그리고 운남 독성부에도 전서구를 띄웠다.
하지만 흑수선 이옥경이 서신을 받고 복건성까지 오려면 최소한 한
달은 걸릴 것이다.
멀리있는 물로 가까운 불을 끌 수는 없는 법이다.
하물며 벽력당의 식수는 당장 바닥이 날 형편이다.
식수 없이는 단 열흘도 버티지 못할 판국이었다.
침중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겨있던 이검한은 무엇인가 결심한 듯 미미
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내 혼자 힘으로 어찌 해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는 유현한 눈을 번뜩이며 열화대진 밖의 폭풍군도의 진영을 주시했
다.
그때 뇌화영은 강렬하게 번뜩이는 이검한의 눈빛을 훔쳐보며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오빠가 무언가 계획을 세우셨구나!'
그녀는 직감적으로 그것을 알아차리며 내심 중얼거렸다.
빈사의 위기에 닥쳐있는 상태에서 단신으로 달려온 이검한의 존재가
어린 소녀의 가슴에 얼마나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었는지는 필설로 형
용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어쩌랴? 뇌화영의 그같은 은밀한 감정의 설레임은 일방적이고
부질없는 것이었으니…
이검한은 그녀를 단지 손아래 누이동생처럼 여기고 있는 것이다. 물
론 뇌화영은 그같은 사실을 알 리 만무하지만.
이검한이 음산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오늘 밤이 가기 전에 폭풍군도의 진영에 일대 파란이 일 것이다!"
그의 갑작스런 말에 뇌화룡은 흠칫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혹시 형님 혼자서……!"
그는 이검한의 의도를 짐작한 듯 놀라 이검한을 주시했다.
이검한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떳떳한 수법은 아니지만 도리가 없는 일이다. 머리가 잘려지면 몸통
은 절로 힘을 잃는 법이니……!"
그는 무뚝뚝한 어조로 말하며 형형하게 눈을 번뜩였다.
암살(暗殺)!
그렇다. 이검한은 단신으로 폭풍군도의 진영으로 잠입하여 폭풍군도
의 수뇌를 암살할 작정이었다.
'폭풍잠룡(暴風潛龍)이라 했던가!'
그는 두 눈을 강렬하게 번뜩이며 내심 중얼거렸다.
'곧 나를 보게 될 것이다. 폭풍의 아들이여!'
한데 내심 염두를 굴리고 있던 이검한은 일순 흠칫했다. 배후에서 강
렬한 시선이 느껴지는 것을 의식한 것이다.
본능적으로 뒤를 돌아보던 이검한은 움찔했다.
뒷쪽으로 보이는 한 채의 전각에는 기둥을 잡고 선 채 하나의 그림자
가 그윽한 눈빛으로 이검한을 주시하고 있지 않은가!
'당부인……!'
이검한은 자신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졌다.
안도감과 고뇌의 빛으로 물든 표정의 미부인은 바로 화왕부인 당숙하
였다. 그녀의 옥용은 일견하기에도 아주 수척해 보여 애처로울 정도
였다.
'와주었군요, 이공자……!'
당숙하는 두 눈에 그득 눈물을 담은 채 조용히 전각의 뒤로 사라져갔
다. 행여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묘한 반응을 눈치챌까 두려워서였다.
몇 달 전 반도 추경룡(秋慶龍)에게 겁탈당하던 그녀를 구해준 것은
바로 이 헌앙한 청년이었다.
본의아니게 자신의 은밀한 곳까지 이검한에게 모두 내보인 이 미망인
의 가슴 속에는 남에게는 결코 내색할 수 없는 야릇한 감정이 싹트고
있었다.
이검한도 어렴풋이 그런 그녀의 마음을 감지하고 있었고 그 때문에
의식적으로 뇌화영을 여자로 의식하지 않으려 애쓰고 있었다.
* * *
일경(一更) 무렵이다.
어둠이 스물스물 유황곡 일대를 덮기 시작했다.
유황곡이 멀리 바라다 보이는 하나의 산봉 위,
"신응 한 마리가 유황곡으로 날아들었다고?"
한 명의 청년이 팔짱을 끼고 선 채 형형한 눈으로 유황곡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건장하고 훤칠한 체격에 옥으로 빚은 듯 수려한 용모를 지닌 청년이
었다.
-폭풍잠룡(暴風潛龍) 군옥(君玉)!
청년의 이름은 그러했다. 폭풍군도의 도주였던 폭풍천왕 군유명(君有
命)의 아들이며 폭풍군도의 신임맹주인 바로 그였다.
폭풍잠룡 군옥의 말에 문득 그의 뒤에서 침중한 노인의 음성이 들려
왔다.
"아무래도 그자가 벽력당을 도우러 온 듯하오!"
폭풍잠룡의 뒤에는 일남일녀가 서 있었다.
대나무같이 비쩍 마른 노인, 그와 대조적으로 푸짐하게 살찐 백발의
중년미부가 그들이었다.
깡마른 노인은 무뚝뚝하고도 무표정한 얼굴이었는데 그의 피부는 마
치 마른 나무같이 새카맣게 보였다.
반면 백발의 미부는 늘 웃는 듯한 보기좋은 얼굴이었다. 허연 피부에
마음씨 좋은 고모같이 너그러워 보이는 인상이다.
-풍마쌍려(風魔雙侶)!
이것이 그들 부부의 별호였다.
폭풍사가(暴風四家) 중 폭풍도(暴風島)의 오랜 가신들.
백살마고(百殺魔姑)-!
흑수교룡(黑水蛟龍)-!
흑수교룡은 노련한 수공(水功)의 달인이었다. 수중공부만 따지자면
폭풍군도를 통틀어도 그의 적수가 없을 정도였다.
한 자루 고래잡는 작살이 그의 무기였다.
하지만 흑수교룡도 아내인 백살마고만큼 무섭지는 않았다.
늘 웃는 얼굴에 후덕한 용모를 지닌 백살마고지만 그녀는 합마진살(
蛤馬震煞)이라는 무서운 반탄기공을 연마한 몸이었다.
그 때문에 아무도 그녀의 몸에 손을 대지 못한다.
백살마고는 젊은 군주 폭풍잠룡 군옥의 유모이기도 했다.
"누가 벽력당을 도우러 왔단 말인가요?"
폭풍잠룡 군옥은 가볍게 검미를 찡그리며 물었다.
그 말에 깡마른 노인, 흑수교룡이 조심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고독전신(孤獨戰神)이라고 들어보셨습니까?"
"고독전신!"
폭풍잠룡은 두 눈에 번뜩 신광을 폭사했다.
"혈황(血皇) 영호진이란 자를 죽여 사실상의 중원제일인(中原第一人)
으로 추앙된 그자 말인가요?"
흑수교룡은 고개를 끄덕이며 침중한 어조로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그자는 우내제일인이던 고독마야 섭장천의 제자인데 제
스승보다 오히려 강하다고 합니다!"
옆에 서 있던 백살마고가 그의 말을 거들었다.
"온자가 정말 고독마야의 제자라면 십분 주의해야만 해요."
그녀는 유모답게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흥! 중원제일인(中原第一人)이 끼어 들었다면 차라리 잘된 일이지!"
하지만 폭풍잠룡은 싸늘하게 냉소를 흘렸다.
"중원제일인을 내가 꺾는다면 중원의 여타 떠러지들은 감히 내게 대
항할 엄두도 내지 못할 것이 아니겠어요?"
그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렇기는 합니다만……!"
흑수교룡은 미간을 찡그리며 말끝을 맺지 못했다.
그 모습에 폭풍잠룡은 미인의 그것같은 아미를 은은하게 찌푸렸다.
"흑노(黑奴)는 혹시 내가 그자를 이기지 못할까 두려워서 그러는 거
야?"
"그것이 아닙니다, 소주(少主)!"
흑수교룡은 고개를 저으며 탄식했다.
"노신이 우려하는 것은 고독전신이 아니라 유강(有强) 부도주(副島主
)님입니다!"
"숙부님을?"
폭풍잠룡은 그 말에 흠칫하는 표정을 지었다.
흑수교룡의 입에서 한 명의 이름이 거론되자 폭풍잠룡의 안색이 이내
어두워졌다.
-혈해왕야(血海王爺) 군유강(君有强)!
폭풍천왕 군유명의 배다른 동생으로 일신 무공이 폭풍천왕 못지않은
강자였다.
더욱이 그는 크나큰 야심가였다.
그는 첩의 몸에서 태어난 서자인지라 정식으로 폭풍일족의 수장이 될
수는 없는 몸이었다.
하지만 그자가 호시탐탐 남해패권을 노리고 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
었다.
그는 암중에 자신의 도조세력을 폭풍사가(暴風四家) 전체에 심어 놓
았다. 주로 기존의 세력 판도에서 소외된 인물들이 그의 포섭의 대상
이었다.
혹자는 이미 폭풍사가의 전력 중 삼 할이 혈해왕야 군유강의 영향력
아래 들어있다고 여기기도 했다.
"흑노가 우려하는 것도 충분히 일 리가 있어요!"
폭풍잠룡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흑노도 알고 있잖아? 내 손에 이것이 있는 이상 숙부는 결코
내 적이 못 된다는 사실을!"
그는 싱긋 웃으며 자신의 손을 들어 보였다. 그런 그의 왼손 식지에
는 하나의 시커먼 쇠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폭풍지환(暴風指環)!
그 쇠반지의 이름은 그러했다.
이것은 저 고금오대고수(古今五大高手)의 일인이며 폭풍군도의 시조
인 폭풍천신(暴風天神)이 남긴 세 가지 보물의 하나다.
이 폭풍지환에는 폭풍일족의 그 어떤 무공이라도 깨뜨려 버릴 수 있
는 비법이 감추어져 있었다.
해서 폭풍일족의 고수들은 감히 가주의 권위에 도전하지 못했다.
혈해왕야 군유강도 예외는 아니었다.
일신의 무공으로 따지자면 군유강이 폭풍잠룡 군옥을 능가할지도 모
른다.
하지만 폭풍지환이 군옥의 손에 있는 한 군유강은 패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 때문에 군유강은 어떻게 해서라도 폭풍지환을 수중에 넣으려 했다
.
본래 폭풍지환은 가주(家主)의 상징이었다. 폭풍천왕은 중원으로 떠
나며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여 그것을 군옥에게 주었던 것이다.
-------------------------------------------------------------------------------------------------------
블루메딕 후기작성시 10,000포인트 증정


NEVAD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