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펌)여동생 딸치는거 훔쳐 보다가 걸린 썰 푼다 59~61(完)
멍멍이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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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7 20:22
EP.59 설득
내 품에 안겨 얕은 숨을 쉬고 있는 여동생에게 이야기를 꺼낼 순 없었다.
눈물자국으로 더러워진 여동생의 얼굴을 살짝 닦아주고서 여동생을 침대에 눕혔다.
그리고 여동생이 잠들때까지 손을 잡아주었다.
여동생은 마음고생이 심했는지 곧 새근거리며 잠에 들었다.
나는 "잘자." 라는 인사와 함께 이마에 짧은 입맞춤을 해주고 내 방으로 돌아갔다.
내 방 침대에 누워 미래에 대한 생각을 했다.
아버지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게 맞을까?
더 최선의 선택지는 없을까?
여동생에겐 뭐라고 말을 해야할까..
여동생은 과연 받아들여줄까?
가지 말라고 붙잡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난 뿌리쳐낼 수 있을까?
연락을 하지 못하는 동안 여동생은 괜찮을까?
또다시 망가지진 않을까?
... 그리고 시간이 지난 뒤에도 우린 변하지 않을 수 있을까?
차라리 둘 다 사랑이 식는다면 오히려 나을지도 모른다.
제일 최악의 상황은 둘 중 한명의 마음만 변하는 것이다.
마음이 변하는 게 여동생이면 차라리 나을 것 같았다.
여동생보단 내가 아픈 게 나으니까.
마치 정답이 없는 문제를 푸는 것 같았다.
내 나름의 답을 적어보아도 이것이 답이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애초에 정답이라는 게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나는 한참동안 어지러운 머리를 부여잡고 고민하던 끝에 기절하듯이 잠에 빠졌다.
**
결국 나는 아버지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겨우 만들어진 가족을 다시 찢어버릴 순 없었다.
아버지와 다시 그 조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가 얼마나 오래 여동생과 떨어져 있어야 하냐는 말에
아버지는 적어도 여동생이 졸업할 때까진 떨어져야 한다고 말하셨다.
그렇다면 1년 정도인가...
짧다면 짧고, 길다면 한없이 긴 시간이었다.
무엇보다이걸여동생에게 이야기하는 게 제일 걱정이었다.
과연 이게 최선이었을까? 더 좋은 방법이 있지 않았을까?
그런 고민이 내 머릿속에 끝까지 따라붙었지만 머리를 흔들어 애써 털어내 버렸다.
여동생과 몰래 만날까라고 생각을 해보았지만 그렇게 넘어간다면 안 될 것 같았다.
기껏 기회를 준 아버지에 대한 배신이기도 했지만
이 정도도 버텨내지 못한다면 앞으로 부딪힐 현실의 벽에 무너져버릴 것 같았다.
**
각오를 마치고 다음 날 밤 여동생의 방에 찾아갔다.
여동생은 내 얼굴을 보더니 금세라도 울 것 같은 슬픈 표정을 지었다.
지금 내 얼굴은 어떤 모습일까. 내 마음이 어떤지 나도 알 수 없었다.
거울로 내 표정을 보면 내 마음이 어떤지 조금이나마 알 수 있을까?
...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때가 아니였다.
여동생과 시선을 마주하고 나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버지는 우리 사이를 알고 계셨어."
여동생의 얼굴엔 불안함이 더 커졌다.
"혹시... 헤어지라고 하셨어..?"
여동생은 초조함과 불안함을 참지 못하고 엄지를 들어올렸다.
그리고 입으로 가져가 깨물려고 했다.
나는 급하게 손을 움직여 여동생의 손을 붙잡았다.
하지만 여동생은 곧바로 다른 손을 움직여 입 안에 집어넣으려 했다.
그것 또한 다른 손으로 붙잡아 막아냈다.
두 손을 붙잡힌 여동생은 결국 입술을 깨물었다.
피 한 방울이 입가에서 흘러내린다.
보다 못한 나는 여동생의 입 안에 내 손가락을 넣었다.
"차라리 내 손을 물어."
"어..?"
여동생은 내 말에 반사적으로 내 손가락을 깨물었다.
하지만 아프진 않았다.
기껏해야 옅은 이 자국이 날 정도였다.
이렇게 불안정한데도 날 상처 입히지 못 하는 여동생의 상냥함에 마음이 아팠다.
나는 마저 이야기를 이어갔다.
"아버지가 반대는 하셨어."
"역시 그러셨구나... 그럼 우리 도망칠까?"
"난 괜찮아 어쩌피 대학도 어떻게든 1년만 버텨서 졸업하고... 그 다음에 취직하면 되지."
"그럼 살 집은... 작아도 괜찮아 오히려 난 작은게 좋아."
"오빠랑 더 붙어 있을 수 있잖아. 오빠랑 같이 원룸에서 살아도 좋겠다."
여동생은 마치 반대할 걸 예상했다는 듯 미래에 대해 상상하며 빠르게 말을 했다.
여동생의 어깨를 잡고 여동생의 말을 멈추었다.
"진정하고 내 말 먼저 들어. 아버지가 조건부로 허락해주셨어."
"어..? 허락을 해주셨어? 조건부라고? 뭘 하면 되는데? 난 오빠만 있으면 다 할 수 있어!"
"..."
여동생은 방금 전의 불안하고 우울했던 모습을 지워버리고 밝게 웃었다.
역시 가족과 멀어지는 건 여동생도 싫겠지.
... 그러니까 이게 최선이야.
"아무 연락하지 말고 거리를 두라고 하시더라."
"... 왜?"
마치 시간이 멈춘 듯 여동생은 밝게 웃던 모습 그대로 얼굴을 굳히고 나를 쳐다봤다.
어딘가 섬뜩하기도 한 여동생의 시선을 애써 무시했다.
"잠시의 착각일수 있으니 시간을 좀 가지라고.."
"아니야.. 착각이 아니야. 이것보다 어떻게 더 확실할 수가 있어? 이게 사랑이 아니면 뭐냐고!"
"나오빠없으면죽을거같은걸어떡해.난오빠가없으면안돼."
"오빠가있으면좋은게아니야.오빠가없으면안되는거야."
여동생의 입에선 빠르게 말이 튀어나왔다.
표정 없는 얼굴로 말을 하는 여동생의 모습은 마치 미리 녹음해둔 말을 하는 인형같이 느껴졌다.
"... 그래도 그게 아버지와의 약속이야."
마지막 인내심인건지 여동생은 아주 조심스럽게 질문을 했다.
"... 얼마나 오래?"
"네가 졸업할때까지."
"안돼."
아주 천천히 했던 질문과는 정 반대로 답은 빠르게 나왔다.
여태까지와 다른 단호한 태도였다.
여동생의 흐릿한 눈 속에 광기와도 같은 무언가가 일렁이고 있었다.
하지만 잠깐 동안 보였던 광기는 눈 깜짝할 새 사라지고 여동생은 다시 방긋하고 웃음을 지었다.
"아냐.. 오빠랑 몰래 만나면 되는 거잖아! 독립한다고 했지? 내가 몰래 찾아갈게."
'이것도 나쁘진않아. 주말부부 같은거지. 후후..' 여동생은 작게 혼잣말을 하며 즐거워했다.
하지만 이번엔 내가 단호하게 거절을 했다.
".. 그래선 안돼."
마치 방금까지 웃던 모습은 환상이었다는 듯 순식간에 여동생은 인상을 찌푸리고 내게 소리를 질렀다.
"왜왜왜 다 안 된다는 건데! 멀어지지 않겠다고 약속했잖아!"
"나는 오빠랑 약속도 지키려고 ... 엄마가 울어도 아무 말도 안 했잖아...!"
여동생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지고 아까의 광기가 다시 번뜩였다.
"오빠는 거짓말쟁이야."
여동생은 마치 선고와도 같은 말과 함께 내 손가락을 깨물었다.
아까의 상냥함 따윈 한줌도 남지 않고 전력을 다해서 내 손을 깨물었다.
까드득 소리와 함께 손가락에서 날카로운 고통이 느껴졌다.
엄지손가락에선 피가 주르륵 흐르기 시작했다.
여동생은 조심스럽게 혀로 그 피를 핥았다.
"그러니까 이건 벌이야."
여동생의 요염한 듯 하기도 하고 광기로 가득한 눈은 섬뜩하기까지 했다.
마치 나를 유혹하듯 느릿하고 야릇한 혀놀림과 함께 여동생은 다시 나를 설득했다.
"응..? 오빠아... 아무도 모르게 찾아갈게... 괜찮지...?"
"이 정도도 버티지 못하면 우린 앞으로도 못 버틸 거야."
"아냐, 난 오빠만 있으면 다 괜찮아. 다 버틸 수 있어."
여동생은 끈질기게 나를 설득해왔다.
나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 내가 괜찮지 않아."
아. 결국 내뱉어버렸다.
다시 눈을 떴을 때 눈앞에 보이는 건 여동생의 충격 받은 얼굴이었다.
광기의 가면이 깨지고 그 속의 연약한 여동생의 얼굴이 드러났다.
금세라도 눈물이 흘러내릴 듯 눈물이 반짝였다.
여동생은 아주 살며시 웃으며 조심스럽게 질문을 했다.
"... 오빠아 ... 나.. 안... 좋아해..?"
여동생은 마치 닿기만 해도 부서져 사라질 듯 한 살얼음과도 같아보였다.
여동생의 미소는 아름다웠지만 덧없었다.
"사랑하지... 하지만 너에 대한 미안함, 죄책감과 섞여버려서 이게 진짜 사랑인지 모르겠어."
여동생의 미소가 깨어지고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가득 찼던 눈물이 흘러넘쳐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 눈물을 엄지손가락으로 닦아주었다.
아 맞다. 피가 나는구나.
아까 깨물린 엄지손가락으로 여동생의 눈물을 닦아주다 피가 묻어버렸다.
한쪽에선 마치 피눈물을 흘리는 것처럼 붉은색의 눈물이 주륵하고 흘렀다.
다시 깨끗한 손가락으로 여동생의 눈물을 닦아줬다.
여동생의 얼굴에 피와 눈물이 번진다.
... 나는 닿을 때마다 여동생을 더럽히고 망가뜨리는구나.
이미 가장 하기 힘든 말은 다 했기 때문에 다음 말은 생각보다 쉽게 튀어 나왔다.
"나, 내일 바로 나가려고."
"..."
"... 안녕."
돌아오지 않을 짧은 작별인사와 함께 여동생의 방에서 나왔다.
마음이 이렇게 아픈데도 이상하게도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엄지손가락의 상처에선 피가 계속 흘러내렸다.
눈물 대신 피가 나오는걸까.
너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도 이렇게 조금이라도 흘러내린다면 좋을텐데.
방으로 돌아가 침대에 누웠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이게 최선이였어..."
몸을 작게 웅크리고서 이 말이 마치 내 죄책감이 줄어드는 주문이라도 되는 듯 계속해서 같은 말을 중얼거렸다.
**
조용한 새벽, 나는 짐을 들고 집을 나왔다.
겨울의 날씨는 추웠다.
장갑도 끼지 않고 나오는 바람에 손이 시려웠다.
주머니에도 손을 넣어보고 입김을 불어보아도
이런 걸로는 따뜻해질 수 없다고 하는 듯
손은 도통 따뜻해지질 않았다.
이따금 어제의 상처가 따끔거렸다.
하지만 날 괴롭히는 고통이 마치 속죄처럼 달콤하게 느껴졌다.
엄지손가락을 주먹에 넣고 강하게 쥐었다.
기껏 피가 멎은 상처가 터지고 다시 피가 새어나왔다.
주먹을 다시 펴보니 손 안은 피범벅이 되어있었다.
인적 없는 새벽.
마치 동화 속 빵가루를 떨어뜨리며 집을 떠나던 남매들처럼
나는 피를 한 방울씩 흘리며돌아오지 못 할 집으로부터 멀어져갔다.
EP.60 기다림
인적없는 새벽, 조용히 나는 집을 떠났다.
집에서 나오긴 했지만... 사실은 아직 이사할 집 계약도 마치지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그대로 집에서 지낸다면 여동생과 마주칠때마다 나도 여동생도 너무 힘들 것 같았다.
그래서 조금 이르지만 집에서 나와버렸다.
...아니 도망쳤다라고 해야겠지.
새로운 집을 계약하기 전 며칠간은 근처에 사는 친구의 자취방에서 신세를 지게 되었다.
친구는 뒤늦은 가출이냐고 투덜거렸지만 그래도 자세한 사정은 묻지 않고 받아주었다.
그렇게 며칠간 집을 알아보고 계약한 뒤 이사를 하게 되었다.
12평의 원룸. 혼자 살기엔 쾌적한 넓이였다.
친구를 불러 밥을 사준다는 핑계로 청소를 함께 했다.
생각보다 집이 깔끔해 청소할 곳은 많지 않았다.
"점심은 뭐먹을래?"
"이삿날은 중국집이 국룰이지."
친구는 점심을 먹고난 뒤 다음에 저녁도 사라는 말과 함께 돌아갔다.
친구가 돌아가고 집에 혼자 남아있으니 조금 쓸쓸하게 느껴졌다.
방 안의 풍경은 황량했다.
짐이라곤 옷만 잔뜩 싸들고 나왔기 때문에 다른 물건이 없었다.
다른 내 물건들은 부모님께 나중에 택배로 보내달라고 부탁을 했다.
어머니는 직접 가져가라 하셨지만 아버지께서 택배로 보내주겠다고 하셨다.
마치 사람이 살지 않는 것 같은 살풍경한 집안의 모습에 나는 이것저것 물건을 구매하여
집 안을 채워 넣었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출근날이 다가와있었다.
출근하기 시작한 뒤로는 다른 데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고 새로운 일을 배우게 되었다.
이리저리 사람들에게 치이고 일을 배우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래도 이렇게 바빠서 다행이라 생각헀다.
적어도 이렇게 바쁜 동안엔 다른 생각은 나지 않았으니까.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잠들기 전엔 스마트폰을 바라봤다.
영상을 보거나 다른 걸 하는게 아니라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무언가를 기다리듯 멍하게 화면만을 바라보았다.
다행이라고 해야할까 생각외로 여동생에게서 연락은 오지 않았다.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일까?
아니면 아예 내게서 정이 떨어져버린걸까.
혼자서 고민한다고 해서 나올 답은 아니었기에 나는 생각을 그만두었다.
그렇게 바쁜 나날을 보내다보니 어머니에게서 먼저 전화가 왔다.
[아들, 잘 지내니? 아들이라곤 하나 밖에 없는데도 연락이 없네.]
[죄송해요. 요즘 너무 바빠서 연락하는걸 깜빡했어요. 전 잘 지내고 있어요. 엄마는 별일 없어요?]
[잘 지낸다니 다행이네. 아빠나 동생이랑도 연락 안하고 지내니?]
여동생과 연락이라...
약간의 침묵 뒤 나는 가까스로 네.. 라고 대답을 했다.
그 뒤엔 조금 긴 침묵이 이어졌다.
...정말 안부인사만을 위해 연락하신 걸까?
이러한 의문이 가슴 속에서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독립하기 전까지만 해도 동생이랑 사이좋게 지냈지?]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감이 오지 않았다.
혹사 아버지가 나와 여동생의 사이를 밝히신 걸까?
… 그러실 리가 없지.
아니면 내가 약속을 지키지 않고 여동생에게 멀어졌듯이 여동생도 나와의 약속을 지키지 않은 걸까?
일단 마저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어봐야 했다.
[그랬죠.]
[저번에 동생 남자친구에 대해 이야기했잖니... 그 뒤에 남자친구와 헤어졌다더라.]
[... 그래요?]
전화 너머로 어머니의 무거운 한숨소리가 들려왔다.
[남자친구랑 헤어지고 나서 애가 너무 힘들어하더라...]
[괜찮으면 네가 위로 좀 해주고 그럴 수 있겠니?]
[...]
이번에는 형식적인 대답조차 하지 못했다.
휴대폰 너머로 살짝 노이즈 낀 침묵이 들려온다.
... 이 쪽이 본론이었나.
말이 턱 막혀서 대답 할 수가 없었다.
나는 천천히 시선을 내리 깔았다.
시선을 내리자 내 손가락이 보였다.
엄지손가락의 상처는 다 낫고 작은 흉터만이 남아있었다.
다른 손가락으로 흉터를 쓰다듬으며 자그마한 목소리로 네. 라고 대답했다.
그 뒤로 집은 괜찮니, 직장생활은 어떠니, 사람들은 괜찮니 등 이런저런 근황이야기를 나눈 뒤 통화를 마쳤다.
여동생에게 위로라...
불가능한 이야기였다.
애초에 원인이 나였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한동안 열어보지 않았던 여동생과 대화목록을 열어봤다.
대화의 마지막은 여동생의 문자로 끝이 나 있었다.
[여동생 : 오빠랑 빨리 여행가고 싶다...(부끄러워하는 토끼 이모티콘)]
무심코 채팅창에 나도. 라고 글자를 적어버렸다.
실수로라도 전송버튼을 누르지 않게 조심스럽게 한 글자씩 지워나갔다.
작은 한숨을 쉬고 여동생과의 대화창을 닫고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시선을 다시 위로 올려 방 안을 바라보았다.
아직도 군데군데 비어서 어딘가 휑해 보이는 방 안의 풍경이 보인다.
혼자 지내기엔 딱 좋다고 생각했던 방의 크기가 오늘따라 왠지 조금 넓게 느껴졌다.
여동생과와 떨어져 지낸다면 여러 가지가 섞여서 엉망인 마음이 정리가 될 거라 생각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내일도 출근해야하는데...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아보아도 잠이 오지 않았다.
몸은 피곤하다며 잠들고 싶다고 하는데 괜히 심란해진 마음에 잠이 오질 않았다.
결국 자리에 일어나 냉장고를 열어봤다.
예전에 사두고 마시지 않은 맥주가 보였다.
... 하필이면 여동생과 여행을 가서 함께 마셨던 것과 같은 브랜드의 맥주였다.
고작 맥주 한 캔을 마시고 새빨개진 얼굴로 배시시 웃던 여동생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 실수했다.
고작 자그마한 기억의 파편만을 떠올렸을 뿐인데 함께 했던 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지나간다.
"... 맥주 하나 봤다고 이건 너무한거 아니냐고."
나는 작게 불평하고 다음엔 소주를 사놔야겠다. 라고 생각하며 냉장고에서 맥주캔를 꺼냈다.
깊은 밤 불 꺼진 원룸 안,
창문 사이로 비치는 희미한 달빛 아래에서나는 조용히 추억 속에 잠겼다.
... 다음날 아침에 늦잠을 자는 바람에 택시를 타고 출근했다.
그러고도 지각을 하는 바람에 사수에게 아침부터 갈굼을 당했다.
그날 밤엔 오랜만에 동기들과 만났다.
나와 같이 입사한 동기는 각각 남자와 여자 한명씩이었다.
같은 시기에 고생해서 그런지 우리들은 빠르게 친해져 금세 서로 말을 놓았다.
그렇게 오늘은 동기들끼리 조촐한 회식을 하게 되었다.
회사동기들끼리 모이다보니 자연스럽게 상사에 대한 뒷담화를 하게 되었다.
"와 진짜 박부장 때문에 미칠거같아.. 아니 다 퇴근하는데 왜 자기만 앉아있냐고!"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지가 집에 가기 싫다고 앉아서 눈치는 왜 주냐고..."
"누구 한명이 총대매고 부장님 데리고 접대 돌아야 퇴근 할 수 있어."
"그것 때문에 여친이랑 약속 파토난게 몇 번인지 모르겠다."
"그러니까 여친이 일이야 나야 라고 묻는데 와.. 실제로 들어보니까 그냥 숨이 턱 막히더라."
남자 동기는 자신의 여자친구에 대한 푸념을 했고,
여자 동기도 자신의 남자친구에 대한 푸념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나는 그저 아무 말 없이 동기들의 푸념을 들어주었다.
그러다보니 타겟이 이번엔 내게 돌아왔다.
"너는 여자친구 없냐?"
뭐라고 대답해야할까..
사귀고 있다? 헤어졌다?
아니면 ... 여동생과 견우와 직녀마냥 헤어져서 만날 날을 기다리고 있다?
...하하. 내가 생각해봐도 재미없는 농담이었다.
고민하던 끝에 남자친구와 헤어졌다고 하던 어머니의 말이 떠올랐다.
그래서 나도 여자 친구가 없다고 대답을 했다.
"그럼 가끔 들여다보던 프사는 누구냐? 전여친?"
술잔을 든 손이 움찔하고 떨렸다.
씁... 그걸 봤네.진짜 가끔, 그것도 몰래 봤다고 생각했는데...
입안에 감도는 쓴맛에 나는 술을 한잔 마시고서야 대답을 할 수 있었다.
"아니, 여동생."
"오 여동생이야~? 이쁘던데?"
남자동기의 말에 여자동기가 뒤통수를 때렸다.
"넌 여자친구도 있는 놈이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아니 여동생인데 못생겼다고 할순없잖아."
"꼭 이야기 할 필요는 없는 거 아니냐?"
둘은 앙숙처럼 티격태격 싸워댔다.
나는 그런 둘의 모습을 보며 다시 또 술을 한 잔 마셨다.
"아니 난 존나 슬픈 눈으로 보길래 헤어진 전여친이라도 보는 줄."
남자동기는 꿋꿋이 자기 할 말을 끝마쳤고, 기어코 여자동기에게 뒷통수를 한 대 더 맞았다.
나는 차마 부정하지 못하고 다시 또 술 한 잔을 마셨다.
"아니 그래서 여친은 있냐고"
"없다니까."
"그럼 마지막연애는?"
무슨 질문하나하나마다 대답하기가 껄끄럽냐...
또 한 잔을 들이키곤 대답했다.
"2달전 쯤에 헤어졌어."
"그쯤이면 취직하고 나서네?"
"뭐 그렇지... 근데 왜 이렇게 꼬치꼬치 캐묻는 건데."
"너도 여친한테 시달렸으면 좋겠어."
"... 뭐?"
"농담이고 인사과 이 대리님이 널 좀 눈여겨보시더라고?"
"...뭐?"
"넌 어떻게 생각하냐?"
"사내연애는 좀..."
나는 그렇게 얼버무리고는 다시 또 술을 마셨다.
그 정도까지 물어본 뒤로 다행히 더 이상으로 물어보진 않았다.
그날따라 좀 더 많이 술에 취해버렸다.
몸을 가누기도 힘들어서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하아ㅡ
방 안 침대에 겨우 몸을 눕히고 한숨을 쉬니 술 냄새가 진동했다.
주섬주섬 주머니를 뒤져 휴대폰을 꺼내 대화목록을 올려본다.
[여동생 : 술 너무 많이 마시지 말고 조심해서 들어와.]
나는 눈을 감고 휴대폰을 내려놓고서 잠에 들었다.
새벽에 목이 말라서 잠에서 깨어났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냉장고를 열어 물을 꺼내 마셨다.
창문을 열어보니 뜨거운 바람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이미 밖은 만연한 여름이 와있었다.
여름의 후덥지근한 바람을 맞다본니 너와 함께 갔던 여행이 떠올랐다.
그날의 습하고도 뜨거웠던 밤바람.
땀으로 가득 했지만 손을 놓지 않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전까진 열어보지 않던 휴대폰 사진첩을 열었다.
그리고 그날 함께 찍었던 사진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마지막으로 놀이공원에서 함께 찍었던 사진까지 보고나서야
나는 창문을 닫고 자리에 누워 다시 잠에 들 수 있었다.
**
시간이 갈수록 일에 여유가 생겼다.
물론 매일이 바쁘긴 했지만 그래도 일이 익숙해지다 보니
일하는 중간 중간 딴 생각이 들어버렸다.
그럴때마다 함께 찍었던 사진을 보기도 하고
여동생과 나눴던 대화를 뒤적여보기도 했다.
그렇게 가을이 지났다.
추석에도, 다른 휴일에도 급한 일이 있다는 핑계로 본가로 가진 않았다.
어머니는 불만이 많은 듯 했지만 아버지가 열심히 어머니를 달래주셨다.
여동생은.. 어떤지 알 수 없었다.
그렇게 어느덧 1년이 지나고 12월 31일이 되었다.
나는 홀로 집에서 조촐한 새해맞이를 했다.
... 집에서 티비로 제야의 종 영상이나 보면서 술이나 마셨다는 이야기다.
뎅ㅡ...
TV화면 속에서 제야의 종이 울리며 1월 1일이 되었다.
작은 목소리로 혼자서 새해를 자축했다.
혼자서 계속 술을 홀짝이다 보니 어느덧 술이 다 떨어져버렸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냉장고를 열어보니 오늘 편의점에서 사온 맥주 두 캔만이 남아있었다.
그것엔 차마 손대지 못하고 결국 집 앞 편의점에 가서 소주와 안주거리를 조금 사왔다.
또 다시 혼자서 술을 마시며 몽롱한 정신을 붙잡고 있었다.
창 밖을 보니 어느새 해가 떠올라있었다.
... 결국 1년이 지났지만 여동생에게서 연락은 오지 않았다.
EP.61 재회 (완)
새해가 되었지만 여동생에게서 연락은 오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휴대폰을 붙잡고 보며 여동생의 연락을 기다렸지만
그후에도 여동생에게 연락은 오지 않았다.
어느덧 1월이 지나 2월이 되었고, 여동생이 아닌 어머니에게서 연락이 왔다.
[다음 주 금요일이 동생 졸업식이라는데 올 수 있니?]
... 벌써 졸업식 시즌인가. 생각보다 시간이 빨리 가는 것 같았다.
[아니 난 출근해야지. 못가는 대신 꽃다발이라도 보낼게.]
[그럴래? 많이 바쁜가보네... 그 직장 괜찮은 거 맞니?]
이제와서 여동생의 얼굴을 볼 면목이 없었다.
연차나 휴가는 충분히 남아있었고, 못 가는게 아니라 안가는 것인데
사정을 모르는 어머니는 이상한 방향으로 걱정을 하셨다.
무슨 직장이 그렇게 바쁘냐고, 사실 밥도 못 챙겨먹고 다니는 건 아니냐고 한참동안 나에 대한 걱정을 하셨다.
어머니 마음속에서 내 직장에 대한 평가가 뚝뚝 깎여나가는 듯 했다...
나는 본의아니게 열심히 회사에 대한 변론을 하고나서야 통화를 끊을 수 있었다.
어머니와 통화를 마치고 침대에 누워서 한탄하듯이 혼잣말을 했다.
"졸업식을 간다고해도 어떤 얼굴로 여동생을 봐야할지 모르겠는걸요..."
여동생은 잘 지내고 있으려나.
마치구질구질하게헤어진 전남친처럼 여동생의 프로필사진을 열어봤다.
1년 전부터 여동생의 프로필 사진은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 연애중은 아닌가?
아니면 티를 안 내는 걸까.
나보다 좋은 사람을 만나고 있으려나...
피가 안 이어졌다곤 해도 근친은 좀 그랬지..?
나는 혼자서 중얼거리며 자기변명만 잔뜩 늘어놓는 내 모습이 너무 추하게 느껴졌다.
나는 혼잣말을 그만두고 베개에 얼굴을 묻고 엎드렸다.
그래도 여동생과 평생 마주치지 않는 건 불가능할 텐데...
만나면 어떤 얼굴을 해야 하는걸까...
무시해야하나? 아니면 아무 일도 없었던 척을 하는 게 나으려나.
여동생에게 들키기 전, 무표정하게 날 바라보고 딱딱하게 말을 하던 여동생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가는 건가.
돌아갈 순 있는 걸까. 그때보다 못한 취급이 되는 건 아닐까.
그런 고민들을 하다가 나는 잠에 들었다.
엎드린 채로 잠들었더니 침이라도 흘린 건지 베개가 축축했다.
나는 메말라 붙은 입술을 손가락으로 한번 닦아내고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출근 전 씻기 위해 화장실로 가서 거울을 바라보았다.
아... 어제 밤에 괜히 라면 먹은 건지 눈이 부어있었다.
나는 붓기를 빼기 위해 찬물로 한참동안 세수를 하고서야 출근 할 수 있었다.
**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덧 다음 주 금요일이 되어있었다.
내 일상엔 딱히 변화가 없었다.
나는 평소대로 출근을 했다,
꽃다발은 무슨 꽃을 보낼까 고민하던 끝에 라일락과 안개꽃을 조금 섞어서 보냈다.
꽃다발을 보낸 뒤 졸업식에 대한 건 잊어버리고서 일을 했다.
점심시간이 되기 전 부모님이 여동생의 졸업식 사진을 보내주셨다.
꽃다발은 잘 도착한 건지 여동생은 손에 꽃다발을 들고 있었다.
사진 속으로 1년만에 여동생의 모습을 봤다.
여전히 여동생은 아름다웠다.
... 그세 더 예뻐진 것 같기도 하고.
이제 나랑은 상관없는 이야기겠지만.
점심이 되기 전 잠깐 옥상에 올라가 바람을 쐬었다.
한동안 옥상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겨울바람을 맞으며 커피를 마셨다.
그리고 옥상에서 내려오면서 여동생과 함께 찍었던 사진들을 지워버렸다.
... 이러는게 맞겠지.
그리고 그날은 잔업까지 하며 야근을 하고 늦게 자취방으로 돌아갔다.
**
피곤한 몸을 이끌고 현관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갔다.
들어갔더니 나를 반기는건 평소처럼의 어둠이 아닌 밝은 형광등의 불빛이었다.
고개를 들어 집 안을 바라보니 소파에 여동생이 앉아있었다.
... 솔직히 말하자면 깜짝 놀랐지만 애써 놀라지 않은 척을 했다.
신발을 벗고 집 안으로 들어가며 여동생에게 궁금한 점을 물어보았다.
"집 주소는 어떻게 알고 찾아왔어?"
"뭐래.. 매번 집에서 반찬 얻어먹는 주제에 어떻게 모르겠어."
"...그럼집 안에는 어떻게 들어왔는데?"
"대충 비밀번호 몇 개 쳐보니까 맞던데?"
이번에 놀란 걸 숨기지 못하고 몸이 잠깐 굳어버렸다.
비밀번호 바꾸는거 깜빡했네...
나는 이번에도 애써 아무렇지 않는 척을 하며 냉장고를 열어봤다.
"뭐라도 마실래?"
하지만 냉장고 안에는 작년의 마지막에 사두었던 맥주 2캔만이 남아있었다.
... 이거 버리는 것도 깜빡했네.
나는 냉장고 안을 보지 못한 척 다시 닫아버렸다.
"미안, 집에 뭐가 없네. 커피라도 마실래?"
"아니 됐어."
여동생은 내게는 별로 관심이 없어보였다.
그저 집 안을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었다.
"이러고 살았던 거야? 집이 휑한데?"
"... 왜 있을 건 다 있는데. 그건 그렇고 언제부터 와 있었던 거야?"
"졸업식 끝나고 바로 왔어."
"많이 기다렸겠네. 연락이라도 하지 그랬어. 그랬으면 야근 안하고 빨리 왔을텐데."
"... 오빠에게 전화나 문자를 하고 싶지 않았어."
생각보다 싸늘한 여동생의 반응에 나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집 안에는 어색한 침묵이 감돌았다.
그리고 여동생은 조용히 옆에 앉으라고 눈짓을 했다.
나는 소파의 여동생의 옆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여동생이 침묵을 깨고 질문을 했다.
"오빠는 나한테 할 말 없어?"
"..."
어떤 말을 해야할지 아직은 몰랐기에 나는 여전히 침묵을 지켰다.
여동생은 작게 심호흡을 하고는 말을 시작했다.
"그래. 그럼 나부터 이야기할게."
"그날 오빠가 떠나가고 나서 나 많이 힘들었어."
"오빠에게 상처를 남긴 것도, 작별인사도 못해준 것도 많이 후회했어."
"... 그 뒤에 나한테 상처도 많이 냈어."
"근데 그러니까 엄마가 너무 많이 힘들어하시더라고."
"엄마가 날 붙잡고 우시고 나서야 정신을 차렸어."
"정신을 차리고 나니까 오빠가 너무 괘씸한거 있지?"
"멋대로 나가버리고 말이야.."
"그래서 다시 만나면 뺨정돈 때려주려고 했어."
"... 지금이라도 때릴래?"
"아니, 지금은 그럴 마음이 들지 않아."
여동생은 나를 힐끗 한번 쳐다보고는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그 뒤로 오빠를 잊으려고 공부에만 매진했지."
"덕분에 교수님 추천서도 받고 곧 취직할 것 같아."
"아 그래? 축하해."
축하인사를 했는데도 찌릿하고 여동생은 나를 노려보았다.
나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그 뒤로 오빠한테 화풀이도 할겸 다른 남자를 만나볼까 생각도 했어."
"..."
괜히 주먹이 불끈 쥐어졌다.
나에겐 그럴 자격조차 없는데.
여동생의 말은 조금씩 떨리기 시작했다.
"근데 안되겠더라."
"단 한순간도 오빠를 잊을 수가 없었어."
"밥 먹을 때도, 공부할 때도, 어딘가 다쳤을 때도"
"항상 오빠 생각이 먼저 났어."
"그리고 오빠 생각 날때마다 울었어."
"..."
여전히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오빠는 어땠을까? 라는 생각을 해봤어."
"오빠가 무엇 때문에 죄책감과 미안함을 느끼는건지에 대해서 생각해봤어."
"날 망가뜨렸다고 생각해서 죄책감을 느낀다고 했지?"
".. 그래서 난 괜찮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 많이 노력했어."
"오빠가 이 잘못된 관계를 시작했다는 거에도 죄책감을 느꼈다고 했지?"
"솔직히 잘못된 관계라는 말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오빠가 이 관계를 시작해버린게 미안했다면 이번엔 내가 시작하면 되는거겠지?"
떨리던 여동생의 목소리가 다시 또렷해지고 의지로 가득찼다.
"오빠는 날 떠났지만 난 놔주지 않을 꺼야."
"오빠, 약속한 1년이 지났어. 이젠 오빠가 약속을 지킬 차례야."
"..."
무언가 말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머릿속엔 너무 많은 말이 떠올라 결국 입 밖으론 한마디도 나오지 못했다.
여동생은 이젠 나를 뚫어질 듯이 쳐다보며 이야기를 했다.
나는 여동생의 시선을 피할 수 없었다.
"나 그동안 오빠 생각을 많이 했어.."
"...응."
"오빠가 너무 많이 보고 싶었어."
"...응."
"오빠 생각에 많이도 울었어."
"...응."
여동생의 말이 멈추고 다시 침묵이 집 안에 내려 앉았다.
여동생은 이따금 입을 움찔거리며 무언가 말을 하려고 했지만 결국 하지 못했다.
여동생은 나를 쳐다보던 시선을 거두고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자그마한 목소리로 말을 했다.
"난 여전히 오빠를 사랑해."
여동생은 다시 고개를 들고 희미하게 웃으며 날 바라봤다.
"... 오빠는 날 사랑해...?"
다시 그 날이 떠올랐다.
여동생과 헤어지던 그날, 그때의 장면.
그 날에도 여동생은 마치 손을 대기만 해도 깨지고 사라질 듯 한 살얼음 같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 그리고 나는 지금, 그 날 하지 못 했던 것을 해야 했다.
나는 여동생을 으스러질 듯 강하게 껴안았다.
깨질 것 같다면 차라리 부서지고 날카로운 파편이 되어서내게 박혀오라.
그렇게라도 나는 너와 평생을 함께 하고 싶었다.
망가진다고, 깨져버린다고 해서 널 놓진 않을 꺼다.
망가지고 형태가 바뀐다해도 소중하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으니까.
여동생을 껴안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머릿속에 여러 가지 말들이 떠올랐다가 다시 가라앉았다.
이런 저런 말들이 가라앉고나서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말을 꺼내었다.
"나도 사랑해. 하윤아."
... 처음으로 여동생의 이름을 부르며 사랑을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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