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속에 잠들다. 08
네코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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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시간전
바람속에 잠들다. 008
영주는 참 거침이 없는 아이였다.
술을 마시면서 우리는 여러 이야기를 했다.
톨스토이도 있었고 키에르 케고르도 있었고 이제하도 있었고, 안나가 있었고 전태일도 있
었다...
다 좋은 안주감인양 그렇게 쓴소주와 어우러져 돌아갔다.
"경수씨, 우리 호수에 갈래요?"
우리는 차를 잡어타고 호수로 향하다가 그저 내 장난기 섞인 고집에 그 당시에 유행하던
디스코텍으로 들어갔다.
"여기도 호수에요, 봐요... 물 좋고 고기들도 싱싱하잖아요....크크"
"그렇네... 물 좋네요...호호호"
그렇게 우리는 너스레를 떨면서 다시 맥주를 마셨고, 아는 음악이 나오면 서로 플로어에서
미친듯이 춤을 쳐댔다. 그냥 그렇게 몽롱한 상태에서 영원히 깨어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싸이키한 조명아래 땀에 젖은 긴머리가 얼굴에 감긴채로 격렬한 춤동작에 빠져 있는 영주를
보니 문득 마치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지냈던 사람처럼 느껴졌다.
"영주씨 우리 블루스 한번 춰볼래요?"
영주는 별 거부감없이 선뜻 내 손을 잡고 일어섰고, 난 영주를 중앙으로 이끌면서, 그녀의
손이 땀은 많이 베어있으나, 부드럽고 따스한 느낌을 전달하는 손이라는 것을 알았다. 혜경
이 누나도 연희씨도 그랬었다...
춤을 추면서 우리는 좀더 가까이서 서로의 냄새를 맡을 수가 있었다. 그녀에게서는 사과향
기가 났다. 나에게서는 가을 냄새가 난다고 했다.
"사과는 가을에 열리잖아요..."
그녀는 '그렇군요!' 하면서 후후후 하고 웃음을 날렸다.
체격은 커도 상당히 부드럽고 전체적으로 가볍게 움직이는 몸이었다.
춤을 추다가 갑자기 그녀의 몸을 꽉껴안아 버렸다. 그녀는 아무런 얘기도 아무런 반응도 없
이 그저 발만 움직이고 있었다. 난 더 꽉 안으며 그녀의 입술을 찾았다.
"아직이요... 그리고 지금 이곳에서는 싫어요..."
그녀의 목소리는 평소와 다르게 무척 차분하게 가라앉아, 마치 다른 여자의 음성을 듣는 듯
한 착각에 빠져들게 했다.
난 더 그녀에게 다가갔고, 그녀는 더 이상 몸을 뒤로 빼지는 않았다. 그저 조용히 거기서 기
다리고 있었다. 마음을 읽고 마음을 전달하는데 굳이 키스와 같은 물리적 행위가 필요한 것
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담담한 표정으로 날 보며 두손을 천천히 내 목으로 감아왔다. 사타구니를 좀 더 밀착시키자
그녀도 바짝 다가섰다.
뜨거운 열기가 도는 곳인 데도 정신은 찬물을 뒤집어 쓴 것처럼 긴장되었다. 숨을 고르고
서서히 손을 내려 그녀의 허리에 걸치고 한손은 브라자의 끈을 만지면서 그녀를 더욱 당기
자, 그녀의 몸이 작은 경련을 일으키는 것을 느낄 수있었다.
"영주씨…"
그녀는 평소의 그녀와 다르게 내 눈을 마주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인 채로 내 가슴에 안겨왔
다.
어느 순간엔가 '휴우'하고 안도의 한숨이 나오고, '춘천을 오는 게 아니었는데…' 하는 회의
가 들었지만, 때는 이미 늦은 상태라는 것을 직감으로 느낄 수 있었다. 여기서 발을 빼는 것
은 안 들여놓느니만 못한거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경수씨… 나 우습지요?"
"그럼 우스운 영주씨를 유혹하고 있는 난 한심한 놈인가요? 후후…"
"하하하….."
다시 본래의 그녀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이제 그녀도 확인을 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거기서 마음껏 마시고 마음껏 몸을 흔들고 비비고...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무언가를 잊는다는 것은 굳이 그것 자체를 지울 수없을 때에는 다른 것으로 가득 채워서 여
유를 남겨두지 않는 것도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일시적인 현상이었지만, 빠른 시
간안에 가능하다는 이점도 있었다.
난 연희씨를 잊고 싶었다. 아니 영원히 기억하고 영원히 사랑하고 싶어서라도 그때의 그 처
참한 좌절의 칼날을 일시라도 면해야 했었다. 내앞에서 내눈을 마주하고서, '죽어도 좋아'라
고 얘기했던 여자였다.
어느 순간엔가 그녀또한 내가 싫어지고, 나또한 그녀를 거부할 지 모르지만, 그 당시에는 그
런 염려나 가능성은 단지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던 그런 상황이었다.
언젠가 연희씨는 내 책상 서랍에 작고 깨알 같은 글씨로 꼼꼼히 쓴 '사랑하는 사람에게...'라
는 편지를 남긴적이 있었다.
그때 그녀는 세상에 태어나서 진정으로 이만큼 누군가를 사랑해 본적이 없으며, 아무리 둘
러봐도 자기와 같은 사랑을 경험하고 있는 사람이 자기 눈에는 띄지 않는다고, 그녀는 나에
게 감사하고 하늘에 무릎을 꿇고라도 경의를 표하고 싶다고 했다.
그런 그녀를 난 떠나야만 했다. 내 아픔보다 그녀의 아픔이 훨씬 처절하고 애닯으리라는 것
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문득 내 앞에 한 여인이 날 바라보고 있었다. 옆집 아줌마 였다가, 상미였다가, 혜경이 누나
가 되었다가, 명숙씨가 되었다가, 다시 연희씨가 되기도 한 그 여인은 어느새 내 눈에서 사
라지고 있었다.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몸은 꼼짝도 할 수 없는 그런 상태였다. '잡아야
하는데...'
난 술이 이성을 흐트려 놓는 이 신기한 마술이 여간 흐믓한게 아니었다. 마시고 또 마셨다...
어떻게 여관을 찾아 들었는지, 씻기는 씻었는지, 그리고 그 다음날 아침에 내 곁에서 너무도
편안한 얼굴로 잠들어 있던 영주와 내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단지, 몸은 알몸이었다.
담배를 찾아 물면서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 보아도 난 옷벗은 기억조차 나질 않는다. 술이
떡이되어 여관을 찾아들었고, 그리고 나서는 아침이었다.
그렇다고 영주를 깨워서까지 물어볼 일도 아니었다. 그렇게 멍하니 앉아 있다 창밖을 보니
가을비가 부슬 부슬 내리고 있었다. 을씨년스럽게 내리고 있었다.
'무슨 말을 해야하나?'
아무리 내가 아무렇게나 굴러먹은 놈이라고 해도 이렇게 낭만을 가장한 문란을 용서할 수는
없었다.
난 내곁에 달랑 팬티하나만을 걸치고 잠이 들어 있는 영주의 얼굴을 바라다 보았다. 잘 생
긴 얼굴이었다. 몸매도 생각했던 것보다는 훨씬 출중했고, 특히 전체적인 균형이 좋았다.
한참을 영주를 바라보다 난 화장실에 들어가서 세수를 하고 다시 한번 물건을 내려다 보았
다. 어제의 흔적이 있는 듯도 하고 없는 듯도 한데, 아무래도 한 것 같았다. 가슴이 게운하
지를 않았다. 거울에 비친 내얼굴이 마치 남처럼 낮설게 보이고...
옷을 대충 챙겨입고 난 그녀의 가방에서 작은 노트를 꺼내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미안하고 필요하다면, 그에대한 책임을 지겠노라고...'
편지를 쓰면서 내내 손이 떨리고, 눈앞의 시야가 밝지를 않았다.
편지를 다 쓰고 마지막 작별 인사를 위해 그녀에게 다가갔을 때, 그녀의 눈거풀이 가볍게
떨리고 있슴을 볼 수 있었다.
"영주씨"
내 목소리는 조용했으나, 떨리고 있었다.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영주씨, 안자고 있는 것 알아요. 고마웠습니다"
순간 그녀의 닫힌 눈 밖으로 눈물이 주르르 흘러 내렸다. 내 가슴의 한구석이 우르르 무너
져 내렸다. 그녀의 볼을 만지며 그녀의 입술에 내 입술을 가져갔다. 그녀의 입에선지 내 입
에선지, 아직도 술내음이 진하게 남아있었다.
그녀는 두 팔을 뻗어 나를 안아 왔다. 내가 아는 그녀는 그런 여자가 아니었다. 아마도 오늘
이 마지막이란 것을 그녀도 잘 아는 것이리라...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어쩌면 여기서 그녀를 뿌리치는 것이 내 이기적인 춘천행의 마지막행동이 되어서는
안됀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그녀의 가늘고 탄력있는 허리를 가볍게 안고서 그녀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심하게 뛰고 있는 가슴이었다.
천천히 그녀의 딱딱하게 굳어있는 가슴을 한입 베어 물었다. '헉!'하고 숨을 멈추는 것이 느
껴졌다. 난 서서히 그녀의 입술을 다시 찾았다. 그녀의 혀는 마치 오래 기다렸다는 듯이 빠
르게 내 입으로 밀려들어왔고, 난 그녀의 잘 발달된 허리와 아랫배의 탄력을 느끼면서 아래
로 손을 뻣어갔다.
그녀의 두손이 내 목을 감싸왔고, 내가 그녀의 두 볼을 감아 쥐자 감고있던 두눈을 서서히
뜨고 젖은 눈동자로 날 바라다 보았다. 내가 눈을 감았다.
난 다시 일어나 천천히 옷을 벗고 그녀에게 포개갔다.그녀는 팔과 다리를 벌리고 내 몸을
받아 들였다.
전희가 오래 필요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갔했고, 바로 그녀의 비소를 더듬어 갔다. 어제의 여
운때문인지 그녀는 이미 뜨거워져 있었다. 난 그녀의 입속을 헤매던 혀를 귀와 목으로 보냈
고, 내가 귀를 빨자 그녀의 몸이 뒤틀리기 시작했다. 그만큼 민감한 몸이었다.
"아하...... 경수씨...아항...아흐... 아..."
잔잔하지만 크게 이는 파문과 같은 흐느낌이었다.
내가 그녀의 딱딱한 가슴을 움켜쥐고 깊게 빨아가자 그녀의 몸이 경직되면서 더 밀착되어
왔다. 아마도 어느 정도의 인내심을 발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극이 너무 강렬했었나
보다.
탄력있는 아랫배와 깊은 굴곡을 이룬 허리는 마치 잘 빚어진 도자기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넓은 골반에 타이트하게 걸려져 있는 파스텔톤의 팬티에 손을 갖다대자 그녀도 망설이지 않
고 내 팬티에 손을 넣고 밀어 내렸다.
내 물건은 당당하게 그녀를 향해 서 있었다. '아하'하는 신음소리가 들렸다. 기대보다는 긴
장이리라...
그녀의 팬티를 벗겨내고 슬며시 손을 사타구니에 얹자 그녀는 두 다리를 급하게 오므렸고,
내가 그녀를 보고 고개를 끄떡이자 다리의 힘을 풀어내며 고개를 돌렸다. 남자를 자극할 줄
아는 능력을 갖고 있는 여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리를 벌리고 꽃잎에 손을 대자 이미 꽃잎은 겉까지 촉촉히 젖어있었다. 아마도 어제의 정
사후에 내 물건을 그녀가 닦아준 모양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관계를 했는지의 여부가 모
호할 정도가 될 수없을 정도로 그녀의 보지는 물을 흘리고 있었다.
사랑이 전제되지 않은 섹스는 동물들의 짓이라고 매도했던 나를 비웃듯이 영주의 육체는 나
를 유혹하고 있었다.
매끈한 두다리와 깊은 그늘이 진 사타구니는 '어서오라' 고 손짓하고 있는 듯했다.
난 더 이상 망설일 수없었고, 천천히 그녀의 동굴로 내 물건을 가져갔다. 꽃잎이 만개해 있
었다.
그녀의 질은 미끈하고 뜨거웠다.
"경수씨…"
그녀는 이름을 부르는 것 이외에는 다른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단지 이름을 부르고, 신음을
흘리고...
난 말을 몰듯이 그녀를 몰았다. 어떤 이유에선가 새로운 의욕이 강하게 일었다.깊고 강하게
그러면서도 부드롭고 조화롭게 그녀를 공략해 갔다.
그녀의 반응은 빠르고 거셌다.
"아하... 경수씨... 흐... 아... 아... 경수씨... 우욱... 경수씨...."
그녀의 몸은 급하게 뜨겁게 달아오랐고, 시간이 지나면서 오히려 내가 밀리는 듯한 느낌이
들어갔다.
그렇게 우리는, 차가운 가을 춘천의 하늘 아래에서 낯설지만 뜨거운 정사를 벌이고 있었다.
"경수씨.. 경수씨... 너무 해요... 이렇게...... 이렇게...... 아하... 아... 어응... 아... 아... 경수씨...
아....."
그녀의 신음은 메아리처럼 방안을 떠돌았고, 우리는 온 힘을 다해서 서로에게 충실했다. 그
런가보다... 섹스란, 하는 순간은 그저 최대의 노력을 기울이게 되는 것인가 보다.
그녀의 가슴에 밀착된 내 가슴에 그녀의 땀에 젖었지만 딴딴한 젓가슴이 부딪혀 오면서 난
그녀의 마음을 조금씩 읽고 있었다.
그래 사랑이 아니어도 좋다. 그저 육체의 향연이라고 해도 좋다. 오늘 이순간이 지나면 다시
는 만날 수없는 그런 사람이라도 좋다. 난 단지 이순간 이사람을 위해 최선을 다할 뿐이다.
난 서서히 그녀와의 치열한 향연에 몰입하고 있었고, 즐거워 질 것 같은 몸뚱아리를 느끼고
있었다.
"경수씨... 아하... 경수씨.... 좋아요... 경수씨..."
그녀는 사랑한다고 하지 못했고 또 안했다.
난 조금씩 공을 들여 그녀에게 더 깊고 짜릿한 쾌감을 맛보게 하고 싶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그녀는 탈진을 한듯 움직이지도 않은 채로 헉헉거리며 숨을 가다
듬고 있었다.
한참을 그렇게 침대에 누워있던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몸을 일으켜 같이 화장실을
들어가 그녀가 샤워를 할때는 내가 양치질을 했고, 내가 샤워를 할때는 그녀가 양치질을 했
다.
그리고 이미 점심시간이 다됀 시간에 아침을 먹으러 식당으로 가면서 우린 서로의 얼굴을
보고 환하게 웃을 수있었다.
그래... 이래서 '젊음'이라고 하는 것이리라...
그녀는 피식 웃으면서 내 팔에 자기의 팔을 감아왔고, 난 그런 그녀의 긴 머리카락을 매만
져 주며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식당으로 향했다.
서울로 오는 기차에서 내가 그녀에게 남겼던 편지를 다시 꺼내 읽고는 열려진 차창으로 찢
어진 편지를 날려버려, 결국 난 춘천의 어느 땅위엔가 내 젊은날의 한 기억을 그렇게 남기
고 떠나왔다.
영주와의 뜻하지 않은 섹스는 내 속에 감추어져 있던 방탕과 방랑의 실체를 깨닫게 해주는
계기가 되었다.
서울로 돌아와서 난 어쩔 수없이 집으로 들어갔다.
어머니는 집 나간 자식의 귀가를 말없이 기뻐하고 계시는 것 같았다.
그렇게 다시 현실로 돌아왔으나, 연희씨는 여전히 내 삶 속에 나와 더불어 있었다. 미치도록
그립고 서러웠다. 전화기를 잡았다가 놓고 잡았다가 놓고를 수도 없이 하면서 잊혀질 거라
고 생각되었던 그녀는 점점 더 큰 형상으로 내 가슴에 자리를 잡아갔다.
'이거는 아냐, 이렇게 지낼 수는 없어…'
첫 눈이 오는 날이었다. 난 무작정 버스를 타고 그녀의 집으로 향했다. 몇 번인가를 도중에
서 내릴까 하고 고민했지만, 그러기에는 내 가슴속에서 활활 타오르고 있던 내 불꽃이 너무
뜨거웠다. 온갖 상상이 다 들었다. 날 잊은 거는 아닌지, 아니 혹시 무덤덤하고 담담하게 날
대하는 것은 아닌지…
버스 종점에 내려서 전화 번호를 누르면서도 난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괜히 왔다는 후회
도 작지 않았다.
"여보세요?"
그녀의 목소리였다. 갑자기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여보세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저쪽도 아무런 말이 없었다. 단지 미세한 호흡소리만이 느껴졌
다.
얼마를 그러고 있었는지…
"혹시…"
그녀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네, 경숩니다"
'아하' 하는 신음 소리 같은 거친 호흡 소리였다.
"지금 어디에요?"
그녀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다는 것은 쉽게 느껴질 수 있었다.
"집 앞 이예요. 버스 정류장"
그녀는 '기다리고 있어요'라는 말 한마디만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채 담배 한 가치도 다 피우기 전에 저 만치서 그녀가 뛰어 오는 것을 볼 수가 있었다. 가슴
이 심하게 요동을 쳤다. 내 사랑이 오고 있었다.
"흐흑…"
그녀는 아무 말도 못하고, 내 두 손을 꼭 잡은 채 서러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무릎에 힘
이 빠져나가고 있었다.
레스토랑도 문을 안 열은 이른 시간이라 다방으로 향하면서도 우린 잡은 손을 놓지 못했다.
찬찬히 그녀의 옆얼굴을 보니 그 사이 마음 고생이 많았었는 지, 얼굴이 꺼칠해 보였고 나
이도 몇 살 더 먹어 보였다. 우울하고 가슴이 아팠다.
"그간 잘 지냈어요?"
그녀는 그 사이에 많은 생각을 했는 지, 냉정을 가장한 채 다소 덤덤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
을 꺼냈지만, 그녀의 감정이 어떤 상태라는 것을 읽기에 그리 어렵지 않게 그녀의 눈은 심
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녀는 그런 여자였다. 안아주고 감싸주고 싶은 그런 여자.
"연희씨…"
그녀는 초조한 얼굴로 나를 바라다 보았다.
"연희씨… 우리 그냥 계속 사랑해야 할 것 같아요."
그녀의 입에서 작은 신음 소리가 흘러 나왔고, 몸도 바르르 떨리는 것이 보였다.
우리는 서로 한참을 그렇게 앉아서 더 이상의 말도 못하고 서로의 눈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오히려 결과야 어찌 됐던 난 내 하고 싶었던 말을 한 후이므로,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경수씨… 내가 정말 경수씨 사랑할 자격이 있는 여잔가요?"
"나 경수씨가 그렇게 떠나고 나서 많은 생각을 했어요. 내가 그런 자격이 있는 여잔가, 그리
고 내가 내 욕심만 부리는 게 아닌가, 내가 이러는 게 경수씨 앞길에 도움이 안돼는 것은
아닌가, 뭐 이런 생각들이요."
"연희씨, 난 이런 것 저런 것 따질 형편이 못돼요. 난 지금 연희씨가 너무 많이, 아니 절대
적으로 필요해요."
"경수씨…"
그녀는 울고 있었다. 자존심이 강해서 말은 안하지만 아마도 자기가 나에게 버림받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으리라…
분위기가 아주 부드럽게 바뀌었다. 그만큼 사랑의 힘은 참 위대한 것이었다. 조금 전까지도
안절부절을 못하던 사람을 그렇게 안도하게 만드는 그 힘은 대단한 것이었다.
그녀는 나를 잠시만 기다리라고 하고는 집으로 들어갔다. 다방에서 난 복잡해지는 머리 속
을 정리해 나가면서,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살아야 한다는 하나의 결론만에 집착했다.
얼마를 기다렸을까? 그녀는 예쁜 청색 가죽 반코트에 핑크 톤의 스카프를 하고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방을 들어섰다. 갑자기 주책맞게 성욕이 왕성히 일었다. 정말 그녀다운 코디였
다.
다방 밖에는 그녀의 흰색 피아트 승용차가 우리를 기다렸고, 우리는 날리는 눈발을 뚫고 청
평쪽으로 달렸다. 그녀는 기분이 많이 좋아진 것 같았다. 예전처럼 말도 많아졌고, 웃음을
짓자 차 안이 환해지는 느낌이 되살아 났다. 차창 밖의 세상이 그다지도 아름다울 수가 없
었다.
우리는 행복했다. 그저 같이 있는 것도 그랬고, 둘만의 공간에서 같이 호흡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행복했다. 내가 내쉰 공기를 그녀가 호흡하고 또 그녀가 내뱉은 그 공기를
내가 마신다는 것만으로도 우리 아니 최소한 나는 행복했다.
내가 조용히 그녀의 뒷목을 쓰다듬자 그녀는 '흐응' 하는 비음을 흘렸다.
얼마나 갈구하던 손길 이었을까….
| 이 썰의 시리즈 (총 10건) | ||
|---|---|---|
| 번호 | 날짜 | 제목 |
| 1 | 2026.06.29 | 바람속에 잠들다. 10 (1) |
| 2 | 2026.06.29 | 바람속에 잠들다. 09 |
| 3 | 2026.06.29 | 현재글 바람속에 잠들다. 08 |
| 4 | 2026.06.29 | 바람속에 잠들다. 07 |
| 5 | 2026.06.29 | 바람속에 잠들다. 06 |
블루메딕 후기작성시 10,000포인트 증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