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천년 3-1
네코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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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第1章 난륜(亂倫)의 계곡
유황(硫黃)과 용암(鎔巖)이 강처럼 흐르는 지옥같은 곳!
스으! 스으!
보통사람은 한 모금만 마셔도 폐부가 썩어 들어갈 끔찍한 독연기가
유황 연못 위로 싯누렇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도무지 인간의 발길을 허용치 않을 듯한 음산한 이 절곡이 바로 불회
마곡(不廻魔谷)이다.
헌데 수백 년 동안 인적이 닿은 적이 없었던 이 불회의 마역에 난데
없이 싸늘한 여인의 음성이 들려왔다.
"나를 원망하지 말아요, 백리언니! 이 모두가 이검한이란 그 놈 때문
에 야기된 일이니……!"
그와 함께 하나의 인영이 짙은 유황독연을 뚫고 나타났다.
코와 입을 온통 두터운 천으로 감싼 그 여인은 바로 이검한의 손에
죽은 냉혈마검작(冷血魔劍爵)의 외동딸 설옥상(雪玉霜)이었다.
그녀는 혼자가 아니었다. 그녀의 옆구리에는 한 명의 여인이 축 늘어
진 채 안겨있었다.
백리예향(百里藝香)!
바로 그녀였다. 마교(魔敎) 십대마류 중 하나인 천수마가(千手魔家)
의 천금으로서 신임 마교지존 운중악의 아내로 내정된 여인인……!
"이가놈을 죽이기만 하면 언니를 풀어 주겠어요."
설옥상은 유황독연 속을 뚫고 전진하며 싸늘하게 말했다.
백리예향은 혈도가 찍혀 무기력하게 늘어진 채 한숨 섞인 음성으로
탄식했다.
"어리석구나, 설매! 우리는 이미 십방금천대진(十方禁天大陣)을 통과
했다. 너는 물론 나 역시 다시는 이곳을 빠져나가지 못할 것이다."
그녀의 말에 설옥상은 싸늘하게 코웃음쳤다.
"흥! 꼭 그렇지만도 않아요! 이십 년 전 천패력왕(天覇力王) 운천황(
雲天荒)도 이곳으로 도망쳐 들어왔다가 무사히 빠져나갔어요. 이곳
어딘가에 외부로 빠져나갈 수 있는 통로가 있을 거예요."
헌데 그녀가 자신있는 어투로 말할 때였다.
"그 말이… 사실이냐? 운가놈이 살아 있다는 것이……?"
돌연 어디선가 창자를 긁어내는 듯 듣기 거북한 음성이 설옥상의 귓
전을 파고들었다.
'헉!'
설옥상은 기겁했다. 그녀는 전신에 오싹 소름이 끼침을 느끼며 급히
주위를 돌아보았다.
부글부글!
하지만 주위는 온통 용암과 유황의 연못만이 무섭게 들끓고 있을 뿐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
설옥상은 한차례 부르르 몸을 떨었다.
'내가 헛소리를 들었나?'
그녀는 기분이 으스스해져 절로 몸이 굳어졌다.
그 직후였다.
"크크크! 본좌는 여기 있다. 씹어먹어도 비린내 하나 안 날 것 같은
계집아!"
다시 한번 탐욕이 실린 괴성이 설옥상의 귓전을 울렸다.
"학!"
소리가 들린 곳으로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던 설옥상의 입에서 숨넘
어갈 듯한 비명이 터져나왔다.
츠츠츠!
무섭게 들끓고 있는 용암 연못에 한 명의 괴인이 들어앉아 머리통만
내놓은 채 두 여인을 바라보고 있지 않은가?
설옥상은 대경실색하며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맙소사! 인간이 어떻게 용암 속에 앉아 있단 말인가?'
그녀는 눈앞의 괴인이 인간으로 믿어지지 않았다.
용암이란 말 그대로 지열에 의해 바위가 녹은 것이다. 무쇠라도 그
안에 들어가면 얼음처럼 녹아들고 만다.
헌데 그 용암 연못 속에 태연하게 앉은 자가 있는 것이다.
설옥상은 눈을 비비고 다시 한번 그자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분명 그자는 인간의 형태를 갖추고 있었다. 비록 추괴하기 이
를 데 없는 용모였으나 인간이 분명했다.
그자의 몰골은 필설로 형용하기조차 어려울 지경으로 끔찍하고 흉했
다. 초점조차 정확하지 않은 짝짝이 눈, 검버섯이 앉은 듯 거무튀튀
한 얼굴은 온통 크고 작은 혹들이 주렁주렁 달려있었다.
제멋대로 이지러져 형태조차 불분명한 입술 사이로는 싯누런 뻐드렁
니가 튀어나와 있었다.
실로 꿈에 나타날까 두려운 끔찍한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괴인의 흉칙한 모습을 본 설옥상은 자신도 모르게 진저리를 치며 비
칠 뒤로 물러섰다.
"누, 누구세요 당신은?"
그녀는 떨리는 마음을 억지로 가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크크크! 본좌가 누구냐고?"
촤아아!
괴인은 가래 끓는 듯한 소리로 기괴하게 웃으며 천천히 용암 속에서
걸어나왔다.
부글부글 끓는 용암이 흘러내리며 그자의 알몸이 드러났다.
작달만한 체구인데 얼굴뿐 아니라 그자는 몸 전체에 주렁주렁 혹이
달린 괴상하고 흉칙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특히 흉칙한 것은 그자의 다리 사이에 붙어있는 것이었다. 용암에 들
어갔다 나왔으니 당연히 옷 같은 것은 남아있을 리 없어 벌거벗은 알
몸 상태인데 순간적으로 그자의 다리가 세 개가 아닌가 착각이 들 지
경이었다.
독하고 매몰찬 성격을 지닌 설옥상이지만 괴인의 흉칙하고 어마어마
한 일부를 보는 순간 진저리를 치지 않을 수 없었다.
용암 속에서 걸어나와 설옥상의 앞에 우뚝 선 괴인은 가래가 끓는 듯
듣기 거북한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클클클! 본좌는 복수구마(復讐九魔)의 다섯째인 열양마(熱陽魔)라는
어르신네시다!"
말과 함께 그자는 탐욕에 번들거리는 눈으로 설옥상과 그녀의 옆구리
에 끼인 백리예향의 몸을 쓸어보았다.
설옥상은 그자의 눈빛이 훑고 지나자 지렁이나 살갗에 닿는 듯한 느
낌을 받고 부르르 몸을 떨었다.
괴인은 각기 크기가 다른 두 눈에 강렬한 탐욕의 빛을 담은 채 더욱
자세히 설옥상의 몸매를 훑어내리며 물었다.
"아까 너는 운천황이란 놈이 살아 있었다고 했느냐?"
설옥상은 마른 침을 삼키며 간신히 떨리는 가슴을 억눌렀다.
"그, 그래요. 그는 분명히 이곳 불회마곡에서 살아 나왔어요!"
"그래?"
괴인은 두 눈에 야릇한 광망을 번득였다.
"흐흐흐! 역시 무저연(無底淵)이 외부로 통하는 통로였군!"
그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 말에 설옥상은 흠칫하며 두 눈을 반짝 빛냈다.
'무저연?'
괴인은 눈알을 굴리며 음침한 어조로 계속 중얼거렸다.
"그래! 틀림없다! 무저연이 외부로 통한다면 철목풍(鐵木風)이란 놈
의 실종도 아귀가 들어맞는군!"
설옥상은 다시 한번 흠칫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철목풍? 운천황 말고도 불회마곡을 탈출한 자가 또 있단 말인가?'
헌데 철목풍이라 했던가? 그 이름이 어찌 열양마라는 괴인의 입에서
거론된단 말인가?
철목풍이라면 바로 오이랍부의 효웅이 아닌가?
그자는 지금으로부터 이 년 전 신강 십왕총에서 이검한에게 패퇴한
후 어디론가 실종되었었다.
헌데 그런 그자의 이름이 천만뜻밖에도 열양마의 입에서 거론된 것이
다.
그렇다면 철목풍도 그 옛날 천패력왕 운천황처럼 이곳 불회마곡에 침
입했다가 천잔마종(天殘魔宗)의 마공을 훔쳐 달아난 것일까?
열양마는 두 눈에 강렬한 살광을 폭사하며 이를 갈았다.
"으득! 지난 이십 년 동안 우리 복수구마는 두 번이나 속았다. 이제
더 이상은 그런 실수는 할 수는 없다!"
설옥상은 금방이라도 자신을 잡아먹을 듯한 기세인 열양마의 모습에
부르르 전율했다.
"아쉽지만 너희 두 암컷은 본좌의 손에 죽어주어야만 한다!"
음흉한 폭갈과 함께 열양마는 손을 번쩍 쳐들었다.
츠츠츠!
쳐든 그자의 손바닥에서 주홍빛의 광채가 작렬했다.
순간 주위가 갑자기 용광로에 빠진 듯 화끈 달아올랐다.
뿐만 아니라 열양마가 밟고 있는 바위가 마치 얼음이 녹듯 녹아 용암
의 일부로 변해버리는 것이 아닌가?
열양마의 일신에서 실로 가공무비할 극양지기가 일어나 바위를 녹여
버린 것이었다.
푸스스!
그와 함께 설옥상과 백리예향이 입고 있던 의복도 삽시에 말라 부스
러지기 시작했다.
열양마가 자신의 영양강살을 채 다 전개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십
장 밖에 서 있던 두 여인의 의복이 한순간에 재로 변해버린 상태였
다.
가히 전율스러운 극양지기가 아닐 수 없었다.
졸지에 알몸이 된 설옥상은 사색이 되었다.
"잠, 잠깐만요!"
그녀는 다급한 비명을 내지르며 훌쩍 물러섰다. 움직일 때마다 그녀
의 소담스러운 젖무덤이 물결치듯 일렁인다.
"나는 당신들의 무공 따위를 노리고 들어온 게 아니예요!"
그녀는 열양마를 향해 황급히 외쳤다.
하지만 열양마는 그녀의 말을 믿지 않았다.
"거짓말하지 마라!"
그자가 눈을 부라리자 설옥상은 입안이 바짝 마르는 것을 느꼈다. 하
지만 그녀는 정색하며 말을 이었다.
"사실이예요. 나는 단지 이곳에 한 명의 무서운 강적이 쳐들어 올 것
을 미리 알려주려고 온 것 뿐이예요!"
그녀는 재빨리 머리를 굴리며 열양마의 눈치를 살폈다.
"강적이라고?"
열양마는 빗자루같은 눈썹을 꿈틀하며 입술을 씰룩거렸다. 설옥상의
도발이 먹혀 들어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열양마는 이내 대수롭지 않은 반응을 보였다.
"크크크! 우리 복수구마의 적수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저 빌
어먹을 십방금천대진만 없다면 세상은 이미 오래전에 우리 천잔마맥(
天殘魔脈)의 것이 되었을 것이다!"
그자는 자신에 찬 어조로 말하며 흉흉한 살기를 토해냈다. 설옥상의
도발은 더 이상 그자의 흥미를 끌 수 없을 듯이 보였다.
"글쎄, 과연 그럴까요?"
설옥상은 야릇한 눈빛으로 냉소를 터뜨렸다.
"곧 이곳에 쳐들어 올 자는 지옥인마(地獄人魔)의 직계 후손인 혈황
이란 자마저 죽인 초고수예요!"
"지옥조사님의 직계 후손이 죽었다고?"
열양마는 아연경악하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자의 반응에 설옥상은 내심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혈황 영호진이 이검한의 손에 죽은 일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그녀의 말을 듣고난 열양마는 마음의 변화를 일으킨 듯했다.
"흐흐흐! 좋다. 대단한 정보를 가져왔으니 죽이지는 않겠다!"
"고맙군요!"
설옥상은 내심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의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그녀의 표정은 이내 다시 긴장으로 굳어졌다.
"그 대신 조건이 있다!"
열양마는 히죽 웃으며 단서를 단 것이었다.
"무, 무엇이죠?"
설옥상이 긴장하며 묻자 열양마는 두 눈 가득 떠올렸던 살기 대신 음
험한 욕정의 빛을 번득이며 말했다.
"그것은 너희 두 암컷이 본좌의 마누라가 되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살려준다!"
"뭐… 뭐라고요?"
설옥상은 질겁했다.
백리예향 역시 가슴이 덜컹 내려앉은 충격을 받았다. 열양마의 눈초
리가 심상치 않다고는 생각했지만 설마 그같은 조건을 내걸지는 꿈에
도 몰랐기 때문이다.
열양마는 음험한 괴소를 흘리며 쩝쩝 입맛을 다셨다.
"흐흐흐! 사실 우리 복수구마는 아직까지 후손을 두지 못했다. 이런
상태라면 천잔마맥은 우리 대에서 끊기고 만다!"
그자는 욕정에 찬 눈을 희번덕이며 두 여인의 탐스러운 몸매를 쓸어
보았다.
"너희 두 암컷은 나의 뒤를 이을 아이들을 낳아주어야만 한다!"
'맙소사!'
두 여인은 부르르 치를 떨었다.
꿈에 볼까 두려운 추괴한 몰골을 가진 열양마의 씨앗을 받아들이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더 나을 성싶었다.
하지만 설옥상은 결코 경거망동할 수 없었다.
'참아야만 한다. 최소한 이검한이 이자들 손에 죽는 것을 확인할 때
까지는!'
그녀는 내심 염두를 굴리며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호호호! 좋아요. 기꺼이 당신의 아이를 낳아드리죠!"
그녀의 말에 열양마는 희색이 만면했다.
"크크크! 잘 생각했다. 귀여운 것!"
그자는 득의를 감추지 못하며 입이 찢어져라 웃었다.
헌데 바로 그때였다.
"흐흐흐! 설마 너 혼자 그 암컷들을 독차지할 생각은 아니겠지. 다섯
째?"
스스스!
돌연 한 옆에서 음험한 괴소가 들려오더니 짙은 유황연기 속에서 일
곱 개의 그림자가 유령같이 나타났다.
육남일녀(六男一女)인 그자들은 하나같이 기괴하기 이를 데 없는 인
상을 지니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모두가 불구자들이었다.
일행 중 유일하게 끼어있는 여자 역시 그 생김새가 기괴하기 짝이 없
었다.
그녀의 몸은 기이하게도 색이 없었다. 일신에 실오라기 한올 걸치지
않은 알몸인데 마치 분을 칠한 듯 새하얗지 않은가?
머리카락과 눈썹, 은밀한 곳의 음모까지 새하얀 빛을 띠고 있었다.
심지어 그녀의 눈동자까지 하얀색이었다.
마치 유령을 보는 듯 기이하고 섬칫한 느낌의 여인이었다.
그녀 외에도 여섯 명의 사내 역시 백색여인에 전혀 뒤지지 않을 기괴
함을 지니고 있었다.
그들 중 어떤 자는 흉칙하게도 팔이 네 개였다.
그에 비해 다리가 하나 뿐인 괴인도 있었고, 외눈박이에 코가 없는
자, 그리고 전신이 반투명하고 은은한 핏빛을 띤 괴인도 끼어 있었다
.
실로 세상의 기괴망측함을 모조리 한자리에 모아 놓은 듯한 형상이었
다.
설옥상과 백리예향은 유령같이 등장한 이 해괴한 몰골의 괴인들을 보
며 오금이 저림을 느꼈다.
설옥상은 그런 와중에서도 재빨리 염두를 굴리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이자들이 바로 천잔마종의 후손들인 복수구마!'
그녀는 눈을 빛내며 얼어붙을 것만 같은 정신을 가다듬었다.
"크크! 노부가 복수구마의 첫째인 독목마(獨目魔)다!"
설옥상과 백리예향이 긴장한 표정으로 얼어붙어 있을 때 일곱 괴인들
중 외눈박이가 커다란 외눈을 희번덕이며 말했다.
"켈켈! 복수제이마 사비신마(四臂神魔)다!"
"복수제삼마 일각마(一脚魔)다!"
"복수제사마 빙혈마(氷血魔)가 본좌다!"
"복수제육마 무지마(無指魔)!"
"복수제팔마 유령마(幽靈魔)!"
"복수제구마 백색마녀(白色魔女)가 본녀다!"
육남일녀가 마치 입을 맞추기라도 한 듯 차례로 말했다.
복수제오마 열양마를 제외하면 일곱째인 수라마녀(修羅魔女)만이 빠
졌을 뿐 복수구마가 모두 나타난 것이다.
설옥상은 절로 숨을 죽였다.
'무서운 자들이다!'
그녀는 십대천마(十大天魔)나 마교삼태상(魔敎三太上)같은 초절정 고
수들을 늘 접하고 살아왔다.
헌데 지금 그녀 앞에 나타난 여덟 명의 마인들은 십대천마와 마교삼
태상을 능가하는 초고수들이었다.
어찌 생각하면 이들 팔 인으로 이루어진 천잔마맥이야말로 우내최강
의 패세라고도 할 수 있었다. 십대천마와 마교삼태상을 능가하는 고
수가 팔 인이나 있는 문파는 하늘을 통틀어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
다.
설옥상은 경악의 와중에서도 복수팔마에게 한 가지 의혹을 느꼈다.
복수팔마는 모두 흉칙한 몰골의 불구자들이었는데 그 불구가 결코 후
천적인 것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즉, 복수팔마는 태어날 때부터 불구자의 몸을 지니고 태어난 것이었
다.
과연 그들은 어떤 이유로 불구로 태어났단 말인가?
그 이유는 이내 밝혀졌다.
장내에 나타난 복수팔마는 한결같이 형형한 시선으로 설옥상과 백리
예향의 몸매를 유심히 살피고 있었다. 탐욕과 함께 무엇인가 간절한
염원이 담긴 듯한 눈빛이었다.
그런 그들의 눈빛에 설옥상은 절로 오싹 소름이 끼쳤다.
'이자들이 왜 이러는 게지?'
그녀는 마치 발가벗겨져 신체검사라도 당하는 기분이 되어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특히 같은 여자인 백색마녀까지 관심있게 자신들의 몸매를 살피는 데
는 불안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헤헤! 어떻습니까? 큰 형님?"
문득 열양마가 첫째인 독목마를 향해 허리를 굽신거리며 묻자 독목마
는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음! 매우 좋다. 둘 다 애를 쑥쑥 뽑아낼 체형이로구나!"
그자의 말에 설옥상과 백리예향은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그제서야 그녀들은 복수팔마가 관심있게 자신들의 몸매를 살핀 이유
를 알 수 있었다.
씨받이!
그자들은 바로 설옥상과 백리예향이 씨받이로서 적합한가를 살펴본
것이었다.
설옥상은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혔다.
'설마 일곱 놈이 한꺼번에 내 몸에 씨를 뿌리겠다는 심보는 아닐까?'
그녀는 그 불길한 상상에 절로 진저리가 쳐졌다.
하지만 불길한 예감은 항상 들어맞는 법이다. 이어진 복수팔마 사이
의 대화로 설옥상은 자신의 그 불길한 예감이 적중했음을 알 수 있었
다.
"그보다 막내의 의견이 어떤지 궁금하군. 저 암컷들에게 우리 씨를
뿌리는 데는 먼저 막내의 동의가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
사비신마가 제법 의젓한 음성으로 말했다.
중인들의 시선은 일제히 막내인 백색마녀에게로 쏠렸다.
설옥상은 그들의 말에 아연하며 입을 쩍 벌리고 말았다.
'무슨 소리란 말인가? 그렇다면 지금까지 이자들은 저 여자를 공동의
마누라로 삼아왔단 말인가?'
실로 경악할 사실이 아닐 수 없었다.
막내인 백색마녀가 나직한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휴우! 도리없는 일 아닌가요? 소매가 여자 구실을 제대로 못해 천잔
마맥이 단절될 위기에 이르렀으니……!"
그녀는 음울한 음성으로 말하며 탄식했다.
"이십 년이 넘도록 아이를 못 낳았으니 소매의 몸에 이상이 있다고밖
에는 생각할 수 없는 일이지요. 그러니 오라버니들이 원하시는 대로
하세요!"
그녀는 자조의 표정으로 입술을 깨물었다.
복수팔마의 관계는 정상적인 인간들이 보기에 지극히 비윤리적인 것
이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지금까지 살을 부비며 살아온 사내들을 다른 여자에
게 빼앗기는 데는 여인 특유의 질투심이 일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자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설옥상과 백리예향은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들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이 엄청난 사실 앞에 그만
정신이 혼란스러워질 뿐이었다.
과연 그녀들의 추측대로 복수구마는 피붙이 사이였다.
그런 그들이 세상사람들이 알면 오만상을 찌푸릴 집단혼(集團婚)의
관계를 맺으며 살게 된 데에는 나름대로 피치못할 사연이 있었다.
그 옛날 천잔마종은 마교삼가신과 십절마종에 패해 이곳 불회마곡으
로 쫓겨 들어왔다.
당시 천잔마종을 수행하여 함께 불회마곡으로 들어온 것은 그의 젊은
애첩 한 명뿐이었다.
복수심에 불탄 천잔마종은 불회마곡에서 혹독한 고련의 여생을 보내
며 자신의 마공을 한층 독랄하게 발전시켜 갔다.
이렇게 이루어진 마공이 바로 복수구마결(復讐九魔訣)이었다.
피나는 고련 끝에 마공을 이루었으나 막상 천잔마종은 불회마곡을 빠
져 나갈 수가 없었다. 불회마곡 주위에는 저 강대무비한 십방금천대
진이 쳐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절망에 빠진 천잔마종에게 위안이 되어 준 것은 젊은 애첩의 격려뿐
이었다.
비록 지옥같은 불회마곡이었으나 천잔마종과 그의 애첩은 자연의 섭
리대로 서로를 사랑했다.
그리하여 오래지 않아 두 부부 사이에 자식들이 태어나기 시작했다.
모두 아홉 명이 태어났을 때 두 부부는 더 이상 관계를 갖지 않았다.
더 이상 아이들을 낳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유는 식량에 있었다.
불회마곡에는 겨우 십여 명만이 먹고 살 수 있는 식용풀들이 자라고
있었다. 입이 너무 늘어나면 모두가 굶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애첩의 몸에서 얻은 아홉 남매들에게 천잔마종은 자신이 창안한 복수
구마결을 전수한 후 한 많은 생을 마감했다.
그 직후 천잔마종의 애첩도 스스로 목숨을 끓어 남편인 천잔마종의
뒤를 따랐다고 한다.
남겨진 아홉 남매에게는 이미 인간 세상의 인륜도덕같은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들에게는 오로지 생존본능과 종족 유지본능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결국 아홉 남매들은 집단 동거하며 천잔마종의 후사를 이어갔다.
그들 사이에는 단 한 가지 불문율이 있었다. 그것은 아이를 절대 아
홉 명 이상 낳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 이상 아이가 태어나면 어쩔 수 없이 그들은 자신들의 손으로 생명
을 죽여 없애야만 했다. 인구가 늘면 공멸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
었기 때문이다.
결국 누군가 한 명이 죽어야 새로이 한 명을 낳을 수가 있었고 새로
태어난 아이는 죽은 인물의 무공을 이어받는다.
그렇게 오백 년의 세월이 흘렀다.
겹치고 겹친 근친혼으로 천잔마맥은 근근이 이어져 갔다.
당연히 그에 따른 부작용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었다. 복수구마 그들
이 모두 불구가 된 것은 그같은 근친혼의 결과였다.
그나마 최근 천잔마맥은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었다.
본래 복수구마 중에 여자는 두 명이었다.
일곱째인 수라마녀와 아홉째인 백색마녀가 그녀들이었다.
하지만 수라마녀는 이십 년 전 불회마곡으로 도망쳐 들어온 천패력왕
운천황의 손에 죽고 말았다.
천패력왕 운천황은 결코 잘 생긴 편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하나같이 불구인 사내들만 보고 자라온 수라마녀에게 그런 천력패왕
조차도 절세미남으로 보인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그녀는 진심으로 천패력왕 운천황을 사랑했고 사랑했기에 자신의 모
든 것을 아낌없이 바쳤다.
하지만 운천황은 수라마녀에게서 원하던 수라칠식(修羅七式)의 비급
을 얻자마자 무자비하게 그녀를 살해한 후 외부로 도망치고 말았다.
그런 이유로 백색마녀만이 복수구마 중 유일한 여자로 남게 되었다.
수라마녀가 비명에 죽자 마음이 조급해진 복수구마들은 하루라도 빨
리 후손을 보고 싶은 욕심으로 아직 어린 백색마녀를 자신들의 여자
로 만들었다.
그런 이유 때문에 백색마녀는 이십 년 넘게 남자를 알아왔지만 나이
는 이제 겨우 삼십대 중반에 불과했다.
헌데 어찌된 일인지 백색마녀는 아이를 낳지 못했다. 그녀의 몸에 문
제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너무 어린 나이에 남자를 알게 된 후유증
때문인지는 모를 일이다.
이대로 가면 천잔마맥은 그들 대에서 단절되고 말 것이다.
그런 심각한 위기에 고심하고 있던 중 설옥상과 백리예향이 제발로
걸어 들어왔다.
복수구마가 뛸 듯이 기뻐한 것은 당연지사였다.
그러나 과연 복수구마가 자신들의 염원을 이룰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
다.
* * *
스으으!
새벽 무렵 짙은 안개가 자욱하게 깔린 절곡.
마치 지옥의 입구처럼 으스스한 귀기마저 감도는 황량한 절곡이 운무
속에 음산하게 입을 벌리고 있었다.
불회마곡!
한번 들어가면 영원히 다시 나오지 못한다는 죽음과 공포의 귀역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 위 여러 멍의 범상치 않은 기도의 인물들이 새벽
안개 속에 서 있었다.
"저것은 확실히 십방철혈대진(十方鐵血大陣)이오!"
중인들 중 가장 선두에 서 있던 한 명의 청년이 심각한 안색으로 입
을 열었다.
이검한이었다.
그의 뒤로 운중악을 비롯하여 사망검희 설하연을 제외한 십대천마의
구 인과 마교삼태상과 호법사신장 등이 진중한 안색으로 서 있었다.
그들 개개인은 이미 최강의 경지에 이른 고수들이었다.
그런 희대의 고수들이 십팔 명이나 한 자리에 모여 있는 것이었다.
비록 십팔 명에 불과하나 그들이 움직이면 전무림이 뒤흔들릴 것이다
.
그 십팔인 중 말을 하고 있는 사람은 이검한뿐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그저 이검한의 말을 듣고만 있었다.
"십방철혈대진? 십방금천대진이 아니고 십방철혈대진이란 말인가요?"
이검한의 말에 한 명의 기품있게 나이가 든 노부인(老婦人)이 불신과
회의의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번뇌마(煩惱魔)!
바로 마교삼태상의 일 인으로 달리 기마(機魔)라고 불리는 여인이다.
그녀의 기문둔갑의 조예는 하늘 아래 적이 없다고 알려졌을 정도였
다.
하지만 지금 그녀는 이검한이라는 막강무비한 강적과 조우한 것이다.
이검한은 저 고금오대고수 중 한 명인 삼절진인(三絶眞人)이 남긴 귀
곡천서(鬼谷天書)의 소유자였다. 그런 그를 기문진학 방면에서 능가
하는 자는 존재치 않았다.
이검한은 불회마곡을 감싼 십방금천대진을 보는 순간 두 눈에 형형한
신광을 발산했다. 십방금천대진이라 불리는 난공불락의 절진이 바로
귀곡천서 상에 수록된 한 가지 진법의 변형임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십방철혈대진(十方鐵血大陣)!
삼절진인의 필생 역작인 절진 중 하나로서 일단 이 진법이 설치되면
나는 새도 빠져 나가지 못한다.
마교삼태상, 아니 지옥마교 내의 제일원로인 심마(心魔)가 심각한 표
정으로 입을 열었다.
"저 진세의 정체를 안다면 파해법도 알고 있겠군!"
심마는 일견하기에 인자하고 마음씨 좋은 할아버지의 인상을 지니고
있었다.
심마가 지옥마교 내의 사실상 제일인자임은 모든 사람들이 다 알고
있었다.
굳이 그의 실력을 논하자면 그는 십대천마의 일 인보다도 압도적으로
강하고 두 사람을 합친 것보다는 다소 약한 수준이라 할 수 있었다.
사실상 마교제일인인 심마의 말에 나머지 절정고수들 사이에 흥분과
기대의 술렁임이 스쳐갔다. 그들은 하나같이 긴장과 기대의 눈빛으로
이검한을 주시했다.
이검한은 그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으며 심각한 안색으로 입을 열었다
.
"방법이야 알고 있지만 섣불리 진세를 깼다가는 돌이킬 수 없는 겁난
을 초래할 수도 있을 텐데요!"
"각오하고 있는 바이네!"
그의 말에 심마는 침중한 안색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노부 등은 오늘 이곳에서 뼈를 묻더라도 본교의 육백 년 화근을 뿌
리째 뽑아버릴 작정이네!"
그는 결연함이 깃든 어조로 말했다.
그 말에 이검한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복수구마를 몰살시킬 작정이군!'
그는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다.
잠시 신중한 눈빛으로 생각에 잠겨있던 이검한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
했다.
"좋습니다. 여러분들의 뜻이 그러하다면 도리가 없겠지요!"
이어 그는 지면에 빠르게 파진도(破陣圖)를 그린 뒤 그 중 몇 곳을
가리켜 보였다.
"이곳에 다량의 화약을 매설했다가 일제히 터뜨리십시요! 그럼 십방
철혈대진의 위력이 상실될 것입니다!"
"알겠네!"
마교삼태상 중 번뇌마가 눈을 번득이며 대답했다.
이검한은 중인들을 돌아보며 침중한 안색으로 말했다.
"대신 조건이 한 가지 있습니다."
"말해보게!"
심마가 고개를 끄덕여 보이자 이검한은 운중악과 천수마야에게 눈길
을 주며 말했다.
"일제히 난입하다가는 자칫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이 일어날 수도 있습
니다!"
그 말에 운중악과 천수마야는 감격의 표정을 지었다. 지옥마교의 정
영들이 총공격하면 복수구마나 설옥상이 백리예향을 해칠 수도 있지
않은가?
이검한은 그런 그들의 심중을 익히 헤아리고 있었다.
"소생이 먼저 불회마곡에 잠입하여 형수님을 구할 기회를 주십시요!"
그의 말에 심마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좋네. 자네의 뜻은 잘 알겠네!"
이어 그는 침중한 안색으로 덧붙여 말했다.
"하지만 시간은 일각뿐일세. 만일 일각 내에 자네가 돌아나오지 않는
다면 예향을 구하는 데 실패한 것으로 알고 총공격을 단행하겠네."
"알겠습니다!"
이검한은 대답과 함께 중인들을 향해 포권했다.
"그럼 소생이 한 걸음 먼저 가겠습니다!"
스읏!
말을 마침과 함께 즉시 운무 자욱한 음산한 불회마곡의 입구를 향해
날아갔다.
"허허! 가히 인중룡인지고!"
불회마곡을 향해 멀어지는 이검한의 뒷모습을 보며 심마 등은 감탄의
표정을 아끼지 않았다.
이로써 지옥마교는 또 한번 이검한에게 결코 다 갚지 못할 크나큰 은
혜를 입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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