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그리고 나와 그들 10
네코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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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시간전
아내 그리고 나와 그들 010
남사장이 자신의 처지를 모면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남사장의 얼굴을 주먹으로
수차례 가격했다.
“이 새끼야! 여기서 벗어나려고 니 마누라를 팔아?....퍽퍽!.... 니가.... 퍽!....그러고도 남자새끼야?
퍽퍽퍽!....비겁한 자식!”
“사, 사실이에요! 사실이라고요!”
“이 새끼가 그래도? 세영이 어딨어? 말해! 세영이 데려와서 니 거짓말 들통나면 넌 그땐 진짜 죽어!
세영이 어딨냐구?...퍼억!....새꺄!”
정신없이 휘둘렀던 주먹 가운데 하나가 남사장의 목을 때렸는지 연신 쿨럭거리며 겨우 대답을 해오고 있었다.
“쿨럭! 쿨럭!.... 저도 모릅니다. 김은정씨 죽고 나서 다음날 집에서 나갔는데.... 어디 갔는지 진짜 모릅니다.”
세영이의 특이한 성적 취향이 과하게 발동되어서 나하고는 주차장에서 카섹스를 즐기고, 자기 남편한테는
내 아내와 즐기게끔 유도한 게 아니었을까 생각을 해보았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은 남사장이 둘러대고 있는 것을 인정하기 직전, 급격하게 분해되어버린 내 의식체계를
방어하려는 본능에 지나지 않았다.
본능보다 더 선명하게 무언가 뒤틀려있다는 직감이 먼저 작동하고 있었다.
무엇을 물어봐야 하는지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뒷걸음질 쳐 벽에 기대어 남사장을 바라보았다.
내가 워낙 겁을 준 상태라 쉽게 말문을 열지 못하고 있던 남사장이 내 눈치를 살피며 입을 열었다.
“제 얘기를 좀 들어주시겠습니까?”
세상 참 좆같아졌다. 아니 인생 참 개같이 느껴졌다. 스튜디오를 나왔다. 오후 6시가 넘어서고 있었다.
차를 몰아 상도동 집으로 출발했지만, 1,2키로미터도 못가고 뚝섬 삼거리에 차를 세운 채 대리기사를 호출했다.
뒷좌석에 몸을 싣고는 남사장의 얘기를 끄집어내기 시작했다.
[먼저 저와 세영이의 관계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래야 김은정씨의 죽음까지 모두 설명할 수 있거든요.]
나중에 세영이와 대질하면서 거짓말이 하나라도 발견되면, 죽일 때 죽이더라도 먼저 자지부터 잘라버린 후,
죽일지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단단히 엄포를 놓은 다음, 남사장의 얘기를 듣기 시작했다.
[지인의 소개로 세영이를 만났었습니다. 저는 당시 홍콩에서 외국계 IB(투자은행)에 근무하고 있었고,
세영이는 대단한 부자집 외동딸이라고 소개받았습니다. 세영이의 마음에 들려고 무척 애를 썼고,
프로포즈를 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세영이가 말도 안 되는 조건을 하나 제시했습니다.
결혼하더라도 자신의 사생활에 대해서는 간섭하지 않는 대신, 내게는 회사 하나를 차려주겠다고 그러더군요.
자신의 사생활을 간섭받지 않는 것이 모든 남자들에 대한 자신의 공통된 결혼조건이라고는 했지만,
농담인줄 알고 나도 농담처럼 대답했습니다.
국내에서 자산운용사를 하나 경영하고 싶은데 꽤 많은 돈이 들어야 한다고 했거든요.
당연히 농담으로 끝날 줄 알았는데, 세영이가 “그럼 됐네”라며 프로포즈를 승낙했습니다.]
세영이의 집안이 그렇게까지 부자인줄은 몰랐지만, 프로포즈를 승낙하는 방식은 충분히 세영이다운 것이라고
생각했다.
[결혼 직후 회사를 새로 설립하지 않고, 기존의 자산운용사 하나를 M&A하기로 했고, 그게 바로 김은정씨가
다니던 그 회사였습니다. 결혼 생활은 처음부터 악몽 그 자체였습니다. 툭하면 외박하기 일쑤였고,
저를 남편이 아닌 자기 아래에 있는 사람으로 대했거든요.
그래도 내게 주어진 사회적 커리어에 만족하며 살기로 했습니다. 그러다 김은정씨와 관계를 갖게 되었습니다]
“퍼억!”
“쿠광~ 쿵”
남사장이 아내와 관계를 갖게 되었다고 말하던 순간, 몸을 날려 남사장의 얼굴을 힘껏 내리쳤다.
“씹새끼! 말 똑바로 안 해? 뭐 관계를 가져?”
남사장을 일으켜 앉힌 뒤 사정없이 주먹을 휘두른 뒤 한 손으로 그의 목을 꽉 움켜쥐고는
어금니를 갈아가며 소리쳤다.
“개새끼! 그래, 어떻게 관계를 가졌는지 말해. 말 잘해야 될 거다. 네놈의 마지막 말이 될지도 모르니까!”
“커억~커억!,,,, 제가,,,,강제로,,,,김은정씨 과거 약점을 잡고,,,협박해서....그렇게 강제로 범했습니다!”
남사장은 아내를 얼마나 집요하게 협박했고, 언제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아내를 처음으로 겁탈했는지를 말했다.
아내의 편지 내용과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한 4,5개월 뒤에 세영이가 나와 김은정씨의 관계를 알게 됐습니다. 자기는 이 남자 저 남자 만나고
다니면서, 내가 김은정씨와 만나는 것을 알고는 벌레 보듯 하기 시작했습니다.
거기다 김은정씨가 과거 문제로 꼬투리가 잡혀 나하고 그런 관계에 있다는 것까지 알게 된 후로는,
정말 저를 사람 취급도 안하더라구요.
그때부터 제 미래가 불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홍콩이나 싱가폴 쪽으로 자금을 조금씩 빼돌려 놓았는데,
그것까지 얼마 안가서 세영이에게 들키고 말았습니다. 돈은 장인이 줬지만,
실제로는 세영이가 최대주주였고, 세영이의 심복 하나가 일렀던 겁니다.
그 다음부터는 매일이 악몽이었습니다. 당장 투자금을 회수하겠다느니, 횡령으로 고소하겠다느니 하며
제 몸뚱이의 진을 다 짜내더군요. 저는 이 일이 세상에 알려지면 교도소 가는 것을 둘째 치고,
금융계통에서 완전히 매장당할 처지였기 때문에 매일매일 세영이에게 무릎 꿇고 눈물까지 흘려가며 빌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세영이는 그런 상황을 즐기기까지 하더군요. 그렇게 반년을 또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 시기 남사장은 세영이로부터 집에서 키우는 식용 개 취급을 받았다고 했다. 남사장은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세영에게 보고해야 했으며, 집 안에서는 거실로 나다닌 것도 눈치를 봐야 했을 정도였다고 했다.
게다가 밖에서 사생활을 즐기던 세영이 집 안으로 외부인들을 끌어들이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부터였는데,
자신이 안방에 뻔히 있는 것을 알면서도, 세영은 밖에서 데려 온 남자와 거실에서 섹스를 하기도 했으며,
심지어는 이태원의 클럽에서 만났다는 깜둥이 하나와 흰둥이 하나에게 자신의 허즈번드라고 소개시키고서도,
안방과 거실을 오가며 떼씹을 하기도 했으며, 그 와중에 남사장은 그들의 섹스를 위해 편의점에 나가
콘돔을 사다주기까지 했다고 말했다.
[서초동 빌라에서 상도동 아파트로 이사 오기 한 달 쯤 전부터, 세영이의 행동이 눈에 띄게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딘지 모르게 들떠 있었고, 외박이나 외간 남자를 집에 데려오는 것도 거의 없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급기야는 결혼 당시의 조건처럼 이해가 안 되는 조건을 하나 더 내밀었습니다.
그것은 김은정씨와 그녀의 남편이 헤어지게 만들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왜 그런 제안을 하는지 몰랐습니다.
김은정씨에 대한 앙갚음이라고 하기에는 많은 시간이 흐른 뒤였기 때문에 이유조차 짐작할 수 없었습니다.
만약 김은정씨가 그의 남편과 이혼만 하게 해준다면, 저의 횡령 문제는 없던 것으로 해줄 것이며, 제 명의로
신고되어 있는 회사지분을 위자료 명목으로 넘겨주겠다고 했습니다.
아마도 김은정씨의 남편이 정지석씨라는 것을 알고 나서 그랬던 거 같았습니다.]
김은정의 남편이 ‘나’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세영이가 남사장에게 나와 아내의 이혼을 사주했다는 말에
충격을 받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말이 9년 전의 첫 만남에 대한 기억에서부터 순식간에 이어지며,
전혀 얼토당토않은 말로는 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김은정씨에게 남편과의 이혼을 강요했고 말을 안 들으면, 남편에게 우리들 관계와 과거의 일을
폭로하겠다고 했습니다. 금방 이혼시킬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김은정씨가 차라리 죽으면 죽었지 그럴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시간만 흐르고 있었는데, 세영이가 느닷없이 상도동으로 이사 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 집이 김은정씨가 사는 건물인지는 이사 후에 알게 됐습니다. 그리고 세영이가 집 앞에 얻어 놓은 오피스텔로
저를 데려갔는데, 무조건 그 오피스텔에서만 김 은정씨를 만나라고 하더군요.]
모든 일의 배후를 세영이에게 돌려대는 것 같아 또 다시 고무파이프를 들고 남사장을 후려쳤다. 남사장이 눈물과 콧물이 입 속에서 거품을 만들며 겨우 입을 열어 오피스텔 임대 계약자 세영이며, 심지어 모텔에서 마주쳤던 것도 세영이가 짜놓은 시나리오에 의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자신의 핸드폰에 그날 모텔방에서 나올 때 보낸 메시지가 남아있을 거라고 말을 듣고서야, 고무 파이프를
내던지고 남사장의 핸드폰 기록을 검색해 보았다.
남사장의 말대로 모텔을 들렀던 2주 전의 일요일 오후 4시 03분에 세영이에게서 들어온 문자가 남아 있었다.
“1분 후에 나갈거야. 기다리고 있어!”라는 내용이었다.
[제 행동을 정당화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그냥 일이 이렇게 된 것에 대해 사실관계만 말씀드리는 겁니다.
믿어주세요.]
보통의 경우 사람은 누구나 폭력 앞에 비굴해진다.
눈앞의 폭력은 자신의 비겁함을 스스로에게 가장 잘 각인시켜주는 거울이 되기도 한다. 녹음실 안에서 남사장은
자신의 비굴함을 극도의 공포심에 실어 믿어달라고 애원하고 있었다.
[오피스텔은 701호와 702호 두 개였는데, 701호에서는 김은정씨를 만났고 702호에서는 그때마다 세영이가
CCTV를 통해 나와 김은정씨가 만나던 장면을 녹화했습니다. 믿어 주실지는 모르겠지만, 그 오피스텔에서 만나기 전에는 그래도 김 은정씨를 많이 괴롭히지는 않았습니다. 평범하게 만났습니다. 믿어주십시오.
그런데 김은정씨가 이혼을 절대 못하겠다고 워낙 완강하게 거부하자, 세영이가 김은정씨에게 극도의
수치스러움을 주도록 시켰습니다. 그래야 김은정씨가 정지석씨에게서 떨어져 나갈 거라고 하면서,,,,]
더는 때릴 힘도 남아있지 않았지만, 남사장의 말을 믿지 않을 수 없는 말들이 계속 이어지면서 어느새 바닥에
주저앉아 남사장의 말을 듣고 있었다. 게다가 “그래도 오피스텔을 드나들기 전에는 몸도 마음도
조금은 버틸만 했었다”는 아내의 편지 내용도 기억이 났다.
[처음 오피스텔에서 김은정씨한테 끔직한 일을 저지르고 나자, 저 역시 김 은정씨한테 너무 미안했습니다.
그래서 두 번 다시 할 수 없다고.... 차라리 당신이 김은정씨 남편을 찾아가 우리 관계를 폭로하면 자연히
이혼시킬 수 있을 텐데, 왜 이렇게 힘들게 하냐고 했습니다.
세영이는 김은정씨가 자연스럽게 떨어져나가지 않으면 아무 의미 없다고 하더군요. 저한테는 싫으면 관두라고
했지만 도저히 세영이 말을 안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6개월의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김은정씨가 포기하지 않자, 세영이가 굉장히 조급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결국에는 아까 말씀드린 대로 모텔에서 계획된 만남을 실행하기 까지 한거구요.]
출근하는 아내를 오피스텔로 데려갔던 첫날, 남사장은 세영이 건네준 ‘물뽕’이라고 알려진 최음제를 아내에게
먹인 후 온갖 변태짓을 했고, 그 역시 세영이가 강요한 방식으로 저지르게 됐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때 처음으로
정신이 반쯤 나가있는 아내의 항문을 유린했으며, 오후에는 세영이의 섹스 파트너 중의 한 명을 불러 자신과 함께 동시에 아내를 범하기도 했다고 고백했다.
그날 이후, 집에까지 불러들였던 깜둥이와 흰둥이를 통해 아내를 범하게 한 것도, 자신의 회사와 관련된
클라이언트들의 성접대까지도 모두 세영이의 강요에 의한 것이었지만, 그런 일이 반복되는 동안 아내 역시
자포자기 상태로 그런 일을 치르게 됐다고도 말했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세영이는 정지석씨를 병적으로 사랑했습니다. 그게 사랑인지는 모르겠지만, 섬뜩할 정도로 집착한 것은 분명합니다. 저희 집 안방은 세영이만이 사용하는 공간입니다. 이사한 후에는 아예 안방에
저를 들어오지도 못하게 했으니까요.
거기 어딘가에는 지금껏 제가 말씀드린 얘기를 뒷받침해주는 것들이 있을겁니다.]
“네 놈 말이 100% 다 사실이라고는 믿지 않아. 하지만 설령 다 사실이라고 해도 내 아내를 협박해서 강간하고,
그 모든 몹쓸 짓을 저지르고, 결국에는 아내가 자살하게끔 만든 네 놈을 용서할 수 없어!”
남사장의 얘기를 다 들은 후, 판단력이 마비 되어버린 내 머리 속에서 분노에 어린 말들이 쏟아지고 있었지만,
어딘지 그 말들은 맥이 빠진 느낌의 것이었다.
“네 놈이 회사를 오래 비우면 실종 신고라도 들어갈지 모를거야. 지금 회사로 전화해서 납치당했다고 하든지,
별일 아니라고 하든지 무슨 말이라도 해. 세영이를 찾아 네 놈이 한 말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여기서 한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할테니까 네 놈이 알아서 판단하라고!”
남사장이 회사의 어떤 이사 한 명에게 전화해서 개인적인 일로 당분간 회사 출근 못하니, 직원들 동요 안하게
잘 다독이고, 걱정말고 회사일 보라고 했다. 남사장 자신도 이 일이 알려져서 경찰이라도 개입하게 되면 문제가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그 후에 나는 스튜디오를 나섰었다.
사실 마음 속에서는 남사장 말의 진위 여부를 확인할 것도 없이 세영이가 개입되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내 몸은 어느새 세영이의 집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토요일 밤과 마찬가지로 사람의 흔적이라고는
전혀 느낄 수 없는 냉기는 여전했다.
몇 번이고 세영이와 광란의 섹스를 즐겼던 침대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아내를 잃은 피해자인지,
아내를 죽음으로 내 몰았던 가해자의 내연남인지, 스튜디오를 나서면서 생긴 내 정체성에 대한 의문의 무게추가
후자 쪽으로 기울어져 갔다.
침대 양쪽의 협탁 서랍을 하나씩 하나씩 열어보았다. 가지런히 정돈된 상태는 아내가 정리한 협탁 서랍과
다를 것이 없었으나, 명품 브랜드의 여성용 시계 하나가 눈에 띄었다.
아내의 시계와 비교하여 값의 차이가 많음을 인식하면서, 불행의 시작이었던 아내의 가난했던 과거에 울컥해졌다. 돈 8만원에 남사장의 몸을 받아들여야 했던 그 시절의 값싼 아내가 생각났다. 세영이가 스페어로 차고 다녔던
시계 하나 의미는, 나에게는 아내의 죽음을 더욱 비참하게 느껴지게 만들고 있었다.
침대 맞은편의 장식대의 서랍을 열어 보았다. 아내의 물건들과 비교되는 값비싼 물건들이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었다. 그리고 맨 밑의 서랍을 당기는 순간, 세 개의 앨범 헤드가 눈에 들어왔다.
앨범들을 모두 꺼내 침대 위에 올려 놓고는 하나씩 하나씩 넘기기 시작했다.
세영이의 어릴 적 시절부터 찍은 가족 사진들 속에 몇 살 위로 보이는, 아마도 세영이의 오빠로 추정되는 남자아이와의 사진이 유독 많은 첫 번째 앨범을 덮은 뒤, 두 번째 앨범을 열어보았다.
첫 번째 앨범의 남자 아이가 성년이 되어 세영이와 찍은 사진들로만 빼곳히 채워져 있었는데, 그 사진들은 두 사람의 관계가 남매가 맞는가 싶을 정도로 낯 뜨거운 스킨쉽 장면들로 채워진 게 많았다. 그리고 두 장의 빈 페이지가 넘겨진 뒤로는 나와 세영이가 학교 다닐 때 찍었던 사진들이 눈에 들어왔다. 얼핏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었지만
그런 것을 신경 쓸 여력이 내겐 없었다.
그리고 남사장과의 결혼 앨범으로 보이는 하드 케이스를 여는 순간, 내 머리는 내 과거의 한 순간을 광속의 속도로 스캔해 나가기 시작했다. 한 순간 거대한 쇠망치가 뒷머리를 강타한 듯한 충격을 뒤로하고 다음 장, 또 다음 장을 넘겨보았지만,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사진들이 연속되고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턱시도를 입은 나와 웨딩드레스를 입은 세영이의 야외촬영 사진을 담은 결혼 앨범이었다.
11층 집으로 올라갔다. 처제가 걱정이 가득한 표정으로 나를 맞이했다. 처제의 눈을 바로 볼 수 없었다.
품에 안겨 온 처제를 아주 오랫동안 안아준 채 말없이 서있었다. 언니의 잘못을 빌겠다며
자신의 몸을 열어주었던 처제에게 아니 아내에게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으랴!
“무슨 일 있으신거죠?”
“아니....무슨 일은 뭐....”
“남사장 만나신거 맞죠?”
“...................”
“형부한테 아무 일 안생기는거죠?....그렇죠?”
처제의 울먹거리는 소리를 뒤로 하며 안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화장대 서랍에 있는 나와 아내의
야외촬영 앨범을 꺼냈다.
그대로 들고나가면 처제가 이상하게 생각할 것 같아 겨울양복이 들어있는 슈트 케이스를 꺼내
그 안에 앨범을 넣고 안방을 나왔다.
“오래 안 걸릴거야. 그런데 처제 저녁식사는 했니? 안했으면 오늘은 먼저 먹어! 응?”
“얼마나 걸리시는데요?”
“한 두시간 정도....”
“그럼 기다릴께요. 같이 식사해요. 우리!”
다시 세영의 집 안방으로 돌아온 나는 세영이의 앨범과 나와 아내의 앨범을 펼쳤다.
너무나 낯익은 배경과 나의 표정이 ‘혹시’라는 생각을 떠올리게 해서 11층에 올라가 앨범을 가져왔던 것인데
세영이의 앨범은 나와 아내가 찍은 사진에 정교하게 아내의 얼굴을 세영이의 얼굴로 바꿔치기 해놓은 앨범이었다.
섬뜩할 정도로 내게 집착했었다는 남사장의 말이 떠올랐다.
나 역시 세영이의 광적인 집착에 겁이 나기 시작했다. 언젠가 세영이와 섹스를 마친 일요일 오후,
잠시 내가 사는 집을 구경하고 싶다는 세영을 데리고 11층에 올라갔던 적이 있었다.
아마도 그때 내가 눌러대던 비밀번호를 기억해 두고는 나와 아내가 출근하고 비어있는 집을
수시로 드나들었던 것이 틀림없었다.
당연히 남사장 말대로 아내가 죽기 전 날 세영이가 비밀번호를 알려줬다는 말도 사실일 것이었다.
처제에게 한 두 시간 후에 돌아오겠다고 말을 했었지만, 어느덧 서너 시간이 지나 자정이 가까워오고 있었다.
11층으로 올라가 처제와 같은 침대를 사용할 엄두가 안났다.
그렇다고 처제에게 각방을 쓰자고 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머리 속이 명쾌해졌을 만큼 사실관계가 파악되었지만,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는 깊은 어둠 속에 갇혀버리고 말았다.
아내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묻자면 세영이와 광란의 섹스를 하는 동안에도 아내의 파멸을 사주하고 있었던
세영이와 내게 가장 큰 책임이 돌려져야할 것이었다.
그런 내가 아내의 마음을 갖고 몸을 열어준 처제와 한 이불 속에서 사랑을 나눌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결국 그날 밤 처제에게 오늘은 못 들어가게 생겼다는 문자를 보내고는 세영의 집에서 절망에 빠진 눈을 감았다.
| 이 썰의 시리즈 (총 11건) | ||
|---|---|---|
| 번호 | 날짜 | 제목 |
| 1 | 2026.06.15 | 아내.. 그리고 나와 그들 11 (완 + 에필로그) (1) |
| 2 | 2026.06.15 | 현재글 아내.. 그리고 나와 그들 10 |
| 3 | 2026.06.15 | 아내.. 그리고 나와 그들 09 |
| 4 | 2026.06.15 | 아내.. 그리고 나와 그들 08 |
| 5 | 2026.06.14 | 아내.. 그리고 나와 그들 07 (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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