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어머님 전상서 1

따르르릉, 따르르릉"
고요한 적막을 가로지르며 그렇게 요란하게 전화벨을 울려댔다.
얼마 잔것 같지 않은데 벌써 아침인가?
난 졸린 눈을 어렵게 뜨며 책상위에 있는 자명종을 쳐다본다.
시침은 정확히 3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이런 시펄 누구야? 한밤중에…"
"who are you?"
난 너무나 못마땅한듯 대뜸 성질을 낸다.
"아 죄송합니다. 여긴 한국인데요, "
한국이란 말에 정신이 번뜩 든다.
"주무시는데 죄송합니다. 여기 **병원 흉부외관데요."
병원?
병원에서 나한테 전화할 일이 없는데…
"어머님이 장효심씨 되시죠?"
"네 그런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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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방은 잠시 말을 잃은듯 하다.
"어머님이 간암 3기를 넘어 말기로 접어드셨읍니다."
"이런 비보 전해드려 정말로 죄송합니다."
"저희로썬 최선을 다했는데 너무 늦게 병원을 찾으셨어요 어머님이…"
해머로 후두부를 한대 얻어 맞은거 마냥 정신이 몽롱하다.
"진작 연락을 드렸어야 되는데 어머님께서 계속 말리시는 바람에…"
"우선 호스피트 병동으로 모셨구요 어머님의 시댁엔 연락해 놨읍니다."
어머님의 죽음 앞에 그네들은 너무나도 사무적인 대화를 늘어놓고 있었다.
"네 감사합니다."
난 뭐가 감사한지도 모른체 전화기를 내려놓는다.
정신나간 사람 마냥…
"따르르릉"
연이어 걸려온 전화
"여보세요"
난 무의식적으로 hello라는 단어를 잊어버리고 있었다.
"병진아 나야 고모야"
"연락 받았니?"
"응"
"고모 나 빨랑 나갈테니깐 고모가 병원비좀 내줘"
난 뭐에라도 홀린 사람마냥 음의 고저를 생략한체 두서없이 말하고 있었다.
"병진아 그건 우리가 알아서 할테니깐 넌 나오지마, 이번 학기가 너한테 얼마나 중요한지 몰라서 그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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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모의 그말을 듣는 순간 지금까지 참아왔던 울분이 한꺼번에 표출된다.
"고모 우리 엄마가 죽어가.."
나의 눈엔 이슬이 맺히기 시작했고, 감정은 주체치 못할 정도로 폭발하고 있었다.
"자식 새끼 공부시키느라고--- 흑흑"
"자기몸 썪는줄 모르고 일하던 내엄마가 죽어간다고…"
"고모야-------엄마가 죽는데---- 고모야…"
난 수화길 내려놓는 것도 잊은체 그자리에 주저 앉고 말았다.
"병진아 병진아"
수화기로 들려오는 고모의 음성을 뒤로한체 난 오열한다.
입고 있던 잠옷을 왈칵 열어 젖힌곤 속옷이 찢어지도록 가슴을 휘벼 파내고 있었다.
엉엉 목놓아 울어보고 싶었지만 격한 슬픔은 울음소리마저 잠재우며 표출되고 있었다.
가슴속에 응어리진 울화통이 터져 버렷으면 좋으련만 격분하면 할수록 응어린 더 깊이 가슴속으로 가슴속으로 스며든다.
난 마루바닥에 누워 이리저리 뒹굴어 가며 욱한 감정을 표출해 내고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눈물마저도 말라 버려 더 이상 흘러 내리지 않는다.
그리곤 또 정신나간 사람마냥 그렇게 그자리에 멍하게 앉아 있었다.
한참후에야 서랍위에 올려진 조그만 박스가 시야에 드러온다.
난 조심스럽게 박스를 내려 뚜껑을 열었다.
앨범
가끔 이억만리 유학와서 힘들때 마다 펼쳐보던 사진첩이 맨 위에 놓여져 있다.
사진첩의 첫장을 열자 빛바랜 엄마, 아빠의 결혼 사진이 눈에 들어온다.
그사진 위의 엄마를 쓰다듬자 말랐던 눈물이 또다시 왈깍 쏟아져 나온다.
"엄마야"
엄마와 아빤 결혼부터가 축복받지 못하였다.
유신의 서슬퍼런 시대를 살아가던 그시절의 젊은이들은 방황하고 또 그렇게 숨죽이고 살아만 했던 그때
아빤 전투 경찰을 지원해 국방의 의무를 져야만 했고 엄만 부산의 모 여상을 다니고 있을 때였다.
그때 발생한 사건이 바로 광주민주화 운동의 도화선이 된 "부마사태"였다.
연일 계속되는 집회와 시위로 부산 일대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그런 어느날
인연의 끈은 길고도 험하다고 했던가…
하교하던 엄마는 어느쪽에선가 날라온 돌에 맞아 선혈을 쏟으며 그자리에 쓰러졌고,
그 바로 앞에 아빠가 대치중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엄마와 아빠의 길고도 험난한 인연은 시작되었으나
암울한 시대를 살아가는 젋은이들이란 동질감이에왼 엄마와 아빤 근본부터가 달랐다.
엄만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난 가난한 집안의 장녀였고,
아빤 그야말로 엘리트 코스를 단계적으로 밝아가는 외아들이였다..
당연히 아빠 집안에서의 반대는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엄마에게로 퍼붓는 시댁에서의 모진 피박과 모멸감도 엄마 아빠 사일 갈라놓지 못했고,
아빤 보란듯이 다니던 일류대학 마저도 내팽개치며 제대한지 이듬해인 1982년 서울 변두리
사진관에서 다정히 손붙잡고 사진을 찍으며 조촐한 식을 올렸다.
하객도 없었고, 엄만 그 흔한 드레스조차 입지 않은체로 그렇게 결혼식을 올린 것이다.
그러구 그때 찍었던 사진 속의 엄마가 나를 보며 생긋이 웃어보이고 있었다.
복받치는 설움과 탄식이 나를 다시금 슬픔의 나락으로 안내한다.
눈물과 콧물이 섞여 사진 위로 하염없이 떨어졌고, 난 앨범을 가슴속에 안고는 다시금 오열하기 시작한다.
"엄마야---- 엄마야"
"죽지마라 엄마야----"
그렇게 또 그렇게 하염없이 울어댔다.
"휴"
우는 것도 지치는지 가끔 길게 숨을 몰아 쉬고는 다시금 울어댔다.
아까와는 다르게 정말로 엉엉 소리내여 정신없이 울어댔다.
그렇게 또 한참을 울고 나서야 박스 속에서 나의 일기장을 꺼내든다.
한쪽에 사진첩을 조심히 내려 놓고는 추억의 자락을 읽어 내려간다.
1996년 3월 2일
오늘 아빠를 하늘나라로 보냈다.
엄만 아빠가 좋은나라로 가서 행복하게 사실 거라 하셨는데, 계속 울고만 계신다.
아빠가 잠자는 통위에 흙을 뿌렸더니 엄마가 나를 잡고 엉엉 우신다.
나도 엄마가 울길레 따라 울었다.
너무 슬프다.
엄마가 왜 우는지 모르겠다.
1996년 3월 22일
오늘은 할머니가 학교에 오셨다.
할머니가 오시면 용돈을 마니 주시는데 오늘은 용돈은 주시지도 않고 나를 차에 태워 할머니 집으로 데려갔다.
속상하다.
태진이 녀석의 콧대를 꺽을수 있는 기회였는데
그녀석이 어제 3백만을 돌파했다.
나도 용돈 받아서 언젠가는 3백만을 넘기고 싶다.
1996년 3월 23일
오늘 엄마랑 할머니랑 막 싸우셨다.
엄마가 와서 기뻣는데 엄마는 하나도 안 기쁘신가보다.
엄마의 손을 잡고 나오는데
할머니가 엄마더러 지독한년이란다.
할머니가 엄마한테 왜 욕을 했는지 모르겠다.
엄마도 할머니집에서 같이 살면 맨날 치킨도 먹고 피자도 실컷 먹을수 있는데…
엄만 치킨도 안사줄꺼면서…
1996년 4월 18일
엄마가 갑자기 날더러 할머니집에서 살고 싶냐고 물어보신다.
내가 그렇다고 대답하자 엄마는 또 울려고 그러신다.
난 엄마도 같이 할머니집에 가서 살자고 햇더니 엄만 날 꼭 안아주시면 우신다.
엄마가 울길래 나도 따라 울었다.
엄마가 안가면 나도 안갈테야 했더니 엄마가 피식 웃으신다.
난 이담에 커서도 엄마랑 살꺼야
엄마 엄마 늙지 말고 오래살아
국민학교 5학년때의 일기였다
그런데 늙지 않고 오래사실것만 같았던 고운 엄마가 이제 아빠 곁으로 가실려는 모양이다.
한많고, 탈많았던 이세상엔 나홀로 남겨둔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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